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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독재자 김일성을 만난 호지명의 모습(촬영시기 미상). 호지명과 막역한 사이였던 김일성은 베트남 전쟁당시 북한공군을 파견해 호지명을 도왔다. |
박원순(朴元淳) 변호사는 베트남 공산화의 원흉 호지명(胡志明)에 대해 “열정적인 생애를 살았다”, “세계최강 대국 미국을 물리쳤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산주의자를 극찬했던 인물이다.
朴씨는 2008년 도서출판 ‘웅진주니어’(발행인 최봉수)가 펴낸 아동도서《호찌민 이야기》에서 ‘호찌민을 향한 베트남의 변함없는 우정’이라는 제목으로 추천사를 쓴 적이 있다.
그는 추천사에서 “세기를 넘나들며 호찌민만큼 온 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라며 “베트남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호찌민은 여전히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마음의 연인처럼 간절하게 사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호찌민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독립투쟁을 한다는 것에 한없는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면서 호지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그 유명한 동굴 투쟁의 시기에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독립에 대한 열망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었다. 비록 그는 사랑하는 조국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1969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사상과 지도력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베트남 국민들을 단결시켜 마침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물리치고 조국의 통일을 이루어 냈다.”
朴씨는 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해 5066명의 인명피해를 낸 것에 대해서는 언급 없이 “호찌민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남겨놓은 불굴의 의지와 정신은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해 가는 베트남의 저력이자 원동력이 되고 있다”면서 敵國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보였다.
朴씨의 이 같은 親共的(친공적) 성향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2004년 9월24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보수 언론의 국보법 폐지 반대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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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지명의 사망을 보도한 북한의 중앙지 <평양신문> |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7조 때문인데 조선일보 주장처럼 광화문 네거리에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없는 한 표현의 자유는 인정해야 하는데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朴씨는 “언론들이 국보법 논의에 대해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자기 논리에 맞게 기사를 끼워 맞추고 있다”고 지적한 뒤, “최근 국가보안법 논쟁 등에 대해 ‘한국이 현재 분열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언론의 부정적 역할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보법 폐지만 해도 여야에서 활발한 찬반논의를 하고 있는데 이것 자체를 혼란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권위주의 시대에서나 통하는 논리”라고 주장했다. 朴씨는 국보법 7조(찬양․고무)를 예로 들면서 이는 “언론의 자유와 직결된다. 최근에는 언론인을 이 조항으로 처벌한 일이 별로 없지만 과거엔 많았고, 지금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金泌材)/spooner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