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2000년 不法 낙천ㆍ낙선운동 主役

박원순과 안철수, 그리고 참여연대 연구 ③-3 “惡法은 지킬 필요 없다”

法 적용에 이중 잣대 보여…

16대 총선을 석 달 앞둔 2000년 1월12일, 참여연대를 비롯한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420여 단체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2000년 총선시민연대’(이하 총선연대) 창립식을 열고 국회의원 ‘落薦·落選(낙천·낙선)운동’ 추진에 나섰다. 발족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진정한 유권자 선거혁명을 위해서는 정당한 유권자 권리의 행사를 불법으로 매도하는 낡은 선거판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면서 “우리는 참여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사회단체낙선운동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 어겨가며 낙천·낙선 명단 발표

당시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15대 국회에서 활동했거나 활동 중인 320여 명의 전·현직 의원을 평가해 50∼100명 규모의 ‘공천 반대인사 리스트’를 공개하겠다. 명단에 오른 인물이 후보자로 공천되면 이들을 상대로 총선기간 전국에서 ‘버스투어’ 등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총선연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반발했다.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이영일 대변인은 “시민단체가 선거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자유지만 특정 정치인의 實名(실명)을 거론하면서 낙선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論評(논평)했다. 한나라당 이사철 대변인도 “현행법을 어겨가면서 명단을 발표한 것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되면 소신과 양심에 입각한 議政(의정)활동을 펼 의원은 한 사람도 없으며, 오로지 특정 시민단체의 구미에 맞는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낙천·낙선 부적격자 대부분이 保守성향

2000년 1월24일 이들 단체는 ‘공천 부적격자 명단’ 66명을 발표했다(후에 1명 추가로 총 67명이 되었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30명(후보 133명 중 22.6%)으로 가장 많았고, 민주당이 16명(105명 중 15.2%)이었으며, 자민련은 30.2%(53명 중 16명)로 의원 對比(대비)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부적격자 중 대부분이 保守(보수) 성향을 가진 인사들이어서 형평성에 논란이 일었다. 총선연대는 특히 김종필 前 총리의 정계은퇴를 촉구했다. 5·16 군사혁명을 주도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명단 발표 이후 박원순 씨는 “뇌물수수와 선거법 위반, 쿠데타 등 憲政(헌정)질서 파괴 등의 기준을 가장 우선적으로 적용해 명단을 작성했다”면서 “오늘 명단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이들을 공천할 경우 전국적으로 낙선운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총선연대의 不法 선거운동은 전국 集會(집회)로 이어졌다. 이들은 1월30일 서울과 인천을 비롯한 전국 6개 도시에서 4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제1차 시민행동, 국민주권 선언의 날’ 행사를 열어 낙천·낙선운동의 확산을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2월4일 총선연대 주요인사의 親與(친여, 당시 김대중 정권) 경력 및 정부지원금 보조내역을 공개하며 공세를 폈으나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실정법 違反(위반) 논란과 함께 訟事(송사)로 이어졌다. 검찰은 총선연대 지도부에 대한 각 후보 진영의 고소·고발 사건 54건을 접수, 6개월 동안 被고소·고발인 208명에 대한 수사를 벌였고, 2000년 총선연대 간부 2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헌재, 총선연대가 제기한 헌법소원 청구 기각

대법원 제1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2001년 1월26일 울산참여연대 대표 이수원과 사무국장 김태근에 대한 상고심 판결에서 이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300만 원의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李 씨 등이 개인적 이해관계 때문에 낙선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선거에 미친 영향과 시내 번화가에서의 집회 등 상황을 감안하면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2001년 8월30일에는 헌법재판소가 “특정후보 당선운동과 다르지 않다”며 총선연대가 제기한 헌법소원 청구를 기각했다.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과 대법원 敗訴(패소)에 이어 총선연대는 민사소송에서도 敗訴했다. 서울지방법원 민사합의13부(재판장 김희태 부장판사)는 2002년 9월26일 이종찬 민주당 상임고문이 “총선연대가 낙선운동을 벌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참정권을 침해했다”며 박원순 등 총선연대 간부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연대해서 원고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2004년 9월21일에는 이사철 前 한나라당 의원이 박원순 등 총선연대 간부 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결과, 대법원 3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총선연대는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朴 씨, 2004년 탄핵무효행동 공동대표 맡아

不法으로 확인된 낙천·낙선운동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계속됐다. 2003년 12월23일 환경연합 등 39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부패정치추방과 정치개혁실현을 위한 비상시국회의준비단’은 서울 종로구 소재 기독교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내년 총선에서 改惡(개악)을 주도한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이 운동은 이듬해인 2004년 1월 ‘2004년 총선 물갈이 국민연대’, 2월 ‘2004총선시민연대’로 이어진다.

‘2004총선시민연대’는 2월5일 與野 중진의원을 대거 포함한 1차 공천반대자 6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명단은 한나라당 32명, 민주당 20명, 열린당 7명, 자민련 3명, 국민통합 2명, 하나로국민연합 1명, 무소속 2명 순으로, 親열린당 성격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김용갑(한·창녕), 이원창(한·비례) 의원은 소위 ‘색깔론 발언’, 김기춘(한·거제) 의원은 ‘유신헌법 초안작성’, 김만제(한·대구수성갑)·유한열(한·비례)·이상배(한·상주) 의원은 ‘1980년 국보위 활동’, 김종필(자·비례) 의원은 소위 ‘5·16 쿠데타 가담’, 최병국(한·울산남) 의원은 ‘호주제 옹호’, 정몽준(국·울산동) 의원은 ‘단일화 합의번복’이 각각 낙천·낙선의 이유였다.

‘2004총선시민연대’에 참여했던 단체들은 2004년 3월 노무현 탄핵 政局(정국)에서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汎(범)국민행동’(이하 탄핵무효행동)에 참여하여 탄핵에 찬성한 의원에 대한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했다.

박원순 씨는 ‘2004총선시민연대’의 최초 멤버로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탄핵무효행동’이 구성되자 오종렬·문규현 등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4총선시민연대’는 같은 해 4월6일 기자회견을 갖고 17대 총선 출마자 가운데 208명을 낙선대상자로 선정해 발표했다. 낙선리스트에 오른 후보는 한나라당 100명, 민주당 52명, 열린당 10명, 자민련 21명, 무소속 23명, 민주노동당·국민통합21 각 1명씩이었다. 이들은 이와는 별도로 한나라당 68명, 민주당 23명, 자민련 3명, 무소속 6명 등 100명은 노 대통령 탄핵案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낙선대상자로 선정했다. <金成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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