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시초프 - 인간과 시대'(Khrushchev-the man and the era. William Taubman. Norton. 2002)는 올해 넌 픽션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大作이다. 876 페이지에 달하는 이 傳記를 쓴 윌리언 타우브맨씨는 미국 앰허스트 대학 교수이다. 그는 흐루시초프의 가족들로부터 협조를 받고 舊소련의 비밀문서를 수집하는 한편 관련자들의 증언을 모아서 20세기의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대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내었다.
기자는 1970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을 이 傳記와 비교해가면서 읽기도 했고, 고르바초포 회고록에서 흐루시초프 부분을 찾아내 대조했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최초 개혁자인 흐루시초프가 마지막 개혁자이자 냉전체제의 해체役을 맡았던 고르바초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궁금했다.
후세에 20세기 공산당의 피로 얼룩진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은 삼국지식으로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역사는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김정일을 내셨으나 또한 흐루시초프, 고르바초프, 그리고 周恩來, 鄧小平, 黃長燁을 내셨도다.'
특히 흐루시초프와 고르바초프는 인류가 감사해야 할 인물이다. 작년에 도쿄에서 전 남로당 간부 朴甲東씨를 만났다. 하코네의 한 북한문제 세미나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내가 흐루시초프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는 한참 창너머로 펼쳐지는 일본의 교외 풍경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흐루시초프 때문에 살았습니다. 1956년 제20차 소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그가 한 그 유명한 연설로 해서 스탈린식의 개인숭배와 당내 숙청을 거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공산권 안에 형성되었습니다. 나는 남로당 숙청선풍에 걸려 투옥되어 있었는데 김일성이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보스인 흐루시초프의 노선에 맞추어 정치범들을 일시적으로 석방할 때 출옥했습니다. 그런 뒤 중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고 지금 여기서 살아 있는 것이지요. 흐루시초프의 그 연설로 해서 세계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피의 숙청이 사라졌습니다. 중국, 북한, 알바니아는 예외입니다만. 그는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건진 인물입니다.'
한 거대한 인물의 위대한 결단은 朴甲東이란 한국인의 운명에도 이렇게 영향을 끼치는구나 - 역사와 인간의 신기한 관계를 실감할 수 있었다.
1956년2월14일에 소집된 제20차 소련 공산당 대회가 크렘린궁의 한 홀에서 열렸을 때 참석자들은 레닌의 조각상만 보이고 스탈린의 조각상은 물론이고 사진조차 붙어 있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마지막 날에 예정에 없이 소집된 비밀회의에서 제1서기 흐루시초프가 그런 연설을 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역사에서 한 권력자가 그 누구의 상상력도 뛰어넘는 개인적 결단을 내리고 이를 실천한다는 것이 역사의 전개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살펴보자는 생각으로 타우버만 교수의 傳記를 읽어갔다.
흐루시초프와 소련 공산당 정치국 위원들이 단상에 착석했을 때 그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흐루시초프는 한번의 짧은 휴식을 취하면서 네 시간 동안 연설했다. 그 내용은 3년 전에 죽은,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神을 파괴하려는 격하 연설이었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의 권력남용과 집단 체포, 그리고 재판도 거치지 않고 한 집단 처형을 고발했다. 스탈린이 이른바 反혁명분자들에게 덮어쒸운 죄목은 '애매하고, 황당하며, 상식에 반하는 것'이었다.
'무고한 사람들이 고문으로 의식을 잃었고, 판단력을 상실당했으며, 인간으로서의 권위를 빼앗겼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자가 바로 스탈린이다. 그는 사적으로 수사관을 불러 신문 방법까지 지시했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때려라, 때려라, 또 때려라!'
물론 흐루시초프는 레닌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레닌을 변호하고 레닌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역설했다. 그는 또 자신과 정치국위원들의 책임을 변명했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는지 몰랐고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흐루시초프는 불가닌(수상)이 자신에게 한 말을 소개했다.
'스탈린의 별장에서 돌아가는 차중에서 불가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이 나를 별장으로 친구로서 초대하지만 그와 함께 앉아 있는 동안에 내가 이후에 어디로 끌려갈지 알 수가 없다'. 말년에 스탈린은 정치국 위원들 전부를 말살하려고 했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수치스러운 죄를 알고 있는 인물들을 없앰으로써 오늘 내가 보고하는 이런 죄상들을 숨기려 했었다.'
그는 연설의 끝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내가 한 연설 내용은 언론은 물론이고 외국에 알려져서는 안된다. 우리의 적에게 무기를 줄 필요는 없고 우리의 상처를 저들에게 내보여서는 안된다. 대회 참석자들은 이 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평가해주기를 바란다.'
이 연설의 충격을 이해하려면 이 연설이 이뤄진 시점이 스탈린이 죽은 3년 뒤였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7년에 김정일이 북한노동당 비밀전당대회에서 김일성을 격하하는 연설을 했다는 상상을 해보라!
흐루시초프 傳記 독후감(1)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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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02, 17: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