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리자 라이스의 회고록 '최고의 명예'를 읽어보면 미국의 對北정책 변화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對北전략이 2005년부터 '대화모드'로 바뀐다. 부시는 북한정권을 '악의 축'이라 부르고, 워싱턴 포스트 기자에게는 "나는 김정일 이름만 들어도 오장육부가 되집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03년 초엔 江澤民 중국 주석에게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하여 필요하면 군사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압박하였다. 라이스도 회고록에서 북한정권을 '흡혈귀'에 비유하였다. 딕 체니도 강경파였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미군이 2003년 후반기부터 이라크 內戰이란 수렁에 빠지면서 北核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여력이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맨첨 궤도 수정을 시사한 이도 부시였다. 고위 전략회의에서 부시는 라이스 장관에게 물었다.
"우리가 그의 생존을 허용한다면 김정일은 핵무기를 포기할까?"
라이스는 "독재자는 시험해보지 않고선 알 수가 없다"고 답하였다. 다른 참모가 그렇게 되면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라는 목표를 포기하는 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부시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아니다. 수단을 달리한 레짐 체인지이다. 개방하면 그는 절대로 생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부시 정부는, 북한의 핵 포기와 한국전 終戰선언 및 美北 수교를 교환하는 협상을 타진하기로 한다. 2006년 4월 胡錦濤(호금도) 중국 주석이 워싱턴을 방문하였을 때 부시는 김정일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이렇게 하여 6자 회담과는 별도로 美北 직접 대화가 시작된다. 주한미국 대사를 지낸 크리스 힐이 미국측 대표로 등장한다. 2년 여 계속된 美北 직접 대화는 그러나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이 기간에 북한정권은 미사일 발사, 핵실험을 했지만, 미국으로부터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동결된 북한자금의 해제,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양보를 받아낸다. 부시 행정부는 군사적 해결책을 포기하는 순간 중국의 협조도 받지 못하고 북한에 끌려다니다가 임기를 마치고 만 것이다. 외교 협상이 장기화되면 원래 목표(이 경우는 북핵폐기 및 정권 교체)를 상실하고 타협 자체가 목표로 되기 쉽다는 것이 새삼 입증된 셈이다.
라이스 회고록을 읽으면 北核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중국만 고려하였지 한국과 일본 정부의 의견은 거의 무시하였다는 느낌을 받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親北정책을 쓰는 바람에 부시 정부로선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무시하고 김정일만 상대한 느낌이다. 북한 핵개발의 피해당사자인 한국이 미국보다 더 강경하게 나가야 미국도 편해질 터인데, 사사건건 북한정권을 싸고도니 6자회담에서 스스로 영향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때보다는 國力이 턱도 없이 약하였던 시절 李承晩 대통령은 공산세력과 미국 정부를 동시에 압박하는 목숨을 건 외교로써 한국의 생명줄인 韓美상호방위조약을 만들어냈다. 김일성을 애써 무시하고 스탈린과 상대하려 하였던 이 巨人과 김정일 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미국 지도부의 경멸을 산 김대중, 노무현씨를 비교하면 國格이 반드시 國力과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김대중, 노무현 무시하고 김정일 상대한 부시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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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09, 2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