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벌금형 선고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 金洪信 의원:
『한 야당의원의 비판에 대하여 대통령이 직위를 던지고 개인 자격으로
모욕죄를 걸어 고소한 전대 미문의 사건』
●변호인의 변론:『납치범도, 고문 수사관도, 북한지도자도 용서하는
대통령이 유독 金洪信 의원의 처벌을 원한다니…』
●언론자유의 한계를 시험한 역사적 재판의 판결문:
『정치인은 자기 인격의 부정적인 측면의 노출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소인=金大中(김대중), 직업 대통령, 피고소인=金洪信(김홍신), 직업 국회의원>
2년 전, 金洪信 한나라당 의원의 「공업용 미싱」 발언사건은 시작부터 한 가지 미스터리가 발생했다. 金大中 대통령이 개인위임장을 만들어서 서울지검에 접수시킨 것이었다. 그게 진짜일까. 목숨을 위협했던 납치범수사도 시키지 않는 대통령이었다.
고문수사관도 용서했다. 또 사형선고를 받았던 내란음모사건의 재심도 마다하는 관용의 대통령이었다. 그런 분이 한 국회의원이 선거 유세장에서 한 말 한마디로 남몰래 개인고소를 했다는 것은 의문이었다.
법정에서 두 번째 희극이 발생했다. 金洪信 의원의 「세상타령」 한 가락이었다. 최후진술용으로 만든 그의 타령 안에는 『아따, 호통이 벽력이고 닦달이 천둥이라도 눈 깜짝 안 무섭소. 내가 이래 봬도 천상천하 존엄이요, 조선팔도 상투 꼭대기요』라고 하면서 『권력이 귀신도 부린다 하여 걸쭉하게 농담 한마디 한 걸 가지고 도둑이 개 꾸짖듯 해서야 어찌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사설을 늘어놓았다. 검찰은 신성한 법정에서 타령으로 행패를 부리는 金洪信을 매우 혼내야 한다고 펄펄 뛰었다. 도대체 재판정 안이 어땠고 내막은 어땠을까.
『며칠간 입이 근질근질했다』고 응수했는데…
대통령이 독설과 농담의 대상이 될 때가 많았다. 1998년 4월경 미국 공화당의 버튼 의원은 클린턴 대통령을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욕했다. 클레이 상원의원은 「골빈 대통령」이라고 불러 파문을 일으켰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성관계에 관한 농담투성이다. 두 사람의 야한 나체사진까지 버젓이 나온다.
영국의 스탄 컬리모아라는 험구가는 『우리는 왕실가족을 잘게 토막내서 일본 관광객에게 팔아야 한다』라고 내뱉은 말이 그대로 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다. 全斗煥 대통령에 대해 「돌대가리」라는 욕도 많았다.
대통령들도 사람이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태연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괘씸하기도 할 것이다. 1998년 5월26일 始興(시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서 한나라당의 金洪信 의원이 한 공업용 미싱 발언의 정확한 표현은 이랬다.
『사람이 죽으면 염라대왕이 거짓말한 것만큼 바늘로 뜨는데, 金대통령은 거짓말을 하도 많이 하고 너무 많이 속여서 바늘로 한뜸 한뜸 뜰 시간이 없어서 공업용 미싱을 갖다가 드르륵드르륵 박아야 할 것이다. 말바꾸기의 천재성을 가진 사람, 거짓말의 인간문화재, 유별나게 사기치는 사람이 바로 金大中 대통령이다』
당시 나는 신문에서 그 내용을 보면서 유명한 소설가답지 않은 졸렬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순화되지 못한 그런 말은 아이에게 써도 실례다. 하물며 일국의 대통령에게 그런 표현을 사용하다니. 언론이 金洪信 의원을 몰아쳤다. 시민들이 진정서나 탄원서로 그의 처벌을 요구했다. 시민 한 사람이 미싱을 사서 그의 사무실로 보냄으로써 여론은 극에 달했었다.
金洪信 의원의 발언에 관한 대응방식으로 여러 가지가 점쳐졌다. 정치적 발언에 정치적 舌戰(설전)으로 맞설 것인가, 아니면 법적 强攻(강공)으로 나아갈 것인가. 정치적으로 응수한다면 같은 수준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점잖고 세련된 자세를 보일 것인가.
그 무렵 金大中 대통령의 멋있는 조크가 발표됐다. 어떤 기자의 질문에 대해 金대통령은 『며칠간 입이 근질근질했다』로 응수했던 것이다. 역시 큰 인물이었다. 권세를 가지고 세력을 부리지 않기가 어렵다. 그러나 하기 어려운 일을 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참고 베풀기 어려운 일을 베푸는 것이 통 큰 태도요 정치였다.
그런 사이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김일수라는 당원이 대통령 개인의 고소위임장을 서울지검에 가져다 접수시킨 것이다. 金洪信 의원의 미싱 발언 이틀 후인 5월28일 작성된 이 위임장에는 개인 金大中이 金洪信을 고소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일체의 권한을 당 민원부장 김일수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이었다. 서류에는 한자로 「金大中」이라고 개인도장이 찍혀 있었다.
대통령이 한 국회의원의 발언을 가지고 은밀히 개인적으로 고소했다?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金大中 대통령의 명예는 어느 국회의원 한 사람의 유세장에서의 폭언으로 훼손될 그런 허약한 명예가 아니었다. 金洪信 의원에게 쇠고랑을 채우고 그의 의원직을 박탈한다면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인지 뻔한 일이기에.
『제가 잘못입니다』
비쩍 마르고 키가 작은 50代의 남자가 나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金洪信 의원이었다. 당찬 행동과는 달리 의외로 약해보이는 인상이었다. 머리에 하얗게 내린 서리와 몇 가닥의 골깊은 주름에서 그의 신산스런 삶이 막연히 느껴졌다. 변호사지만 먼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미싱 발언에 대한 내 의견을 말했다.
악의적인 왜곡
『제 생각에도 공업용 미싱 발언은 도가 지나친 것 같았습니다』
부정적 평가에 대한 의뢰인의 태도로 나는 사건을 맡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수가 많았다. 독선적인 인물이면 자기 잘난 것밖에 안 보인다. 그런 인물에게 타협과 화해는 없었다. 그런 때는 사건 수임을 거절하는 게 상책이다.
『제가 잘못입니다』
金의원은 의외로 겸손했다. 구차한 이유나 정치인 특유의 거들먹거림이 없었다. 자리도 변호사 책상 앞의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마치 조사를 받거나 인터뷰하는 사람처럼. 그의 옷깃에는 금배지가 보이지 않았다.
『정중하게 사과는 하셨습니까?』
『기자회견은 물론이고 非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사과는 다했습니다. 유세를 중단하고 자숙하는 태도를 보이고요』
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잔잔한 음성과 태도에서 진실이 묻어 나왔다.
잘못했다고 빌고 처벌받겠다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동정을 느낀다. 나도 그랬다.
『제가 꼭 金의원의 변호사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원로급 법조인과 기라성 같은 黨의 변호사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나 같은 인물은 감히 그 사이에 들어갈 존재가 되지 못했다.
『현재 국회의원으로 있지만 저의 근본은 소설가입니다. 법리나 정치논리와는 다른 시각의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글쓰는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글쟁이만이 저를 진짜 이해하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는 눈앞에 닥친 위험보다 먼 안목으로 문제를 보고 있었다.
『감옥에 갈 각오는 돼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국회의원자리도 욕심 없습니다』
그의 얼굴에 강한 결의가 내비쳤다. 변호사인 내가 항상 사건 초장에 매력을 느끼는 대상은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이었다. 나는 비장한 결의에 매력을 느꼈다. 무욕한 사람에게서 향기를 느꼈다. 그건 지위나 배움과 관련이 없는 타고난 천성 같았다. 申昌源(신창원)이 죽여달라고 했고 大盜 趙世衡(조세형)이 감옥 안에서 종신하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무료변호를 맡았다. 반면 재판을 앞두고 벌벌 떠는 대통령도 봤다. 검찰소환을 앞두고 고문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장군 출신의 중진 국회의원을 보기도 했다. 학력, 경력의 화려한 외양과 인격의 깊이는 비례하지 않았다.
변호사와 둘만이 있는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는 입장표명은 결코 쉽지 않은 태도였다.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님은 혹시 제가 대통령의 입을 미싱으로 박는다고 오해하시지 않습니까?』
金의원이 물었다. 사실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金의원이 계속했다.
『일부 정치인들이 악의적으로 왜곡시킨 겁니다』
나는 그의 말을 적기 위해 수첩을 열었다.
