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vs 진보

요즘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당신은 보수인가 진보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제대로 뜻을 알고 답하는지 궁금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진보를 우월한 개념으로 인식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과연 보수는 무엇이고, 진보는 무엇인가. 동양학의 대가 연세대 宋復(송복) 특별초빙교수가 말하는 '보수와 진보 개념'을 정리해보았다. (月刊朝鮮 2003년 3월호, 2004년 3월호 참조)
보수와 진보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쯤 점검해보시길...

▣오해되고 誤用(오용)되는 보수의 의미

내 수업에 70명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한 명도 없었다. 「진보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30명쯤 되었다. 「나머지는 뭐냐」고 했더니 「중도」라고 했다.
진보라는 학생들에게 「진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구속과 간섭을 싫어한다.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진보다」라고 답했다.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 학생들이 모른다. 간단히 말해, 「자유를 달라」고 하면 보수고, 「평등을 달라」고 하면 진보이다.

근대사상은 자유와 평등이 두개의 큰 축으로 나눠지는데 자유를 내세우면 자동적으로 자유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자유경쟁을 벌이려면 생산성 증대와 업적증대에 힘써야한다. 사회는 끊임없이 소용돌이 속에서 발전한다. 자유경쟁이 심해지면 평등해지지 않으니 국가권력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경쟁이 아니라 통제가 되는 것이다. 업적증대보다 분배, 형평이 중요시된다. 복지를 주장하면 진보, 사회발전을 주장하면 보수주의이다.

▣보수주의자가 진정한 개혁자

진보와 좌파, 보수와 우익이 명확히 구분이 잘 안 가고, 사람들이 쓸 때 구분을 하지 않는다.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로 쓴다. 개념이 서로 다른 건데 知的(지적)인 훈련을 안 받은 일반 사람들이 그냥 써버린다. 단순화시켜서 말하면 진보와 좌파의 공통점은 '현상을 변경시켜 보자'는 것이다.
보수와 우파는 현상을 유지해 보자는 것이다. 보수나 우파는 10% 전후로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진보나 좌파는 20%를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정도이다. 조금의 차이밖에 안 나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10%는 굉장히 큰 것이다.
시간으로 보면 진보 좌파는 단기간에 바꾸려고 하고, 보수 우파는 긴 시간에 바꾸려고 한다. 짧은 시간에 10%를 더 바꾸려고 하면 사회적 충격이 크다. 보수 우파는 변화의 폭이 좁은데다 시간을 길게 두니까 충격이 작다.

보수주의를 '기득권 세력들이 현상유지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수주의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현상유지를 하려고 한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갖은 노력을 해야한다. 변화에 맞춰 제도를 고치고 사회와 행정에 맞춰야 유지할 수 있도록 개혁과 개선을 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후퇴하다가 와해된다.
보수주의자만큼 현상을 유지하려고 피땀 흘려 개혁과 개선하려는 사람이 없다. 보수주의의 개선은 점진적이다. 5% 바꾸고, 그 다음에 10% 바꾸고, 추진력이 생기면 15% 바꾼다. 성급한 사람이 보면 개혁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수주의자만큼 개혁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없다.

▣보수는 생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진보와 좌파는 언제나 분배와 구조에 역점을 둔다. 보수는 언제나 생산에 주력한다. 보수는 생산을 먼저 하고 분배를 그 다음에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을 좌파라고 하는 건 생산보다 분배 쪽에 역점을 두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중상층보다 중하층에 역점을 두었다는 뜻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보수세력에 대한 반대라든지, 對北(대북)관계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철저히 구현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좌파 정권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내세워야 하는데, 북한 주민을 착취하는 상태로 몰아놓고 계속 지배하려는 세력에 현금을 줘서 지원한 건 좌파의 행동이다.

▣보수는 전통을 중요시한다

보수주의자는 서열에 따라 사람을 올라가게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서열에 관계없이 사람을 앉혔다. 훈련을 쌓고 능력을 쌓으면 언제 어느 자리로 갈 수 있다는 기대를 갖는데, 그 기대를 송두리째 없애버렸다. 한 번도 경험을 쌓아 보지 않고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 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사람을 새 사람이고 신선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은 일이 서툴러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른다.

