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여연대' 공동대표 승려 '청화'(靑和)
간첩-빨치산 묘역 조성했던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소속 인사 
지난해 6월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郭魯炫) 교육감을 당선시키기 위해 從北 인사들이 총출동했었다.
주요 인사로는 청화(靑和, 승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고문, 백낙청(서울대 교수)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명예대표, 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 김상근(목사)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등이 좌파진영의 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중재했다.
이들 가운데 전북 남원 출신의 승려 靑和는 利敵단체 한총련 비호에 앞장서온 인물이다. 조계종 교육원장 출신으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을 거쳐 현재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고문, 6.10항쟁계승사업회 공동의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2002년 7월18일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천인 선언 ▲2003년 4월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발표된 양심수와 정치수배전면해제를 촉구하는 사회원로·각계인사 기자회견 ▲2003년 10월23일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 ▲2010년 7월8일 ‘4대강 개발 중단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생명평화선언’ 등에 참여해왔다.
승려 靑和가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이하 실불회)>는 대표적 極左단체인 한국진보연대 참여단체이다.
실불회는 1992년 설립 이후 줄곧 ▲비전향장기수후원회(1998년 6월) ▲국보법반대국민연대 및 국보법폐지국민연대(1999년 9월) ▲여중생사망사건 관련 불교대책위원회 구성(2002년 대선 직후) ▲양심수와 정치수배전면해제를 촉구하는 사회원로·각계인사 기자회견(2003년 4월) ▲국보법폐지 108배 정진(2004년 12월) ▲비전향 장기수 송환 5돌 기념 및 2차 송환촉구 대회 개최(2005년 9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지속을 주장하는 합동회견 개최(북핵 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촉구하는 시국법회 주도(2008년 7월4일) 등 反美․反軍․從北 활동에 주력해왔다.
실불회는 또 2005년 5월 경기도 파주 보광사에 간첩-빨치산 묘역을 조성했다. 묘역의 입구에는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묘역 연화공원’이라는 이름의 비석을 세우고, 비문에는 남파간첩을 의사, 빨치산을 ‘애국통일열사’로 부르며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애국통일열사 류낙진 선생. 민족자주조국통일의 한길에 평생을 바치신 선생님,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나리” ▲ “의사(義士) 故 최남규 선생. 해방 후 청진 교원대학 지리학 교수로 교육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조국 통일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1957년 구속되어 29년의 감옥생활에서 지조를 지켜내신 민중의 벗. ‘백두’ 옹 여기에 잠들다” ▲ “애국통일열사 정순덕 선생. 마지막 빨치산 영원한 여성전사, 하나 된 조국 산천의 봄꽃으로 돌아오소서” ▲ “의사(義士) 금재성 선생. 일제감점하 민족해방투쟁으로 3년의 소년 옥과 해방 후에는 조국통일을 위해 1957년 투옥되어 30년의 형옥 속에서도 전향을 하지 않고 당신의 지조를 지키며 빛나는 생을 마치다” ▲ “애국통일열사 손윤규 선생.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하시다가 비전향으로 옥중에서 생을 마친 열사 여기에 잠들다”
한편, 승려 靑和는 1일 ‘불교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곽노현 교육감은 인격자다운 기품이 있고 선량한 사람”이라며 교육감 후보단일화 대가로 곽노현이 박명기(구속)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을 건넨 혐의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또 지난해 곽노현과 박명기 교수간 후보 단일화 발표 자리에 배석했던 것과 관련, “재야 원로들의 요청과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관과 교육철학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힘을 실어주는 차원에서 함께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도 “곽노현 교육감이 법대 출신인데 법에 저촉된 다고 판단했다면 이미 사퇴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뒤, “일부 언론이 뭐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듯한 보도를 하고 있다”면서 끝까지 郭 씨를 두둔했다.
[자료]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조성: 간첩-빨치산 묘역(墓域)에 묻힌 인사들의 面面
▲류락진(2005년 4월 사망): 죽는 날까지 大韓民國 파괴활동 주력
류락진은 6.25사변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57년 가석방된 후 63년 ‘혁신정당’사건으로 구속돼 67년 석방됐고, 71년 다시‘호남통혁당재건委’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8년 가석방됐다.
출소 후 운동권을 상대로 빨치산 강연을 벌여 온 류낙진은 94년‘구국전위’ 사건으로 구속돼 8년형을 선고받고 99년 광복절특사로 석방됐다.