『제가 버릇이 있습니다. 잘못하면 「염라대왕이 바늘로 박는다」는 표현이죠. 사람에 따라 「벼락 맞아」나 「하나님한테 벌 받아」,「육시랄 놈」 같은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이 있듯이요. 저는 그중에 염라대왕 시리즈를 자주 사용했죠. 문제가 된 발언의 핵심은 金大中 대통령이 그동안 말을 많이 바꾸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짓말쟁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말 끝에 제가 염라대왕 시리즈를 무의식적으로 써버린 거예요. 대상이 대통령이라는 걸 간과한 거죠. 그냥 말꼬리를 물려버렸어요. 기회는 왔다 하고 내가 金대통령의 입을 박는다더라로 모략한 거예요』
그는 방송 중 코미디언 이경규씨에게 같은 표현을 사용했었다. 스튜디오에서 탤런트 최수종 등 참가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지금 두 달 동안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전화협박에 가족을 피난시키고 저는 친구 핸드폰을 빌려서 쓰고 있어요』
그는 퍽이나 지친 표정이었다.
『대통령 입장이라면 金의원을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내가 물었다.
『대통령이 저를 미워할 만합니다. 지난 총선 때도 야당 대변인이 되어 무자비할 정도로 공격했습니다. 심한 경우 대통령을 「뺑덕어미」나 「장물아비」로까지 몰아쳤습니다. 지난 大選 때도 텔레비전 유세에 나가 조목조목 金대통령의 거짓말을 따졌습니다. 저에 대해 가장 입빠른 공격수로 제거해야 할 3적이라느니 5적이라는 소리가 나고 동료의원들이 그러다가 다친다는 얘기를 수없이 했죠. 그러다 이번 사건이 터진 거죠』
『金大中 대통령만 그렇게 비판하셨나요?』
『아닙니다. 글쟁이 때부터 계속 정치권을 비판했어요. 朴正熙(박정희),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金大中, 金泳三(김영삼), 李壽成(이수성), 趙淳(조순) 같은 사람들 모두에 대해 그렇게 했어요. 크고 작은 마찰들이 있어 왔죠 』
그렇지만 金의원은 누구로부터도 직접 고소를 당한 적은 없었다.
『金대통령이 金의원을 고소하신 게 사실입니까?』
『단두대에 가더라도…』
내가 물었다. 金의원도 고개를 갸웃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진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金大中 대통령과는 다섯 번 만나 독대를 했습니다. 아침식사도 한 적이 있구요. 대통령께서 함께 정치를 하자고 권유하시기도 했어요. 미워는 하실지 몰라도 고소까지 하셨다는 건 믿기 어렵습니다. 언짢으면 저를 불러서 한번 혼내시면 될 일인데요』
그렇다면 일이 꼬이게 된 과정을 살펴봐야 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연설을 하게 되셨죠?』
『지방선거 때 유세위원이 되어서 선배인 제정구 의원 지역에 초청을 받아 갔어요. 메모만 가지고 가서 말한 정도죠』
상대당 보스에 대한 인신공격의 선거풍토가 결국 원인이었다.
『정말 金大中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미워하십니까?』
『애정을 가지면 비평이고 그게 없으면 비난입니다. 저는 대통령이 임기 후에도 마음놓고 지하철을 타는 행복한 대통령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직해야 합니다. 저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일관되게 비판해 왔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金대통령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평상심을 가지고 더 큰일에 매달리시길 기도하죠』
金의원은 안타까운 얼굴이었다. 진심을 몰라주는 데에 대한 아쉬움인 듯했다.
『저는 단두대에 가더라도 입은 살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비판에 대통령이라는 성역은 있을 수 없어요. 저는 가톨릭 신자인데도 가톨릭의 보수주의와 이기주의를 더 비판했습니다. 진정한 비판은 그 조직과 사회를 위한 거예요』
그가 미워하는 건 대통령 측근의 과잉충성자들인 것 같았다. 그가 이런 말도 했다.
『검사실에서 한 시간 동안 조서작성 중에 「총장님 전화입니다」라고 여직원이 몇 번을 소리치는 거예요. 검사가 수화기를 들고 「예, 알았습니다」라고 반복하더라구요. 선진국에서는 이것보다 더 신랄하고 끔찍한 경우도 처벌을 안 하는데 여권에서는 나를 꼭 죽이려는구나 생각했어요. 이미 각오했습니다. 구속된다면 오히려 집안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金洪信 의원은 나와 변호사 선임계약을 맺었다.
국가원수 모독죄, 法조문에 없다
기소가 됐다. 공소장에는 모르던 사실이 추가됐다. 金의원이 유세장에서 林昌烈(임창열) 경기도지사 부부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하고 명예를 훼손하고 비방했다는 내용이었다. 선거법 위반이었다. 공소장의 행간에는 법쟁이들만 볼 수 있는 저의가 스며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부분은 모욕죄였다.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려면 대통령이 진짜 거짓말쟁이인지를 법정에서 절차상 밝혀야 했다. 모욕죄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모욕죄의 경우 처벌이 미지수였다. 모욕의 경우 심한 刑이 선고된 적이 없다. 보통 기소도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원수 모독죄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런 법조문은 없었다. 朴대통령 시절 긴급조치로 발언을 못하게 한 것이 그 유래다. 이제 더 힘든 장애물은 선거법 위반이었다. 벌금 100만원만 선고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이었다.
공소장에서 피해자는 세 사람이었다. 金大中 대통령, 林昌烈 경기도지사, 그의 부인 朱惠蘭(주혜란)씨였다. 나는 먼저 林昌烈 경기도지사를 만나보았다. 여러 차례의 법률자문으로 잘 아는 사이였다. 林지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林지사는 곧바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면을 만들어 재판장에게 제출했다. 朱惠蘭씨 역시 자신의 사생활이 법정에 오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선거 때야 으레 그런 것 아니냐며 픽 웃고 말았다.
결국 경기도지사 부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사건에 휘말린 것이었다. 남은 사람은 金大中 대통령 혼자였다. 그렇다면 더더구나 대통령의 고소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안다면 고소를 했더라도 대통령은 당장 취소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재판은 시작됐다.
1999년 4월30일. 서울지방법원 311호 대법정. 정치인들의 단골 재판정이었다. 金洪信 의원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고 동시에 李基澤(이기택), 金潤煥(김윤환) 의원의 뇌물죄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었다. 정치부 기자들과 黨 관계자들이 방청석에서 긴장한 얼굴로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청석에는 응원 나온 孟亨奎(맹형규) 의원, 李佑宰(이우재) 의원 등 여러 의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鄭寅鳳(정인봉) 現 의원과 金映宣(김영선) 당시 의원이 당 소속으로 변호사로서 나왔다. 金洪信 의원은 방청석 맨 앞줄에서 조용히 대기 중이었다. 쥐색 정장에 자주색 넥타이를 맨 단정한 차림이었다. 젊은 기자들이 鄭寅鳳 의원과 피고인이 된 金洪信 의원 주위로 몰려들었다.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고소를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옅은 쑥색 재킷을 입은 30代의 기자가 물었다. 鄭寅鳳 의원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글쎄요. 고소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金대통령도 법정에 나오셔야 하지 않겠어요?』
그 말을 들은 기자들의 눈빛이 반짝했다.
『언제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하실 겁니까?』
기자들이 메모할 자세를 취하면서 물었다. 鄭寅鳳 의원이 미소로 얼버무렸다. 그때 법정 뒷문이 열리고 판사들이 나오는 게 보였다.
『정치적 독설을 정치의 場에서 해결치 못하고…』
『모두들 일어서 주시죠!』
정리가 외쳤다. 金大彙(김대휘) 재판장이 조심스럽게 올라와 재판장석에 앉았다. 짙은 눈썹에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피고인 金洪信 나오세요』
재판장이 차분한 어조로 호명했다. 金洪信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피고인석에 가서 섰다. 바야흐로 그가 대통령 모욕죄, 명예훼손죄,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 위반의 피고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본적이 어디죠?』
인정신문이 시작됐다.
『충남 논산읍 반월리 125입니다』
『주거는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07의 59입니다』
『직업은 국회의원이시죠?』
『그렇습니다』
이어 묵비권이 고지되고 검사의 기소 요지 낭독이 있었다. 이제 피고인의 총괄적인 간단한 의견진술이 있을 순간이었다.
『재판장님 잠깐만!』
鄭寅鳳 의원이 변호사석에서 일어났다.
『뭡니까?』
재판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재판은 정치인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나, 발언수위를 심리하는 예민한 사건입니다. 중요한 부분들을 녹음해서 그 내용들을 공판조서에 올릴 것을 요청합니다』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면 다 녹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재판에 앞서 金洪信 피고인이 간단히 의견을 말씀하시죠』
형사절차상 모두 진술이었다. 金洪信 의원이 준비해 온 원고를 들추며 낭독하기 시작했다.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된…』
『저는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재판의 현장에 섰습니다. 저는 이 재판이 정치적 비판과 독설을 정치의 場(장)에서 해결하지 못한 정치적 무능력의 증거일 뿐 아니라 다른 누구도 아닌 정치집단이 스스로 나서서 정치를 사법적 판단에 헌납한 부끄러운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발언동기나 내용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피고인』
재판장이 원고의 낭독을 중단시켰다.
