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흔두살 되던 1965년에, 200만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는 독립국가 싱가포르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서른여섯살이던 1959년에 나는 싱가포르 자치정부의 총리직을 맡아 왔으며, 1963년 9월에 우리는 말레이시아 연방에 합류했다. 그러나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 사이에는 몇가지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 1965년 8월, 갑작스럽게 우리는 독립국가로서 홀로 서게 되었다. 우리는 내일의 운명에 대한 아무런 갈피를 잡치 못한 채, 말레이시아 연방 탈퇴를 강요당하고 독립국가의 길을 걸어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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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콴유 수상의 자서전 표지
이상의 말은 이광요 수상의 자서전인 《일류국가의 길(From Third World to First)》 제일 첫장에 나오는 말이다.
이광요 수상의 자서전을 보면 신생독립국 지도자로서 그가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하였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첫번째는 말레이시아 끝단의 작은 섬 싱가포르의 안전보장 확보를 위한 군사외교적 노력과 투자이다.
두번째는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투쟁으로서 산업화와 인적자원 확보를 위한 정책이다.
세번째는 국가 공동목표의 공유와 국가 정체성확보를 통한 분열의 극복과 통합 노력이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인구 약 461만명(2008년 기준)에 1인당 GDP는 약 43.117달러(2010년 IMF기준)이다. 일본보다 높은 개인소득이다.
도시경쟁력으로는 세계 9위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단연코 1등이다. 오늘날 이런 싱가포르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이광요 前 수상의 결단과 지도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오늘날 싱가포르의 모습은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서울은 싱가포르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싱가포르보다 갑절 많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보장
'맨손으로 시작한 군대 만들기', 이 제목은 이광요 자서전의 두 번째장에 나오는 제목이다. 군대는 국가의 안전과 평화를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존재이다. 국가 지도자라면 당연히 군대의 가치와 목적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광요 수상은 그 누구보다 군대의 존재가치를 알았던 인물이다.
인큐베이터 속 같은 불완전한 독립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싱가포르의 속사정은 이러하였다.
싱가포르는 작은 섬에 불과한 도시국가이지만 다인종 다문화사회이다. 싱가포르는 약 76%의 중국인, 17%의 말레이시아인, 7%의 인도인 등으로 구성된 사회이다.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으로부터 탈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인종구성 요소가 있었다.
말레이 연방정부가 표방한 말레이 인종 우선시 정책은 중국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싱가포르로서는 받아 들일 수 없었다. 또한 사회적 부를 많이 차지하고 있었던 중국인에 대한 말레이인의 반감은 말레이 연방 속 싱가포르에겐 위협적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런 복합적 요소로 독립한 후 어엿한 국가로서 자신의 안위를 책임질 군대의 보유는 당면과제였다. 그러나 신생독립국 싱가포르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이광요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군대 창설에 대한 협조를 구하였으나 영국은 거부하였다. 당시 영국이 싱가폴에 주둔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싱가폴의 안전보장책이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말레이시아의 눈치도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국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해서 강한 군대를 육성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이스라엘 군을 벤치마킹했다.
싱가포르 군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무척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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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軍의 포스터 : 내용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천하태평의 愚을 범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
'싱가포르와 이웃나라들간의 인구 대비 격차에 우리 스스로를 최면에 걸리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장 군대의 전투력이지 인구의 규모가 아니다. 징병제도를 도입하여 5년쯤 뒤에는 우리도 예비군을 동원해 15만 군대를 전투에 투입할 수 있게 된다. <중략>'
이광요 수상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군대창설의 과제는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우리는 국민에게 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전통적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정서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국민정신을 재교육 시켜야만 한다.'
2. 원조보다는 안전보장이 중요하다.
중국 속담에 '좋은 강철은 못이 되지 않고 훌륭한 젊은이는 군인이 되지 않는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이콴유 수상은 모든 중등학교에 국가 학도 군사훈련단과 국가 학도 경찰훈련단을 만들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광요 수상이 목표로 하는 군대는 스위스나 이스라엘 같이 유사시 커다란 시민 군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강한 독자적 군대를 만들기 위하여 이콴유 수상은 10년을 목표로 잡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자서전에서 이광요 수상은 영국 정부와의 일담을 소개하고 있다.
'1966년 10월 데니스 힐리는 캥쉬와 내가 싱가포르에 영국 전투기를 넘겨 달라고 요청하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우리에게 손가락을 흔들면서 영국 군대가 당신네들을 지켜줄 것인데 무슨 일을 벌이려 하느냐?'
