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발표된 한나라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국민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둘째, 싸우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국민여러분의 뜻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책으로 당당히 맞서겠습니다.
셋째, 부드럽고 유연해지겠습니다. 경제협력과 인도적 배려를 통해 따뜻한 대북정책을 추진하겠습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확고히 한 바탕 위에서 남북한의 평화정착, 공동번영을 추구하겠습니다.>
위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한나라당이 아직도 자기 반성을 정확하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우지 않겠다고 했는데, 한나라당이 언제 과연 싸워야 할 때 제대로 싸워보았는가. 국민의 뜻과 이익이 된다면 정책으로 당당히 맞서겠다는데 소수당이 싸우지 않고 실현 불가능한 정책으로 맞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국회 과반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은 여론을 등에 업고도 KBS의 어용방송, 선동방송을 견제하지 못했다. KBS 시청료 분리 징수법안을 상임위원회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했던 한나라당이 과연 '우리는 너무 싸워서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할 필요가 있을까.
盧정권이 추진한 '신행정수도 건설'로 위장된 首都이전을 막기는커녕 충청표를 의식하여 찬성으로 돌아버린 한나라당이 언제 국익을 위해 싸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나라당의 짜증나는 싸움은 소속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악을 쓴 경우에 한한다. 자유를 위해, 체제를 위해, 국가를 위해 큰 싸움을 한 기억은 없다. 오로지 파당적 이익을 위해서 사소한 데 목숨 걸듯이 싸운 기억밖에 없다.
싸우지 않는 야당, 부드럽고 유연해진 야당이 과연 한반도의 타협이 불가능한 무장대치상황에서 존재 이유가 있을까. 한반도에서 정치를 선택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敵인 남북한의 김정일 세력과 싸워야 할 숙명을 지게 된다. 그렇게 하려면 누가 敵인지 동지인지를 구별해야 하고 그 구별의 기준은 이념이다. 이념 논쟁을 할 때가 아니란 주장은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을 외면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한나라당은 이념, 체제, 헌법, 국가와 같은 대상에 대해서는 엄정해야 할 때 너무 부드럽고 연약했었다. 이 분야에서 더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지겠다는 말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용기 없음을 그런 말장난으로 변명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맨날 얻어맞고 다니는 사람은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평화를 사랑하므로...'라고 변명하려는 자기 합리화의 유혹을 받는다.
'따뜻한 對北정책'이란 그 의미는 김대중식 햇볕정책과 같다. 金大中의 햇볕정책은 김정일만 따뜻하게 해주었다. 북한주민들은 여전이 춥다. 한나라당이 '따뜻한 對北 정책'이라고 할 때 그 北은 북한주민이 아니라 북한정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對北정책을 한나라당이 추진하겠다면 차라리 햇볕정책 계승을 선언하는 것이 정직하다.
우파정당인 한나라당이 對北정책을 이야기하면서 협력과 배려만 강조하고 가장 다급한 北核문제와 북한주민들이 겪고 있는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칙도 천명하지 않은 것은, 이 黨의 천박한 知的 수준을 잘 보여준다. 97년 대선, 2002 대선,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타협해선 안되는 이념문제에 대해서 좌파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란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듯하다. 한반도에서 이념은 아직도 가장 큰 전략이다.
이념으로 무장한 악독한 소수와 이념이 없는 비겁한 다수가 대결하면 늘 소수가 이긴다.
싸우지 않겠다는 한나라당의 문제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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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01, 14: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