『공소에 관련된 것만 개략적으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재판 서두의 피고인 말할 권리는 총괄적인 진술을 의미했다. 보통의 피고인들은 그마저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때 변호사인 金映宣 의원이 변호인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재판부의 의도적인 발언제지로 오해하는 듯했다.
『잠깐 발언의 기회를 주십시오』
金映宣 의원의 음성이 떨렸다.
『소송경제상 말을 줄이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金洪信 의원은 군사독재시절부터 정치적 소신을 줄곧 유지해 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언론의 자유에 대해…』
『아니 벌써 변론하시는 겁니까?』
재판장이 金映宣 변호사의 말을 제지했다. 말 중에 약간의 가시가 섞였다. 재판장이 정치적 제스처라고 생각하고 한 방 먹이는 느낌이었다.
金映宣 변호사가 당혹한 표정이 되었다. 15代 국회의 투사였던 그녀의 모습이 재판정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그건 아니지만 지금 이 자리가…』
金映宣 변호사가 그냥 내리 뻗었다.
『변호인 진술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재판장이 단호히 金의원의 말을 차단했다.
『피고인 계속하세요』
재판장의 명령에 金洪信 의원이 중단했던 낭독을 계속했다.
『저를 반드시 사법적 판단에 넘겨 처벌함으로써 가장 껄끄러운 입 하나를 틀어막고 이를 계기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차단해 보겠다는 靑瓦臺(청와대)와 여당의 의지가 바로 이 재판 탄생의 역사입니다. 얼마 전 靑瓦臺의 대통령 최측근 인사로부터 이번에는 金洪信이를 그냥두지 않겠다고 말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재판장이 다시 중단시켰다.
『이 보세요 피고인! 이 자리는 정치연설의 장이 아닙니다. 자제해 주십시오』
『여기가 국회인 줄 착각하십니까』
金洪信 의원이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金映宣 변호사 다시 일어났다. 독이 오른 모습이었다. 그 표정을 본 재판장의 얼굴에 짜증스런 표정이 일었다. 재판장의 진술차단을, 金映宣 변호사가 몸으로 방어하는 형국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피고인 계속 진술하세요』
金洪信 의원이 다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거론된 자존심 높은 대통령의 명예가 한 야당 국회의원의 비판적 독설 앞에서 무너질 정도로 허약하다면 과연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이번에는 검사가 소리치며 일어났다.
『검찰측에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
金映宣 변호사가 다시 맞서 일어났다. 남자도 내지 못하는 강한 용기였다. 재판장이 양쪽을 제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검찰측에서도 기소에 대한 의견은 진술할 수 있는 겁니다. 변호인의 발언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재판장님』
金映宣 변호사도 지지 않고 다시 외쳤다. 침착했던 재판장의 감정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곤혹스런 태도였다. 운동심판 같으면 퇴장이라도 명령할 분위기였다. 재판장은 꾹 참는 표정으로 金映宣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金映宣 변호사도 분위기를 파악한 듯 이렇게 말했다.
『재판장님! 제가 발언하는 것을 빠짐없이 속기록에 넣어주십시오』
金映宣 변호사가 흥분하니까 국회속기록 얘기가 나온 것이다.
『여기가 국회인 줄 아세요? 착각하지 마세요』
재판장이 맞받아쳤다.
『아… 그렇지』
金映宣 변호사이 머쓱해 했다. 그녀는 중립에서 적의로 변해버린 재판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엉뚱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재판장님 저를 이 법정에서 퇴정시켜 주시죠』
바른말 하다가 쫓겨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지도 몰랐다.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안 하겠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재판장의 대답이었다. 덕분에 金洪信 의원의 모두 진술은 계속되었다.
『저에 대한 수사는 사법처리를 전제한 짜맞추기 수사였습니다. 저는 이번의 제 발언에 대한 사법적 단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소설가이자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잘못된 현실에 대해 성역 없이 비판해 왔듯이 앞으로도 할 말은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정치적 비판의 자유와 한계를 획정하는 시험대에 올려놓은 그 누군가에게도 깊이 감사드리면서 저의 진술을 마치고자 합니다』
『우스개라고 전제했다』
金映宣 변호사의 강력한 어시스트로 모두 진술이 종료됐다. 재판이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먼저 박철준 검사가 金洪信 의원을 신문하기 시작했다.
『피고인은 사람이 죽으면 염라대왕이 거짓말한 것만큼 바늘로 뜨는데 金대통령은 거짓말을 하도 많이 하고 너무 많이 속여서 공업용 미싱을 갖다가 드르륵드르륵 박아야 할 것이다라고 연설한 사실이 있죠』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얘기 중 앞부분을 빼셨습니다. 제가 우스개 얘기를 하겠다고 전제를 했었습니다』
『피고인은 우스갯소리라고 변명하지만, 그날 저녁 9시 TV뉴스에 방영된 영상화면을 보면 피고인이 정색을 하고 강경한 어조로 말하던데 그게 우스갯소리입니까? 더구나 800여 명이 모인 공개석상에서 현직 대통령에 대해 그런 발언을 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검사의 신랄한 공격이었다.
『거기는 마이크 시설이 좋지 않은 소란한 강당이었습니다. 거기 가서 해보시면 알겠지만, 목청이 작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구석구석 들리게 하려면 큰소리로 정색을 하고 해야지 웃으면서 장난처럼 할 수는 없었습니다』
金洪信 의원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피고인의 발언은 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한 저속한 표현인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현직 대통령에 대해 거짓말의 인간문화재이고 유별나게 사기치는 사람이며 말바꾸기의 천재라는 인격 모독적인 발언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요?』
『저는 작가로서 비유법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당시는 작가 金洪信이 아닌 정치인으로 연설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작가로서냐, 국회의원으로서냐 하시는데 저는 지금도 언제든지 정치를 그만두고 작가로 돌아갈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다시 태어나도 작가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이 있기 때문에 제 의식은 언제나 작가입니다. 그 부분을 묘하게 훼손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염라대왕 시리즈 제1탄
다음은 변호인의 신문이었다. 내가 제일 먼저 묻기 시작했다.
『교수 金洪信에게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작가의 사명은 사회비판기능이라고 배웠다는데 그렇게 가르치셨습니까?』
『예, 분명히 기억합니다』
『피고인은 거의 모든 정치인에 대해 풍자를 하거나 독설까지 하셨는데 그 의도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죠』
『정치지도자들은 중요한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에 성역 없는 견제와 비판을 통해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인은 잘못하면 독선에 빠지고 또 민주주의의 반대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것입니다』
『피고인이 14년 전인 1984년 8월25일에 발행한 「제법 노는 사람들」이란 콩트집의 70페이지를 보면 정숙한 척하던 부부가 염라대왕 앞에 가서 바람 핀 걸 심판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의 은밀한 행위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본 염라대왕이 「얘들아 공업용 미싱을 내오너라」라고 하고 음탕했던 남녀가 공업용미싱에 꿰어지는 장면묘사가 있는데 기억하십니까?』
『예, 그것은 1980년대 초반에 대학가와 일반시중에 널리 알려졌던 염라대왕 시리즈 1탄입니다』
『지금부터 16년 전인 1982년 3월25일 피고인이 쓴 소설 「바람 바람 바람」의 1권206페이지를 보면 도박과 부정을 한 여자들에게 「죄 받아. 염라대왕한테 가서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박힐라」라는 표현이 나오고 이어서 지문에서 「염라대왕한테 가서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드르륵 박힌다는 게 그들에겐 웃음거리였다」라고 설명했는데 기억나십니까?』
『예, 기억합니다』
『역시 같은 해 발간된 소설 「바람 바람 바람」의 제2권 186페이지에서 거짓말하는 소설 속의 인물에게 「저런 애 입술엔 봉합수술이 약인데」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맞죠?』
『예, 어렸을 때 거짓말을 하면 어른들이 이런 표현을 많이 하신 것을 제가 이 소설에 인용했습니다』
『공업용 미싱은 풍자였다』
『피고인의 소설이나 콩트집 그리고 수필이나 논평에서 습관적으로 나오는 공업용 미싱이라는 표현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시죠』
나는 변호를 위해 그의 작품들을 거의 다 읽었다. 그는 사회비판뿐 아니라 무당들의 언어나 우리의 해학이나 풍자에 관련된 어휘들을 많이 찾아내 글 속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교훈기법이 있습니다. 저승에 가서 받을 끔찍한 형벌을 미리 얘기하거나 귀신이 잡아간다고 하거나 머리에 뿔 난다고 하는 상징적인 표현들입니다. 공업용 미싱도 그런 풍자였습니다』
『미싱 발언은 피고인의 글들을 보면 습관적으로 사용했던데 어떻습니까? 자기가 그 풍자를 사용할 때 의식이나 했습니까?』
『이 말이 문제가 되고 나서 출판사나 독자, 또 제자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는데 「선생님 그 말은 강의시간에도 여러 번 얘기 했잖습니까」라고 했고 저도 거의 무의식적 습관적으로 써온 저의 언어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현직 대통령에 대해 그 말을 쓴 것은 국민정서상 지나친 비유 같은 생각이 드는데 어떠십니까?』
『저는 변명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넋 떨어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통령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꿰매자고 하겠습니까. 정말 제가 답변하기 싫을 만큼 진실을 얘기했었습니다』
『정당연설회 당시 관중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현장에서 그들의 판단이 가장 정확할 수 있었다.
