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감축 이후 심화되는 한국의 위기

외국군의 감축 또는 철수가 국가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겠으나,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處)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이다.

좀더 엄밀히 말한다면,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 자체가 위기를 가져온다기 보다는 주한미군 위상 변화를 초래한 우리의 자세가 문제가 되는 것이요, 그러한 변화 이후 능동적으로 위기에 대처하지 못할 만큼 분열되어있고, 현실인식이 부족한 지도층과 국민들이 문제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이 단결하고, 지도층의 상황인식이 정확하며 국가와 국민에 대한 헌신적인 의무감이 있다면, 어떠한 역경에서도 분명히 위기를 극복할 길이 열리고,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며칠전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발표로 점화(點火)된 현재의 위기상황은 그 전후과정이 말해주듯, 사실 오래전부터 예고(豫告)된 것이었다. 대량살상무기로 무장되어있는 북한의 대남 군사위협에 맞서 지난 수십년 한국의 국가안보를 수호해 온 한·미 연합방위력이 이제 美지상군 감축을 계기로 근본적인 재조정을 맞게 된 상황에서, 우리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의 배경과 의도에 대해 보다 확실한 진단을 내린 후 그 대응책을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선, 주한미군의 감축이 '세계전략상 미군 재배치의 일환'이라는 한·미 양국 관계자의 공식적인 설명은 대외적 명분일 수는 있어도 실제로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화약고' 중의 하나로, 미국이 오래전부터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재배치를 구상해왔다는 어떠한 사실상의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

비무장지대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 2개여단 지상군 병력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억지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며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전쟁억지'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특수 군사력이다.

이런 이유에서 주한미군은 주일미군에 앞서는 동북아시아의 최우선 군사력으로 간주되어, 미국의 세계안보전략은 항상 中東과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아왔고, 이는 미국 및 세계가 모두 인정하고 이해해 온 사안이다.

그러므로 이번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지상군 감축 결정은 미국내에서도 매우 이례적(異例的)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특히 그것이 미칠 엄청난 파장의 측면에서 뉴욕타임즈의 표현대로 실로 '역사적'인 결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곧 미국의 동북아정책에서 한국이 사실상 배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력한 시사(示唆)를 대내외에 주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이번 결정은 단순히 이라크 병력 필요 차원을 넘어서서,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내 점증하는 반미감정의 확산에 그 원인이 있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된다.

'미군은 원하지 않는 곳에 주둔하지 않는다'는 거듭된 美국방장관의 언급이 의미하는 것처럼,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인명피해를 감수하고 지상군을 주둔시키며 천문학적인 재원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감사는 커녕 반대와 경멸의 목소리가 커질 때, 특히 한·미 양국군대를 위협하는 무력집단에 대해 '주적(主敵)'이라는 공감대 조차 형성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동맹의 의미는 사실상 감퇴(減退)되었고, 더 이상 인명피해를 감수하는 자국군대의 주둔은 무의미하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되는 일인 것이다.

미국은 세계경영의 경험이 많은 나라로서, 감정적인 대응을 하기 보다는 변화에 대처하여 사태를 냉정히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에 나선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미국이 내세우는 원칙과 명분은 그것대로, 그리고 그 속에 내재하는 미국의 속사정과 속뜻을 동시에 읽어내야 한다.

미국이 월남에서 철수할 때에도 미국은 '베트남전의 베트남화'라는 명분하에 월남에 대한 안보공약을 분명히 하였고, 또 엄청난 규모의 장비지원으로 이를 실천하였다. 다만, 월맹군이 전격 월남함락 군사작전에 나섰을 때, 미국은 이에 개입하지 않았다. 개입하여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한미군 감축 내지 철수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의 국가안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부 친북성향의 세력들처럼, 한국의 GNP가 북한의 25~30배에 달하는 남북 경제적 격차를 근거로 북한의 군사적 야욕을 무시하거나, 주한미군 없이도 한국의 안보능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안보의식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것이기도 하다.

많은 역사적 사례에서 보듯이, 전투력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단결(團結)과 사기(士氣)이다. 장비와 경제력에서 우월하였으되, 내분(內紛)과 사기저하로 패배와 붕괴를 면하지 못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한·미 동맹의 균열과 함께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중심(中心)에 金正日정권의 성격과 의도를 둘러싼 내부분열(內部分裂)이 자리잡고 있다. 이 내분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위기상황을 정확히 알리고, 자유체제의 중요성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계도하며 올바른 정책대안을 강구할 수 있는 양심적 주도세력이 하루빨리 형성되는 일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洪官憙(통일연구원 평화안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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