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민노당 인사들이 연루된 公安사건-1

일본 거주 北공작원을 접선했던 강태운 前민노당 고문
2003년 12월29일 서울지법 형사22부는 건축사 강태운(사건 발생 시 민주노동당 고문ㆍ당시 72세)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었다. 강태운은 1994년부터 일본에 거주하는 북한 공작원 박춘근과 중국의 북한 공작원 김문수를 총 여섯 차례 접선했다.

1999년 2월, 朴ㆍ金 두 사람을 만나 민노당 관련 자료 등 정보를 건넨 뒤, 북측의 지령을 받고 공작금(1500만원 상당)까지 수수했다. 특히 김문수는 강 씨에게 ‘민주노동당 정성희 사무부총장이 똑똑해 보이는데 우리가 연결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식의 포섭지령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서울지법 형사22부는 강태운에게 간첩죄, 잠입탈출, 회합통신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징역 6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 씨가 북에 건넨 자료들이) 북한에 누설될 경우 北의 對南공작에 이용되어 대한민국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明示했다.

2004년 4월27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서울고법은 1심과 똑같은 형량을 선고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피고인이 북측에 제공한 정보는 公知의 사실이라 볼 수 없고 공개시 국가에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는 기밀로 취급한다”고 밝혔다.

≪月刊朝鮮≫ 2004년 6월호 <민주노동당 前 고문 姜泰運 간첩 사건 판결문의 비밀>에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許相九(허상구) 검사(수사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 소속)의 傳言(전언)이 기술돼 있다. 許 검사는 ‘북한이 민노당 정강정책과 강령 만드는 과정에 개입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서 메모지가 많이 내려왔다. 어떤 지령인지는 강태운 씨가 폐기해 알 수 없다”고 말했었다.

강태운의 과거 전력과 범죄사실은 판결문(서울지법 형사22부)에 잘 드러나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강 씨는 5ㆍ16 군사혁명 이후 반공법으로 구속됐다가 1961년 12월 혁명검찰부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는 1992년 9월 설립된 몽양 여운형 추모위와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죽산 조봉암 추모위 사업에도 참여했다. 1997년 대선 때는 ‘국민승리21(민노당의 前身)’의 권영길 씨가 대선후보로 나서자 몽양ㆍ죽산추모사업회 대표자격으로 진보정당 창당에 참여, 1999년 1월 진보정당창당추진위 준비위원으로 被選(피선)되기도 했다. 이후 강 씨는 민주노동당 창당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 공판에서 강태운은 ‘박춘근의 사상과 주장내용이 북한의 주장과 일치하고, 자신과 이념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박춘근과 연계해 통일운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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