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미국의 보스턴으로 옮겨가니 우선 물가가 싸서 좋았다. 영국의 반 밖에 되지 않아 무엇이든지 공짜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양도 많아 햄버거 하나 사먹고도 배를 불릴 수가 있었다. 미국의 풍요는 나에 대한 대우에서도 드러났다. 한 방에 여러 사람이 쓰기는 하였지만 객원연구원에 불과한 나에게도 책상이 하나 배당되었다. 비밀번호를 하나 주더니 복사기에 그 번호를 누르면 마음대로 복사할 수 있고 공짜라고 하였다. 완전히 별세계에 온 것 같았다.
그날부터 바로 옆에 있는 법률도서관, 중앙도서관, 신학도서관 등을 다니며 하루에도 몇십 권씩 복사를 해댔다. 복사를 몇 시간만 계속하면 기관지가 고장날 정도로 몸에 해로운 중노동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낮에는 사람들이 오가니 아예 저녁에 출근하여 밤새 복사를 하고 오전 내내 잠을 자는 올빼미 생활을 했다.
1992년 보스톤의 겨울은 너무 추웠다. 눈태풍('블리자드')이 몰아쳐 아무도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은 낮에도 복사기는 내 차지였다. 그런 날이 자주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일기예보에 폭설이 내린다면 즐거워하곤 했다. 드디어 너무 많은 분량을 복사한다고 느꼈는지 법대 당국에서 1인당 월 2천 장까지만 공짜, 나머지는 장당 2센트는 내도록 조치하였다. 나 때문에 새로운 규칙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도 쌌다.
옌칭도서관에서는 일본 자료를 많이 복사할 수 있었다. <사찰요람>이라는 자료는 이미 옌칭 연구원으로 다녀간 정용욱 씨 등이 놓치지 않았을 것이고 나도 한 부 복사를 해 왔는데 나중에 보니 서울대학교 김모 교수가 최초로 발견한 것인 양 신문에 대서 특필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의 초대 문정관을 지냈던 그레고리 헨더슨 씨의 자료인 헨더슨 콜렉션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상태여서 책임자에게 사정하여 꺼내보고 중요한 것들을 복사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국회프락치사건'에 대한 미발표 원고와 1949년도 범죄사건분석표 등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하버드대학과 MIT 등 거대 대학이 들어서 있는 켐브리지는 또 다른 책방의 천국이라 할 만하였다. 'Bool Stores: Cambridge Guide'는 책방 지도였다. 'Revolution Books'라는 방은 그 이름이 주는 호기심에 들렀더니 과연 모택동과 그를 추종하는 페루의 'Shining Path'. 바에 관한 책들이 잔뜩 진열대를 채우고 있었다. 책값이 좀 싸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오는데 기부를 좀 하라고 하여 바가지를 쓰고 말았다. 기부없이는 책방이 유지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침 문을 닫기 직전이었던 'Book Case'라는 책방을 안 이후로는 정말이지 싼 값에 책 사는 재미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주인에게는 좀 미안하였지만,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에 강연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 강연료마저 몽땅 주변의 헌책방에 갖다바쳤다. 건성으로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곳들이었다. 뉴욕의 콜롬비아대학의 도서관과 그 정문과 후문의 헌책방들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이었다.…
*출처
- 역사문제연구소 회보 27호 (1994, 12월)
- 박원순 운영위원 http://www.wonsoon.com/3380
박원순 씨가 쓴, 하버드 법대 객원연구원 시절 이야기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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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14, 1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