신생 독립국 싱가포르의 지도자 이광요 수상은 군대창설 작업 중에서도 이렇게 영국의 실질적 안전보장에 대한 확인도 잊지 않았다. 그만큼 국가 안전보장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군대창설과 무기구매에 부정적이던 영국은 다른 경제적 지원을 말하기도 하였으나 이광요 수상은 거부하였다. 수상은 이렇게 말하였다.
'싱가포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싱가포르의 안전보장이다.'
3. 생존의 몸부림 , 산업화와 인적자원의 확보
지도자육성을 국가적 과제로 - 세계 2위의 국가경쟁력으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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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서전에 담겨있는 1971년 싱가포르 군대의 시가행진 사진. 이광요 수상의 장남도 사관생도 출신임을 설명하고 있다. |
 
아시아에서 지도자 교육을 가장 잘하는 나라는 싱가포르이다. 국가경쟁력 지수에서도 세계6위로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다. 그 배경엔 바로 교육을 통한 지도자의 육성이다. 중학 입학 과정에서부터 미래의 지도자는 체계적으로 육성된다.
전국에서 3% 이내에 드는 학생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문과(인문사회계)를 선택할 수도 없다. 전원 이과(이공계)를 택해야 한다. 문과를 굳이 하고 싶다면 대학 졸업 후 대학원 과정에서 선택해야 한다. 문과는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지만, 이과는 20대만 넘으면 거의 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국가의 기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과 동시에 인구가 350만 밖에 안 되는 싱가포르는 한 명의 인재도 놓칠 수 없기 때문에 국가의 생존을 걸고 이들에게 진로 선택의 자유를 잠시 유보한 것이다.
최우수 학생들은 부모가 잘 살든 못 살든 중학교부터 학비를 안 내는 것은 물론, 국가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다. 최우수에서도 최우수 장학생은 ‘국방부 장학생’인데, 이들은 전원 외국에 내보내어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게 하고 군사 훈련을 시켜 장교로 만든다. 군인으로 그대로 남는 수도 있지만, 제대하면 이들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30대에 바로 중앙 정부의 고위직에 발탁된다.
이들은 끝없는 공부와 평가와 실습을 통해 정보와 지식과 지혜를 넓히고 쌓고 깊숙이 팔 뿐 아니라 업무 능력도 향상시키고 윤리의식과 애국심도 고양시켜야 하는데, 그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하면 가차없이 탈락한다. 이들의 능력은 프랑스의 그랑제콜을 졸업한 사람이나 영국의 옥스퍼드 장학생 이상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싱가포르의 국부 이광요의 아들 이현룡은 30대에 말 그대로 별을 달았고 그 후 스스로 탁월한 능력을 입증해서 고척동에 이어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이들 인재에 대한 싱가포르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4. 영국의 조기 철수 - 해군기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한 싱가포르
1968년 1월, 영국은 1971년에 싱가포르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하였다. 원래 1975년경을 언급하였으나 더 빨라진 결정이었다 . 물론 그 배경은 영국의 경제상황 때문이었다. 영국의 철수를 대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빨라진 영국의 조기 철수는 싱가포르 경제에 분명한 마이너스였다.
자서전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이지만 1967~1971년 당시 싱가포르 GDP의 20%나 차지하는 영국기지의 주둔비 감소는 싱가포르 경제에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영국군 기지는 3만개의 직접적인 일자리와 4만개의 보조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영국기지의 예상보다 빠른 조기 철수는 이광요 수상에게 있어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광요 수상은 영국이 몰타방식으로 싱가포르에 대한 지원약속을 거부하였다. 그것은 바로 몰타에서의 충격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 유약한 사회를 원했더라면, 우리는 이미 멸망했을 것입니다. 유약한 국민은 달콤한 해결책을 약속하는 사람에게 투표할 것이지만, 그런 해결책은 사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에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물조차도 돈을 내야 합니다… (중략)… 영국이 물러난 후에도 오랫동안 싱가포르는 산업, 교역,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릴 것입니다.'
1968년 1월 이콴유 수상은 영국의 철수 방침 소식에 이렇게 대국민 방송을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술회하였다.
'앞으로 닥칠 싱가포르의 생존을 위한 싸움에서 국민들의 의욕과 확신이 결정적인 역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싱가포르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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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이군항은 싱가포르의 무역로를 지키는 든든한 방패: 계류되어 있는 싱가포르 해군함정 |
 
| 2006년 8월 싱가포르 창이 군항 - 싱가포르의 무역로를 지키고 있다 (출처: 디펜스타임즈) |
 
영국군은 싱가포르군으로 바뀌어 갔으며 영국 해군기지는 싱가포르 해군의 기지로 변화되었다. 결코 군사기지가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영국군의 기지가 독립 싱가포르군의 기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일부는 산업화 시설로 탈바꿈했다.
