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기해 동유럽 8개국과 말타, 키프러스 등이 EU에 가입했다. EU회원국 수가 25개국으로 늘어나면서 GDP규모나 산업구조 면에서 미국과 중국을 합친 것 만한 대규모 단일 시장이 형성됐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 결성에서부터 시작된 유럽통합이 이제 그 마지막 단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미 EU는 유럽합중국을 염두에 둔 통합 헌법과 통합 대통령 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EU통합에 즈음해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19세기말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이 바로 그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수의 생애','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비판적 역사' 등 종교사 분야의 업적들로 널리 알려져 있는 르낭은 1870년 9월15일 '르뷔 데 되몽드'라는 신문에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1870년 9월은 프랑스에게는 악몽같은 시절이었다. 그해 7월19일 普佛(보불)전쟁이 발발했고, 9월4일에는 세당에서 나폴레옹 3세의 군대가 프로이센軍에게 大敗했다. 이어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軍의 포로가 되면서 제2帝政은 붕괴했고, 공화국 수립이 선포됐다. 한 마디로 국가가 內憂外患(내우외환)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을 때였다.
이 글에서 르낭은 普佛전쟁의 원인을 분석하고 어리석은 전쟁에 빠져든 프랑스의 반성을 촉구하면서, 이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이 향후 군국주의,팽창주의의 길로 暴走할 것이라고 예견하는 한편, 최종적으로는 독일의 민주화와 유럽통합을 통해 유럽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135년간 유럽의 역사는 르낭이 예견한 길을 그대로 밟은 끝에, 오늘날 EU통합이라는 대사건을 맞이하고 있다.
먼저 르낭은 냉철하게 전쟁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물론 전쟁의 책임이 일정 부분 프로이센에 있음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프랑스의 애국자로서 그는 '엄격하고 타산적이며 관용적이지 못한 프로이센의 경향'과 치밀하게 전쟁을 유도한 비스마르크의 음모를 규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가 鐵血정책을 내세우며 武力에 의한 독일통일과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나가게 된 데는 프랑스의 잘못도 적지 않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멀게는 독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독일을 가혹하게 다루었던 나폴레옹1세의 몰지각함에서부터 가깝게는 자신과 프로이센軍의 실력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자만에 빠져 있던 프랑스 군부, 나폴레옹3세와 프랑스 외교관들의 경솔함, 언론의 선동주의 등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이어 르낭은 이후 통일을 달성한 독일민족 사이에 팽배해 질 민족주의,군국주의적 열정과 그것이 야기할 결과를 무섭도록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다.
<북쪽의 이 폭력적인 신생 종족(독일민족을 말함-필자 注)은 순진하기까지 하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속고 있다. 자신들이 정한 목표에 사로잡힌 그들은 일단 열정의 대상을 획득하고 나면 매우 행복할 것이라 상상하는 젊은이와 유사하다.
여기에 독일 북부의 모래 벌판이 늘 고취시켜 주는 靈感(영감), 로마 제국의 도덕과 사치 앞에서 반달族(로마를 파괴한 게르만의 一族으로 '야만족'의 대명사-필자 注)이 가지고 있는 감정, 안락한 삶을 향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분노 등 일종의 청교도적인 열정과 같은 특징들이 더해진다.
....이전에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이러한 '우울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덕성에 대한 모욕을 갚을 책임이 있으며 타락한 민족들을 다시 일으킬 사명들을 부여받았다고 믿었다.
이들 광신자들에게 '독일제국'이라는 개념은 세계의 나머지 민족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영토에서만 독립적인, 그런 제한된 민족 개념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유럽을 쇄신하고 지배하는 게르만 민족의 국제적인 활동이다.
...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독일인들도 조국을 가질 권리가 있다. 그렇지만 독일은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남을 지배할 권리가 없다.>
르낭은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는 독일인들의 영토적 야심뿐 아니라, 그 바탕에 있는 독일인들의 심층심리까지 이미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르낭의 분석은 특히 히틀러 등 나치나 그들의 집권을 가능케 한 독일의 일반대중들에게도 그대로 유효하다.
