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이름만 얘기하면 누구나 다 아는 서울 시내 A대형서점을 잠시 들렀다. 일본 잡지를 보기위해 외국 잡지 코너를 갔다가 左翼잡지 ‘세카이’(世界)가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잡지는 東京의 큰 서점에서도 정말 찾기 힘든 책이다.
 
국내에서는 80년대 운동권들이 몰래 들여와 보던 책으로 이후 세간의 뇌리에서 사라졌다가 올해 초 김만복 前국정원장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이명박 정부의 ‘대결적 對北정책’이 초래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하면서부터 다시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김 前국정원장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이 저지른 것이라는 한국 정부의 조사결과를 사실상 부정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잡문’을 게재하는 일본의 左翼 잡지는 도대체 누가 流通시키는 것일까? ‘세카이’가 어떤 책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월간지 ‘세카이’(世界)는 이와나미(岩波)문고가 발행하는 논단지로 1945년 12월에 창간됐다. 초대편집장은 ‘여러분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의 저자(著者)인 요시노 겐자부로(吉野源三郎)이다. 최고 책임자는 이와나미 문고의 창업자인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의 친구 아베 요시시게(安倍能成)였다.
 
훗날 이와나미 문고의 사장으로 일본 좌파인사 미노베 료키치(美濃部亮吉, 前동경도지사, 親北성향 사회주의자)의 문하에서 도지사 특별 비서를 지낸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도 오랜 동안 세카이의 편집장을 맡았다. 現편집장은 오카모토 아츠시(岡本厚)이다.
 
북한-중국 등 공산진영에 우호적 논조
 
‘세카이’는 스스로 학술성과 정확성을 중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면면히 살펴보면 소위 평화문제를 중심으로 동서냉전 문제와 관련, 공산진영보다 자유진영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취해왔다. 현재도 한국, 미국, 일본 등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북한과 중국 등 공산진영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논조로 일관하고 있다.
 
과거 좌파 전성기에는 일본 좌파 진영 핵심 월간지로 그 권위(?)를 자랑하며, 좌파 논단의 중심적 위치를 점유했었다. 1980년대 들어 일본 내 좌파 논단의 쇠퇴로 ‘세카이’는 수많은 월간 논단지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사양길로 접어드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아사히(朝日)신문사가 발행하는 ‘논좌’(論座)가 폐간된 후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유일한 좌파 논단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발행부수는 1950~1960년대에는 20만부 정도였고, 1990년대 이후에는 7만부로 줄어들어 현재는 1만부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일본의 마이니치(毎日)신문사가 실시한 ‘전국독서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카이’는 중앙공론(中央公論)보다 독자수가 훨씬 적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잡지 발행 초창기부터 다른 종합지-논단지에 비해 ‘특정이념’을 공유하는 정기구독자가 많았고, 이른바 학술전문잡지라는 타이틀을 붙인 탓에 현재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前편집장 야스에 료스케, DJ와 막역한 관계
 
역사교과서문제, 오키나와 전쟁 등 특정 주제를 다루는 ‘세계임시증간호’(世界臨時増刊号)나 ‘별책세계’(別冊世界)등이 비정기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2005년 다뤄진 특집 기사를 보면, ‘동아시아 공동체-미래에 대한 구상’(1월호), ‘현대 일본의 기분-어디로 향할까?’(2월호), ‘경기(景氣) 상승을 어떻게 볼 것인가?-양극화 확대 속에서’(3월호), ‘오키나와-미군 재편 '미일합의'는 깨지다!’(4월호) 등 이다. 前편집장인 야스에 료스케의 경우 김대중과는 매우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1998년 10월9일 김대중은 일본을 방문해 같은 해 1월 사망한 야스에 료스케 전 세카이 편집장의 부인을 만났다.
 
김대중은 당시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에 야스에의 부인이 초청 대상에서 빠진 것을 발견하고, 명단에 추가할 것을 특별히 지시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스에 료스케와 김대중의 관계는 1971년 처음 시작됐다.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국내잡지에 소위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 평화공존 등에 대해 기고를 했는데, 글의 내용에 감탄(?)한 야스에가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 세카이에 이를 전재했다.
 
김일성과 10여 차례 걸쳐 인터뷰
박정희 ‘새마을 운동’ 비하에 열중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된 후 김대중은 망명을 결심하고 야스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야스에의 도움으로 그는 많은 일본 정치인들에게 유신의 부당성을 알렸고, 이 과정에서 ‘세카이’의 지면을 적극 활용했다. 1982년 말 김대중이 미국으로 망명하자 야스에는 미국으로 달려와 인터뷰를 했으며, 무려 30쪽짜리 특집기사를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은 1985년 귀국길에 일본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이때도 야스에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가 편집장으로 있던 시기 ‘세카이’는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이 민중을 탄압 하고 있다”면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제목의 연재 기사를 게재, 국내 유언비어의 원산지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북한에 대해서는 호의적 논조로 일관했다.
 
