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매일은 지난 5월 <혈세 축내는 수원·인천 월드컵 경기장>이란 제목으로 참담한 적자 실태를 보도하였다. 정부는, 수원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3107억원(國費 440억원, 道費1430억원, 市費 935억원, 民資 282억원)을 들였다(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41만1천908㎡). 4만3000명을 수용하는 축구전용 구장인데, 지난 해 사용횟수는 32회, 여기서 5억8485만6000원의 수익을 올렸으나 관리비가 52억3913만원이었다고 한다. 인천 문학경기장은 더하다고 했다. 문학경기장은 45회 경기를 치르면서 수익은 고작 1억4690만340원이고 관리비 지출액은 62억5967만1000원이었다고 한다. 다른 월드 컵 경기장도 적자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년 12월 ytn은 <전국의 대부분 월드컵 경기장들은 해마다 1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수원은 최근 6년 동안 적자가 270억 원이 넘었고 인천도 최근 매년 2~30억 원의 적자를 봤습니다. 대구 역시 최근 3년 동안 95억 원의 적자를 냈고 울산의 경우도 매년 10억 원이 넘는 등 지방 球場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누적 적자가 1000억원 단위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오늘 뉴시스는 <2018 평창의 경제적 효과 65조...'눈 대신 돈' 쏟아진다>라고 보도하였다. 65조원의 산출근거엔 쓰는 돈과 벌어들이는 돈이 섞여 있다. '경제적 효과'엔 적자도 흑자도, 수익도 지출도 다 포함시킨 듯하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교통사고가 많이 날수록 국민총생산이 늘어나는 게 된다. 63조원의 경제적 효과의 결과가 적자로 나타날지, 흑자로 나타날지 속단할 수 없는데, 위의 월드컵 경기장 赤字사태가 하나의 경고이다.
한국인들은 어제 오늘 기분 좋아하는 代價를 비싸게 치러야 할지 모른다. 평창을 위하여 화려하게 투자한 돈이 赤字로 귀결될 것인가, 黑字로 귀결될 것인가? 평창을 위하여 지은 방대한 시설이 계속 많이 이용될 것인가, 아니면 행사가 끝나면 놀게 될 것인가?
과연 외국 관광객들이 지속적으로 몰려 올 것인가? 평창으로 올라간다는 국가 브랜드 효과는 實體가 있는 것인가? 있다고 해도 연평도 포격 한 방으로 날아가버릴 정도인가?
88서울 올림픽 때 지은 시설은 대체로 잘 이용되는 듯하다. 경제적, 외교적 효과를 계산하여도 서울 올림픽은 어마어마한 흑자였다. 서울올림픽에서 비롯된 북방외교의 성과, 특히 韓中수교가 가져온 경제적 이득을 생각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동계 올림픽은 여름 올림픽보다는 효과가 적다. '눈 대신 돈이 쏟아지는' 게 아니라 '눈 대신 세금이 쏟아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하면 너무 비관적일까? 큰 일을 할 때는 최상의 시니리오와 함께 최악의 시나리오도 준비해야 한다. 우선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경영사례를 참고해야 할 것이다. 작고한 朴世直 조직위원장의 위대한 지도력과 경영능력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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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3월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한 1군단장 金白一(김백일) 장군(중장으로 추서)은 34년의 생애를 불꽃처럼 살고 간 분이다. 建國(건국) 및 전쟁기간에 金白一처럼 많은 전투에 참여한 지휘관은 없을 것이다. 그는 여순14연대 반란을 진압한 지휘관이었고, 6.25 남침 초기 1군단장으로서 낙동강 전선의 동쪽(포항, 안강, 기계, 영덕)을 맡아 북괴군을 저지하였다. 北進(북진)할 때는 1군단 3사단이 가장 먼저 38선을 넘었다. 이를 기념하여 국군의 날이 10월1일로 정해졌다. 혜산진까지 북진하였던 1군단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던중 미 10군단과 함께 흥남철수작전을 성공시킨다. 金白一(김백일) 군단장은, 흥남부두에 몰려든 북한사람들을 태워갈 선박이 모자란다는 보고를 듣자 알몬드 10군단장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1군단은 배를 타지 않고 육로로 중공군을 무찌르면서 남하할 테니 피난민들을 태워주시오.”
