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24일字 <동아일보>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평양 ‘8ㆍ15 민족통일대축전’ 남측 대표단의 실정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인 공안당국은 23일 김규철 범민련부의장(67) 등 범민련 간부 6명과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등 7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회합 통신, 찬양 고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공안당국은 김 부의장 등 7명에 대한 신병처리가 마무리 되는대로 방북단의 또 다른 일부가 백두산 삼지연과 密營(밀영) 등지에서 ‘혁명 전통을 이어받아 통일’, ‘백두혁명’ 등의 글을 방명록에 남긴 행위 등 추가 행적에 대해 조사할 것이다… (중략) …조사결과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행사’에만 단순 참가 한 것으로 밝혀진 최규엽 민주노동당 자주통일위원장(48)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23일 오후 석방했다.”
당시 방문단이 만경대(注: 김일성 生家)를 방문했을 때 강정구 교수는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을 이룩하자’는 말을 여과없이 적었다. 姜 교수는 2001년 11월 월간 《말誌》와의 인터뷰에서 “북측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웠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정권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민족유공자를 우대하는 정신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으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행에는 최규엽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최규엽은 국가보안법 위반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었다.
崔 씨는 주체사상과 관련된 학술대회에도 패널로 참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1년 4월23일, 서울대에서 열린 주체사상 토론회에서 “주체사상의 지지ㆍ반대여부를 떠나서 주체사상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와 객관적인 토론이 가능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출처: 北구국전선 刊 《6ㆍ15주간》제7호 2001년 8월2~8일자 인용)
또 2001년 11월1일, 고려대 서창캠퍼스에서 열린 ‘주체사상 학술토론회’에서도 “‘8ㆍ15 민족통일대축전’때 남한 언론에 의해 방북단 활동이 심하게 훼손됐다”면서 “북한에서 일어난 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남쪽의 언론보도 뿐 아니라 북쪽의 공식입장도 함께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출처: 인터넷 <통일뉴스> 2001년 11월3일자 인용)
최규엽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고려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유신반대 데모로 제적, 1992년이 돼서야 졸업했다. 1981년 崔 씨는 ‘잉꼬법랑’이라는 회사의 노조위원장이 됐다. 노조위원장이었던 1982년 ‘전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구속됐었다. 당시 그는 국보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87년 5월 당시 치안본부(경찰청의 前身)는 ‘지하 혁명조직 남노련 사건’에 대해 발표했다. 崔 씨는 南勞聯(남노련) 사건에도 연루돼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다. 치안본부 발표에 따르면 “남노련은 중앙위원회 산하에 조직, 교육, 선전, 투쟁 부서를 갖춘 지하혁명조직이었으며 별도의 자료책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1990년대 들어와 崔 씨는 월간《노동자의 벗》主幹(주간), 서울노동연구소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정책위원장을 역임했다. 1995년 민노총을 중심으로 ‘국민승리21’(민노당의 前身)이 결성되자 집행위원장을 지냈으며 2000년 민노당이 창당되자 16대 총선에 출마하는 등 제도 정치권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현재 민노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