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장이가 된 기자들

김문수 지사 발언을 두고 "파문(논란)이 예상된다"고 쓴 기자들, '예상'은 점장이나 할 일
- 김문수 경기지사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대권 행보와 관련해 논란이 예상된다.
김 지사는 2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한선국가전략포럼’ 초청 특강에서 이 대통령의 측근 비리와 관련, “굉장히 징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 김문수 경기도지사(사진)가 박정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언급하며 “이명박 대통령도 징조가 좋지 않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동아일보>

- 김문수 경기지사가 28일 역대 대통령의 비극적인 삶을 언급하며 "MB대통령도 징조가 안 좋은 일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박정희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얘기하며 이 대통령도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겨 파문이 예상된다.<연합뉴스>

어제 김문수 경기도 지사가 박세일 교수의 한선국가전략포럼에서 한 강연에 대한 언론 보도이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대한민국의 성취와 앞으로 요구되는 국가리더십에 대해 말하는 가운데“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 총 맞아 죽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스스로 바위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것이 우리 국민인데 대통령들은 다 왜 이런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가운데, 그런 발언을 했다.

어제 그 자리에 있었던 나로서는 김 지사 발언에 대한 보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김 지사 전체 발언에서 볼 때 "MB도 징조가 안 좋다"운운한 부분이 그렇게 크게 보도될만한 부분이 전혀 아니었다는 점이다.
김 지사는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와 앞으로 요구되는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했던 종말에 대해 언급했을 뿐이다. 특히 "MB도 징조가 안 좋다"고 한 부분은 말끝에 지나가듯이 덧붙인 이야기였을 뿐이다.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논란이 예상된다' '파문이 예상된다'고 쓴 부분이다. 난 그게 기자가 써도 되는 표현인지 의문이다.
기자는 있는 사실만 쓰면 된다. 김문수 지사가 그렇게 발언을 했으면 "김 지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쓰면 그걸로 끝이다. 사설이나 칼럼이 아닌 한 거기까지가 기자의 역할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기자가 '파문'이나 '논란'을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기자가 점장이인가? 기자는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직업이지 일어날 일을 '예상'하는 직업이 아니다. 그런 거 '예상'할 능력이 있으면 언론사 기자 노릇 할 게 아니라, 미아리에 가서 점집이나 차릴 일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단순히 예상하는 것을 넘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논란이 일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그간 종종 ‘말 폭탄’을 터뜨려 논란을 빚어왔던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28일 또다시 전·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 같이 언급,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 조선닷컴 보도가 그 예이다.
하지만 '파문을 일으켰다'고 보도하려면, 그 파문의 구체적 양상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예컨대 그 발언을 전해 들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불쾌감을 표현했다든지, 발언 중에 언급된 노무현 대통령 얘기에 격분한 노사모 회원들이 머리띠 두르고 거리로 나왔다든지 하는 식으로 '파문'의 근거를 제시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파문'논란'이 일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기사 어디서도 그런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내용적으로는 '파문이 예상된다'는 미아리 점장이식 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기사에 쓴 용어도 기자가 써도 될 표현인지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위 조선닷컴 기사에 나오는 '말폭탄'이라든지, "김 지사가 이런 거친 발언을 쏟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운운하면서 쓴 '거친 표현'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김 지사 발언에 대해 '독설'이라고 표현한 언론도 있었다.

말폭탄, 거친 표현, 독설... 이런 것들은 모두 기자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간 표현들이다. 현장에 있었던 나는 그런 표현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 김 지사 발언의 어조나 표현 모두 전혀 거칠지 않았고, 독기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면 누구나 동의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사 그 발언이 거칠다고 하더라도 기자가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는지 자체에 대해 나는 의문이다.

또 하나 지적할 게 있다. 그 자리에 기자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 밖에 없었다.그런데도 이름도 못 들어본 군소언론, 인터넷 언론에서도 일제히 김문수 지사 발언 '파문'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그런 단정적인 보도를 해도 되나? 기자가 자기가 보지도 않은 것을 그렇게 막 써도 되나?

가만히 보면 '파문이 예상된다' '논란이 예상된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는 사람들은, 파문이나 논란거리를 만들어 보려는 자들이다.

오래 전에 '한겨레'에서 우리 회사에서 준비하고 기획과 관련해 취재가 들어온 적이 있다. 그 기자 대뜸 하는 말이 "그 기획과 관련해 논란이 예상되는데요.."였다. 그 때 나는 "논란이 예상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논란거리로 만들어보려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그는 아뭇 소리 못했다.

물론 기자라면 사회의 문제점을 여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깜'도 안 되는 소재를 가지고 억지로 파문이나 논란을 만들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기자들을 보면 처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들을 보면 웃기지도 않는 유행어 만들어보려고 몸부림치는 개그맨이 떠오른다.
어떻게 보면 이건 신문 정치면 전체가 '가십난'이 되어 버린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김문수 지사 발언과 관련된 보도를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말이 있다. '죽은 기자의 사회'-조갑제 대표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김문수 지사 발언가 일으킬 파문과 논란을 예상한 기자들, 파문과 논란이 일고 있다고 단정하면서 그 근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 기자들, 독설이니 거친 표현이니 하는 주관적 표현의 기사를 쓴 기자들 - 그들은 모두 '죽은 기자들'이다.

이건 김문수 지사에 대한 好-不好의 문제가 아니다. 기자와 언론의 도리에 관한 문제다. 내가 아는 한, 기자라면 그런 식으로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 그 대상이 김문수든, 박근혜든,박원순이든 간에 말이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