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격변기에는 신속하고, 올바른 판단 내려야"

[趙甲濟 기자 부산 강좌] 맥아더와 트루먼

趙甲濟 기자의 부산 月例 강좌가 <맥아더와 트루먼>을 주제로 24일 오후 부산 동구 소재 부산일보사 대강당에서 열렸다

■ 趙 대표는 이날 강연에 앞서 최근 세계적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청년 실업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趙 대표는 “실업률은 정보화, 세계화의 그늘이다. 정보화 기술의 확산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면서 “실업률이 10%이상인 나라들은 정정이 불안해진다”고 지적했다.

趙 대표는 이어 실업률이 높은 국가의 예로 최근 세계경제 불안의 核으로 등장한 그리스와 유로(Euro)권 4위의 경제대국인 스페인을 예로 들었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은 30~40%대이다. 유로(Euro)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평균 실업률이 10%이다. 2005년과 2010년을 비교하면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은 22%에서 42%로 증가했다. 그리스는 25%에서 33%, 이탈리아는 24%에서 27%로 증가했다.”

趙 대표는 “실업상태의 청년층 다수가 고학력자이다. 이들은 휴대전화,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들의 불만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청년 실업률이 개선될 것 같지 않다는데 있다”면서 “이러다 보니 경제 불안이 정치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우 실업률이 3.3%로 경제규모가 큰 독일(7%), 프랑스(9.9%)에 비해 낮은 수치”라며 “李明博 대통령이 경제 관리에선 잘한 면이 있는데도 法治를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점, 左翼의 선동으로 인해 過小評價(과소평가)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趙 대표는 현 정부가 경제 관리를 비교적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난받는 있는 이유에 대해 “정부의 공보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당당하게 말해야 하는데 오히려 8.15 경축사에서와 같이 ‘탐욕경영’, ‘富益富 貧益貧’ 등 대통령 스스로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富益富 貧益貧’ 등의 표현은 공산주의 용어이다. 이런 용어를 대통령이 사용하면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업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된다. 대한민국의 지난 60년 역사는 부자는 더 부자가 됐고, 가난한 자는 부자가 됐다. ‘貧益富’가 된 것이다.”

趙 대표는 “李明博 대통령은 잘 해놓고서도 罪(죄)지은 것처럼 행동한다. 이처럼 눈치를 보는 것이 노예근성이다. 불쌍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自業自得”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분위기가 내년 선거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견했다. 아울러 “이념은 자기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다. 이념은 인간이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근거이다. 이념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趙 대표는 강조했다.

■ 趙 대표는 이날 주제 강연에서 “6.25 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갈등관계가 한국의 운명을 갈랐다”면서 두 위인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을 소개했다.

趙 대표는 “맥아더는 6ㆍ25 전쟁 때 ‘中共軍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 많은 誤判(오판)을 했다. 이것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정보 誤判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는 1950년 10월15일 美웨이크 섬에서 열린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와의 회담 내용을 소개했다.

“맥아더 장군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한국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앞으로 두 달이면 충분하며 北進통일 이루고, 크리스마스 전까지 美軍을 東京으로 원대복귀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낙관적인 보고를 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中共軍 개입 가능성을 묻자 맥아더는 ‘개입하기엔 이미 늦었다. 설령 개입하더라도 우리의 공군력으로 섬멸할 수 있다’고 답했다.”

趙 대표는 “맥아더는 머리가 좋았으며, 문장력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이미 1930년에 美육군참모총장을 임명됐고, 필리핀에도 오래 근무해 아시아 政勢(정세)에도 밝았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맥아더는 언론에 신경을 많이 쓴 정치적인 군인이기도 했다. 조지 마샬과 같은 순수한 군인들의 경우 맥아더의 이런 행동을 못마땅해 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그는 “워커 장군이 맥아더에게 中共軍 개입 소식을 전하자 맥아더는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면서 “맥아더는 ‘中共軍의 숫자가 약 3만 명 정도’라고 축소시켜 워싱턴에 보고했다”고 했다.

趙 대표는 “맥아더의 敗因(패인) 중 하나는 인천상륙작전 후 상륙군의 主力을 육로를 통해 원산으로 보내지 않고 배를 통해 보낸 것이다. 여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돼 북한군의 退路를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美 10군단과 8軍 예하 국군 2군단 사이의 낭림산맥 지역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아 공간이 생겼고, 그 곳에 中共軍이 침투했다. 결국 中共軍의 포위 전략이 성공을 거뒀다”고 당시의 상황을 분석했다.

趙 대표는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의 경우 전쟁 중에 지휘관을 해임해선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맥아더를 問責(문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맥아더는 자신의 敗因을 워싱턴 政街(정가)에 떠넘기며 트루먼 대통령에게 ‘만주를 폭격해야 한다’, ‘중국의 해안을 봉쇄해야 한다’, ‘장개석 군대를 상륙시켜야 한다’, ‘核무기 사용도 검토해야 한다’ 등 ‘전쟁확대’를 요구했다. 중국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이 맥아더의 의도였다. 맥아더는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통보했다.”

조 대표는 “트루먼 대통령은 ‘싸우다가 져서 철수하는 것은 모르지만 미리 철수하는 것은 안 된다’며 맥아더의 제안을 거절했다. 6.25 전쟁 勃發 직후 즉각적인 參戰을 결정했던 것에 이어 트루먼 대통령이 두 번째로 한국을 살리는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趙 대표는 “1951년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을 해임한 후 지지도가 하락했지만, 현재는 위대한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했다. 또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맥아더는 인기가 있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나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趙 대표는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에서 볼 수 있듯 사소한 결정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 격변기 때에는 신속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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