미군과 한국군은 중공군에 포위된 가운데서도 군함, 상선, 어선을 동원, 군인 10만5000명에 피난민 10만 명을 태우고 철수하였다. 후퇴하는 군대가 피난민을 이렇게 많이 구출한 예는 세계전사에서도 드물다. 군은 피난민들을 거제도에 내려주었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회장 황덕호)는 지난 봄 ‘흥남철수작전의 영웅’ 金白一 장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민간인 성금으로 장군의 동상을 제작, 거제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내에 세우고, 이를 거제시에 기증하였다.
지난 3월22일 거제시에서 기념사업회로 보낸 공문엔 <10만 명의 함경도민의 생명을 구해준 고 김백일 장군 동상 건립은 포로수용소 유적공원내 흥남철수기념공원 이미지에 부합하고, 교육의 場으로도 활용 가능성이 높아 아래와 같이 승인사항을 통보하며...>라고 적혀 있다.
동상이 세워지자 거제의 일부 단체와 현지 언론이 만주군관학교를 졸업, 만군의 간도특설대에 근무하였던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라고 규정, 철거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지난 6월2일 거제시는 기념사업회장에게 보낸 공문에서 <김백일 장군 동상을 즉시 철거하라는 거제시민단체협의회 성명서 발표, 지역 언론보도, 공중파 방송 보도, NGO 단체 시청항의 방문 등의 민원으로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으므로 조속한 시일내 민원을 해소할 수 있도록 대응자료나 자체대책 등을 수립하여 공식입장을 정리 통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지난 6월28일 거제시 의회는‘친일파 김백일 동상철거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결의문은 <자랑스런 땅에 친일파 김백일 동상을 설치한 것은 국가적 수치이자 거제시민의 자존심을 크게 훼손하는 행위로서...>란 대목이 있다. 거제시 의회는 한나라당 의원 9명, 진보신당 3명, 민노당 1명, 무소속 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6월30일 경남도 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제시에 <김백일 동상을 이전, 또는 철거하는 계획을 수립하여 도에 통보하라>는 요지의 공문을 보냈다. 동상이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된 거제포로수용소의 '문화재 영향 검토 구역내에 있는데도 무단 설치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행정실수는 동상 건립을 승인해준 거제시가 저지른 것이지 기념사업회의 책임이 아니다.
거제타임즈 보도에 의하면 경남도는 지난 7월7일 <김백일 동상 설치는 사전에 문화재 영향 검토 구역으로 영향검토를 받아야 하나 무단 설치된 것으로 원상복구 해야 함>이란 요지의 지시를 거제도에 내렸다고 한다. 거제시는 이에 따라 기념사업회에 자진철거를 유도하고 불응하면 행정대집행을 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지난 6월22일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함남 및 함북 중앙도민회, 함북 6.25 전적기념사업회는 공동으로 성명서를 내고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로 모는 데 대하여 반박하였다. 요지는 <이념적으로 편향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는 이유만으로 김백일 개인에 대한 죄목에 아무러 증거도 없이 매도함은 너무나 비논리적이다. 김백일 장군은 만주국 장교였고, 중국공산당과 김일성 일당을 진압하는 데 동원되었을 뿐이다>면서 <여순반란사건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6.25 발발 때는 초기 지연작전을 주조하였으며, 낙동강 방어전에서 대첩을 거두고, 최초로 38선을 돌파, 북진하였고, 세계전사에 유례가 없는, 10만 여 명의 자유민을 구출한 그 행적에 비추어 보아 너무도 맹목적인 삿대질이다>고 했다.
1. 거제시 의회가 결의문에서 '친일파 김백일'이란 표현을 쓴 것은 사실과 다르고, 중대한 명예훼손으로 민형사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다. 정부 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수록된 1,005명의 친일행위자 가운데 김백일은 들어 있지 않다. '친일반민족행위'는 어떤 기관에 소속되었느냐가 아니라 구체적인 항일 독립운동 탄압행위를 한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김백일이 만주군 소속이었지만 항일독립투사를 탄압하였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친일파 김백일 장군의 동상제막에 대한 시민연대 성명서>엔 <김백일은 일본군에 충성하여 백선엽, 최남근과 함꼐 조선항일조직 전문 토벌부대인 간도 특설대 창설의 주역으로서...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미 등재되어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친일파이다>는 대목이 있다. 김백일은 만주군 장교였지 일본군 장교였던 적은 없으므로 '일본군 충성 운운'은 사실과 맞지 않다.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는 좌편향 인사들, 좌익사건 연루자 등이 주도한 단체로서 이념적 의도를 깔고 선정한 친일인명은 객관성과 신뢰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여운형처럼 친일행위가 명백한 좌익인사는 빼주고 박정희 등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은 무리하게 집어넣었다. 이런 좌편향 기관의 신뢰성 떨어지는 자료를 근거로 '흥남철수 작전의 영웅'을 '친일파'로 단정한 것은 일종의 인격살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백일 장군의 혁혁한 戰功을 인정, 을지, 충무, 화랑무공훈장을 생전에, 사후엔 태극무공훈장을 주었다. 국가의 공식 평가와 좌편향 연구소의 인격살인적 평가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가? 놀랍게도 거제시 의회는 대한민국 정부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의 판단을 무시하고 좌편향 연구소의 왜곡된 평가를 수용,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는 결의를 했다.
