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딸' 신숙자 씨, 그리고 두 딸 혜원이 규원이의 뒷 이야기는 그간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에 의해 밝혀졌던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1992년도, 그리고 두 번째 증언은 최근이었습니다.
이들의 생존이 확인된 것은 2003년 9월까지라고 하네요. 1992년에는 탈북수기 및 기자로 잘 알려져 있는 강철환 씨, 그리고 안혁 씨로부터의 증언이었습니다.
<신 아주머니는 수용소의 첫날밤부터 목 놓아 울었다. 어린 딸들과 이곳에서 짐승같은 생활을 하다가 죽게 되다니… (중략)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온종일 작업을 하느라 녹초가 된 사람들은 신 아주머니의 구슬픈 하소연과 울음소리에 신경 쓸 처지가 못 됐다. … (중략) 이튿날 새벽녘 간밤의 울음소리와 다른 여자 아이들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에 놀라 눈을 떴다. 방문을 열어젖히자 이불보를 말아 만든 끈에 신 아주머니의 목이 매달려 있었다. … (중략) 그들은 지난 4일 독일 주재 우리 대사관을 통해 귀순한 박사 오길남씨 부인 신숙자씨와 두 딸 혜원, 규원이었다. … (중략) 그러나 이날의 자살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 후에도 그녀는 몇차례 더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 (중략) 
신 아주머니가 수용소에 들어온 지 석 달째쯤이었다. 새벽녘에 '불이야'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 (중략) 판자문을 열자 방안은 연기와 불길로 가득 차 있었고 신 아주머니가 두 딸을 겨드랑이에 꼭 낀 채 머리카락과 얼굴, 손발이 불에 그을려 실신해 있었다. 신 아주머니를 밖으로 끌어냈다. 그녀는 발버둥 치면서 울부짖었다. '죽는 것이 행복한데 왜 말리느냐!' 그날 이후 신 아주머니는 실성한 듯 웃으며 말하고는 했다. '여기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곳이니 할 수 없이 살아가야지. … (중략) >
다음 등장한 증언은 최근인 2011년 10월에 있었던 한 세미나에서 나왔습니다.
'혜원·규원은 허리까지 눈이 온 상황에서 나무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다른 동료가 교대로 혜원·규원 집에 나무를 해다줬다.' 김기철(가명, 1991년 요덕수용소 수감)
'수용소 내에서 마주친 신숙자 모녀는 절대 하늘을 올려보지 않았다. 땅만 바라보고 걸었다.' 김수철(가명, 1992년 요덕수용소 수감)
증언자로 나선 김기철 씨는 '나는 94년도 요덕정치범 수용소를 나왔다.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보위지도원과 친분이 생겼다, 정치범수용소를 나온 후 그 보위지도원을 통해 신숙자 모녀의 생존을 확인했다. 2003년 9월까지 신숙자 모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합니다. 기철 씨가 본 혜원, 규원은 9~10세 정도 였으며, 신숙자씨의 상태는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매우 안좋았다네요. 신숙자 씨 집은 '독일집'이라고 불렸는데, 이 집에 동료와 교대로 땔감을 전해주면서 친해졌답니다. 신숙자 씨에게 '우리들은 윤이상에게 속아 들어왔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증언자인 김수철 씨는 '내가 만났던 사람이 신숙자 씨라는 것은 한국에 들어와서 알았다'면서 '그 '독일집'에는 전축이 있어서 특이했다. 수용소 내에 전축이 있던 집은 그 곳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고 합니다.  수철 씨는 '나와 친하던 여자가 신숙자 씨와 친해 그를 접할 수 있었고 식사할 기회도 있었다'면서 '그들은 대인기피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혜원이가 좀 말을 했는데, 그 아이는 '아버지 때문에 여기 있다. 아버지가 들어오면 여기를 나갈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고 증언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부터만 해도 좀 더 있으면 10여 년이 다 되어 갑니다.
꼭 살아있기를, 그래서 이 가족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이 사진은 신숙자 씨와 두 딸이 요덕수용소에 수감중인 사진이라고 합니다. 음악가 윤이상 씨가 오길남 씨에게 전해준 사진이라고 하네요.
 
 
구출을 위한 온라인 서명은 요기입니다!! ^^
http://www.sdjs.or.kr/contact_petition.php
 
위 기사의 출처는 <위키트리> 입니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49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