[再錄] 2012년 6월6일자 조갑제닷컴 보도
奉泰弘(봉태홍) 대표가 이끄는 단체 ‘라이트코리아’가 최근 주최하거나 참여한 주요 기자회견 및 행사들이다. 연 90회, 주 2회 수준의 활발한 활동력이다. 보수우파 진영의 목소리다 싶은 행사에는 어김없이 한 쪽 어깨에 스피커폰을 맨 奉泰弘 대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그나마 줄어든 숫자입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던 2006, 2007년도엔 연 150회의 행사를 했습니다. 일주일에 3번은 나간 셈이죠.”
奉泰弘 대표를 만나기 위해 3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6일 서울시청 앞에서 개최되는 국민대회 준비로 奉 대표의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좌파 인사들에 대한 고소, 고발 활동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2009년 4월엔 가수 신해철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2010년 1월에는 참여연대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했으며, 2010년 7월에는 한상렬 목사와 그가 대표로 있는 단체 한국진보연대를 국가보안법 및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형법 등의 위반으로 고발했다. 2010년 10월에는 박지원 前 민주당 대표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11년 1월28일에는 배우 문성근을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어 4월에는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조사위원으로 참여해 ‘붉은 멍게’ 발언을 한 서프라이즈 대표 신상철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물론 그만큼 ‘공격’도 많이 받는다. 지난 1월 좌파인터넷 매체 <서울의 소리>(대표 백은종)가 한 책을 근거로 라이트코리아를 ‘친일파 옹호세력’으로 비방하는 기사를 냈다. 문제의 책은 라이트코리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이 매체는 라이트코리아가 책을 저술한 것처럼 묘사했다. 奉泰弘 대표는 <서울의 소리> 대표인 백은종 씨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백 씨에게 벌금 300만원의 구약식 처분을 내렸다.
4월에는 대표적인 좌파매체 오마이뉴스가 奉泰弘 대표와 관련한 기사 정정 및 사과 보도를 했다. 2008년 6월 쇠고기 협상 반대 촛불집회에서 봉 대표가 노인을 폭행을 했다는 오보에 대한 3년만의 사과였다. 당시 시위대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한 봉 대표는 오히려 노인 폭행범이라는 누명과 함께 조작 동영상의 주인공이 됐고, 이 동영상은 25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엄청난 비난과 욕설에 시달린 봉 대표는 동영상 제작자, 기사를 작성한 기자, 이를 유포한 네티즌 등 12명을 추려 검찰에 고소했다. 2여 년에 걸친 긴 조사 끝에 검찰이 이를 기소하려하자, 경찰 조사에서도 잘못한 것 없다고 하던 오마이뉴스 기자가 ‘허위 보도를 인정하고 사과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왔고, 奉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해프닝은 막을 내렸다. 이외에도 ‘공격’은 셀 수조차 없다.
 

 
3년 만에 결백을 증명하게 된 소감을 묻자, 奉 대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털털하게 웃으며 칼칼하면서도 힘있는 특유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고라 게시판을 보면 저에게 사과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 일 덕분에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서 개인을 비방하고 음해하는 글이 확 줄었어요. 아고라 게시판이 최근 좀 약해진 것도 제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잘 된 일이죠.”
 
奉泰弘 대표의 ‘사회운동가’로서의 첫 발디딤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이후 정부, 사회에 대한 실망감, 자괴감이 커졌다. 마침 당시는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면서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이 등장해 온라인 커뮤니티가 첫 선을 보일 때였다. 奉 대표는 천리안 게시판에 ‘성산태두’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리며 김대중 정권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이때 게시판에서 만난 동지인 아이디 ‘자유행동’이 바로 현재 독립신문의 대표 신혜식 씨다. 
보수에는 ‘뉴’도 ‘올드’도 없다
활발한 게시판 기고 활동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져 신혜식 씨와 함께 ‘네티즌 자유연대’라는 모임을 결성하기도 하고, 본인이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묶어 책 ‘각하, 오늘도 만우절입니까’를 출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당원으로서 중앙청년위원회 부위원장으로도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좌파 정권이 연장되자 위기의식을 느낀 奉 대표는 회사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아스팔트 우파로 변신하게 된다. 2003년 서정갑 회장과 인연을 맺어 2005년까지 국민행동본부 기획위원장으로 활동했고, 2006년 4월에는 마침내 ‘개혁적, 합리적인 보수’를 추구하며 奉 대표가 직접 나선 단체 ‘라이트코리아’가 탄생한다.
당시는 뉴라이트 결성 바람이 불었던 때다. 奉 대표는 ‘뉴라이트’라는 말이나 표방하는 이유가 불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뉴(new)’라는 단어 때문에 기존의 보수우파들은 자동으로 ‘올드(old)’, 즉 청산되어야 할 ‘낡은 세대’로 찍혀버리게 됐다는 것이다. ‘라이트코리아’의 ‘라이트’는 'Right', 즉 ‘바른 한국’이란 뜻이다. 보수에는 ‘뉴’도 ‘올드’도 없다, 오직 ‘바른’ 대한민국을 세운다는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고 가야하는 것이라고 奉 대표는 힘주어 말했다. “보수우파의 기본적인 원칙은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정체성을 회복하고 지킨다, 이거거든요.”
 