서열에 관계없이 자리에 앉히는 것을 학술용어로는 「지위 반란(Status Revolt)」이라고 한다. 선진국에서는 「지위 반란」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경험 없는 사람이 總選(총선)에서 돌풍을 한 번 일으켰다고 갑자기 수상이 되는 일이 없다. 그 자리에 앉을 만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자리에 대한 공감이 형성돼 있다.
삼성전자에서는 「지위 반란」이 일어날 수 없다. 누가 사장이 될 만한 사람이라는 데 대한 공감이 있다. 한국의 대학 사회에도 「지위 반란」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민간의 지도자는 꼭 필요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 가는데 정치판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이래서는 정치가 민간부문을 끌고 갈 수 없다.

내가 보수를 중요시하는 건 전통을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라는 詩(시)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어도 좋더라. 이 썩어빠진 대한민국도 전통이 있어서 좋다」고 노래했다. 위대한 모든 나라는 전통이 있다. 「전통이 현대에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나라」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나온다.
전통이 없는 나라는 역사가 없는 나라가 된다. 전통 중에 최고의 전통은 책으로 말하면 「古典」(고전)이다. 행위로 말하면 관습이다. 버려야 할 관습도 많지만 지켜야 할 관습도 굉장히 많다. 전통이 있는 나라의 지도자들은 「자제, 지혜, 용기」가 있다.

▣보수는 방법론이 있다

진보는 구조변화니까,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관습과 제도를 바꾸려고 한다. 보수는 관습과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결정적인 차이는 보수 우파는 메소달러지(방법론)가 있고 현실을 안다는 점이다. 진보 좌파는 이념은 있는데 현실을 모른다. 진보주의자들은 「방법이야 원칙대로 하면 되지」라고 한다.
방법은 경험세계에서 나온다. 방법을 알려면 경험과 경륜이 있어야 한다. 또한 훈련을 많이 받고 자격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생산성을 올리고 업적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경륜과 훈련기간과 업적 증대가 합쳐져야 방법론이 만들어진다. 이 세 가지에 의해서 국가의 중요자리 서열이 결정되어야 한다.

▣방법론이 중요한 이유

방법론이 중요하다. 김영삼 정부 때도 그랬지만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들어오면서부터 방법론이 사라졌다. 총론은 누구나 비슷하다. 중요한 건 방법론이다. 서양 속담에 「악마는 방법에 있다」는 말이 있다. 「악마는 각론에 있다」는 뜻인데, 각론이라는 건 방법론을 말한다.
최고의 전문지식이 있어야 각론이 나온다. 총론은 초등학교만 나와도 말할 수 있다. 엘리트 교육을 오래 받지 않으면 각론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이 실패할 때 「뜻은 좋은데 방법이 잘못됐어」라면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뜻이 좋았으니 방법은 잘못되어도 용서해 주겠다는 것이다. 서양은 다르다. 「이념이 방법론이고, 방법론이 이념이다」라고 생각한다. 방법론이 없는 이념은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동양에서도 그런 생각이 있다. 孟子(맹자)에 보면 「天命(천명)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다. 正命(정명), 隨命(수명), 遭命(조명)이 있다. 正命은 뜻도 좋고 방법도 좋은 경우, 隨命은 뜻은 좋은데 방법이 안 좋은 경우, 遭命은 뜻도 안 좋고 방법도 안 좋다는 의미이다. 반드시 正命을 따라야 정치가 된다. 보수주의자는 뜻과 방법이 같이 간다. 경험의 세계에 살았기 때문에 실천의 방법을 안다.

▣보수는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이다. 보수층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유와 인권과 법치이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보수세력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한 파워 시프트는 일어나지 않는다. 신진세력이 권력을 잡았더라도 개인의 자유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인권을 축소시키고, 법치대신 인치(人治)를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메인스트림은 그대로 간다.

▣보수는 인기가 없다

보수 우파는 사회적으로 인기가 없다. 경험이 많은 40代 후반이나 50代 이상이 지지하기 때문이다. 진보 좌파 지지자는 20代부터 40代 초반까지가 많다. 심지어 10代도 지지한다. 포퓰리즘에 빠지게 된다. 열심히 일 안 해도 월급 많이 올려 준다, 경험 많지 않아도 직위 올라간다, 그거 바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걸 겨냥하면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보수는 공격당하지만 그대로 살아남고 유지해 간다. 서구에서도 신진세력, 급진세력, 좌파세력, 진보세력이 엄청나게 보수세력을 공격한다. 그래도 서구는 꼼짝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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