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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기자의 현대사 강좌>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홀에서 ‘트루먼과 맥아더’라는 주제로 열렸다.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는 “6ㆍ25 南侵전쟁 당시 트루먼과 맥아더의 갈등관계가 한국의 운명을 갈랐다”며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을 소개했다.
趙 대표는 “맥아더는 6ㆍ25 전쟁 때 ‘中共軍(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 많은 誤判(오판)을 했다. 이것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정보 誤判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는 1950년 10월15일 美 웨이크 섬에서 열린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와의 회담 내용을 소개했다.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한국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앞으로 두 달이면 충분하며 北進(북진)통일 이루고 크리스마스 前까지 美軍을 東京(동경)으로 원대복귀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낙관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이 中共軍 개입 가능성을 묻자 맥아더는 ‘개입하기엔 이미 늦었다. 설령 개입하더라도 우리의 공군력으로 섬멸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趙 대표는 “맥아더는 머리가 좋았으며, 문장력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이미 1930년에 美 육군참모총장을 임명됐고, 필리핀에도 오래 근무해 아시아 政勢(정세)에도 밝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언론에 신경을 많이 쓴 정치적인 군인이기도 했다. 조지 마샬과 같은 순수 군인들은 맥아더의 이런 행동을 못마땅해 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그는 “워커 장군이 맥아더에게 中共軍 개입 소식을 전하자 맥아더는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면서 “맥아더는 ‘中共軍의 숫자가 약 3만 명 정도’라고 축소시켜 워싱턴에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趙 대표는 “맥아더의 敗因(패인) 중 하나가 인천상륙작전 후 상륙군의 主力(주력)을 육로를 통해 원산으로 보내지 않고 배를 통해 보낸 것이다. 여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돼 북한군의 退路(퇴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美 10군단과 8軍 예하 국군 2군단 사이의 낭림산맥 지역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아 공간이 생겼고 그 곳에 中共軍이 침투했다. 결국 中共軍의 포위전략이 성공을 거뒀다”고 당시의 상황을 분석했다.
趙 대표는 “트루먼 대통령은 전쟁 중에 지휘관을 해임해선 안 된다는 이유로 맥아더를 問責(문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맥아더는 자신의 敗因을 워싱턴 政街(정가)에 떠 넘기며 트루먼 대통령에게 ‘만주를 폭격해야 한다’, ‘중국의 해안을 봉쇄해야 한다’, ‘장개석 군대를 상륙시켜야 한다’, ‘核무기 사용도 검토해야 한다’ 등 ‘전쟁확대’를 요구했습니다. 중국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이 맥아더의 의도였습니다. 맥아더는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은 ‘싸우다가 져서 철수하는 것은 모르지만 미리 철수하는 것은 안 된다’며 맥아더의 제안을 거절했다. 6ㆍ25 남침전쟁 勃發(발발) 직후 즉각적인 參戰(참전)을 결정했던 것에 이어 트루먼 대통령이 두 번째로 한국을 살리는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트루먼 대통령은 애틀리 영국 수상한테 ‘미국은 친구가 어려울 때 버리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趙 대표는 “트루먼 대통령은 ‘냉전 승리의 기초를 깐 사람’, ‘결단을 많이 한 사람’이라는 것이 현재의 평가”라며 “소련과 대결하기로 결단한 ‘트루먼 독트린’, 나토를 만든 결정, 마샬 플랜 등 트루먼의 결단은 훗날 西歐(서구)세계가 승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과거 트루먼 대통령이 김종필 前 국무총리에게 ‘내가 한국을 통일시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趙 대표는 “1951년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을 해임한 후 지지도가 하락했지만, 현재는 위대한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또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맥아더는 인기가 있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나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에서 볼 수 있듯 사소한 결정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 격변기 때에는 신속하게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趙甲濟 기자의 현대사 강좌>는 9월26일 오후 2시 문화일보홀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맥아더의 誤判, 트루먼의 決斷이 한국의 운명 갈랐다” (동영상)
- 참깨방송·趙成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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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9-20, 1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