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라이스의 盧武鉉(노무현) 혹평

회고록에서, 변덕스러운 성격(erratic nature), 예측불능의 행태(unpredictable behavior), 괴상한(bizarre) 운운.
콘돌리사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엔 미국이 중국을 압박, 6자회담으로 끌어들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2003년 3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6자 회담을 중국에 제의하였을 때 江澤民(강택민) 주석은 거절하였다. 화가 난 부시 대통령이 전화를 걸었다. 江 주석이 과거 여러 번 말하였던 대로 미국이 북한에 보다 신축성 있는 접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자 부시는 말을 끊고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나는 강경파로부터 군사력을 사용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통화 직후 중국은 6자회담에 동의하였다. 6자회담은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하였다. 2006년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유엔 안보리가 對北제재안을 통과시킨 직후 라이스 국무장관은 韓中日을 방문한다.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라이스는 盧武鉉 대통령에 대하여 酷評(혹평)을 하였다. 필자는, 최고위 외교관이 동맹국의 국가원수에 대하여 이런 표현을 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그는 盧 대통령을 '(생각을)읽기 힘든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때로는 反美성향을 보여주는 말들을 하곤 하였다'는 것이다. 한 예로서 '그 전 訪韓 때 노 대통령은 나에게 강의를 하였는데, 남한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동맹국인 미국과 敵(북한)의 동맹국인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먼저 韓美동맹을 해체하고 중립을 선언해야 한다. 말도 되지 않는 균형자론 강의를 들어야 했던 학자 출신 라이스의 울분이 회고록에서 묻어나온다.

그는 <다음 해엔 그의 변덕스러운 성격(erratic nature)을 집약한 사건이 있었다>고 썼다. 미국인이 상대방에게 'erratic nature'란 표현을 한다면 주먹다짐이 일어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9월 호주 시드니 APEC 정상회담에 참석, 부시와 회담하는 자리에서 '기자들 앞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美北관계를 정상화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하였다는 것이다. 2005년 9월19일의 6자회담 합의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다. 기자회견에서 부시는 충실하게 그 말을 되풀이하였다.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질문하였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모르겠는데, 부시 대통령께선 지금 한국전쟁 종전 선언을 언급하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시 대통령, 그렇게 말하였습니까?"

부시 대통령은 盧 대통령의 참견에 다소 놀랐지만 앞의 설명을 반복하였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와 핵개발 계획을 포기해야만 미국은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습니다."

盧 대통령이 또 요구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이야기를 듣고싶어합니다."

라이스는 '모두가 당혹스러워하였다'고 적었다. 충격을 받은 통역자가 통역을 멈추고 있으니, 노 대통령은 그녀를 보고 계속하라고 밀어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좀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더 이상 분명하게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한국전쟁을 끝낼 것을 학수고대합니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그의 핵무기를 없애야만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한국측 통역이 끝나자마자 부시는 어색한 분위기를 끝내기 위해서인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생큐, 서!"라고 말하면서 노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노 대통령은 웃으면서 대통령에게 감사하였다. 라이스는 '그는 그 순간이 얼마나 괴상하였는지(bizarre) 모르는 듯하였다'고 썼다. 라이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의 예측불능의 행태(unpredictable behavior)를 알고 난 이후엔 솔직히 말해서 한국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게 되었다>