『그 얘기 어디 가서 써먹어야겠다고 하면서 웃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제가 연설할 때 앞을 쳐다보면서 반응을 봅니다. 여성들의 경우 굉장히 깔깔거리면서 옆사람을 치면서,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은 못 봤지만 거의 그럴 정도로 웃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발언이 모욕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은 없으셨습니까?』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날 얘기의 초점은 저는 대통령이 정직하지 못하면 나라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정부와 기업 때문에 IMF도 시작됐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저보다 저명한 외국 컨설턴트기관의 시각입니다. 모욕이라는 점은 상상조차 안 했던 부분입니다. 모욕하면 선거전에서 오히려 손해를 봅니다』
『현장에 와 있던 방송기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제가 나중에 참여했던 방송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들어서 녹화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물의가 빚어지자 정중한 사과를 하셨죠』
『사과를 했습니다. 국가원수에 대한 국민의 감정과는 거리가 있는 지나친 표현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성찰의 기도를 하면서 하느님께 저를 더 겸손하고 지혜롭게 해달라고 痛悔(통회)했습니다』
다 자백하는데 더 물을 게 없었다. 오히려 중요한 건 대통령의 개인고소의 확인이었다. 鄭寅鳳 의원이 변호인석에서 일어났다.
『金大中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기어코 일을 벌이는구나 생각했다.
『대통령에 대한 증인신청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재판장이 즉석에서 기각했다. 차선책으로 대통령에게 위임을 받고 고소했다는 당 민원부장 김일수씨가 증인으로 채택됐다.
난감해 하는 증인
『증인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직접 위임받으셨어요?』
내가 대통령의 개인위임장을 제시하며 민원담당부장에게 물었다. 당의 조직체계상 그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통령의 속뜻이 베일에 가려질수록 변호하는 측에서는 유리하다. 고소 자체가 흔들리면 주춧돌이 빠진 집처럼 되기 때문이다.
『…』
증인이 침묵했다. 목적을 같이하는 검사의 질문에는 무조건 순응했지만, 변호사에게는 그 저의를 알아야 대답하겠다는 태도였다. 증인의 엉뚱한 신중이 답답했는지 재판장이 나섰다.
『중요한 건 피해자의 개인의사에 따른 위임입니다. 증인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위임을 받은 건 아니죠?』
재판장은 아예 단정을 했다.
『黨 중진들의 결심을 받아 처리했습니다』
증인이 대답했다. 자살골인 셈이었다. 黨 중진이라면 모욕죄의 적법한 고소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죄보다 더 좋은 공소기각감이었다.
『黨 중진은 누구를 의미합니까?』
『예?』
증인이 되물었다. 표정에는 그 정도의 상식도 없느냐는 힐난이 보였다.
『무식해서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군지 알려주시죠』
내가 재차 촉구했다.
『柳在乾(유재건) 비서실장이나 당3역 같은 분들이죠』
다음은 위임장에 찍힌 대통령의 개인도장이 진짜냐의 확인작업이었다.
『대통령의 개인도장은 어떻게 보관하던 겁니까?』
순간 증인의 얼굴이 불쾌한 표정으로 변했다.
『증언을 거부하겠습니다』
증인이 소리쳤다. 그가 안개 같은 태도일수록 좋았다. 나는 집요하게 더 들어갈 필요가 없어 가만히 있었다. 지켜보던 재판장이 물었다.
『왜 증언을 거부하는 겁니까?』
『대통령의 私印(사인)을 관리하는 문제가 이 공판에서 관련이 있는 증인신문인지 아닌지 의심이 가기 때문에 증언을 하지 않겠습니다』
한계를 넘는 발언이었다. 증인은 법상 말할 의무가 있었다. 증언 거부는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몇 경우에만 아주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피고인의 묵비권과는 전혀 달랐다. 대통령의 대리인이라는 그가 재판의 권위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처럼 되었다. 재판장의 얼굴이 불쾌한 기색이었다. 관련성을 인정하는 재판장의 권한까지 침해하는 말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재판장의 단호한 어조였다.
『이 도장은 대통령이 직접 소지하고 찍는 도장입니까?』
재판장 역시 진정한 고소를 반드시 확인해야 판결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사용하는 도장이다 아니다에 대해서는 증언을 거부합니다』
그 태도는 대통령의 힘을 등에 업고 사법부를 능멸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었다. 재판장에게 그렇게 나오는 증인은 보지 못했다. 재판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모릅니까? 아니면 아는데 증언을 못하겠다는 겁니까?』
재판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유를 불문하고 거부하겠습니다』
양순한 국민들에게 재판장은 神(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자 주변의 시각에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몰라서 진술을 못하겠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아는데 진술을 거부하는 것인가요?』
재판장이 힘들게 인내하는 모습이었다. 증인의 행동은 결국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도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증인으로서…』
그는 난감해 하고 있었다. 재판 자체보다는 黨에 돌아가서의 책임과 대통령에 대한 불경이 없어야 한다는 데 더 신경이 가는 듯했다. 재판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간은 약자를 동정하게 마련이다. 대통령이 한 의원을 고소한 사건에서 대통령의 심부름꾼마저 재판장을 아래로 보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이미 심리전에서 대통령은 지고 있었다. 게다가 증인의 증언 거부는 가장 중요한 고소 여부를 미궁에 빠뜨리는 일이었다. 재판장이 끈질기게 다시 물었다.
『대통령 본인이 직접 찍으셨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까?』
『더 이상 증언을 거부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찍은 사실은 없습니다』
재판장이 연필로 요약지에 무엇인가를 기재했다. 다음은 鄭寅鳳 변호사가 증인에게 물었다.
『증인은 1998년 5월29일 서울지방검찰청 915호 검사실에 고소인인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출석해서 진술하셨죠?』
『네』
『그때 林昌烈 도지사 부부도 조사요청을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林昌烈 씨로부터 고소에 관해 위임을 받으셨습니까?』
『안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증인신문이 거의 끝났다. 재판장이 마지막으로 증인에게 물었다.
『증인! 대통령이 도장을 직접 찍으셨는지는 압니까?』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의 최후통첩 같은 분위기였다. 증인도 본능적으로 그걸 감지하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일순간 곤혹이 스쳐가더니, 『대통령이 직접 찍은 사실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간의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정확한 실체 규명은 비서실장을 하던 柳在乾 의원에게로 넘어갔다.
측근에서는 대상이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말 욕을 해서 안 될까? 일반인에 대한 욕은 되고 대통령에 대해서는 왜 안 되나? 대통령이기 때문에 다소 지나친 표현이 허용될 수는 없는 것인지? 문제는 표현방법인데, 그 언어가 순화된다면 비판과 토론문화의 순조로운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라면 모욕적인 발언을 강압적인 힘에 의하지 않고 걸러내는 自淨기능을 가지게 된다. 소송 만능인 미국에서 클린턴을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한 의원들은 모두 점잖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거나 사과를 하는 정도에서 용서를 받았다. 결국 金대통령은 인내하는 것보다 고소로 복수를 하려다 희생이 더 커질 수 있었다. 성숙한 정치력의 부족과 王朝(왕조)의 잔재를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증인 柳在乾 의원
『좋은 소식이 있어요』
金洪信 의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가 국회의원 대여섯 명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하던 柳의원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의 고소지시를 확인했더니 柳의원이 펄쩍 뛰면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여러 의원들이 같이 들었어요』
金洪信 의원이 희망에 넘쳐 있었다.
『필요하면 녹음테이프도 증거로 낼 수 있겠죠?』
그러나 당사자 앞에서 입장곤란해서 한 말인지 진실을 얘기한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정작 당사자 앞에서 시치미를 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재판부에 진술서들이 도착했다. 柳在乾 의원이 고소의 진정을 써 보낸 글이었다. 또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지난번 증인도 대통령의 고소가 맞다는 글을 공증해서 보냈다.
柳在乾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아 재판이 공전됐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金洪信 의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국회의원회관 로비에서 柳在乾 의원과 대화를 했어요. 옆에 보좌관도 있었는데 제가 고소하는 데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柳의원이 「이슈를 모르겠다, 나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비서실장이었던 柳在乾 의원만이 정확한 대통령의 태도를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불투명한 것이었다. 입장이 곤란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내막이 있는지 궁금했다. 金洪信 의원은 柳在乾 의원을 형님처럼 생각하고 오래 사귄 사이라고 하며 柳의원의 증언에 대한 기대가 컸다.
마침내 柳의원이 증언대에 서게 됐다. 결정적인 증인이기 때문에 피해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난감한 표정의 그는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증언석에서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박연철 변호사가 작정을 하고 신문사항을 만들어 왔다.