특히 서방언론과 일체 접촉을 피했던 김일성과의 인터뷰를 10여 차례에 걸쳐 게재하면서 확인도 되지 않은 북한의 발전상(?)을 보도했다. 북한의 천리마운동은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한 운동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체제를 연장하기 위한 대중동원 수단으로 비하했다.
 
'KAL기 폭파사건 조작설' 등 유언비어 퍼트려
 
김일성은 1977년 4월호 ‘세카이’에서 “우리는 핵무장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핵병기를 생산할 자금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험할 장소도 없다. 조선반도에서 핵을 사용하면 모두가 멸망해버리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TK생'이라는 필명으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제목으로 '세카이'에 글을 기고했던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 노무현의 대통령 취임사 작성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조작설, 1987년 대통령 선거 컴퓨터 조작설 등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도 세카이가 썼다. 그리고 문제의 기사들이 한국으로 역수입되어 남한 주사파들의 ‘무기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영어에는 까막눈인 국내 386주사파들 중에 일본어 독해에는 유독 도사가 된 인물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일본 좌파와 세카이의 영향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 세카이에 문제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쓴 인물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다.('세카이'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 
 
그는 바로 현재 한림대 석좌교수인 지명관(池明觀, 1942년 평북 정주출신)이다. 'TK생' 이란 가명으로 세카이에 글을 게재했던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사 작성 당시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정연주를 KBS사장으로 앉혔던 인물이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자료] 아래는 북한의 對南흑색선전 웹사이트 ‘반제민전’ 문건에 게재되어 있는 ‘세카이’의 김일성 인터뷰(1976년 3월28일자) 내용이다.
물음  7.4 남북공동성명의 정신 그리고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에 귀국이 내놓은 방침들과 특히 주석각하께서 1973년 6월 23일에 제시하신 고려련방공화국에 대한 생각들이 오늘에 와서도 종래와 변함이 없다고 이해하여 도 좋겠습니까?
대답  남북공동성명에서 내놓은 우리의 주장은 지금도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계속 투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내놓은 것이 아니면 절대로 안한다는 립장이 아닙니다. 남북쌍방이 모여앉아 진지하게 협의한다면 더 좋은 방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좋은 방안이 나오면 우리는 그것을 찬성할 용의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요구가 일부 관철되지 못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민족적대단결과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자기주장만을 고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민족적대단결과 조국통일위업에 복종시킬 작정입니다.
물음  주석각하께서는 항상 남조선에 대하여 간섭하려 하지 않겠다는 것과 남조선에 사회주의제도를 강요할 의사가 없다는 데 대하여 말씀하시였으며 한개 나라안에서도 다른 정치제도가 있을 수 있고 신앙이 다른 사람이 살 수 있다는 데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억측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구 계십니까?
대답  지금 남조선집권자들은 우리가 남조선을 ≪적화≫하고 남조선에 공산주의를 강요하려 한다는 거짓말을 널리 퍼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남조선에 사회주의를 강요하려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우리가 공화국북반부의 사회주의제도를 남조선에 강요하지 않고 남조선당국자들이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허물려고 하지 않는다면 같은 민족끼리 두 제도를 그대로 두고 함께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의 공동적인 리익과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을 서로 힘을 합하여 풀어나가다면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에 큰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물론 공화국북반부에서는 이미 계급적 대립이 없어졌지마는 남조선에는 아직 계급적인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남조선에서 계급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가 하는 것은 남조선사람들 자신이 할 일이며 우리는 거기에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음  지금 주석각하께서 하신 말씀을 잘 리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정확히 접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투쟁속에서 점차 옳은 견해를 가지는 동시에 한쪽으로는 자기들이 고생하면서 박정희를 타도한 뒤끝에 혹시 혼란속에서 사회주의를 강요당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답  지금 남조선의 민주인사들 가운데는 자기들이 민주주의운동을 하는 기회를 리용하여 공산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강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사회주의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것을 여러번 천명하였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조선인민들 자신이 자기가 나아갈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회주의라는 것은 억지로 먹이면 소화불량증에 걸립니다. 사회주의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억지로 먹여서는 의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남조선에 사회주의를 강요할 생각이 없으며 그렇게 할 계획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데서 시종일관 주관주의를 반대합니다. 주관주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원칙과 량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물음  지금 미국은 남조선에 핵탄두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해에는 미국무장관이라고 하는 사람이 귀국이 ≪남침≫하면 핵무기를 가지고 이를 저지하겠다는 위협과 협박을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말들에 대하여 주석각하께서는 핵무기를 가지고 그것을 억제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물어보고 싫습니다.