2. 어떤 사람의 생애를 깡그리 매도하는 '친일파'란 용어는 사실왜곡이고 명예훼손이다. 김백일 장군은 만군 시절에 배운 군사기술로 건국후 공산당의 반란과 남침에 맞서 싸우는 데 분투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10만 명의 북한사람들을 구출하였다. 인간에 대한 평가는 삶의 전체상을 입체적으로 보고 해야 하는데 거제시 의회는 김백일 장군의 영웅적 기여를 깡그리 무시하고 조국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행적만 왜곡 과장하여 '국군의 영웅'을 '친일파'로 매도한 것이다. 김연아 선수가 엉덩방아를 찧는 장면만 촬영하여 두고 계속 틀어주면서 "김연아는 3류 선수"라고 욕하는 격이다.
3. 김백일 장군은 34세에 戰死함으로써 그가 지켜낸 조국의 번영도 보지 못하고 영화도 누리지 못하였다. 그가 흘린 피 덕분에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이들중엔 거제시민들도 있고 거제시 의회 의원들도 있다. 거제시는 1인당 주민소득이 4만 달러 이상으로 한국에서 가장 높다. 거제의 이런 풍요가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로 매도한 세력에 의하여 이뤄진 것인가? 김백일 장군이 구출한 10만 명의 북한사람들 가운데는 세계최대의 모자회사인 영안모자의 백성학 회장 같은 분도 있다. 김백일 장군에 의하여 구출된 사람들이 뜻과 돈을 모아 동상을 만들어 거제시에 기부하였다. 국가예산으로 해야 할 일을 민간인이 해냈으니 감사해야 할 일인데, 이제 와서 철거를 권한다.
4. 동상은 민간인들이 무단으로 한 것이 아니다. 거제시가 동상 건립 승인을 내 줄 때 공문에서 한 표현이 맞다.
<10만 명의 함경도민의 생명을 구해준 고 김백일 장군 동상 건립은 포로수용소 유적공원내 흥남철수기념공원 이미지에 부합하고, 교육의 場으로도 활용 가능성이 높아 아래와 같이 승인사항을 통보하며...>
일부 단체가 철거운동을 시작하고 거제시 의회가 철거 촉구 결의안을 내니 거제시는 기념사업회에 <조속한 시일내 민원을 해소할 수 있도록 대응자료나 자체대책 등을 수립하여 공식입장을 정리 통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통보하였다. 동상 건립이 문화재 영향 검토 지역에서 이뤄진 것이고 검토를 받지 않아 위법성이 있다는 말이 이때까지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봐 거제시는 건립에 법적 하자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대응자료와 자체대책 수립을 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경남도는 동상이 문화재 영향 검토 구역내에 있다는 점을 지적, 철거나 이전을 지시한 것이다. 거제시의 사소한 절차 미스를 트집잡아 동상의 철거 이전이란 과격한 지시를 내린 것이다. 거제의 일부 단체-거제시의회-경남도가 거제시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5. 거제시 일부 단체와 시의회의 논법대로라면 국군은 '친일파'가 창설하고 6.25남침 전쟁도 '친일파'가 수행하였으며 한국의 근대화도 친일파 박정희가 한 게 된다.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지키고 발전시킨 게 된다. 이런 自虐的인 역사관이 좌편향 세력에 의하여 만들어졌고, 그 목적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것이다. 남북 대결의 본질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방식을 놓고 다투는 타협일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대한민국을 지키고 키운 영웅들을 친일 반역자로 모는 것은 자동적으로 민족반역집단인 북한정권을 이롭게 하는 행위이다.