93년 1월 조직된 구국전위는 ‘조선노동당’의 남한 내 지하조직으로서 창립선언문과 강령 및 규약에서 북한의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조직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있다. 규약 중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구국전위는 위대한 金日成 동지께서 창시하시고 친애하는 지도자 金正日 동지께서 발전 풍부화시켜 오신 새로운 노동계급의 혁명적 세계관이며 남반부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완수의 가장 정확한 학설인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삼는 주체(主體)형의 金日成주의 지하조직이다”
류낙진의 反국가활동은 99년 석방 이후에도 죽는 날까지 계속됐다. 그는 2002년 백운산지구 빨치산위령비 비문(碑文)작성 사건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류낙진은 이적단체(利敵團體)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으로 활동하다 2005년 사망하는데, 그의 가족들은 부의금 5천만 원을 통일운동에 써달라며 범민련 남측본부에 기탁했다.
류낙진은‘어린 신부’로 인기를 끈 영화배우 문근영의 외조부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사망했을 때 조선일보를 포함한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문근영 외조부 통일운동가 류낙진 氏 사망’등의 제목으로 연예면(面)에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최남규(1999년 사망): “백두산 장군에 대한 충성”으로 전향 거부
스스로 “백두산 장군(김정일)에 대한 충성” 때문에 전향하지 않았다고 밝혔던 최남규는 1912년 함경북도 명천 태생으로 청진대학 지리학 교수로 재직 중 57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남파 후 서울서 간첩활동을 벌이다 1957년 9월12일 동료 공작원의 밀고로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고 1973년 만기출소했다. 최남규는 출소 후 3년 간 엿장수 생활을 하다 1975년 7월 사회안전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되어 1989년 풀려났다. 출소 직전인 1989년 5월11일 청주보안감호소에서 ‘그날 그때가 올 때까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가고픈 내 고향에 가고파도 내 못가네. 광복된 이 조국에 38선 웬 말인가 이 땅 뉘 땅인데 주인행세 누가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 짓밟질랑 말고서 돌아가라, 사라져라, 어서 꺼져버려라. 고-홈 고-홈 양키 고 홈”
▲정순덕(2004년 사망): 1963년 체포된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은 1933년 경남 산청 출신으로 6.25사변 발발 후 인민위원회 활동을 하던 남편을 따라 1951년 스스로 빨치산이 됐다. 정순덕은 국군의 대대적 토벌작전으로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쫓겨 가 빨치산 활동을 지속하다 1963년 11월 체포됐다.
이후 정순덕은 대구-공주-대전교도소에서 23년 간 복역하다 1985년 8월 가석방됐다. 정순덕은 2003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북한에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전향서를 썼다고 하지만, 강제로 한 거니까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금재성(1998년 사망): 인민군 제대 후 간첩으로 남파
1924년 충남 대전 출생인 금재성은 보통학교 졸업 후 원산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1944년 금촌 소년 형무소에 투옥됐다. 금재성은 출소 후 45년 공산당에 입당해 독찰대(헌병) 원산지구 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6.25사변 발발과 함께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정전(停戰) 후 제대해 원산 주을전기전문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중 1956년 정치공작원으로 남파되어 고향인 대전에서 간첩활동을 벌였다. 이듬해 공안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1972년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손윤규(1976년 사망): 빨치산 활동하다 사형받아
전북 부안 태생의 손윤규는 해방 후 남로당에 가입해 활동하다 6.25사변 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이후 1955년 경찰특무대에 구속되어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76년 옥사(獄死)했다.
[2] 천안함 사건을 왜곡하고, 곽노현을 옹호하는 백낙청
참여연대 고문으로 활동 중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명예대표)는 지난해 좌파진영의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을 중재한 인사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9월1일(2011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생각’이란 글에서 “후보 단일화 과정 당시 곽노현, 박명기 두 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금전거래나 금전거래 약속도 없었음을 확신한다”면서 구속 수감된 곽노현을 적극 옹호했다.
백낙청은 좌파진영의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 개입한 이유도 설명했다. “만에 하나 금전거래가 성립한다면 두 사람 다 죽는 길이요, 박 교수가 사퇴할 용의가 있음이 분명해졌는데도 돈 때문에 단일화에 끝까지 응하지 않는다면 그로서는 두 번 죽는 꼴이 될 터였다”며 “(그래서) 원로들이 중재하는 모양새를 갖춰주겠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단계 연방제로 통일 이뤄야”
학계에서 소위 ‘연방제 전도사’로 통하는 백낙청은 2006년 4월20일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가 주최한 강연에서 “남측의 연방제 혹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해 1단계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백낙청은 당시 강연에서 “(6.15 공동선언에서) 평화통일을 강조한 것은 베트남 식 무력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대전제를 합의한 것이었다”며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성의 방향으로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2항은 ‘독일식 통일도 안 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6.15공동선언을 지지할 수 있는 세력은 잠재적으로 대다수의 국민”이라며 “이 잠재적 지지 세력을 공개적인 지지 세력으로 만들고 그 공개적 지지 세력이 전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되게 만드는 것이 향후 통일 과정에서 마주할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백낙청이 당시 강연에서 밝힌 ‘낮은 단계 연방제를 통한 1단계 통일’, ‘6.15 공동선언 2항은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성의 방향으로 통일을 의미한다’는 등의 발언은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대남혁명논리와 그 궤를 함께하고 있다.