『증인은 金大中 총재의 비서실장을 하신 일이 있지요?』
박연철 변호사가 차분한 어조로 기본적인 사실부터 묻기 시작했다.
『1997년 6월1일경부터 시작해서 2년이 조금 모자라게 했습니다』
柳在乾 의원이 머리속으로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비서실장의 사무실은 어디에 있었나요?』
『총재실 바로 옆입니다』
『비서실장의 역할은 무엇이었죠?』
『총재의 지시사항을 黨 간부회의에 전달하는 일입니다』
『업무처리는 어떤 방식으로 하시나요?』
『총재님을 수시로 뵙고 지시를 받고 했는데, 대통령이 되신 후에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만났습니다』
『이 진술서를 재판부에 보내셨던데 그 내용이 맞습니까?』
『대통령에게 보고, 처리지침 받았다』
朴변호사는 기록에 편철되어 있던 진술서를 보였다. 진술서에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金洪信 의원에 대해 준엄한 법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적혀 있었다. 또 柳在乾 의원이 金大中 대통령에게 보고해서 직접 처리지침을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맞습니다』
진짜 대통령의 고소가 있었다는 것이다. 변호인들의 희망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대책회의에 참석자들은 어떤 분들이셨습니까?』
『부총재들하고 당8역 그리고 실장 등 이삼십 명의 당간부들이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증인이 직접 찾아뵙고 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대통령으로부터 처리지침도 직접 받으셨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미싱 발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지침을 주셨습니까?』
『당 간부들의 결정이 어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 간부들이 무척 흥분했고 시민들의 요구가 팩스와 전화로 들끓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모독하는 발언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한 간부회의의 분위기를 보고드렸습니다』
『그때 강경한 처벌을 희망하시던가요?』
『구체적으로 그런 지시는 없으셨고 당 간부회의의 결정사항을 허락한다는 뜻이셨습니다』
柳在乾 의원이 입이 마르는 듯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았다. 朴변호사의 신문이 계속됐다.
『金大中 대통령께서는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시기보다는 「입이 근질근질했다」라고 대범한 조크로 기자회견時 넘기신 것 같은데요?』
겉에 나타난 대통령의 관용과 배후에서 고소하는 양면성이 대두되는 부분이었다. 증인이 안절부절했다. 前 비서실장으로서 대통령의 위신에 累(누)가 되지 않아야 하고 金洪信의 처벌도 명확하게 해야 했다. 동시에 피고인이 된 金洪信 의원과 척도 지지 않아야 하는 모순된 입장인 것이다.
『청와대에 入城(입성)하신 후에 제가 빠진 경우가 많아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제가 보지도 못했고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없습니다』
증인이 피해 나갔다. 박연철 변호사가 본격적으로 칼날 같은 질문을 들이댔다.
『증인! 진짜 승낙을 받았습니까』
『증인은 최초의 고발장이 새정치국민회의 명의로 제출된 사실을 아시죠?』
『저도 법률가입니다만 명예훼손은 親告罪(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사를 물을 것도 없이 당론으로 고발했었습니다』
『그러면 모욕죄에 대해 별도의 개인고소위임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그때 당의 律士(율사)들과 의논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대통령께 전화를 드려 모욕죄 부분에 대해 개인자격으로 고소가 불가피하다고 말씀드리고 黨 사람인 김일수, 오길록에게 일체의 고소권한을 위임하는 방안을 건의드려 승낙을 받았습니다』
그때 박연철 변호사가 수사기록상의 조사일자를 적시하며 따지기 시작했다.
수사기록에 대리인 김일수가 5월29일 서울지검 915호실에서 박철준 검사에게 조사를 받았다. 黨에서 고발한 명예훼손 등에 대한 고소인 진술 조서가 그날 작성되었다. 바로 그날 대통령의 개인고소를 위한 위임장이 작성됐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고소의 방향을 선회하기 위해서는 보고, 검토, 회의 등 시간이 소요되게 마련인데 너무 빨랐다. 朴변호사는 그걸 마음에 두면서도 외곽을 쳐 나갔다. 증인이 전문가이기 때문이었다.
『몇시에 金大中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습니까?』
『아마 오후 3시경일 겁니다』
김일수 증인이 조사를 받는 시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박연철 변호사의 표정에 미소가 스쳤다.
『증인! 진짜 승낙을 받았습니까?』
『예,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위임장도 만드셨습니까?』
『지시를 받고 제가 만들었습니다』
『대통령 개인도장의 크기나 형태 그리고 인장 안에 새겨진 글씨를 기억하십니까?』
『둥그렇고 그 안에 한문으로 金大中이라고 써 있고 그 이외의 것은 없었습니다』
『개인자격의 위임장이라면 굳이 대통령의 직위를 쓸 필요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직위가 써 있는데 아십니까?』
『압니다』
『대통령의 직위는 왜 기재하셨습니까?』
『별 생각 없이 기재했습니다』
『비서실장이었던 증인이 이 대통령 개인의 위임장을 작성한 것은 고발대리인이었던 김일수씨가 조사를 받고 난 이후에 작성한 것이죠? 』
『그렇습니다』
『김일수가 조사받고 와서 보고하고 비서실장인 증인이 당내의 변호사 자격 있는 의원들을 불러 상의하고 또 대통령에게 보고드려 승낙을 받고 하는 절차가 그토록 빨리 진행됐을 것 같지는 않은데, 증인 지금 진실을 얘기하고 계신 건가요?』
朴변호사가 핵심을 찔렀다.
『당시 黨에서는 상당히 문제를 삼아서 하루에 진행됐고 저는 사실대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대리인이었던 김일수의 진술조서 중의 일부로 새로운 위임장이 있는 걸 보면 수사검사의 조언에 따라 상의 없이 새로운 위임장을 작성한 걸로 보여지는데 정말 증인이 그 위임장을 작성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위임장의 작성일자와 조사상황은 여당과 검찰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알려주고 있었다.
『충성심에서 그랬을 텐데…』
『증인은 金洪信 의원을 알고 계시죠?』
『아주 친한 사입니다』
『1999년 7월2일경 국회 본회의장 로비에서 金洪信 의원과 여야 의원 대여섯 명이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모여 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런 일은 자주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金洪信 의원이 「柳在乾 선배가 고소하는 데 대통령의 도장을 찍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지요?』
피고인석에서 金洪信 의원이 柳在乾 의원을 응시하고 있었다. 柳在乾 의원이 눈빛을 의식하는 것 같았다.
『비슷하게 기억이 납니다』
반쯤 인정했다.
『그때 증인이 「내가 그런 짓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줄 아느냐? 대통령이 그 정도의 사안을 가지고 전화를 하겠느냐? 그런 일로 전화를 받은 적도 없고 그럴 대통령도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라고 하셨죠』
순간의 임기응변이 법정에서 정통으로 화살을 맞는 것이다.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朴변호사가 계속했다.
『그 자리에서 증인이 특유의 제스처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고발한 것도 신문을 보고 알았다. 黨 사람들이 충성심으로 그랬을 텐데 나를 물고 들어갔다면 야단을 치겠다.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느냐?」면서 오히려 金洪信 의원에게 서운한 기색을 보이셨다고 하던데요』
『그때는 다 끝난 줄 알았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柳의원은 지식인이었다. 또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한 분이라고 했다. 그의 표정에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착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때 주변에 함께 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고위급 국회의원이 피고인 金洪信 의원의 어깨를 잡으면서 「사건 초기에 金洪信을 구속시켜야 한다고 했을 때 金洪信을 슈퍼스타로 만들겠다는 얘기냐. 정치지도자는 욕을 먹는 게 당연하다. 욕먹었다고 고소하면 정치인들은 모두 법원에 상근해야 한다. 과거 정치지도자들은 더 심한 소리를 해도 정치적으로 설전이나 하고 말았는데 金大中 대통령이 그런 일로 재판을 받은 적이 있느냐? 신경 끄고 일이나 열심히 해라」라고 말했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고위직 의원을 증인으로 신청하려고 했다. 그러나 입장상 곤란하다고 했다.
『그때 옆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이 「세계 어떤 나라든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혹독한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거다. 金洪信 의원이 그것으로 유죄를 받으면 대통령과 우리나라가 웃음거리가 된다」라고 말했는데, 그것도 기억하지 못하시나요?』
柳在乾 의원이 민망한 듯 잠시 침묵했다.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리까리한데요…』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아리까리요?』
『네, 그런 대화가 혹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선배님의 無所信, 소설로 쓰겠습니다』
『제가 증인에게 직접 묻게 해주십시오』
피고인석에 서 있던 金洪信 의원이 재판장에게 요청했다. 직접 柳在乾 의원에게 따지고 싶은 것이다.
『하시죠』
재판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金洪信 의원이 증언석의 柳在乾 의원을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柳在乾 의원님은 평소 제가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존경하는 분입니다.