6. 김백일 장군 동상은 국군의 영광, 한미동맹, 인도주의 등을 상징한다. 김백일 장군의 38선 돌파가 국군의 날을 만들었고, 그가 미10군단장 알몬드 장군과 함께 한 흥남철수 작전은 인도주의와 한미동맹의 상징이다. 김백일 장군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국군에 침을 뱉는 행위이다. 김백일 장군은 육군사관학교 교장도 지냈고, 사관학교 교가도 작사하였다. 그의 본명은 金澯圭였다. 광복 뒤 김일성의 협력 요청을 뿌리치고 38선을 넘어 서울에 왔을 때 그날 우러러본 하늘이 너무 맑고 밝아서 "온 세상이 붉은 색으로 물든다 해도 나만은 희게 버티겠다"는 뜻을 담아 金白一로 개명하고 국군 창설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任軒永, 64) 소장
민족문제연구소는 설립목표를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와 해명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세우기 ▲친일인명사전 편찬으로 내 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친북·반미·좌파 운동단체에 이론과 행동방향을 제공하는 '씽크탱크' 역할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 친북운동가들이 대거 결집해 있는 단체다.
이 단체가 현재 진행중인 실천활동은 ▲박정희기념관 건립저지 ▲친일파기념사업 저지 ▲한일협정 개정 ▲조선일보 반대 운동 등이다.
초대 소장(91.2.27)은 前 양심수사면추진협의회 의장 김봉우(金奉雨, 55세)씨가, 2대 소장에는 한상범(2001.2.17)씨가 맡아왔으며, 2003년 10월부터 현재까지 3대 소장은 임헌영(任軒永, 64)씨가 맡고있다. 임씨의 본명은 임준열(任俊烈)이다.
'범민련' 간부 대거 포진한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청산 표방하며 실제론 친북활동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진 중에는 “16대 국회때 통과된 친일진상규명법은 국민들을 실망시킨 누더기 법률”이라며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을 주도한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 이창복 전 의원, 이해학씨(성남주민교회 목사) 등이 있으며, 이들은 이적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이하 범남본)’에 지난 91년 창립준비 단계부터 참여해 온 인물들이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다', '친일 앞잡이다'로 논란을 빚고 있는 김희선 의원은 91년 범남본 창립준비위원을 거쳐 92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상임의장 오종렬)’ 통일위원장을 역임했고, 16대 국회에 진출한 이후 국가보안법철폐, 이라크파병반대, KAL기 진상규명 등을 주도해왔다.
16대때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창복 전 의원은 84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처장, 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상임의장을 거쳐 93년부터 98년까지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역임했다.
연구소 이사진 중 이관복(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 대표)씨는 범남본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범남본 산하 여중생범대위 고문으로 있으며, 장두석(민족의학연구회장)씨는 현재 범남본의 고문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범남본은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결성단계인 지난 91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적단체판정을 받았고, 97년 5월 16일 다시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정을 받은 단체이다.
전국연합 역시 범남본과 함께 1민족, 1국가 2정부의 북한식 연방제통일방안을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단체로서 지난 한 해 동안 500여 건 이상의 친북·반미운동을 전개한 단체이다.
김남식 연구소 지도위원, '수령은 인민의 뇌수' 김 父子 미화
민족문제연구소에는 강만길(상지대 총장), 리영희(한양대 명예교수), 故 김남식(친북성향 인터넷매체 통일뉴스 고문) 등 친북지식인들도 지도위원이라는 직함으로 참여하고 있다.
친북단체에서 통일운동의 대가로 존경(?) 받아온 故 김남식(올해 1월 사망)씨는 온·오프라인 상에서 ‘김일성 영생론(永生論)’을 옹호하는 등 김정일 체제를 미화해 온 인물이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통일뉴스에 게재한 '북한의 ‘영생 10년’의 이해를 위하여'라는 글을 통해 “김일성 수령은 인민대중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뇌수의 역할을 하는 중심이다” “오늘의 북한사회는 선군(先軍)정치에 의해 ‘주체혁명(主體革命)’의 위업(偉業)을 이끌어 왔다” “김일성 수령을 영원한 수령으로 모시는 조건에서 선군(先軍)정치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는 등 주장을 펴기도 했다.
리영희 교수와 강만길 교수 역시 온·오프라인 상에서 각각 “남한체제의 사회주의적 변화를 통한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2003년 11월22일 민족통일학회 발언)” “미국을 혈맹으로 보면 통일을 이룰 수 없다(2004년 1월 31일 동 학회 발언)”는 등 반미 민족공조 논리를 개발해 온 인물들이다.
