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어디에 있는가?
이동복 [전 명지대 교수]
지난 달 북한의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폭발사고에 대해 지금 여러 나라들이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중국,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일본, 그리고 여러 국제 구호기관들이 앞을 다투어 긴급 구호물자는 물론 구호인력을 북한으로 보내려 하는 모습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용천 사고현장으로 가는 외부세계로부터의 거의 유일한 통로인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 사이의 교량은 폭주하는 수송차량과 열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용천역 폭발사고에 대한 구호의 열기가 남한사회만큼 높은 곳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용천역 폭발사고 소식이 처음 남한에 알려진 것은 4월23일 새벽이었습니다. 그 이후 남한사회에서 이 사고에 관한 소식은 아마도 1950년 6.25 전쟁 때 말고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TV·라디오와 신문 등 언론의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의 경우를 보면 4월23일부터 29일까지 6일간 보도된 북한관련 기사 510건 가운데 380건, 즉 74.5%가 용천역 폭발사고에 관한 기사였을 정도입니다. 그 밖의 다른 신문이나 TV·라디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언론보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남한은 민·관이 총동원되어 용천 폭발사고 구호에 나서고 있습니다.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되어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나서지 않고 있지만 남한 정부는 고 건 대통령권한대행의 진두지휘 하에 민·관 합동으로 3천만 달러 이상의 구호물자 및 복구지원 자재를 북한에 공급하려 하고 있습니다. TV와 방송사들은 앞을 다투어 전화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지역별로는 용천 복구지원 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있으며, 어느 지역에서는 초등학교 어린이회장단 긴급회의에서 성금을 모으기로 결정했고, 심지어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이후로는 처음으로 반상회별로 액수를 정하여 성금을 모금하는 일마저 생기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남한사회가 이처럼 법석을 떠는 것과는 달리 정작 당사자인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문자 그대로 대조적입니다. 북한의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용천역 폭발사고를 처음 보도한 것은 4월24일입니다. 이 통신의 인터넷 웹사이트(http://www.kcna.co.jp)에 의하면 29일까지 이 통신이 용천역 폭발사고에 관하여 보도한 기사 건수는 도합 23건으로 그 가운데 사고 자체에 관한 보도는 7건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16건 가운데 8건은 김대중 전 남한대통령을 포함하여 중국·러시아·파키스탄·시리아·쿠바·캄보디아·세이셸 등 몇 나라 국가원수들이 '조선로동당 총비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조선인민군 총사령관·조선인민의 최고영도자 김정일 각하' 앞으로 보내 온 '위로' 전문들을 문자 그대로 받들어서 보도하는 기사들입니다.
이와 함께 그나마 7건의 사고 자체에 관한 기사 중 가장 긴 기사는 폭발사고 현장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을 들고 나오다가 스스로의 목숨을 영웅적으로 받친 용천소학교 교사'들의 무용담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북한이 '떡 본 김에 제사지내기'로 이번의 사고도 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 강화의 '호기'로 보다 크게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로동신문>이 용천의 사고를 처음 보도한 것은 4월25일이고 29일까지 이 사고에 관한 기사는 도합 8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용천역 폭발사고 이후 북한이 보여준 태도에서 가장 의문스러운 대목은 김정일의 행적에 관한 것입니다. 용천역 폭발사고는 3박4일의 중국방문을 마치고 귀로에 오른 김정일의 전용열차가 문제의 용천역을 통과한 뒤 몇 시간 후에 발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9일이 지난 5월1일에 이르도록 북한은 김정일의 행방에 대해 침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지난 4월19일 중국방문 길에 나서기 전만 하더라도 <조선중앙통신>은 4월2일부터 18일까지 16일 동안에 주로 군부대 방문과 공연관람 등 도합 10회에 걸친 김정일의 동정 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단 한 차례의 동정도 보여주지 않고 있는 용천역 폭발사고 이후의 김정일의 행적은 이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입니다. [5월4일 북한의 보도매체들은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 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도 김정일은 용천 사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남한에서 이 정도의 엄청난 사건을 당했을 때 국가의 지도자가 이렇게 계속 뒷전에 숨어 있는 일이 발생한다면 아마도 그 지도자는 여론의 지탄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탄핵의 대상으로 거론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용천역 폭발복구 대북지원 열풍으로 한껏 달아올라 있는 남한사회에서 김정일의 계속되는 잠적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이상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야말로 남한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북에 대해서는 무한히 관대하고 남에 대해서는 한없이 가혹한 이중 잣대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말해 주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끝]
김정일은 어디에 있는가?
- 이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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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05, 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