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泰愚 전 대통령의 호소: "自虐도 美化도 필요 없다"

産母를 부정한 김영삼 정권의 現代史 부정을 개탄하다.
그럼에도 집권당인 6공화국의 민정당(民正黨)과 합당해 민자당을 만들고 그것을 모체(母體)로 출범한 김영삼(金泳三) 정권이 산모(産母) 역할을 한 나를 군사반란이란 죄목을 뒤집어씌워 단죄(斷罪)해 역사의 표면에서 지워 버릴 수 있는가?
 
*盧泰愚 회고록의 일부 발췌

과거 부정, 자기 부정

한국 사회가 당면한 근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좌경화의 흐름에 따라 지식인들과 젊은 세대가 우리의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광복 후에 출범한 역대(歷代) 정권은 거의가 전(前)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하거나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 김영삼(金泳三) 정권은 상해(上海)임시정부와 자신의 이른바 문민정부만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해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했다.

나는 의령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때 워커 주한 미국대사가 한미(韓美) 언론의 태도를 비교하면서 해준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우리가 현대사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면 큰 불행을 자초할 것’이라는 느낌이 생겼다. 건국(建國)과 호국(護國)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기성세대가 분발해 다음 세대에 역사 교육을 제대로 시킴으로써 긍정적 역사관을 물려 주어야 한다.

나는 재임(在任) 시절 지도층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이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그들은 내 의견에 동조하면서도 문제를 개선(改善)하기 위해 나서기는 꺼려했다. 우리 사회풍조 가운데 ‘어용(御用) 기피증’이라는 병이 있는 것이었다.
교수 언론인 등 식자(識者)들은 ‘저 사람은 어용’이라는 낙인(烙印)이 찍혀버리면 사회적 생명이 끊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비판하고, 옳은 정책은 밀어 주고, 그 정책이 시행 과정에서 차질을 빚는다면 그것을 지적해 길을 열어 주는 것이 학자와 식자(識者)들의 도리요, 사명이거늘 ‘어용’이라는 낙인을 두려워해 몸을 사리거나 비판만 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나는 5공화국 말기 민정당(民正黨) 대표위원으로 있을 때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대사(現代史)의 인식 문제를 제기하곤 했다.

“역사란 명(明)과 암(暗)이 있게 마련이다. 역사의 평가는 명과 암을 그대로 비춰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명(明)은 숨기고 암(暗)만을 비춘다. 그러다 보니 암흑의 역사가 되고 암흑의 역사를 만든 주인공인 기성세대를 헐뜯고 매도하고 거부하고 죄인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명(明)을 비춰야 한다.”

나는 또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 기성세대가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인가? 우리 민족은 수천 년간 이 땅에서 살아오면서 세 가지 큰 한(恨)을 품어 왔다. 첫째는 배고픈 가난의 한, 둘째는 배우지 못한 무지(無知)의 한, 셋째는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벗어나지 못한 한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 한을 풀려고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들 역시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 속했다. 세 가지 한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를 악물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조국 근대화, 민족중흥, 수출입국, 중화학공업 건설, 중동진출, 새마을운동이라는 기치 아래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근면·자조·협동을 땀 흘려 실천했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도 되지 않던 나라가 이제 1만 달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문맹률이 60%를 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교육이 평준화해 5%도 되지 않는다. 국방력도 과거 어느 때보다 튼튼해져 이웃 열강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기적과 같은 업적이다. 수천 년에 걸쳐서도 풀지 못한 한(恨)을 우리 한 세대를 통해서 푼 것이다. 우리 스스로 자화자찬(自畵自讚)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가 경이적인 눈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있질 않은가.
더욱더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민주주의까지 이룩했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한 나라치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선진국이 100년, 아니 200년 걸려서 이룬 발전을 한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달성한 것이다. 세계 각국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이를 높이 평가하며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질 않은가.”

産母를 부정한 金泳三 정권

이런 감정이 복 바쳐 오를 때도 있었다.
‘오호라, 국민들이여! 특히 식자들이여!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 위대한 일을 이룩한 기성세대를 매도하고 부정하고 죄인시(罪人視)하는가! 서글프고 슬프도다.’
위대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박사가 말년(末年)에 측근의 잘못으로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해서 평생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바지한 업적, 광복 후 혼란기를 극복하며 건국한 업적, 그리고 투철한 반공이념으로 김일성의 남침(南侵)을 좌절시킨 업적을 없었던 일처럼 역사에서 지워 버릴 작정인가?