6월13일 재판이 있었던 날인데 국회 로비의 제 보좌관이 있는 자리에서 제가 정말 대통령이 직접 고소했느냐고 물었잖습니까? 그러니까 黨에서 고발했다고 알아보고 얘기하자고 대답하셨잖아요. 변호사가 묻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는데, 정말입니까?』
침착했던 金洪信 의원의 음성이 배신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
난처해 하는 柳在乾 의원이 시선을 돌렸다.
『형님, 제가 처벌받는 건 순간입니다. 그렇지만 소설가로서는 영원합니다. 전 제가 받은 이 재판을 소설로 꼭 쓸 겁니다. 그리고 그 속에 선배님의 그 무소신을 꼭 표현할 겁니다』
金洪信 의원이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다시 변호사의 신문이 계속되었다.
『증인이 金洪信 의원에게 말한 「이슈를 모르겠다」는 의미는 뭡니까?』
柳在乾 의원의 태도가 달라졌다. 설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독에 관한 재판의 본론을 가지고 이야기해야지 고소 같은 주변의 작은 일을 가지고 싸울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뜻이었습니다』
『증인의 내심 생각을 묻고 싶습니다. 金洪信 의원의 미싱 발언이 지나쳤다고 하는 것이 여론이기는 하지만, 그 일로 金大中 대통령이 개인자격으로 고소하는 것에 대해서 증인은 진심으로 찬성하셨습니까?』
진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저의 직책상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심은 달랐다는 얘기도 된다. 다음은 金洪信 의원을 처벌하기 위해 들러리로 세운 林昌烈 경기도지사 후보 부부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 사건에서 金洪信 의원이 대통령에게 한 발언만 문제삼었던 것이지 林昌烈 후보에 대한 것은 아니었지요?』
『예, 그렇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처음에 제출한 고발장에는 林昌烈 후보에 대한 부분은 하나도 없던데요』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경위로 林昌烈씨에 대해 발언한 부분이 입건이 됐는지 알고 계십니까?』
『모르겠습니다』
『林昌烈 후보에 대한 부분을 고발하는 문제를 黨 지도부에서 협의하고 그에 관한 결정을 내린 사실이 있어요?』
『기억이 안 납니다』
『林昌烈 후보에 관한 부분을 고발하는 문제에 대해서 林昌烈씨와 사전에 협의한 사실이 있어요?』
『없습니다』
『林昌烈 후보는 처음부터 金洪信 의원을 고발할 생각도 안 했다고 하는데, 林후보에게 그와 같은 고발에 대해 찬성, 반대의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었습니까?』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金東吉 칼럼
그렇게 증언이 끝났다. 미싱발언이 나왔을 때 대통령의 옆에서 펄펄 뛰며 기분을 맞추던 사람은 다 어디 갔을까. 긴 안목으로 대통령에게 조언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았다. 미싱 발언이 있을 무렵 金東吉(김동길) 교수는 한국일보의 칼럼을 통해 이렇게 충고했었다.
「검찰이 金洪信 의원을 잡아넣겠다고 해도 대통령은 말려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옆사람들이 분개해서 욕하더라도 「그 사람, 글만 요란하게 쓰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말솜씨도 대단해. 공업용 미싱으로 내 입을 막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람 입만은 막아서 안 되겠어」라고 말하며 한바탕 웃었다면 金의원은 얼마나 자기가 한 그 발언을 미안하게 생각할 것이며, 세상은 또 얼마나 더 재미있는 세상이 될 것인가. 金대통령 자신의 명예가 어느 국회의원 한 사람의 유세장에서의 폭언으로 훼손될 그런 허약한 명예는 아니라고 믿는다. 金의원에게 쇠고랑을 채우고 그의 의원직을 박탈한다면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인지 뻔한 노릇이다」
증인 林昌烈 도지사의 非공개 재판 요구
2000년 1월21일 서울지방법원 311호 형사법정. 방청석 앞자리에 林昌烈 경기도지사가 金洪信 의원과 앞뒤로 나란히 앉아 소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다정해 보이는 모습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아닌 것 같았다. 金洪信 의원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하는 것 같았다. 林昌烈 경기도지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양해하는 모습이었다.
『바쁘실 텐데 굳이 이렇게 나오실 필요 있습니까?』
내가 도지사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그래도 검찰에서 부르는데 나와 협조해야죠』
林지사의 대답이었다. 2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시점에서 이제는 법정에 불려나오는 것 자체가 관련자들의 괴로움이었다. 재판이 시작되고 林지사가 증언석에 가서 앉았다. 먼저 재판장이 양해를 구했다.
『증인인 林昌烈 경기도지사께서 非공개재판을 요구하시는데 변호인측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변호인들끼리 서로 얼굴을 보면서 바로 결정을 하지 못했다. 재판장이 덧붙였다.
『꼭 非공개로 해야 할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사유는 없습니다』
민감한 사안이라 재판장도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퍽이나 조심했다.
林昌烈 경기도지사가 조심스럽게 이유를 얘기했다.
『공소내용 중에는 저희 가정생활 얘기가 들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동의하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며 승낙했다.
『어?』
옆에 앉아 있던 박연철 변호사가 나의 독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당연했다. 나는 공개적으로 林지사의 사생활을 몰아치는 걸 막아주고 싶었다. 나는 林지사의 법률자문을 여러 차례 해주었다. 그래서 그의 사정이나 내막을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다. 나는 신문도 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피고인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공개재판은 피고인의 권리입니다』
재판장이 이번에는 金洪信 의원의 의사를 확인했다.
『변호인과 의논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저에게 불리할지라도 非공개에 동의하겠습니다』
꼿꼿하게 선 金洪信 의원이 기꺼이 동의했다. 보기 좋았다. 아마 대통령과 金洪信 의원이 직접 만나는 자리가 있었더라면 벌써 끝이 났을 일이었다.
『비공개는 증언내용에 한정됩니다』
재판장은 그렇게 한정하면서, 『방청객과 기자분들은 나가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윽고 증인신문이 시작됐다. 내용들은 주로 林지사의 가정사였다. 선거 때 공인으로서의 자격을 검증받기 위해 사생활이 들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법정에서 시시콜콜한 집안 얘기에 응답해야 하는 것은 또다른 형태의 고통일 것이었다. 검사가 林지사를 이렇게 유도했다.
『金洪信 의원이 공개석상에서 악의적 비방을 함으로써 林지사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해되고 심한 모멸감을 느끼는 등 정신적 피해를 입으셨죠?』
『그런 소리 듣고 정신적 고통을 안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겠죠. 그렇지만 저는 선거에 이겼기 때문에 그걸 별도로 문제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林지사가 상황을 파악하고 중심을 잡았다. 林지사는 검찰이나 법원에 이렇게 끌려오는 것 자체가 정신적 고통이라고 내게 호소했었다. 검사가 다시 물었다.
『검찰이 보기에 金洪信 의원은 반성을 하고 있지 않은데, 처벌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그건 물음이 아니라 차라리 부탁 내지 강요였다.
『사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참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생각해서 그 뜻을 이미 의견서로 낸 바 있습니다』
林지사가 검찰에 협조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이어서 박연철 변호사의 신문이 시작됐다.
『林昌烈 증인은 이 문제로 수사기관에 소환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용서했던 걸 확 뒤집어 버리고 싶었다』
『경기도지사인 증인같이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공적인 인물로서 그 인격이나 성실성, 신뢰성 등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선거운동기간 중 충분히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십니까?』
『검증은 해야 되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을 대중 앞에서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가족관계를 검증하는 것은 건전하게 살고 있는가를 판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그런 것도 검증할 수 있겠지만 오해가 생기도록 발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재판장이 증인에게 다시 물었다.
『증인! 유권자들이 공직선거에 입후보 하는 사람의 가정생활, 이혼 여부,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고 또 알 필요성이 있다는 일반적인 얘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후보한 사람에 대해 그런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저도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다른 사실을 대중 앞에서 주장한 것은 저에게 많은 타격을 주었습니다』
박연철 변호사에서 이번에는 鄭寅鳳 변호사로 바통이 넘어갔다.
『증인은 언제 구속이 됐고 언제 석방됐고 또 朱惠蘭씨는 언제 구속이 됐고 현재 구속 중인가요?』
鄭변호사는 林지사의 상처를 찔렀다. 그 얼마 전 林지사 부부는 경기은행장 뇌물사건으로 구속됐었다. 林지사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서렸다. 재판장이 제지했다.
『변호인, 이 사건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문을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鄭변호사가 이어서 다음 질문을 했다.
『증인은 언제 귀국하셨습니까?』
『1991년에 귀국했습니다』
『주민등록은 어떻게 했습니까?』
『보좌관들이 해줬습니다』
『증인은 귀국하고 나서 朱惠蘭씨와 같은 세대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은 적이 있습니까?』
『아마 같이 되어 있을 때도 있었고 떨어져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
『아니 공직자로서 보좌관들이 주민등록을 했다 안 했다는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1991년부터 1998년까지 朱惠蘭씨하고 관계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鄭寅鳳 변호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林昌烈 지사가 발끈했다.