그는 국무장관으로서 처음 2년간은 潘基文 외무장관을 통하여 盧 대통령을 '통역하였다'(interpret)고 썼다. 노 대통령의 언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 潘 장관이 해설을 해주었다는 뜻인 것 같다. 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옮긴 뒤엔 송민순 장관을 상대하였는데, '그는 능력이 있고, 폭 넓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노 대통령의 비정통적인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시드니 정상회담은 노무현-김정일 회담(10월4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그때 노무현 정권은 한국전쟁 종전선언이란 이벤트를 만들려고 애썼다. 그해 12월 大選에 이명박 후보를 꺾기 위한 카드였다는 의심도 샀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호의적 논평을 끌어내려고 무리를 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은 그해 10월4일 평양에 가서 김정일과 10.4 선언에 합의하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미국은 '검증 가능한 핵포기' 이후에만 終戰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노무현 정권은 그 조건에 대한 언급 없이, 즉 핵포기와 상관 없이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오해를 줄 만한 합의를 해준 것이다. 미국이 기존 입장을 견지, 종전선언 구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퇴임한 버시바우 대사는 2008년 12월5일 워싱턴의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2005년 11월 경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부시 대통령을 상대로 한 시간 넘게 논쟁을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은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의 북한계좌에 대한 미국의 동결조치에 대하여 크게 우려하여 부시 대통령과 심한 논쟁을 벌였는데, 역대 한미 정상회담 중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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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가 취임식 날 李 대통령에게 감동한 이유
"그들은 우리의 형제입니다"라는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하였다는 라이스는 그 몇 년 전 한 한국 관리가 보여준 반응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고 썼다. 이 관리는 통일이 왔을 때 '머리를 상한 난쟁이들' 을 포용해야 한다고 비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趙甲濟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자신의 회고록 '최고의 명예'에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혹독하게 비판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李明博 대통령을 호평했다. 2008년 2월말 李 대통령 취임식에 한국계 미국인 하인스 워드(미식 축구선수)와 함께 참석한 라이스 장관은 대통령을 잠시 만났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李 대통령은 북한동포를 동정하는 발언을 열정적으로 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입니다"라는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하였다는 라이스는 그 몇 년 전 한 한국 관리가 보여준 반응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고 썼다. 이 관리는 통일이 왔을 때 '두뇌가 파괴된 난쟁이들' 을 포용해야 한다고 비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라이스는, 美 의회에선 정부가 북한인권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하였으나 '한국에 협력자가 없는 상태에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썼다. 예컨대 노무현 정권은 對北방송의 능력을 향상시키자는 건의도 거부하였다. 李 대통령이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에 큰 관심을 가진 것을 보고, 라이스 장관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우리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날 밤 라이스 장관은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李 대통령은 '아시아의 자유'를 주제로 한 각하의 정책 수행에 있어서 좋은 협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보고하였다. 라이스는 '두 사람이 함께 일할 시간이 짧다는 게 안타까웠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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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지난 10월 초 李明博 대통령의 國賓(국빈)訪美 관련 기사에서 李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사이엔 '뭔가 신비하고 강력한 작용'(something mysterious and powerful at play)이 있는 것 같다면서 李 대통령의 지도력을 극찬하였다. 이 신문은 '李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 할 만한 실적을 남겼다'고 했다. 정부 부채도 적고, 사회도 개혁성향이 강하여 이는 오바마가 말하는 미래 전략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성공사례를 자주 인용한다. 그는, 한국인의 90%가 고속인터넷망을 사용하는 데 대하여 미국은 65%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大卒者 비율도 미국보다 높고, 미국에선 財政상태가 나쁜 지역에서 교사들을 내보내고 있는 데 한국에서는 학부모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교사들을 더 많이 채용하고 있다고 소개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李 대통령의 교육관을 거의 모든 연설에서 인용하는데 지난 피처버그 연설 때도 미국이 본받아야 할 모델로서 열심히 일하는 한국을 들었다.

이 신문은, 李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신뢰관계를 형성한 세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 독일의 메르켈 수상과 터키의 에르도간 수상이 다른 두 사람이다. 오바마, 李明博 사람은 2009년 11월 서울에서 오찬을 같이 했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이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참모들은 말한다.

이때 두 사람은 학부모와 교사의 역할 등 교육에 대하여 오래 이야기했다고 한다. "국가 지도자 수준의 회담에서 공통된 화제를 두고, 이 정도로 인간적이고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란 쉽지 않다"고 배석하였던 국가안보회의 상담역 다니엘 R. 러셀이 평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李明博 대통령의 한국을 세계 열강의 앞줄로 밀어올리려는 노력을 존경할 뿐 아니라 말썽 많은 북한에 대한 접근방식도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李 대통령은 前任者보다도 북한에 대하여 엄한 태도를 취하는 한편,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응하면서 군사적 조치는 자제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李 대통령의 對北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나 클린턴처럼 인간적 親和力이 약한 인물로 평가되는데 李明博 대통령에 대하여선 특별한 好感을 표시하는 게 신기하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회의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이었던 빅터 차는 "오바마가 외국 지도자와 대할 때는 매우 사무적인데, 李 대통령과는 인간적 차원에서 交感한다"고 평하였다."이명박은 이 지역의 가장 박력이 있는 지도자이다"라고 부시 대통령 시절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 마이클 그린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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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시리아-북한 합작 핵시설 폭격 秘話