이유는 ‘북한식 연방제’는 1960년 8월14일 ‘과도적 연방제’,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고려연방제)’, 1991년 ‘느슨한 연방제’즉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변화해왔지만, 대남 적화 통일전략의 일환으로 제기해 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관련 정부 조사 '엉터리 발표'라며 음모론 펼쳐
평북 정주 출신의 백낙청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학교 영문학과(학사)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석사, 박사를 밟았다. 그는 미국 유학과 서울대 교수 등 한국과 미국의 자본주의 혜택을 최대로 누려온 인물이다. 백낙청은 2010년 6월10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된 정부 조사결과를 “엉터리 발표”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나온 발표가 엉터리 같다, 말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으니 해명해라, 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생존자들과의 접근도 차단하느냐,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부분적인 정보밖에 없는 상태에서 대안적인 시나리오를 내놓는 것은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그는 또 정부 내 對北(대북)강경론자들이 북한의 천안함 도발을 만들어냈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진상은 확실히 모르지만 북측의 어뢰 공격이라기보다는 해군이나 국방 당국에서 은폐하고 싶은 유형의 어떤 사고였을 가능성이 있고, 대통령은 북한소행으로 몰고 가려는 일부 언론이나 국방 당국에 비해 처음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이 사고를 이용해서 남북대결상태를 복원하려는, 다시 대결상태로 몰고 가려는 세력이 선거를 앞둔 단기적인 정략적 계산도 겹쳐 정부 안팎에서 득세하면서 일을 벌이다 보니까 이제는 이 나라를 온통 딴 나라로 바꿔놓거나 아니면 외교와 국내정치에 있어서의 참담한 실패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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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참여연대' 제16차 정기총회 자료집에 게재되어 있는 단체 임원 명단.
백낙청의 비아냥거림은 계속된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가지고 “적당히 장난치려고 했는데 장난이 너무 심해서 장난이 아니게 돼버렸다”고 주장했다.
“5월 11일 시점에서 ‘북한-어뢰 프레임’에 갇히지 말자고 말할 때만 해도 나는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일종의 永久未濟(영구미제) 상태로 끌고 가면서 북의 소행이라는 냄새만 잔뜩 피우다가 선거가 끝나면 적당히 물러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어찌 보면 우리 정부의 과감성이랄까 저돌성을 내가 과소평가 했다.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웃음)···(중략)···그러니까 나쁘게 보자면 적당히 장난치려고 했는데 장난이 너무 심해서 장난이 아니게 돼버린 것이다. 이제 정부는 추가 자료를 제시해서 국민과 국제사회를 납득시키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역사에 유례가 없는 망신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 길이 없어졌다.”
백낙청은 철저히 김정일을 옹호한다. 그는 ‘그래도 북의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극렬분자의 존재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김정일 위원장의 정책적 판단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망동을 누가 저질렀을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체제는 근본적으로 대단히 문제가 많은데다가 지금 어려운 고비에 와 있다. 또 내부에 극렬분자의 존재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김정일 위원장의 정책적 판단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망동을 누가 저질렀을 수 있다. 따라서 북의 소행일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김태영 국방장관 말대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는 게 맞다.(웃음) 다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부가 발표한 사실을 포함해 관련 사실을 하나씩 좁혀가다 보면 북 공격설의 입지가 점점 위축되지 않는가 한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백낙청의 음모론은 계속된다. 그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천안함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미국이 전폭 지지했다. 왜 그렇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천안함 사건의 진상이 한국 정부의 발표와 다르다는 걸 미국이 알고 있다고 해도 그걸 미국이 밝힐 의무가 없다”, “당장 무기를 파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답했다.
정부는 북한이 하지도 않은 천안함 도발을 조작해 발표하고, 미국은 무기를 팔기 위해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는 말이다.