『아니, 변호사님. 지금 저를 훈계하시는 겁니까? 가르치는 거예요? 사실관계만 물으세요. 저는 답변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林지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증인신문이 끝났다. 다음날 오후 도지사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니, 변호사가 증인을 건드리면 어떻게 해요. 鄭변호사, 그 사람 하는 짓을 보니까 용서했던 걸 확 뒤집어 버리고 싶었어요』
경기도지사의 항의성 전화였다.
공직선거에 후보로 나가는 사람의 사생활이나 명예는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검증을 위해 어느 수위까지 비판해도 좋을까. 사법부는 웬만한 발언에 대해 법적용을 신중히 했다. 대신 일단 법에 걸리면 엄격하게 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었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이렇다.
15代 총선 때 한 청년이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 朴智元씨에 대해 이런 통신문을 발표했었다.
「나는 朴智元이 에세이집을 발간했다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 꼴값 떨고 있네 생각했다. 그 ○○○○가 부천 어디에서 출마한다는데 당선 여부가 전국에서 가장 궁금한 지역 중의 하나다. 정치가 저질이라기보다는 朴智元이 저질이다. 꼭 자해공갈단 수준이다. 朴智元은 과거 全斗煥 정권에게 붙어 아부했다」
법원은 이 발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 한나라당의 김태호 의원이 울산의 한나라당 울주군수 및 광역의원 후보 추대대회에서 이런 발언을 했었다.
『상대후보가 고향이 부산이라고 했는데, 말소리를 들어보니 다르더라. 그래서 직원을 시켜서 원적을 확인해 보니 전북 익산이더라. 이 나라는 호남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 울산에서 호남사람이 시장이 되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종교인으로서 고향 속이고 여기 와서 시장 당선되면 그게 뭐냐』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상대방 후보를 비방했다고 기소된 이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지나치게 관대하지 않나 하는 법원의 판결이유는 이랬다.
「선거운동시의 표현은 정치적인 의견의 투쟁이 최고도로 강화하는 상황에서 후보자 상호간 정책논쟁과 상호비판에 의해 상대 후보자의 정견이나 과거 행적의 오류와 약점을 폭로하고 상대 후보자를 비판, 비난하는 과정이 있는 것이 예사고 후보자들의 발언을 대하는 선거인들 역시 그런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공직후보자는 타인의 신랄한 공격에 대해서 자신을 세워야 하는 지위에 서게 되고 자기 인격의 부정적 측면에 관한 노출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거운동에 있어서 표현행위는 다른 언론활동보다 더 강한 자유의 원칙이 적용된다. 선거운동에서의 표현은 그런 현실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결국 사법부는 국민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상당 수위까지 발언을 용인해 준 것이다. 대법원의 까다로운 선거법 기준에서 볼 때 林昌烈 경기도지사 부부에 대한 선거법 위반 부분은 무죄가 나올 확률이 많았다. 예상대로 나중에 네 개의 발언 중 세 곳이 무죄가 선고됐다.
『우선 저질러 놓고 보자는 막가파式 사고방식』
사실심리가 끝났다. 구형을 하는 검사의 의견진술과 변호인의 변론이 남았다. 검사의 의견서나 항소이유서 그리고 변론문은 이 사건을 보는 상반된 시각 그리고 법적인 문제점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먼저 검찰의견서의 핵심 부분을 소개한다.
『피고인 金洪信이 저명한 소설가라는 사실은 본 검사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소설가가 정치적 풍자나 해학을 우스갯소리로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은 진실에 근거해야 하고 발언 당시의 장소나 정황에 따라서 그 평가는 달라진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피고인의 공업용 미싱 발언은 소설가가 문화행사에 참여하여 정치적 풍자나 해학을 우스갯소리로 표현한 것이 아니고 정치인인 피고인이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공개된 정치집회에 참석하여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행해진 선거연설일 뿐만 아니라 후보 검증 차원에서 사실에 근거한 정당한 발언이 아닌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상대후보의 인격을 모독하고 비방한 발언임이 명백합니다. 피고인 金洪信은 국회의원이 아닌 시정잡배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공업용 미싱 발언으로 대다수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피고인 金洪信은 전혀 改悛(개전)의 情(정)이 없습니다. 피고인은 마치 자신이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는 민주투사인 양 행세하면서 심리가 마무리되는 순간까지도 신성한 법정에서 「판소리」로 최후진술을 하겠다는 등 어처구니없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세칭 공업용 미싱 발언은 폭로나 비방을 일삼더라도 선거가 끝나면 어차피 유야무야될 것이니 우선 저질러 놓고 보자는 막가파식 사고방식에 기인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이는 상당한 시일이 경과되어 국민들의 감정이 누그러진 시점에서 재판이 이루어지고 사법온정주의의 입장에서 관대한 처벌을 해왔던 것도 이런 사범을 조장한 하나의 원인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선거풍토와 정치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피고인 金洪信과 같은 흑색선전 사범을 일벌백계의 차원에서 엄벌하여 근거 없는 비방이나 흑색선전은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풍토를 확립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할 것입니다. 본 검사는 피고인에 대해 추상 같은 형을 선고함으로써 법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여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피고인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모욕죄에 대해서는 징역 1년을, 그리고 林昌烈 후보 부부를 비방한 죄에 대해서는 징역 1년6월을 선고해 주실 것을 바랍니다』
『세상 속일 수 없는 것이 작가의 약점』
다음은 변론이었다. 그동안 심리 중에 이미 나왔던 경위나 정상 그리고 논리가 까다로운 법령의 해석이나 개인 사생활에 대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정리하면 이랬다.
「먼저 金大中 대통령께서 이 사건으로 과연 직접 고소를 하셨을 것이냐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또 대통령께서 이와 같은 일로 고소를 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이 역사 속에서 대통령의 하나의 지시로서 그분의 감정 하나로 유죄판결까지 가는 재판이 될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의 교만함 또 검찰의 맹목에 대해 일대 제동을 거는 재판이 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시고 재판부에서는 판단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오늘 林지사께서 나오셔서 증언을 해주시는 바람에 저희 변호인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林昌烈 朱惠蘭 두분은 고발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사기관에서는 두 분에 대해 어떤 소환이나 확인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林지사께서는 증인으로 나와 모든 걸 용서한다는 취지를 비치셨습니다.
변호인들은 피고인 金洪信 사건을 선임한 후 일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인간 金洪信에 대해 살펴 봤습니다. 변호인이기 이전에 한 국민으로서 보다 객관적으로 피고인 金洪信을 알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金洪信 의원이 쓴 소설 인간시장을 비롯해 그의 수필, 콩트, 논평, 세태만필 등을 정독하고 분석했습니다. 또 그에 대한 주변의 평도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부정적이고 비난하는 말까지도 주의 깊게 살펴봤습니다. 말 한마디나 작은 글로써는 사람을 속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양이 늘어나서 수천 장, 수만 장으로 그 원고가 늘어나면 점차 세상을 기만하기 힘들어지는 게 작가들의 본질적인 약점이기도 합니다. 그 점에서 그동안 소설가 金洪信의 작품들은 그의 성품이나 이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가장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을 통해 피고인 金洪信을 보면 독특한 습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무의식적으로 써댄 미싱 발언입니다. 탤런트나 동료의원, 그리고 일반인에 대해서 사용할 때 위트로 넘어갔던 이 습관이 상대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곤욕을 치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공업용 미싱을 박는 주체는 염라대왕입니다. 金洪信 의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의 악의에 찬 왜곡으로 마치 金洪信 의원이 대통령을 어떻게 한다더라고 되어버렸습니다」
「북한지도자도 용서하는 대통령이…」
배는 작은 키 하나로 거대한 몸체의 방향이 설정되고 사람은 작은 혀 하나 때문에 몸 전체가 불에 탈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세례 요한도 헤롯의 결혼문제를 논하다가 목이 잘렸다. 변론문을 쓰면서 내게 떠오른 장면이었다. 계속되는 변론은 이랬다.
「피고인 金洪信 의원의 본심이 어쨌든 간에 겉으로 보기에 독설이고 법적으로 모욕으로 해석될 여지를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金洪信 의원이 공개적 또는 비공식적인 여러 번의 정중한 사과를 했습니다. 국민들의 질타와 가족들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협박도 감수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모든 정치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의 말에 대한 수백 배 수천 배의 공개처형을 받은 셈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선거풍토는 상대방 후보나 그 보스에 대한 독설의 장이었습니다. 현실 정치인 그 누구도 아직 그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발간된 金壽煥 추기경의 수필집을 보면 金大中 대통령이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고 참았는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납치한 범인도, 고문한 수사관도, 사형선고를 내린 법관도, 또 동족상잔의 원인인 북한지도자도 용서하는 대통령이 유독 金洪信 의원만을 개인적으로 고소하고 끝까지 이렇게 처벌을 원한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듭니다. 변호인들이 보기에 피고인 金洪信 의원은 단순한 정치꾼이 아닙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이 사회의 권력자들에 대해 세례 요한과 같이 바른 말을 한 용기 있는 인물입니다. 대통령 역시 그 점을 알았기 때문에 金洪信 피고인에게 동지가 되자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사건은 대통령 주변의 무책임한 과잉충성과 정치적 무능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재판부는 본질을 파악하는 날카로운 눈과 이 나라의 정치적 비판의 자유를 위해 소신 있는 판결을 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호통이 벽력이고 닦달이 천둥이라도…』
『피고인,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하시죠』
최후진술이었다. 오랜 여정 끝의 종착역에 다다른 것이다. 金洪信 의원이 사백자 원고지 52장에 육필로 쓴 최후진술 원고를 손에 들었다. 그 안에는 그가 지은 「세상타령」이 들어 있었다.