그 다음날 노무현은 부시에게 김정일을 향하여 終戰선언을 약속해달라고 졸랐다.
趙甲濟

2006년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을 한 다음 날 부시 대통령은 엄중한 경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나 핵물질을 다른 국가나 단체에 移轉(이전)한다면 미국에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 그 결과에 대하여 전면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 여섯 달 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책임자인 메이어 다간 부장이 딕 체니 부통령을 방문, 사진 자료들을 책상 위에 펴놓고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시리아가 사막의 와디(乾川)에 짓고 있는 건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간은, 알키바라는 地名(지명)을 가진 곳에서 건설되고 있는 시설은 북한의 영변에 있는 흑연감속로와 꼭 같은 원자로로서 핵무기용이라고 주장하였다. 지난 35년간 이런 원자로를 만든 곳은 북한뿐이므로 북한이 지어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딕 체니는 최근 펴낸 회고록 ‘나의 시대’(In My Time. 스레시홀드 이디션즈 출판사)에서 북한-시리아의 비밀 핵 개발 계획은 1997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썼다. 미국 정보기관도 북한의 관련 인사들이 자주 시리아를 방문하는 것을 포착하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는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
체니 부통령은 모사드 부장의 설명을 듣고 확신을 가졌다. 다간 부장은 한 북한인의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는 영변의 핵연료 제조 책임자인데, 시리아 원자력 위원회 위원장 옆에 서 있었다. 두 번째 사진에서 이 북한인은 북경에서 열리고 있던 6자회담에 북한 측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측의 설명이 있은 후 부시 행정부의 안보 라인에선 수개월간 논란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이 이 시설을 폭격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체니 부통령은 찬성하였다. 그는 시리아의 핵시설을 미국이 폭격하면 핵개발을 진행중인 북한과 이란에 미국의 의지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되면 두 나라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압박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보았다. 반대파들은 만약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군사적 공격을 하게 되면 시리아는 이라크 주둔 미군을 공격하는 등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반론하였다.

2007년 6월19일 이스라엘 수상 올메르트는 워싱턴을 방문, 부시 대통령과 회담한 뒤 체니 부통령과 따로 만났다. 그는 만약 미국이 공격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할 것이라고 했다. 6월 말 고위정책회의에서 체니는 다시 한 번 미국이 이 핵시설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부시 대통령이 “부통령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편을 들지 않았다. 부시는 이스라엘 정부에 ‘우리와 함께 외교적 방법을 쓰자’고 제의할 것을 결심하였다. 부시는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그렇게 하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나오겠느냐”고 물었다. 라이스는 “올메르트 수상이 이 문제를 유엔에 갖고 가서 시설을 폐쇄하도록 국제적 압력을 넣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고 생각하는 듯하였다. 체니는 부시에게 “이스라엘이 군사적 공격을 할 것이다”고 말해주었다. 7월 중순 부시는 미국의 방침을 올메르트에게 통보하였다. 올메르트는 “그런 방법은 이스라엘엔 맞지 않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운명을 유엔이나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손에 맡겨놓을 순 없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원자로에 핵연료가 장전되기 전에 때려야 합니다.”