대답  우리는 핵무기로 무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핵무기를 생산할만한 돈도 없거니와 핵무기를 생산하여 시험할 만한 장소도 없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핵무기를 쓰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를 위협하느라고 하는 소리입니다. 만일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미제국주의자들이 핵무기를 쓰지 못합니다.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적아가 서로 맞붙어 씨름을 하며 돌아가겠는데 어떻게 핵무기를 쓰겠습니까. 적들이 핵무기를 쓰면 자기 편도 죽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핵무기를 쓰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머저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남조선집권자들은 미제국주의자들에게 핵우산을 자꾸 요구하지만 우리는 다른나라에 핵무기도 요구하지 않고 핵우산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물음  귀국과 미국사이의 교섭에 관한 억측들이 많이 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주석각하의 의견을 듣고저 합니다.
대답  우리에게는 평화협정을 맺는 문제를 비롯하여 미국당국자들과 끝장을 보아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당국자들과 회담이나 접촉을 전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과의 회담이나 접촉을 어디까지나 평등한 립장에서 하려고 하지 그들에게 구걸하는 형식으로는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국당국자들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데 대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이제라도 그들과 회담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당국자들은 우리공화국의 평화협정체결제의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고 있으며 그 어떤 긍정적인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구태여 그들에게 빌면서 대화의 문을 두드리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평화협정체결문제를 가지고 미국과 회담하자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미국당국자들은 대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답도 하지 않는 데 억지로 회담을 하자고 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물음  최근 ≪교차승인론≫에 대하여 많이 론의되고 있습니다. ≪교차승인론≫에 대하여 주석각하제서 전적으로 부인하고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차승인≫이라는 형식이 아니라도 중국, 소련, 미국, 일본이 귀국의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무슨 움직임을 보인다면 주석각하께서는 그 어떤 움직임에 대하여도 다 부정하시겠습니까?
대답  우리나라의 북과 남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이른바 ≪교차승인≫문제도 역시 조국통일의 근본문제와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남조선의 현 ≪정권≫은 조국의 통일을 반대하고 민족의 분렬을 주장하며 외세를 붙들어두고 민족적 대단결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조선의 현 ≪정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통일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구분렬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은 남과 북이 ≪두개 조선≫으로 UN에 들어간 다음에 도 통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고 떠벌이는데 그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자들이 늘 쓰는 수법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두개 조선≫으로 만들어 영원히 북과 남으로 갈라놓으려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이른바 ≪교차승인론≫을 절대로 찬성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조선의 현당국자들이 ≪정권≫을 쥐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하는 데 남조선의 현 ≪정권≫이란 독립국가들이 대상하여야 할 자주적인 정권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남조선의 현 ≪정권≫이 그대로 있는 조건에서 우리나라의 북과 남에 대한 ≪교차승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선의 북과 남에 대한 ≪교차승인≫문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분렬을 전제로하는 그 어떤 형태의 움직임도 절대로 허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통일을 전제로 하는 움직임인 경우에 는 문제가 다릅니다.
남조선의 현 ≪정권≫에 대하여서는 어떤 관계도 가지지 말고 철저히 고립시켜야 하며 남조선인민들의 민주화투쟁을 적극 지지하여 남조선에 민주정권이 서도록 하여 야 합니다. 만일 남조선당국자들이 남조선인민들과 민주인사들을 체포하고 투옥하는 파쑈적 탄압책동을 그만두며 지난 기간 조국과 인민앞에 지은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앞으로 더는 그런일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때에는 문제가 다를 것입니다.
물음  주석각하께서는 우에서 조일 두나라 사이의 관계문제에 대하여 매우 간단하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 간단한 말씀속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더 듣고저합니다. 일본정부의 태도가 현상태 그대로라면 한때 소문이 난 조일 두나라 사이의 어업협정체결문제가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대답  두 나라 정부들 사이의 어업협정이 아니라 민간인들 사이의 어업협정이라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민간인들사이의 어업협정도 일본정부에서 그것을 보증하여 야 합니다.
물음  일본정부가 ≪쇼세이마루≫사건이 있은 다음 공화국과 어업협정을 맺겠다고 하는 것은 제생각에는 상당히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답  한때 일본에서는 조일 두 나라 사이에 어업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고 떠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어업대표단을 보내겠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일본정부의 의도인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민간인의 의도인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지 우리는 조일 두나라 인민들 사이의 접촉과 래왕을 념원하며 또 우리나라가 일본의 곁에 있으면서 문을 닫아메고 있을 수도 없는 것만큼 일본정부에서 승인하고 보증한다면 조일 두 나라 민간인들 사이의 어업관계문제는 가능한 범위에서 일부 해결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나는 당신과 이렇게 오래간만에 다시 만나 담화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1976년 3월 2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