영국 해군의 조선소는 민간 조선소로 바뀌어 싱가포르에 기항하는 선박의 수리와 정비를 하면서 외화를 벌어 들였다. 또한 싱가포르 해군을 위한 조선소 역할도 겸했다. 영국군이 사용하던 텐가 공군기지는 싱가포르 공군의 주력기지로 바톤 터치했고 창이공군기지는 매립을 통해 더욱 확장하여 창이 국제공항으로 탈바꿈 시켰다.
영국의 철수에 미리 대비한 싱가포르는 철수의 충격을 100% 흡수하여 싱가포르화 하였다.
5. 생존의 위한 결실 - 산업화와 무역
물까지 수입해야 하고 자원이라고는 인력밖에 없는 꼬마나라 싱가포르의 경제적 거인화는 바다와 기름에서 비롯되었다. 천혜의 양항 싱가포르는 인도양과 태평양, 동양과 서양, 북의 공업 국가와 남의 자원 부국을 이어 주는 로터리이다. 현재 물동량 면에서 세계 2위의 항구이다. 로테르담, 이어 싱가포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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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항구 내 콘테이너 선적 항구. 세계적 무역항은 항상 군항과 함께 하고 있다. |
싱가포르 항구를 거치는 항로는 300개 노선이나 된다. 이 뱃길들에 의해 싱가포르는 세계 80개 나라의 300여 개 항구들과 이어지고 있다. 이 방대한 항로의 네트워크, 그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중계 무역항이자 동아시아의 정보 센터다. 싱가포르는 원자재를 수입, 가공하여 수출하는 자원빈국의 일반적인 무역 전략 이외에 '전략적인 배급 기지'라는 개념을 도입, 무역상의 십자로 구실을 하고 있다.
6.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석유제품 수출국 - 산업없이 발전 없다.
흔히 싱가포르하면 중계무역항으로만 떠올린다. 그러나 가장 싱가포르다운 산업은 정유 공업이다. 싱가포르는 로테르담과 미국의 휴스턴에 이어 세계의 세 번째 정유센터다. 정유 능력은 한국 전체의 약 두 배인 하루 110만 배럴이다.
쉘을 비롯 칼텍스, 모빌, BP, 에소 등 세계 굴지의 석유 회사들이 주롱 지역의 섬들과 해안선을 차지, 정유 공장들을 돌리고 있다. 비행기에서 이 근방을 내려다보면 수십 개의 오이를 물에 띄워 놓은 것 같이 슈퍼탱커들이 묘박지에 와글와글 모여 있는 게 가장 눈에 잘 뜨인다. 말레카 해협의 탱커 통항량이 많은 한 이유도 싱가포르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정유 시설이 부족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원유를 받아 정유해 주는 임가공 장사도 하고 있다. 이곳 정유 공장에서 나오는 석유류 제품의 거의 전부가 수출되는 것은 물론이다.
단일 품목으로는 최대 수출 상품이었다. 싱가포르엔 아시아에서 하나뿐인 석유 현물 시장이 있다. 아시아 석유 개발 현장의 야전 사령부이자 석유 정보의 집합점이기도 한 것이 싱가포르다.
이렇게 싱가포르의 발전의 이면엔 생산시설의 유치와 교역항으로서의 활발한 개발이 있었기에 가능 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이런 진면목을 배워야 할 것이다.
7. 경제력과 국방의 결합 - 당찬 국가로 발전
이런 거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싱가포르는 스위스와 같은 고슴도치식 국방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정규군이 5만, 예비군이 25만이나 되는 작지만 당찬 나라, 그래서 큰 짐승도 어쩔 수 없는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 싱가포르인 것이다. 
한 운전자에게 나는 '당신네들의 가상적국이 어디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군대에서는 어느 나라가 가상적국이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우리 이외의 어느 나라도 믿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명답이었다. 강국사이에 있는 小國은 자신밖에 믿을 수 없다는 독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싱가포르처럼 소국이면서도 부자이면 더욱 그렇다.
바다, 항구, 공항을 부의 원천으로 삼아 오늘날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지도자 이광요는 그들의 생명줄이 어디에 있으며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실천하였기에 오늘의 싱가포르가 있는것이다.
개방과 국제화 그리고 공동의 목표를 향한 단결- FTA반대론자들은 싱가포르를 보고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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