2007년 9월6일 밤 이스라엘의 F-15 전폭기 편대가 시리아로 날아가 문제의 핵시설을 폭격하여 완벽하게 파괴하였다. 이스라엘은 폭격 사실을 비밀에 붙이자고 미국에 제의하였다. 이게 알려지면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이 보복작전에 나설 우려가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침묵하니 시리아와 북한도 얻어맞고 가만히 있는 쪽을 택하였다. 시리아는 건물터를 흙으로 덮고 철제 구조물을 지어 은폐하였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기술과 시설을 테러지원국가인 시리아에 팔아넘김으로써 부시 대통령이 설정한 금지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나 북한에 대한 별도의 응징을 하지 않았다. 체니는 회고록에서 이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여러 번 강조하였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에 의하여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기름을 얻고, 발전용 경수로도 신포에 건설중인 그 순간에 농축우라늄 방식의 원자탄 개발을 시작하고 시리아에 핵무기용 원자로를 지어주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을 향하여 한국전 終戰(종전)선언 약속을 해달라고 조르던 2007년 9월7일은 이스라엘 공군기가 시리아 핵시설을 폭격한 다음 날이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미국 CIA는 한국의 국정원에도 시리아에서 북한이 원자로를 짓고 있다는 정보를 알렸다. 그럼에도 盧 대통령은 부시에게 김정일을 향하여 추파를 던져달라고 부탁한 셈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라이스 국무장관이 최근 회고록에서 노무현을 ‘변덕스러운 성격’ ‘예측불능의 행태’라고 묘사한 것이리라.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고한 2006년 8월19일자 電文이 위키리크스에 의하여 공개되었다. 이 문서에 따르면 盧 전 대통령은 그해 8월13일 자신에게 우호적인 몇 개 언론사 간부(editor)들과의 만찬 회동에서, "미국은 북한을 악랄한 존재로 여겨 문명의 규정(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을 강요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정성의 문제"라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북한은 인도의 상황과 비슷한데 인도는 核 보유가 용인되고 북한은 왜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盧 대통령은 또 "한국의 국방력 강화는 북한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적 태세를 갖추는 것"이란 견해도 피력했다고 이 電文은 보고하였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노무현씨가 대한민국의 대통령 역할에 충실하였는지 김정일의 심부름꾼 역할에 더 충실하였는지 의심할 권리가 있겠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들과 만나니 긴장이 풀어져 솔직하게 심경을 밝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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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무시하고 김정일 상대한 부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親北정책을 쓰는 바람에 부시 정부로선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趙甲濟

작년에 나온 부시 전 대통령의 회고록 '결정점들'(Decision Points)을 읽어보면 그가 김정일을 정말 미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내가 재임시절 읽은 가장 책들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책'으로 북한 강제수용소 출신 탈북자 姜哲煥(강철환)씨의 手記 '평양의 수족관'을 들었다. <강씨의 이야기를 읽고 많은 생명들을 파괴한 폭군에 대한 거부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쳐받혔다>는 것이다. 그는 또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보여준 한반도의 야간 위성사진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남한은 불빛이 훤한데, 북한은 암흑뿐인 사진이었다. 그는 북한주민들을 굶겨서 난쟁이로 만든 자가 비싼 코냑을 마시고 벤츠를 좋아하고 외국영화를 즐기는 호화판 생활을 한다고 분노하였다. 부시는 김정일의 행태를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일부러 음식을 쏟아버리던 두 자녀의 어린 시절에 비교하였다

콘도리자 라이스의 회고록 '최고의 명예'를 읽어보면 미국의 對北정책 변화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對北전략이 2005년부터 '대화모드'로 바뀐다. 부시는 북한정권을 '악의 축'이라 부르고, 워싱턴 포스트 기자에게는 "나는 김정일 이름만 들어도 오장육부가 되집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03년 초엔 江澤民 중국 주석에게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하여 필요하면 군사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압박하였다. 라이스도 회고록에서 북한정권을 '흡혈귀'에 비유하였다. 딕 체니도 강경파였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미군이 2003년 후반기부터 이라트 內戰이란 수렁에 빠지면서 北核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여력이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맨첨 궤도 수정을 시사한 이도 부시였다. 고위 전략회의에서 부시는 라이스 장관에게 물었다.
"우리가 그의 생존을 허용한다면 김정일은 핵무기를 포기할까?"
라이스는 "독재자는 시험해보지 않고선 알 수가 없다"고 답하였다. 다른 참모가 그렇게 되면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라는 목표를 포기하는 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부시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아니다. 수단을 달리한 레짐 체인지이다. 개방하면 그는 절대로 생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부시 정부는, 북한의 핵 포기와 한국전 終戰선언 및 美北 수교를 교환하는 협상을 타진하기로 한다. 2006년 4월 胡錦濤(호금도) 중국 주석이 워싱턴을 방문하였을 때 부시는 김정일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이렇게 하여 6자 회담과는 별도로 美北 직접 대화가 시작된다. 주한미국 대사를 지낸 크리스 힐이 미국측 대표로 등장한다. 2년 여 계속된 美北 직접 대화는 그러나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이 기간에 북한정권은 미사일 발사, 핵실험을 했지만, 미국으로부터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동결된 북한자금의 해제,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양보를 받아낸다. 부시 행정부는 군사적 해결책을 포기하는 순간 중국의 협조도 받지 못하고 북한에 끌려다니다가 임기를 마치고 만 것이다. 외교 협상이 장기화되면 원래 목표(이 경우는 북핵폐기 및 정권 교체)를 상실하고 타협 자체가 목표로 되기 쉽다는 것이 새삼 입증된 셈이다.

