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민노당 인사들이 연루된 公安사건-4

최규엽 前민노당 자주통일위원장: 북한의 조국통일 방침을 찬양ㆍ선전
2001년 8월15일 평양에서 열린 ‘6ㆍ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2001 민족통일대축전’에서 최규엽 당시 민노당 자주통일위원장은 조국통일 3大헌장 기념탑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북한 측의 조국통일 방침을 찬양ㆍ선전했다는 혐의로 8월21일 귀국 후 경찰에 연행됐다.

2001년 8월24일字 <동아일보>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평양 ‘8ㆍ15 민족통일대축전’ 남측 대표단의 실정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인 공안당국은 23일 김규철 범민련부의장(67) 등 범민련 간부 6명과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등 7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회합 통신, 찬양 고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공안당국은 김 부의장 등 7명에 대한 신병처리가 마무리 되는대로 방북단의 또 다른 일부가 백두산 삼지연과 密營(밀영) 등지에서 ‘혁명 전통을 이어받아 통일’, ‘백두혁명’ 등의 글을 방명록에 남긴 행위 등 추가 행적에 대해 조사할 것이다… (중략) …조사결과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행사’에만 단순 참가 한 것으로 밝혀진 최규엽 민주노동당 자주통일위원장(48)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23일 오후 석방했다.”

당시 방문단이 만경대(注: 김일성 生家)를 방문했을 때 강정구 교수는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을 이룩하자’는 말을 여과없이 적었다. 姜 교수는 2001년 11월 월간 《말誌》와의 인터뷰에서 “북측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웠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정권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민족유공자를 우대하는 정신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으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행에는 최규엽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최규엽은 국가보안법 위반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었다.

崔 씨는 주체사상과 관련된 학술대회에도 패널로 참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1년 4월23일, 서울대에서 열린 주체사상 토론회에서 “주체사상의 지지ㆍ반대여부를 떠나서 주체사상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와 객관적인 토론이 가능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출처: 北구국전선 刊 《6ㆍ15주간》제7호 2001년 8월2~8일자 인용)

또 2001년 11월1일, 고려대 서창캠퍼스에서 열린 ‘주체사상 학술토론회’에서도 “‘8ㆍ15 민족통일대축전’때 남한 언론에 의해 방북단 활동이 심하게 훼손됐다”면서 “북한에서 일어난 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남쪽의 언론보도 뿐 아니라 북쪽의 공식입장도 함께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출처: 인터넷 <통일뉴스> 2001년 11월3일자 인용)

최규엽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고려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유신반대 데모로 제적, 1992년이 돼서야 졸업했다. 1981년 崔 씨는 ‘잉꼬법랑’이라는 회사의 노조위원장이 됐다. 노조위원장이었던 1982년 ‘전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구속됐었다. 당시 그는 국보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87년 5월 당시 치안본부(경찰청의 前身)는 ‘지하 혁명조직 남노련 사건’에 대해 발표했다. 崔 씨는 南勞聯(남노련) 사건에도 연루돼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다. 치안본부 발표에 따르면 “남노련은 중앙위원회 산하에 조직, 교육, 선전, 투쟁 부서를 갖춘 지하혁명조직이었으며 별도의 자료책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1990년대 들어와 崔 씨는 월간《노동자의 벗》主幹(주간), 서울노동연구소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정책위원장을 역임했다. 1995년 민노총을 중심으로 ‘국민승리21’(민노당의 前身)이 결성되자 집행위원장을 지냈으며 2000년 민노당이 창당되자 16대 총선에 출마하는 등 제도 정치권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현재 민노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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