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를 다시 본다

줄 베른이 쓴 ‘황제의 밀사(密使)’라는 작품이 있다. 제정(帝政) 러시아에 대항하여 몽골계 시베리아 인인 페오파르 칸이 러시아 안의 반란자와 힘을 합쳐 시베리아 동부를 차지하려 할 때, 차르는 시베리아 출신의 신하 미하일 스트로고프를 전쟁터로 보낸다. 그는 페오파르 칸에게 잡혀 고초를 당하지만, 결국은 살아남아 그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나는 그 때 이 작품을 보고, 어떠한 고난이라도 이겨 나가는 인간의 의지, 조국을 위해 적과 싸우는 애국심을 느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이 생각은 깨끗이 사라졌다. 페오파르 칸은 러시아 황제로 볼 때는 분명히 반역자이지만, 시베리아 민족의 입장에서는 독립 투사가 아니었던가. 오히려 미하일과 같은 인물이야말로 우리가 청산하고자 하는 친일파와 같은 존재이지 않은가.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뛰어난 문학가 중 상당수가 당시 제국주의를 옹호했다는 생각을 하였고, 급기야 세계 명작에 대해 환멸(幻滅)을 느꼈다.

하지만 최근에 생각을 다시 해 보았다. 물론 차르는 시베리아 민족에게 있어서 침략자이고, 시베리아 인들은 독립을 쟁취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페오파르 칸에게 압제자에 맞서 시베리아 민족을 해방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작품 속에서 그는 바이칼 일대를 점령하여 스스로 황제가 되고 싶어하는 야심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인물이 러시아 민족 대신 시베리아 인들의 군주가 된다고 해서 민중들에게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시베리아와 같이 드넓은 지역에는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지닌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다. 비록 우리는 그들이 별로 차이가 없다고 느낄지 모르나, 실상 그들 스스로는 우리나라와 일본만큼이나 차이가 많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페오파르 칸이 뜻을 이루어 시베리아를 지배하더라도, 다른 민족들로서는 러시아 지배 아래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정복왕의 밑에서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려야 한다면 훨씬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도 있다. 민족과 인종이 개인이나 국가의 궁극적인 이익과 위배되는 경우가 참 많으니까.

페오파르의 열정에 빠져들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인물들이 상당히 많다. 한 예로 이재운의 소설 ‘칭기즈칸’에서 몽골군이 유럽을 침공하는 것을 보고 아시아 민족의 쾌거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군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존재가 아니다. 한 야심가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나?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40년 가량 몽골과 싸우면서 죽어간 백성들, 그리고 독립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내정간섭을 받아들이고, 몽골에 매, 보화(寶貨), 공녀까지 바쳐야 했던 역사를 알면서도 몽골의 세계 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예는 한둘이 아니다. 도이칠란트도 아돌프 히틀러라는 전쟁 영웅이 나와서 반대파를 마구 죽이고, 게르만 민족의 ‘민족공조’를 외치며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으며, 전격전(電擊戰)으로 숙적(宿敵) 프랑스를 항복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게르만 민족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가? 히틀러의 광기(狂氣)에 수많은 젊은이가 전쟁터에서 죽었으며, 유능한 인재들은 죽거나 변절자가 되었던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페오파르와 가장 닮은 국가는 일본일 것이다. 그 자신이 아시아의 배신자이면서도 아시아 민족의 연합을 주장하며 얼빠진 수많은 아시아 민족지도자들의 환호 속에서 ‘성전(聖戰)'을 통해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의 서양 세력을 무너뜨린 그들이 아시아를 위해 무슨 도움이 되었던가? ‘저항세력’으로서 수많은 유럽 ‘침략자’를 ‘참수’하고, 심지어 네덜란드 인들까지 위안부로 만든 그들은 일본인이라는 민족적 망상과 덴노 헤이까에 대한 ‘순교’의 행위로서 ‘자살 공격’까지 하면서 ‘침략자’에게 저항한 결과, 자국 내에서 300만명이 죽고, 아시아 안에서 3000만 명을 죽이고 말았다. 민족과 인종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물론이요, 러일전쟁 당시 안중근 의사처럼 일본의 위험성을 인식했던 인물들조차도 일본이 러시아와 싸우는 행위를 ‘패권국가’러시아에 맞서 동양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행위로 인식하였다는 사실은 잘못된 민족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사상인지 잘 알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우리는 이제 민족과 국가‧개인의 관계를 새로이 잡아야 할 것이다. 유럽 연합과 같이 민족이 다른 여러 국가가 힘을 합쳐 국제 사회에 나서는 현실에서 더 이상 민족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자신의 야망을 채우려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이제는 민족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때가 되었다. 북 아일랜드, 팔레스타인 등 독립을 원하는 민족은 독립시켜주고, 경제적‧도의적(道義的)으로 지원하되, 구습(舊習)을 타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개혁세력의 손을 들어주어햐 하는 것이다. 내정 간섭이라는 집권 세력의 반론을 들어주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내부에 비인간적인 요소를 함유한 민족정신이 힘과 결합했을 때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일본, 도이칠란트, 몽골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지 않던가.

민족이란 분명히 우리에게 환상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다. 그러나 환상이란 또한 무서운 것이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처럼, 자기 민족이 최고라는 생각은 인간을 무서울 정도로 악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물질에 대한 탐욕 따위가 비할 바 아니라는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예로 볼 때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국제 사회는 눈을 크게 뜨고 감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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