라이스 회고록을 읽으면 北核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중국만 고려하였지 한국과 일본 정부의 의견은 거의 무시하였다는 느낌을 받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親北정책을 쓰는 바람에 부시 정부로선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무시하고 김정일만 상대한 느낌이다. 북한 핵개발의 피해당사자인 한국이 미국보다 더 강경하게 나가야 미국도 편해질 터인데, 사사건건 북한정권을 싸고도니 6자회담에서 스스로 영향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때보다는 國力이 턱도 없이 약하였던 시절 李承晩 대통령은 공산세력과 미국 정부를 동시에 압박하는 목숨을 건 외교로써 한국의 생명줄인 韓美상호방위조약을 만들어냈다. 김일성을 애써 무시하고 스탈린과 상대하려 하였던 이 巨人과 김정일 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미국 지도부의 경멸을 산 김대중, 노무현씨를 비교하면 國格이 반드시 國力과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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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체니의 고백, '부시는 北에 이렇게 당했다'


趙甲濟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의 회고록 ‘나의 시대’ 15장은 제목이 ‘좌절(Setback)'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정권을 ‘惡의 軸’으로 규정, ‘레짐 체인지'(정권교체)까지 추진하다가 임기 말엔 핵시설 검증 약속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北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해줌으로써 ‘부시 독트린’을 스스로 부정해버린 것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체니는 이 굴욕적 사건의 책임을 콘돌리자 라이스와 대통령에게 돌렸다.

2008년 6월26일(미국 시간) 북한은 6자 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검증용 핵시설 목록을 전달하였는데, 우라늄 농축과 핵확산에 대한 기록이 빠졌고, 플루토늄 재처리 활동에 대한 기록도 충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즉각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할 뜻을 의회에 통보하였다. 체니는 검증절차에 대한 합의가 부실하다고 따졌고, 라이스 장관은 6자 회담 미국측 대표인 크리스 힐이 북한측과 구두로 우라늄 농축에 대한 별도의 검증 방식에 대하여 합의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체니가 더 추궁하니 ‘합의’가 아니라 힐 대사의 비망록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라이스는 의문을 제기한 부시 대통령에게 “외교에선 반드시 문서합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고 변명하였다. 일본 정부도 美北(미북)이 합의한 검증방식에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2008년 10월1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주기로 결정하였고 다음 날 라이스는 그 문서에 서명하였다. 체니는 회고록에서 <참담한 순간이었다>고 썼다.
<이것은 부시 독트린을 부정하는 것이고, 클린턴 시절의 실패한 접근방법을 답습하는 꼴이었다>
북한정권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자 말자 “검증은 영변의 플루토늄 원자로에 한한다”고 선언하였다. 12월11일엔 어떤 ‘구두 약속’도 무시하겠다고 했다. ‘구두 약속’을 믿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빼준 부시 행정부는 임기를 對北(대북)굴욕으로 마감하였다.
그 뒤 북한은 2009년 5월에 두 번째 핵실험을 하였고, 작년 10월엔 미국 전문가에게 영변 단지 내 농축우라늄 시설을 보여주었다. 2011년 2월 미국의 국가안보부 짐 클레퍼 국장은 상원에서 증언하기를, “북한은 영변에 농축우라늄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바 시설의 규모 등으로 미뤄 상당기간에 걸쳐서 농축을 시도하였다”고 했다. 그는 또 “농축시설이 다른 곳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부시 행정부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對北강경론자였던 체니는 부시의 실패 교훈을 정리하였다. 한국의 對北정책을 맡은 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첫째, 정책의 목표를 잃어선 안 된다. 국무부는 교섭과정에서 北核(북핵)폐기가 아니라 북한과 합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말았다.
둘째, 강한 입장에서 협상을 해야 한다. 원칙을 지켜야 하고 필요하다면 회담을 깨고, 군사력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셋째, 금지선을 지켜야 한다. 북한이 시리아에 영변급의 핵무기용 원자로를 수출한 사실을 알고도 응징하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넷째, 전략적으로 思考(사고)해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였을 때와 그들이 시리아에 원자로를 지어주고 있음을 알았을 때 우리는 중국을 앞세워 강한 압박을 넣었어야 했는데, 기회를 놓쳤다.
다섯째, 미국은 동맹국과 함께 해야 하는데 일본과 한국을 소홀히 하였다.
여섯째,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북한은 제네바 非核化(비핵화) 협정을 맺은 뒤에도 우라늄 농축과 對시리아 원자로 수출을 했다. 이런 수법을 우리한테도 적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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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우라늄 농축은 미국의 조작이라 했던 임동원!


