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이승만-박정희 빼고 '김대중 묘소만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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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원순닷컴


당선 시점부터 전임자의 잔여임기를 채우는 보궐선거의 특성상 ‘곧바로’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 씨가 27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朴씨는 그러나 건국 대통령 李承晩과 근대화의 기수 朴正熙 대통령의 묘소는 찾지 않았다.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을 비롯한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기존 관례대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장 취임식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렸다. 그러나 朴시장 측이 모종의 '이벤트'를 고려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앞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김대중 도서관’ 컨벤션홀에서 (사)행동하는양심(이사장 이해동)이 주최한 월례포럼에서 ‘김대중과 민주당’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박원순 씨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내부 갈등과 관련된 문제를 설명했었다.

박 의원은 “민주당 골수당원들이 박원순이 당선되면 민주당이 어려워진다는 소탐대실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 뒤, 汎(범)좌파 후보인 박원순 씨에 대해 “우리 민주당이 국민에게 야권통합후보를 지지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이며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는 것만이 민주당의 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김대중 대통령을 이어간다는 것은 박원순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김대중 정신이며, 노무현 정신”이라면서 “김대중 정신은 야권통합이고 야권연합이며, 최소한 한나당과 일대일구도로 가는 것이다”고 말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金泌材)/spooner1@hanmail.net

[관련자료] 박원순의 대한민국 現代史 인식: “親日부역자들, 해방조국 권력 장악”

박원순 변호사는 《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이 산다》, 《야만시대의 기록》 등 왕성한 저술활동과 함께, 대표적 현대사 왜곡 센터인 ‘역사문제연구소’(1986년 설립) 初代 이사장을 지내면서 左派的 역사관을 우리사회에 확산시켜 왔다.

朴 변호사는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가 정권을 잡고 ‘민주주의가 압살’ 된 시대이며,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는 ‘지옥 같은 고문이 일상화 됐던 시대’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자신의 著書(저서)인《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이 산다》에서 “해방과 동시에 당연히 처단되었어야 할 친일부역자들이 오히려 새로운 해방조국의 권력을 장악하고 그 아래에서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과 고난을 당해야 했던 것이 바로 웃지 못 할 우리 과거의 솔직한 모습이었다”면서 대한민국 建國 세력을 친일파 집단으로 폄하했다.

朴 변호사는 친일 부역자들이 권력을 잡았다는 역사 왜곡을 했는데, 이승만 초대 내각에 친일파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초대 내각이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부주석, 일제시대 헌병 보조원)를 비롯, 친일파 일색인 것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朴 변호사는 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공산세력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부 과오를 과장해 현대사가 “암살과 학살, 고문과 처형, 투옥과 연금, 재산 약탈 및 몰수가 이뤄진 암흑의 시대”였다고 비난한다. 이와 함께 그는《야만시대의 기록》에서 공산폭력혁명조직 남민전을 비롯, 대다수 공안사건을 “고문으로 용공 조작된 사례”라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간첩사건은 實在(실재) 했다기 보다는 당시 정치적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조작되었음이 밝혀졌다…(중략) 중앙정보부는 간첩단사건과 조작사건을 자유자재로, 무소불위로 만들어냈으며 그 모든 사건에서 고문의 호소와 주장이 이어졌다. 이미 검찰과 사법부는 중앙정보가 고문으로 조작․송치하는 사건에 대해 무혐의 또는 무죄로서 대응할 힘과 의지를 잃은 지 오래였다.” (《야만시대의 기록》 제2권, 314페이지)

朴 변호사는 한국 현대사 左편향 왜곡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역사문제연구소’(1986년 설립)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역사문제연구소’ 출신의 학자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로 발간된 좌편향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대거 참여했다.

‘역사문제연구소’에는 강만길(고문), 임헌영(운영위원), 강정구(연구위원) 등의 좌파인사들이 활동 중이다. 이들 가운데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은 학계에서 줄곧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철수, 한총련 합법화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임헌영(本名 임준열,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등 수 차례 공안사건에 연루됐던 인물이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 前 서울고검장)가 2010년 발표한 ‘親北(친북)-反국가 행위자 100인’ 명단에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활동 중인 학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명단에는 학계(전-현직) 관계자가 17명이 선정됐는데, 이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6명이 역사문제연구소의 이사장, 운영위원, 자문위원, 연구위원이다.

朴 변호사는 또 2008년 도서출판 ‘웅진주니어’(발행인 최봉수)가 펴낸 아동도서《호찌민 이야기》에서 ‘호찌민을 향한 베트남의 변함없는 우정’이라는 제목으로 추천사를 쓰면서 베트남 공산화의 원흉인 胡志明(호지명)을 ‘위대한 지도자’로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추천사에서 “세기를 넘나들며 호찌민만큼 온 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라며 “베트남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호찌민은 여전히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마음의 연인처럼 간절하게 사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호찌민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독립투쟁을 한다는 것에 한없는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면서 胡志明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그 유명한 동굴 투쟁의 시기에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독립에 대한 열망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었다. 비록 그는 사랑하는 조국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1969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사상과 지도력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베트남 국민들을 단결시켜 마침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물리치고 조국의 통일을 이루어 냈다.”

朴 변호사는 國軍이 베트남전쟁에서 5천여 명의 전사자를 낸 것에 대해서는 언급 없이 “호찌민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남겨놓은 불굴의 의지와 정신은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해 가는 베트남의 저력이자 원동력이 되고 있다”면서 敵國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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