임헌영 現 소장, 70년대 최대공안사건 `남민전`의 주역 10년 복역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씨는 지난 79년 적발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사건의 연루자로 74년에 이어 두번째로 투옥되었다가 98년에 복권된 사람이다. 현재는 K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남민전은 안용웅(安龍雄) 등이 월북,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으로부터 구체적인 대남사업과 활동을 지시·통제를 받아 온 공산혁명조직으로 밝혀졌으며, 특히 검거 당시 남한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할 경우 남한 내에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까지 만들어 놓았고, 공작금을 마련키 위해 혜성대(彗星隊)라는 조직을 만들어 재벌집 강도 등을 예비하기도 했다.
남민전 사건은 1960년대 인혁당, 통혁당사건 관련자들이 출감 후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을 규합 북한과의 연계 속에 결성된 지하공산혁명조직이다. 이 사건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간첩사건으로 관련자만 해도 84명(불고속자 포함)이 넘었다.
당시 3차에 걸친 경찰발표에 의하면, 남민전은 불순세력을 규합하여 지하조직을 완성하고 도시게릴라 방식으로 사회혼란을 조성하여 민중봉기와 국가반란을 유도, 베트남방식의 적화를 획책해 왔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결과 사건의 총관련자 가운데 1심과 2심에서 39명이 석방됐으며, 현재 한겨레 신문 편집국 부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홍세화(洪世和)씨는 당시 사건으로 79년도에 프랑스에 망명,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후인 99년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나 남민전은 검거 이후 교도소 내에서 오히려 조직을 강화시켜 80년대 이후 국내 좌익세력의 토대가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향한 좌익사상범으로서 지난 89년 ‘수인(囚人)번호 3179’라는 책을 썼던 김정익씨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남민전 조직원들은 교도관연락책까지 동원, 교도소 내외에 비밀지령을 주고받으며 조직을 강화시킬 정도로 치밀했다”고 적고 있다.
김씨는 남민전 핵심관련자인 시인 故 김남주씨로부터 공산주의사상교육을 받은 내용을 같은 책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김남주가 반복해 교육했던 내용 중 한 가지는 아래와 같다.
'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히 죽여 없애는 것이다. 그 숫자는 200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민전 사건에 연루됐던 임헌영 소장은 지난 1989년까지 복역한 후 대통령특사로 출소했고 1998년 복권되었다.
前 소장 한상범 의문사위원장 때 간첩출신을 조사관으로 군장성·지휘관 등 조사
임헌영씨 이전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인물은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동국대 교수) 위원장이다. 한씨는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도 역임하고 있는데, 지난 해 6월 7일에는 김정일을 '구국의 영웅' '민족의 지도자' 등으로 각종 문건에서 칭송하고 있는 이적단체 범청학련 남측본부 윤기진 의장에게 '통일·민족운동에 온 힘을 다해온 데 치하한다'며 '박종철 인권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또 한씨가 위원장으로 있었던 2기 의문사위는 간첩죄·반국가단체 가입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인사 다수가 민간인 출신 조사관으로 활동해 현역 군장성과 지휘관 등을 조사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해 7월 1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소속 기관인 의문사위가 공안기관의 전향 강요를 거부하다 옥중에서 숨진 남파간첩ㆍ빨치산 출신 3명을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검찰과 국가정보원 등에 따르면 (의문사위 민간출신)조사관 K씨는 1993년 일본에서 북한간첩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에 검거됐으며 당시 안기부는 K씨가 92년 여동생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북한간첩에게 국내에서 수집한 군사기밀자료를 넘겨주고 공작금 60만엔을 받았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가 익명으로 보도한 K씨는 김삼석씨를 말한다.
친일인명사전편찬작업에 북한자료사용
한편 임헌영 소장은 지난해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층의 밥그릇 챙기기에 만신창이로 뜯겨나가고 휘청거리는 대한민국에 진정한 역사의혼을 불어넣겠다'면서 '역사 앞에서 진정 산 자와 죽은 자가 누구인지 친일인명사전 편찬과정에서 드러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이들이 친일파 범주를 규정하기 위해 참고한 문헌의 일부는 1940년대 중반 북한에서 발간된 자료들로서 그 이념성에 있어 적지않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최근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국민공청회 기조발제문'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소집요강'(1946),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친일파 규정'(1946)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지방선거 행동강령 중 친일파 규정'(1947),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미소공위 공동결의 6호 답신안'(1947) '북조선노동당의 미소공위 공동결의6호 답신안'(1947) 등을 별첨자료로 제시하기도 했다.
평창 올림픽으로 돈이 눈처럼 쏟아질까?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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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07, 1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