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의 긴급한 '對北'은 억지력 키우기

‘햇볕’소리가 정계, 학계, 언론계에서 집요하게 들리곤 한다.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가 말했다. 북한은 죽지도 낫지도 않는 중환자 같다고. 금방 망하지도, 그렇다고 사는 게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통제가 강하고, 주민이 무기력하고, 정보차단벽이 두텁고, 외부 식량지원과 암시장 묵인을 통해 그때그때 연명하는 기술을 터득했기 때문에 곧 망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중국식 개혁개방은 정권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라 그것을 통한 경제 개선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런 김정일 북한을 전제로 할 때 남쪽의‘햇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한 마디로‘햇볕’이 내걸었던 명분과 기대가‘말짱 도루묵’이었다는 이야기다.‘햇볕’의 명분과 기대는“돈주면 변할 것”이라는 것이었다.“변할 것”이라는 것은 김정일이 개혁개방과 대남 전략 수정으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그건 헛물 켜기였다. 김정일은 우리의 돈만 똑 따먹고 전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정도를 넘어 우리 돈으로 핵무기를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그렇다면 돈을 무작정 퍼줄 수는 없지 않으냐?”"핵 폐기하면 돈주겠다”로 정책이 바뀌었다. 돈주는 쪽으로선 당연한 클레임이었다. 그러자 김정일이‘천안함’ ‘연평도’로 치고 나왔다. 금단증상에 따른 뗑깡이었다. 범좌파는“봐라, 햇볕 안 한 탓이다”"우리가 정권 잡았을 땐 김정일이 안 그랬지 않으냐?”며, 가해자인 김정일을 감싸는 대신 피해자인 우리를 오히려 나무랐다.

2차 대전 때라면 영국 야당이“왜 히틀러에게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지 않아서 화(禍)를 자초했느냐?”고 한 격(格)이다. 좌파 10년에‘천안함’'연평도’가 없었던 까닭은 남쪽 좌파가 해달라는 대로 무조건 다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식은 1대 1의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대북(對北) 코 꿰기다. 우리는 무장해제하고 김정일의 무장을 우리 돈으로 강화시켜 주는‘머저리의 자해(自害) 행위’다. 더 심하게 말하면 저쪽과 내통해서 이쪽을 허무는 행위다.

‘햇볕’이 이렇게 나쁘게 검증된 마당에는 이젠 대북정책의 기조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 우선“어떻게 해서든 남북대화를 성사시켜야...”의“어떻게 해서든"을 폐기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나?”"어떻게 해서든" 때문에 간도 쓸개도 무엇도 체통도 돈도 실속도 국방태세도 국민정신도 국가정체성도 다 호물호물 녹여 버려, 잘 먹고 잘사는 쪽이 오히려 쪽박 차고 굶어죽는 쪽의 공갈협박이나 받고 사는 우스운 꼴이 되지 않았나 말이다. 이런 식으론 개인이건 국가건 살아선 안 된다.

남북대화는 우리가 떳떳하고 정당하고 상호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이런 방식이라면, 그리고 오직 이런 방식으로라야 응해 주겠다고 선언하고, 이게 우리의 마지노선이니 할 터면 하고 말 터면 말라는 자세로 해야 한다. 대화를 하다가도 저쪽이 우리 돈은 돈대로 따먹고 우리 요구는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채 오직 대남 교란전술만 부리려는 기색을 보이면 즉각 걷어차고 회담 중단 선언을 해야 한다. 도대체 뭐가 답답해서 안달을 해야 하는가?

우리로 하여금 만약 안달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충분조건이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의 대북 억지력 약화이고 저들의 대남 도발능력 강화다. 지난 시기 김정일과 그 내통세력이 초래한 게 바로 그 조건의 축적이었다. '햇볕' 결과 김정일이 핵을 거머쥐었으니까. 그걸 밑천으로 김정일은 지금 우리를 향해“불바다 맛볼래, 숙이고 들어올래?”의 양자택일을 호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정당한 의미의 남북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앞세워야 할 과제는 대북 억지력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 없이는 1대1의 정당한 남북대화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전쟁공갈에 기죽을 것이라고 믿는 한 김정일은 절대로 정당한 모양의 남북대화를 하려 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달리 무슨 수가 있느냐?“고 묻는‘햇볕’소리가 정계, 학계, 언론계에서 집요하게 들리곤 한다. 달리 무슨 수가 왜 없나? 우리 억지력을 키우는 것이지!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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