1961년생인 奉泰弘 대표는 60년대 태어나 80년도에 대학을 다닌 ‘386세대’에 속한다. 그런 奉 대표가 현재 아스팔트 우파 단체의 대표가 되어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다녔던 학교가 운동권이 쎈 학교였어요. 그때 운동권 친구들이 지금 어디서 뭐하는지도 다 알죠. 저도 당시 시대 분위기상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 때문에 활동은 열심히 했습니다. 60항쟁 때는 친구랑 둘이 ‘복학생협의회’라는 것도 만들어 주도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NL, PD 어느 쪽에도 가담은 안했어요. 아침마다 김일성, 김정일 사진에 인사하는 친구들을 보니 기도 안차더군요. 그 친구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실향민 2세대인 奉泰弘 대표에게 공산당은 유년시절부터 타협할 수 없는 ‘惡(악)의 존재’였다. 큰아버지를 비롯한 친족들이 공산당에게 학살당한 가족사의 아픔이 奉 대표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부친만 살아서 남한으로 내려온 탓에 奉 대표에게는 친척이 거의 없다. 진정한 참회도 없고 용서도 구하지 않는 상대와 대화하고 타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奉 대표는 말했다.
奉 대표는 대한민국 요소요소에 앉아있는 ‘좌파 척결’이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떤 정권이든지 권력이 바뀌면 먼저 요직에 앉아있는 인사들을 교체하고 시작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기껏 ‘정권 교체’를 해놓고도 지난 정권이 임명한 인사들을, 심지어 국정원장까지 그대로 썼거든요. 그래서 촛불 집회로도 그렇게 당한 거죠.” 奉 대표는 좌파 정권 10년 동안 대한민국 곳곳에 좌파들이 너무 깊게 뿌리를 박았다고 염려했다. 뿌리가 깊어 위에 보이는 가지를 쳐도 또 가지가 올라오고 잎사귀가 나니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하나로 뭉칠 때가 왔다
奉 대표가 8여 년 동안 몸담은 보수우파 진영에도 그동안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노무현 정권까지는 하나로 뭉쳐서 ‘反노무현’, ‘좌파정권 교체’를 외쳤던 보수우파 단체들이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면서 여러 갈래로 나뉜 것이다. 奉 대표는 이에 대해 “다소 목표 자체가 분산된 감이 있지만 추구하는 방향이 다양해진 것이지 이를 ‘분열’이라고 보진 않는다”면서 “그러나 다시 한 번 하나로 뭉칠 때가 왔다”고 말했다.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이 바로 그것이다.
“다들 이대로 가다가는 좌파정권이 재집권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거든요. 지난 2007년보다 더 시급합니다. 문제는 위기가 왔는데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여당과 정부입니다. 한나라당을 저대로 놔뒀다가는 넘어갑니다. 본인들 자체가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주의에 빠져있어요. 한나라당이 넘어가는 건 괜찮은데, 도미노 현상으로 대한민국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
奉 대표는 한나라당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세력이 등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나라당이 놓친 부분을 받아낼 수 있는 대안정당이 필요합니다. 적의 표적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어요. 좌파는 표적이 분산되어 있지 않습니까? 보수 쪽은 현재 한나라당 하나거든요.” 분산된 대형으로 총선을 치룬 후, 대선은 야권이 야합하듯 후보를 하나로 단일화하는 ‘보수 대연합’이 필요하다고 奉 대표는 강조했다. 그래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야권 단일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분화되고 있는 보수우파 진영에의 활동에서 奉泰弘 대표가 추구하는 기준은 확고하다.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것. 이를 위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지키고, 이것을 흔드는 종북좌파 세력들을 척결하는 것이 奉 대표의 변함없는 목표다. 이를 위해 국민들이 종북 좌파들의 선전선동에 넘어가지 않도록 진실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특히 앞으로는 시대 변화에 맞춰 SNS(Social Network Service) 즉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한 활동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힘의 원천은 신념과 사명감
마흔 살까지는 평범한 시민이었다고 말하는 奉 대표. 김대중 정권의 출현이 인생의 제2막을 연 셈이다. 현재의 ‘전업 사회운동가’의 삶을 위해 奉 대표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취미활동도, 친구들은 다 가지고 있는 승용차는 물론이다. 해외여행을 못 가본지도 10년. 가족들과 외식을 해본 지도 몇 년이 넘었다고 했다.
이런 ‘불편한’ 생활 속에서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신념과 사명감이 奉 대표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희생이 따르지 않고서는 이 길을 갈 수가 없죠. 생활의 불편은 오래전에 포기했어요. 그래도 인생이 빵만 가지고 행복할 수는 없는 거잖습니까. 꼭 필요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제 행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