이런 사람이 사회적으로 매장되지 않고 활동하는 국가는 彼我식별 기능과 응징력이 마비된 나라일 것이다.
趙甲濟



북한당국은 2009년 9월 핵폭탄 제조를 위한 우라늄 농축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 플루토늄을 무기용으로 재처리중이라고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통고하였다. 작년엔 미국 전문가 팀을 초청, 영변의 농축시설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시절의 對北정책 책임자였던 임동원(통일부장관, 국정원장 역임)씨는 2년 전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주장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북을 '악의 축'이요 '선제핵공격'의 대상이라며 위협하고, 핵의혹을 조작해 제네바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미국은 국제기구까지 동원해 북측을 압박하고, 쌍무회담을 기피하며 북한이 핵문제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워싱턴의 네오콘들의 방해책동에 맞서 우리 민족은 힘을 합쳐 지뢰를 제거하고 '평화회랑' 건설을 위해 매진했던 일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북한정권의 선전물이든지 조총련이나 親北좌익 인사일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우선 용어가 북한식이다. '네오콘들의 방해책동' '북침의 공포증' '핵의혹 조작' 등등의 용어는 대한민국의 건전한 국민이면 절대로 쓰지 않는 낱말이다.

이 글의 필자는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을 지내고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에도 세종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林東源씨이다. 이 글은 '피스메이커'라는 그의 회고록에 실려 있다. 북한정권의 위협으로부터 조국의 안전을 지켜내는 일의 사령탑격인 국정원장 자리에 북한식 용어를 구사하는 인물을 앉힌 것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었다. 세종재단은 日海재단의 후신이다. 日海재단은 김정일이 지령한 아웅산 테러로 죽은 17명의 엘리트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성금을 모아 만든 재단이다. 그 재단 이사회가, 사사건건 김정일을 칭찬하고 그의 정책을 옹호하며 미국을 공격하는 林씨를 이사장으로 뽑은 것은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다.

부시가 북한정권을 '악의 축'으로 부른 것은 사실이지만 '선제핵공격'의 대상으로 삼아 위협했다는 주장은 왜곡이다. 미국의 전략개념속에는 먼저 공격하지 않은 집단을 향해서 핵무기로 선제공격한다는 개념이 없다. 부시 대통령이 그런 엄청난 발언을 했더라면 김대중, 노무현, 김정일 세력이 지금까지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을 것인가? '김정일이 핵실험을 한 것은 미국이 못 살게 굴었기 때문이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김대중씨가 '핵선제공격 위협'을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다. 林씨는 이 엄청난 주장의 근거를 대야 할 것이다.

미국이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는 상황은 특별한 경우이다. 敵이 핵, 화생방 무기로 미국이나 동맹국을 공격한다는 것이 확실해진 순간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선제공격을 할 수 있을 뿐이다. 林씨는 핵무장도 하지 않은 무고한 북한을 미국 대통령이 선제공격하겠다고 단언한 것처럼 왜곡했다.