그러면서도 르낭은 군국주의적인 '프로이센'과 철학,문화,예술,종교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독일'을 분리시켜 생각하면서, 언젠가는 프로이센적인 요소를 배제한 평화롭고 민주적인 독일이 출현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프로이센의 수중에 독일의 힘을 결집하는 것은 일시적인 필요성에 수반된 사태에 불과하다. 위험이 사라지면 통일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독일은 머지 않아 자연스러운 본능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하여 프로이센은 승리한 다음날 적대적인 유럽과 마주칠 것이며, 개별적인 자치 취향을 추구하는 독일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프로이센은 사라지고, 독일은 남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갖게 된 독일은 자유롭고 평화적이며, 합법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적이기까지 한 민족이 될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어마어마한 가면을 썼던 여러 가지 개념들이 독일에서는 실제로 유익하고 실현가능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비록 제2차세계대전 후 연합국의 강제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프로이센은 해체되고, 자유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연방주의에 기초한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수립되었으며, 결국은 그 독일연방공화국의 이념 아래 독일 통일이 달성된 것을 보면 여기서도 르낭의 예견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이와 함께 르낭은 전쟁에서의 패배 결과 프랑스에서도 프로이센적인 復讐주의, 군국주의가 팽배하게 되지 않을까 경계했다 (실제로 제1차세계대전까지 프랑스에서는 그러한 정서가 팽배했으며, '드레퓌스 사건'도 그러한 사회분위기의 산물이었다).
르낭은 '프랑스가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국가의 모범을 보이고, 다른 나라를 공격하기는 커녕 영토확장에 대한 생각을 포기함으로써 다른 나라에 대해 관대하고 우호적인 국가로서의 모범을 보이면, (다른 나라들은) 이 프랑스를 본받기 위해서 애쓸 것' 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설욕이라는 해로운 욕망, 몰살을 무한정으로 연장시킬 수 있는 그러한 욕망은 현명하게도 자유주의 정치로 발전함으로써 배제될 것'이라면서 '민주주의는 전쟁을 원하지도 않고, 전쟁을 내포하고 있지도 않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군인 시대의 종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르낭의 주장 가운데 가장 탁월한 부분은 독일과의 전쟁 와중에서 유럽의 통합을 꿈꾸면서, 유럽통합을 통해서만이 유럽의 평화가 달성되고, 통합된 유럽 속에서 게르만人은 진정 위대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본 부분이다.
<평화는 유럽의 공통된 이해에 의해서만.... 확립되고 유지될 수 있다.
두 명의 原告와 被告 사이에서는 정의가 승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그러나 열 명의 原告와 被告 사이에서는 正義가 우세하다. 그 이유는 정의만이 화해의 공동 기반과 공통 영역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강력한 국가에 대항하여 유럽 공동체의 안녕에 유용한 것이라고 판단되는 결정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다양한 국가들의 개입, 중재, 동맹 안에 있다.
이 힘이 점점 더 구체적이고 정기적이 되면서 차후에는, 비록 영구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주기적으로 열리는 진정한 회의의 형태를 가져오기를 기대해 보자.
또한 이 힘이 연방 협정에 의해 그들 사이에 연계된 유럽합중국의 핵심이 되기를 기대해 보자.
그러면 어떠한 민족에게도 '위대한 민족'을 자칭할 권리가 없을 것이다. 혹은 만약 그 '위대한 민족'이라는 직함이 다른 민족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이며, 그 직함을 부여받았노라고 우기지만 않는다면, 각자가 다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연방이라는 원칙은 인류의 기반이다. 바로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된다. 이와 같은 법정 앞에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유럽 인민은 없다. 만일 유럽의 법률 체제 안에 그러한 핵심적 원칙을 결정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로 게르만人의 강력한 행동이라고 이야기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서툰 옹호자들이 바라는 것보다 사실은 훨씬 더 위대한 이 게르만 인종은 미래에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지금부터 예리한 안목을 가진 이들은 견고하게 맺어진 미래의 동맹을 보게 될 것이다...>
르낭의 기대처럼 오늘 유럽은 다시 한번 통합을 향한 巨步(거보)를 내딛었고, 그 과정에서 독일은 프랑스와 더불어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패전의 악몽 속에서도 자유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고 통합유럽을 꿈꾸면서 그 속에서 항구적인 유럽평화의 구현을 꿈꾸었던 르낭의 꿈이 이제 실현되고 있다.
르낭의 꿈이 현실화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인들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冷戰이라는 시련을 거치면서 '민족국가'라는 틀을 넘어 보다 성숙한 思考를 하게 되었고, 소련-東歐(동구) 공산체제의 붕괴로 거의 全유럽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共有하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발칸반도의 몇몇 국가들이나 옛 소련의 산하공화국들이 아직 EU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들 국가의 민주화와 시장경제로의 이행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에르네스트 르낭이 유럽통합의 꿈을 꾼 이래 134년. 그 긴 여정은 통일을 달성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은 시사해 주지 않을까?
* 이 글에 나오는 르낭의 발언들은 책세상刊 '민족이란 무엇인가'에서 인용한 것이다.
普佛전쟁 와중에서 유럽통합을 꿈꾼 에르네스트 르낭
- 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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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01, 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