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조기 사퇴 만류하는 한나라당, 정말 치사하다

서울시장 자리를 야당에 내주는 게 그렇게 두려우면, 왜 좀더 적극적으로 오세훈을 돕지 않았나?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당장이라도 사퇴하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류하고 있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이 9월말까지 사퇴하면 오는 10월26일에, 10월 이후 사퇴하면 내년 4-11총선과 함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게 되기 때문이란다.

오 시장의 조기 사퇴를 만류하는 논리는 한 마디로 "곧바로 10월에 보궐선거를 하게 되면 패배할 가능성이 크고 내년 총선-대선의 악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10월에 서울시장 보궐선거라는 큰 판이 벌어진다면 야권 연대에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고, 내년 총선에서 야권연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내년 4월까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미루었다가 박근혜 바람 등에 기대서 서울시장 자리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구역질나는 이기주의의 극치다. 그렇게 서울시장 자리를 야당에 내주는 것이, 서울시장 자리를 내 준 후의 후과가 두려웠다면, 왜 주민투표에 나서는 오세훈 시장을 좀더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나? 한나라당 전체가 필사적으로 지원했다면, 박근혜계가 자기 일처럼 주민투표를 도왔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은 주민투표와 거리를 두는 것이 옳다"고 했던 유승민 의원의 경우처럼, 혹은 무상급식 반대하면서 싸우러 가는 장수의 뒤에서 무상보육을 들고 나왔던 황우여 의원처럼, 한나라당은 철저히 딴나라당으로 놀았다.
그런 식으로 딴지를 놓거나, '나 몰라라'로 일관하다가 막판에 가서야 마지 못해 지원하는 시늉만 해 놓고는, 이제 와서 내년 총선-대선에 악재가 될 테니 사퇴시기를 늦추라고? 이거 정말 미친 X들 아닌가? 치사해도 너무 치사하다.

만일 그들의 요구대로 오세훈 시장이 두 달 동안 사퇴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고 하자. 오 시장이 제대로 시정을 수행할 수 있을까? 그의 영(令)이 제대로 설까?
오세훈 시장이 10월에 사퇴한다고 해도 그후 6개월 가까이 서울시는 대행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서울시정은 표류할 것이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서울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정략적 이유에서 그런 장난을 친 한나라당을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안 그래도 어려운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서울에서 더 나쁜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내년 총선에서는 어찌됐건 박근혜 도와줄테니 기대해 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있다는데, 엄청난 착각이다.
이제 박근혜는 더 이상 한나라당의 잔다르크가 아니다. 2004년 탄핵역풍 뒤에 악수하느라 퉁퉁 부은 손에 붕대를 감고 국민들에게 애절하게 지지를 호소했던 박근혜는 이제는 대통령도 함부로 못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권력자가 되어 있다. 게다가 박근혜는 그 '권력'을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공동선을 위해 사용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박근혜에게 이제 국민들은 서서히 신물을 내고 있다.
그런 박근혜에게 기대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겠다고?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다.

게다가 오세훈 시장에게 앞으로 두 달이나 더 그 자리를 지키라고 하는 것은 오 시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한나라당의 정치적 사정이야 어떻든, 오 시장이 사퇴일시를 늦추면 늦출수록, 국민의 눈에는 오 시장이 자리에 연연해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나 서울시 의회 정기회의에서 민주당은 오세훈 시장을 '다구리' 놓을 것이고, 오 시장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그러면 오세훈 시장은 명예마저 잃게 된다. 그건 오세훈 시장에게 안 좋은 일인 것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에게도 좋을 것 없는 일이다.

오세훈 시장은 그동안 할만큼 했다. 주민투표 승리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면 오세훈 시장의 명예를 지켜주고, 그의 정치적 상품가치를 지켜주는 것이 한나라당이 해야 할 일이다.

자기들이 제대로 도와주지 않아서 주민투표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오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오세훈 시장에게 불명예와 희생을 강요하는 한나라당은 최소한의 의리도 없는 '참 나쁜 정당'이다.

한나라당의 변변한 지원 없이도 투표율 25.7%를 이끌어 낸 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민주당 등 야당의 야비한 투표거부로 투표함의 뚜껑도 열어보지 못한 데 대해 많은 시민들이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차라리 10월에 조기 보궐선거를 치르는 쪽이 한나라당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데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하루빨리 후임시장을 뽑아 시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서울시민에 대한 공당의 도리이기도 하다.

오세훈 시장에게도 강권한다. 당장 서울시장 자리를 그만두라.서울시장 자리에도, 한나라당에도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다. 시장 자리에서 내려와 광야에서 다시 시작하라.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