4·19 이후에 1년간이란 단명(短命)으로 끝난 장면(張勉) 내각을 무능한 정권이라고 해서 버릴 것인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군사혁명, 독재, 장기집권을 했다고 해서 국민들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키고 조국 근대화에 불을 붙여 경제발전을 성공시켜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진 업적을 없애 버릴 수 있는가?
10·26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난국(難局)을 극복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약속대로 단임(單任)만 하고 물러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을 군사반란이라는 죄목으로 역사에서 지워 버릴 셈인가?
제6공화국은 6·29선언의 약속에 따라 여야 합의로 국민투표에 부쳐 개정된 헌법에 의해 출범했다. 그 헌법에 따라 국민들이 나를 대통령으로 직접 선택했다.
그럼에도 집권당인 6공화국의 민정당(民正黨)과 합당해 민자당을 만들고 그것을 모체(母體)로 출범한 김영삼(金泳三) 정권이 산모(産母) 역할을 한 나를 군사반란이란 죄목을 뒤집어씌워 단죄(斷罪)해 역사의 표면에서 지워 버릴 수 있는가?

美化도 自虐도 필요 없다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지나친 명분론이 위선(僞善)으로 흐른 점이 있다. 위선적 명분론은 근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주자학(朱子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통설로 되어 있는데 조선조 선비들의 의식에 뿌리내려 지식인 사회의 생리로 굳어 버렸다.
부정적 역사관은, 일제(日帝) 때 생긴 식민사관(植民史觀)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일본은 우리의 역사·문화·전통을 말살해 버렸다. 우리 민족이 독자적으로 일으킨 배달문명의 발상(發祥) 자체를 부정하고 황하(黃河)문명의 일부로 종속시켜 버렸는가 하면 우리의 독자적인 사상과 문화를 부정함으로써 민족 주체성을 상실케 했다.
우리의 민족문화를 때로는 일본 문화에 종속시키기도 해 열등의식을 조장했다.
내가 어렸던 일제(日帝)시대에 유행하던 말 가운데 “엽전은 할 수 없구먼…” 하는 자조(自嘲) 섞인 말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역사관에는 열등의식과 열등의식의 왜곡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 없는 우월의식이 도처에서 작용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신라(新羅)의 삼국통일과 대한민국 건설은 민족사의 2대 쾌거이다. 이런 건설의 영광을 감정적으로 부정하고 저항과 비판만 미덕(美德)이라고 추켜세우는 비뚤어진 역사의식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열등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은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무서운 시기심이 발동한다. 남이 잘못되면 고소해한다. 쾌감을 느끼고 반사적인 자기과시로 만족을 채우게 된다. 특히 정치권에서 이런 풍조가 심한 듯하다. 고약하고 못된 식자들이 어설프고 선동적인 논리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인사들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모순투성이의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문화인들은 반만 년을 이어온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또 찾기도 했다. 세계는 우리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의 종속문화가 아닌 한국 고유의 문화임을 확인하고 그 독특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우리는 그런 반응에서 자존심을 찾기도 했다.

나는 이를 계기로 우리 학자들이 앞장서는 가운데 ‘우리문화찾기운동’과 ‘우리역사찾기운동’이 힘차게 일어날 것을 기대했다. 애석하게도 올림픽이 끝난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불길은 시들어갔다.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정치상황 아래서 전(前) 정권인 5공(共)을 부정하고 단죄(斷罪)하는 바람에 휘말려 그 불길은 꺼지고 말았다.
그런데 기현상이라고 할까. 외국에 나가보면 국내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국을 보는 눈이 과거와는 너무나 달라진 것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을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정치적으로도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나라로 경이롭게 보고 있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한국이 과거의 피(被)원조국 신세에서 탈피해 그들과 나란히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데 대해 축하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평가했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부러운 눈길로 한국을 바라보며 개발전략의 교과서나 참고서로 삼으려 한다.

식자(識者)들이여! 학자들이여! 바라노니, 이제는 우리 얼굴에 침을 뱉지 말자. 상처를 내지 말자. 열등의식을 떨쳐버리고 무너지고 가려진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찾아 내자.
우리가 이룩한 일들은 너무나 많다. 그것들을 차곡차곡 챙겨서 우리가 쌓아올린 탑을 확인하자. 그것을 이룩한 우리, 서로에게 참으로 수고했노라고 위로하자. 성취한 보람을 함께 나누자. 후세들에게 우리가 이룩한 것이 이것이라고 떳떳하게 물려주자.
인간은 뿌리에 대한 자존심이 없으면 열등의식에 빠지게 된다. 이 늪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 치다가 이성(理性)을 잃어버린다. 그 부작용이 온통 불신(不信)과 갈등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바로 우리나라의 현상이다.
그래서 학자·식자, 특히 언론인들에게 간절히 바라노니 냉철한 시각으로 우리 현대사를 재조명해 주기를 바란다. 미화(美化)도 자학(自虐)도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만 보고 연구하면 된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