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정부 8년간 백악관 안보 보좌관과 국무 장관으로서 北核 문제 등 한반도 사태를 다뤘던 콘돌리사 라이스씨의 최근 회고록 '최고의 명예'(No Higher Honor. 미국 크라운 출판사)를 읽었다. 유명한 러시아 전문학자인 라이스씨는 아버지 부시 정부 시절에도 국가안보위원회(NSC)에서 일한 적이 있고, 스탠포드 대학교수로 돌아가 독일 통일 과정을 다룬 '독일은 통일되고, 유럽은 바뀌었다'는 名著(필립 젤리코와 共著)를 남겼다. 학자 출신 관료가 쓴 책답게 내용은 치밀하고 일화가 많으며 날카롭다. 8년간 만난 여러 나라 지도자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그는 金大中, 盧武鉉 두 대통령을 상대하였는데, 好評(호평)이 아니다.
라이스는 김대중 대통령을 '부드러운 매너를 가진 老정치가'라고 표현하면서,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이상주의자(idealist)'라고 평했다. '이상주의자'라는 표현을 정치인에게 하는 경우, 찬사라기보단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란 뜻이 될 수도 있다.
2001년 3월7일 김대중 대통령은 워싱턴에 가서 취임한 지 두 週가 지난 부시 대통령과 처음 회담하게 된다.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미리 관계자 회의를 통하여 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입장을 정리한다. 햇볕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는 않겠지만 미국은 북한에 대하여 다른 접근법을 택한다는 방침을 정하여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다음날 새벽 5시 未婚인 라이스 장관이 임시거주하던 아파트로 전화가 걸려왔다. 부시 대통령이었다.
"워싱턴 포스터 봤어요?"
"대통령 각하, 아직 못 봤습니다."
"바깥에 나가서 신문을 갖고 들어오세요."
배달된 신문을 갖고 들어왔다.
"20 페이지를 펼치세요."
부시의 목소리는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포스트엔 콜린 파월 국무장관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콜린 장관은 기자에게 '미국은 한국측에 클린턴 정부의 對北접근 노선을 따를 것이라고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어 있었다.
"내가 처리할까요, 귀관이 처리하겠어요?"
"제가 하겠습니다. 대통령 각하."
라이스는 즉시 콜린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문을 보십시오."
콜린은 문제를 곧 알아차렸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과장하였다면서 자신이 수습하겠다고 했다.
라이스는 김대중-부시 회담에 대하여 이런 평을 하였다.
<회담 분위기는 정중하였으나, 북한을 다루는 방향에 대하여는 저 세상 만큼 다르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북한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인상을 주었다. 우리는 (클린턴 정부가 북한과 합의한)제네바 협약은 북한의 핵개발에 대하여는 아무 효과가 없고, 남한이 북한정권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믿었다.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의 暴政에 화가 나 있었는데, 왜 한국 정부는 이런 데 반응이 없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대중 訪美는 미국과 아시아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 균열하는 식으로 끝났다>
김대중-부시 회담 秘話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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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08, 22: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