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논단>(발행인 이도형)은 최신호인 10월호 ‘이달의 방송’ 코너에서 “김대중은 대통령으로 선출될 때까지 출생·학력·경력을 선거 때마다 다르게 기재해 선관위에 제출해 왔다”면서 “DJ는 거짓말을 떡 먹 듯하고 학력을 내키는 대로 조작한 인물”이라며 맹비난했다.
잡지는 구체적으로 “지난 1971년 제7대 대통령 후보 당시 DJ의 학력은 ‘고려대 경영대학원 수료’로 되어 있으나, 1987년 제13대 대선 당시에는 고대 경영대학원 대신 ‘경희대 산업경영대학원 졸업’으로 되어 있다”면서 DJ의 학력 위조 사실을 지적했다.
잡지는 이어 DJ가 지난 92년 14대 대선 때는 ‘경희대 대학원 경제과 졸업’으로 학력을 기재한 뒤, 15대 대선(97년) 때는 그에 대한 학력 시비가 일자 아예 ‘대학’은 없어지고 솔직하게(?) ‘목포공립상업학교 졸업’으로 기재해 사실대로 이실직고 했다고 언급했다.
DJ의 학력위조는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선관위 웹사이트(김대중 기록 70년사)에는 DJ의 학력이 1949년(당시 나이 24세) 건국대 정치과 입학, 이듬해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잡지는 DJ의 대통령 재직당시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그가 1943년 목포상업고등학교 제2회 졸업, 1964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수학’, 1967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수료’, 1970년 ‘경희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과정 수료’로 되어 있다고 밝혔다.
DJ의 학력은 각 신문사의 인물정보란에도 서로 다르게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아닷컴 인물정보란에서 DJ의 학력은 ‘1946~1953년 건대 정외과’, ‘1964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최고지도자과정’, ‘1970년 경희대 경제연구과정’ 등으로 기재돼 있다.
반면 조선일보 DB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1953년 건국대 3학년 편입(정외과)’, ‘1964년 3월 고려대 경영대학원 수료’, ‘1967년 경희대 산업경영대학원 수료’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고려대 부설 경영대학원의 설립인가 신청은 1963년 12월에 이뤄졌으며, 이듬해인 1964년 3월 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한국논단 2001년 3월호, 김대중 의혹, 133~140p)
한편, 잡지는 이 같은 DJ의 학력 변조 의혹과 관련, “김대중씨는 고려대 경영대학원이 개교와 동시에 수료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면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거짓말을 떡 먹 듯 하고 있어도 한국의 언론매체는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필재(金泌材)/spooner1@hanmail.net
[관련자료] 오락가락 하는 김대중 前대통령의 학력 기재사항
▲월간 신동아 1985년 5월호, ‘김대중과 김영삼’에서
“그는 국민학교 4학년 때 하의도에서 木浦 北橋국민학교로 전학했고 13세 때 목포상업학교에 1등으로 합격할 정도의 수재였다. 당시의 동창인 林鍾基의원(전 민한당 원내총무)은 그가 줄곧 우등을 했고 작문과 역사 성적이 뛰어났으며 웅변에 소질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후 그의 학력과 청년시절에 대해서는 구구한 억측이 많다. 그의 학력을 훑어보면 滿洲의 建國大중퇴 경희대대학원 고려대경영대학원 수료로 되어있다. 그는『정규대학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으나 면학에 힘썼다』고 회고한다.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한 김씨의 꿈은 만주건국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43년 그는 서울로 올라와서 시험을 치른 결과 물론 합격했으나 징집될 연령이라서 입학을 포기하고 곧 일본인 상선 회사에 취직, 경리담당사원으로 일했다.”
▲'내가 걷는 70년대'(김대중 저)에 기재된 저자약력
-高麗大學校 經營大學院修學
-慶熙大學校 産業經營大學院修了
-慶熙大學校 大學院 經濟學科修了(碩士課程)
-海運業自營10年
-木浦日報社 社長
-韓國勞動問題硏究所 主幹
-民主黨 代辯人(執權當時)
-民主-民衆-新民黨 代辯人(5.16以後)
-民衆黨 政策審議會 議長
-5.6.7대 國會議員
-新民黨 政務委員(現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인물자료
-대한인물(제1편), 139 建國大學校 政外科 졸업
-국회20년, 561, 580, 607 建國大學校 政外科 3년 중퇴
-의원총람, 108, 223, 260, 300 건국대학교 政經科 3년 중퇴
-의원총람, 223 건국대학교 政經科 수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간 자료
-3대 국회 「中卒」
-5대, 6대, 7대 국회「建國大學校 政經科 3年 中退」또는「建國大學校 政經科 3年 修了」
-6대 국회 지역선거구당선자 명부「日本 法政大學 3年 中退」
-지역선거구 후보자별 득표수 일람「建國大學 政經科 修了」
▲김대중 자서전, 도서 출판 인동, 1999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은 일본 스스로가 점점 궁지에 몰리는 상황으로 변했다. 일본에 건너가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는데 미 해군의 해상봉쇄로 사실상 갈 수 없게 되었다. 가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하고 여행허가를 받아내는 일도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던 시절이었다. 만주(현재 중국 동북부) 건국대학은 학비가 무료이기 때문에 그곳도 진학 목표 중 하나였다. 그런데 1943년 ‘학도지원병’제도가 강행되더니 이어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이르자 1944년 징집제도가 바뀌어 패전할 때까지 약 20만 명이 강제 징집된 것이다. ‘어차피 군대엘 가야하는데 대학 진학도 못하는 공부에 죽자 살자 매달릴 필요가 무엇인가?’ 나는 점차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공부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1987년 10월 30일 관훈 클럽 초청 토론회
“나는 학력이 법정대학 나왔다는 말 한 적도 없고 만주 건국대학 나왔다 한 일도 없습니다. 다만 부산 있을 때 거기에 건국대학이란 게 있어 가지고 나중에 동아 대학으로 합병했습니다. 거기에 내가 3학년으로 편입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경희대 경영 대학원을 나왔고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金大中, 그는 누구인가’ (김형문 저), 서울: 금문당, 1987
“그(김대중)는 만주건국대학에 응시, 합격한 바 있었으나, 그러나 이 젊은이는 25년생이었으니 명년에는 이른바 징병 제1기생이었으므로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기 위해 출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무슨 수를 쓰든지 군대는 나가지 않아야 되겠는데, 이 대학은 징병을 연기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