미국이 핵의혹을 조작했다는 주장은 사실 조작이고 악질적인 모함이다. 파키스탄 무샤라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파키스탄의 핵기술자 칸 박사가 북한에 우라늄 농축기술과 장비를 넘겨주었다고 시인했다. 북한의 우라늄농축에 의한 핵무기 개발 계획이 발각됨으로써 제네바 협정이 파기된 것이지 미국이 核의혹을 조작하여 일방적으로 폐기했다는 주장은 엄청난 거짓 선동이다. 더구나 임동원씨가 그렇게 비호하여준 그 북한당국이 2년 전 스스로 '우리는 우라늄 농축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고 자백하였다. 임동원씨가 인간으로서, 公職者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회고록을 회수하였어야 했다.

그의 회고록중 <이런 워싱턴의 네오콘들의 방해책동에 맞서 우리 민족은 힘을 합쳐 지뢰를 제거하고 '평화회랑' 건설을 위해 매진했던...>이란 대목의 의미는 김대중과 김정일 정권이 反美공조했다는 뜻이다.

林씨는 이를 '우리 민족은 힘을 합쳐'라고 표현했다. 700만 同族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김정일 정권이 민족반역자인가, '우리 민족'인가? 민족반역자와 손을 잡는 것은 민족공조인가 민족반역공조인가?

북한이 북침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한국과 미국이 북침할 전략과 국가의지가 있는가? 그런 전략과 의지도 없는데 누가 북침하겠다는 것인가? 군인 출신인 林씨가 잘 알 것이다. 황장엽 선생은 '김정일은 북침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김정일이 북침을 걱정한다는 말은 남한에서 만든 말이다'고 했었다.

국군이 단독으로 북침하는 것을 미국이 좌시할 리도 없다. 韓美동맹은 한국이 공격을 당할 때만 작동한다. 한국인들에게 北侵이란 말은 '6.25 북침설'을 연상시키는 禁忌語(금기어)이다. 이런 임동원이 원장일 때 국정원은 간첩 두목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로 수억 달러를 보내주는 송금책 역할을 하였다. 그래 놓고 국민들에겐 간첩 신고하라고 하였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사회적으로 매장되지 않고 활동하는 국가는 彼我식별 기능과 응징력이 마비된 나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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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스펠드와 한국 여기자의 愚問賢答(우문현답)
"왜 우리가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서 이라크에 한국의 젊은 남녀들을 파견, 죽고 다치도록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趙甲濟

도널드 럼스펠드 전 美 국방장관은 가장 젊은 나이에 국방장관이 된 기록(포드 대통령 시절)과 가장 늙은 나이에 국방장관이 된 기록(부시 2세 시절)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을 기획하고 지휘하였다.

그가 작년에 내어놓은 회고록 '아는 것과 모르는 것들'엔 한국과 관련하여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그는 국방장관 시절에 집무실 벽에 한반도의 밤을 찍은 인공위성 사진을 붙여놓았다. 휴전선 남쪽은 환하고 북쪽은 캄캄하다. 평양에서만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럼스펠드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군과 유엔군의 희생 덕분에 그런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고 지적하면서 2003년 訪韓 때 있었던 일을 소개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용산의 전쟁기념관을 방문, 헌화하였는데,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을 같이 한 딕 오키퍼의 이름을 戰死者 명단이 적힌 벽면에서 확인하였다고 한다. 오키퍼는 한국전선에 참전하였다가 1953년 7월27일 휴전 하루 전에 戰死하였다.

당시 한국 국회는 이라크 파병 문제로 토의를 벌이고 있었다.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건물 꼭대기 층에서 럼스펠드에게 다가온 한 젊은 한국 여기자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왜 우리가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서 이라크에 한국의 젊은 남녀들을 파견, 죽고 다치도록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이 자신의 감정을 건드렸다고 한다. 친구 오키퍼 생각도 났다. 그는 여기자에게 이렇게 反問하였다고 한다.

"50년 전 미국은 왜 지구 반 바퀴나 돌아서 이 나라에 그들의 젊은 남녀들을 보내야 했나요?"

<우리는 화려하고 높은 서울의 빌딩숲, 자유 한국인의 근면성과 기술을 보여주는 증거물을 내려다 보았다. 저 풍요는 다른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을 통하여 한국인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나는 생동하고, 자유롭고, 번영하는 도시가 보이는 窓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저게 바로 나의 答(답)입니다.">

이 여기자에겐 다행하게도 럼스펠드는 멍청한 질문을 한 이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다.


[ 2011-07-10, 2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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