“(전략)…단기적으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미국이 전폭 지지해서) 미국에 이득이 되는 게 너무 많다. 천안함 사건의 진상이 한국 정부의 발표와 다르다는 걸 미국이 알고 있다고 해도 그걸 미국이 밝힐 의무가 없다. 한국 정부가 우기면 ‘그래, 너희들이 그렇다고 하니 우리가 우방으로서 밀어 주겠다’고 하면 되고, 그렇게 해준 만큼 한국 정부에 대해 채권 하나를 더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방면에서 나중에 한국 정부를 압박해서 대가를 받아낼 수 있다. 당장 무기를 파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해군력 증가하겠다고 하면 어디서 무기를 사오겠나?”
그는 이어 “단기적으로 볼 때는 미국이 실속을 차리고 있는데, 그러나 만약에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조단 발표가 진실이 아니라면, 더구나 충분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알고도 한국에 동조했다는 게 장차 밝혀진다면, 미국의 국제적 위신은 손상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국민들은 1980년대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 수 없다”면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1980년 광주 사태 당시와 비교했다.
“2012년 대선은 대단히 중요, 새로운 세력 키워가야”
백낙청은 천안함 사건 民軍합동조사발표 직후인 5월24일 이명박 대통령 대국민 담화에 대해 “초법적 조치”, “한국 민주주의를 다 뒤엎을 수 있는 엄청난 행위”, “5년 장기 할부제로 야금야금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변질시키려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대통령 담화는 거의 초법적인 조치였다.···(중략)···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내놓은 7·7선언 이래 남북관계 22년의 성과를 단번에 없애버리는 것이다. 동시에 남북관계의 발전과 맞물려 진행되어온 한국 민주주의를 다 뒤엎을 수 있는 엄청난 행위다.···(중략)···박정희는 말하자면 일시불로 정변을 일으켰고, 전두환은 12.12와 5.17의 2회 할부로 헌정질서를 뒤집었다. 이번 정권은 군사쿠데타를 안하는 대신 5년 장기 할부제로 야금야금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백낙청은 인터뷰 내내 황당한 음모론을 일삼지만 사실에 가까운 주장도 말했다. 예컨대 그는 “나는 2006년 말부터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된 전선이 남쪽 사회 내부로 옮겨 왔다”고 평가했다. 백낙청은 같은 맥락에서 2012년 대선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 뒤 “그러나 2012년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에 역행하는 정부권력, 그리고 여기에 맹종하는 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국회 등 지금의 조건이 몹시 열악하지만, 정부의 일방통행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고 새로운 세력을 키워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左派단체 행사에서 “나도 북한공작원 접촉했다” 시인
백낙청은 2010년 8월12일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석방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에서 공개적인 自首(자수)를 선언하며 공안당국을 기만했다.
2010년 8월13일자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 보도에 따르면, 백낙청은 “한충목 대표가 北의 공작원, 김지선, 리창덕, 양철식과 접촉했다고 구속됐는데, 전부 제가 아는 이름이고, 저도 접촉을 많이 했다. 공개적으로 자수한다”고 말했다.
백낙청이 언급한 한충목은 북한 공작원들을 만나 指令(지령)을 받고 맥아더 동상 파괴 난동,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을 벌인 혐의(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회합 등)로 구속 기소된 인물이다.
한충목은 북한의 指令(지령)에 따라 좌파단체들과 연계해 2005년 9월 인천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 집회」를 열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등 10여 차례에 걸쳐 반미집회를 주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특히 북한 공작원들은 한충목에게 ▲ 김일성 수령님을 본받아 대중사업을 강화하고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을 발동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나설 것 ▲김영삼·황장엽 역적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 ▲미군철수공대위를 결성할 것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채택에 심각하게 대처할 것 등의 지령을 내린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공작원들은 또 “FTA, 평택 미군기지 등 공감을 같이하는 투쟁, 大衆(대중)이 참가할 수 있는 투쟁을 통해 각계각층을 반미투쟁으로 불러일으켜야 한다”면서 “시민·環境(환경)단체 등 새롭게 합류하는 단체들과 적극 연대해야 한다”고 지령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백낙청은 당시 행사장에서 “자진해서 혐의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위에 있는 무서운 공작원이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 같다. 저는 그분도 여러 번 만났다. 그분한테 ‘이래라저래라’ 주문도 많이 들었다. 물론 제가 다 따른 것은 아니지만, 검찰 표현대로라면 지령이 될 수도 있겠다”고 자백했다.
당시 행사에는 백낙청을 비롯, 김상근 6.15남측위 상임대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정희 민노당 대표, 최병모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배우 권해효 등이 참석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金泌材)/spooner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