『법정이지만 한 가락 하겠습니다』
金洪信 의원이 재판장에게 말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그걸 준비해 왔었다.
『잠깐만요』
재판장이 미소를 지으며 金洪信 의원을 만류했다.
『타령을 하신다는 걸 기자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그냥 원고를 주시면 제가 잘 읽어볼게요…』
그렇게 해서 법정에서의 한 가락은 원고로 대치됐다. 세상타령의 몇 부분을 소개하면 이렇다.
「해학 풍자 가래로 막고 트인 입 찢어서 막고/바른 말은 갓난애 손목 비틀듯 하고/아따, 호통이 벽력이고 닦달이 천둥이라도 눈 깜짝 안 무섭소/내가 이래 봬도 조선팔도 상투꼭대기요/
곤장에 장사 없고 국문에 충신 없다/지존지엄 할작시면 심청이는 못 부르고/춘향이는 대령 못하랴만/천금 같은 그 입심이 허송세월 안타깝소/
한 번 실망 두 번 변심/애걸한들 통할손가 사정한들 들어줄까/여보시오 사자님 내 지은 죄 달게 받자오니/이별수 공방살,구설수 감옥살/
사내들은 싸우면 적이요 사귀면 동무라 하였습니다. 그러하거늘 권력이 귀신도 부린다 하여 걸쭉하게 농담 한마디 한 걸 도둑이 개 꾸짖듯 해서야 어찌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영웅의 추락은 가팔랐다」
세상타령 부분을 생략하고 그가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조선 사람치고 하소연할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저는 참으로 우여곡절 많은 인생을 살아온 듯합니다. 계 王主(왕주) 노릇을 하던 어머니 탓에 집안이 거덜나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학창시절의 고난은 지금도 가슴이 시립니다. 배운 것 없는 어머니였지만, 제게 딱 두 가지는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하나는 거짓말하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용서 없이 회초리를 들었고, 둘째는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 굴복하지 않는 정신이었습니다.
제가 군 소대장이 된 지 3일 만인 1971년 7월1일 새벽 0시20분경 저는 북한 무장공비를 사살하는 무공을 세웠습니다. 마침 그날은 朴正熙 대통령 취임식 날이었고 무장공비의 노획물에 대형 시한폭탄 3개가 있어 무공이 부풀려져 뜬금없이 영웅으로 묘사되고 훈장이 상신되었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나이였지만, 거적을 아무렇게나 덮어 가매장당한 북한 장교의 시신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나무를 깎아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주고 소대원들을 데리고 가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게 탈이었습니다. 빨갱이 장교로 몰려 조사를 받고 군법회의에 회부될 처지가 되었습니다.
영웅의 추락은 너무 가팔랐습니다. 저는 잡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자는 흙이다. 적장이 죽었을 때 최소한의 조문 의식을 갖는 것은 휴머니즘이다…」 저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한 채 군화발 아래 나뒹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끝까지 제가 옳다고 주장했고 억울해서 탈영까지 생각했었지만 이제야 그 시절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용인할 만큼 철이 들게 됐습니다』
거짓에 관한 話頭
『1980년대 중반에 저는 실천문학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高銀(고은), 李浩哲(이호), 申庚林(신경림) 선생 등과 어울려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매달렸고 6·10 항쟁서명에 앞장섰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시민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으로 일했습니다. 제가 정치를 그만두게 되면 다시 시민운동을 시작할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에 KBS 생방송 도중 盧泰愚 대통령과 정권을 非민주적 정권이라고 비판하다가 출연정지를 당했습니다. 1995년에도 역시 KBS 아침 생방송 「안녕하세요 金洪信 김수미입니다」를 진행 중 金泳三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죄로 방송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했음에도 대통령이나 정권에서 저를 고소 고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민정부 최초의 필화사건으로 기록된 「대통령 정신차리소」를 출간했다가 여러 가지로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정치를 시작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金大中 총재 등 야당 인사들이 저를 보호하기 위해 격려와 면담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특히 金大中 총재께서 정치를 권유했고 구체적인 자리까지 제시했지만, 저는 영원한 비판적 작가로 살겠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런 참에 民主黨이 분당되었고 徐永勳(서영훈)씨 등 시민사회의 어른들이 젊은 시민운동권 사람들에게 정치권 진출을 권유했고 마침 諸廷坵 李富榮(이부영) 등 인물들과 뜻을 세워 정치개혁시민운동연합인사들(張乙炳, 洪性宇, 朴仁濟 등)과 함께 개혁신당을 창당하였으며 민주당과 합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과분하게 민주당 초대 홍보위원장을 거쳐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소갈머리 없는 짓이지만 자랑 한마디 하겠습니다. 저는 4년 연속 의정활동 평가 1등을 했고 의정종합평가 1위, 시민단체평가 1위, 매년 국감스타 선정 등 눈치 보지 않고 소신 지키고 개혁적 최우수 국회의원으로 평가받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그런 제가 이미 알려진대로 1998년 5월26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철에 故 諸廷坵 선배의 요청으로 始興정당대회장에서 이른바 「염라대왕 발언」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길고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분명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거짓에 관한 화두」를 던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재판은 역사적 재판입니다. 이 재판기록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명국가에선 대통령이 고소 고발 따위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직 대통령이 현직 야당 국회의원을 친히 고소한 재판이며 한 야당의원의 정치적 비판에 대해 대통령의 직위를 던지고 개인자격으로 모욕죄를 걸어 고소한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기네스 북에 오를 재판입니다. 성숙되지 않은 민주주의와 최고권좌에 있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 참에 金大中 대통령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찾아뵐 터이니 그때 제 등짝을 때리시며 크게 웃어주십시오. 저와 우리들 모두는 그런 대통령을 갖고 싶습니다. 검찰 쪽에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국가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걸 잘 압니다. 제가 딱 한 시간 동안 조사받는 사이에 검찰총수께서 담당검사에게 서너 차례씩이나 전화를 걸어야 할 만큼 중대한 사건은 아니잖습니까. 저는 그나마 변호할 여력이라도 있습니다만 힘없는 이들을 꼭 굽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검찰은 어떤 경우라도 정의의 상징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판사님들도 아량으로 살펴주신 점 잊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판결을 하더라도 곱게 기억하겠으며 인생의 값진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돌아가신 제 어머니께 한 말씀 투정하는 것으로 최후진술을 마치겠습니다.
「어머니, 거기 그냥 계세요. 어머니가 만든 대로 변치 않고 그대로 속없이 살겠습니다」 』
재판이 모두 끝이 났다.
『이렇게 재미있는 최후진술은 처음이에요…』
재판 후 들어가는 법정서기의 말이었다.
『우리 정치가 순화된 용어로 하기를…』
국회의원직 박탈과 실형복역, 그게 눈앞에 닥친 가장 무서운 공포였다. 드디어 1심 재판부의 관대한 판결이 선고됐다. 선거법 위반에 대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함으로써 의원직을 유지시켰다. 대통령의 모욕에 대해서도 징역형의 구형을 무시하고 제일 가벼운 벌금형을 선고했다.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처였다. 그외 법원은 선거법 위반 중 허위사실 공표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즉각 항소했다. 검찰은 1심판결을 질타하는 내용의 A4용지 49장에 이르는 이례적인 항소이유서를 써냈다. 법원의 판결이 정치논리에 입각해서 형을 정했다는 것이었다. 신성한 법정 안에서 「판소리를 공연하는 어처구니없는 金洪信 의원의 행패」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 솜방망이 판결로는 안된다는 원색적인 언어를 거칠게 사용하기도 했다. 담당검사가 항소심까지 나와 계속 사건을 담당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일곱 달에 걸친 항소심 재판이 계속된 후에 선고기일이 다시 잡혔다. 그동안 담당 재판장도 한 차례 바뀌었다.
2000년 9월26일 오후 2시 서울 고등법원 403호 법정. 金洪信 의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법정이었다. 그걸로 이 재판은 사실상 끝이었다. 왜냐하면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심리하지 않는 법률심이기 때문이었다. 金洪信 의원과 변호인들은 불안과 긴장감으로 굳어 있었다. 며칠 전 좋지 않은 정보가 들어왔다. 정부 여당측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金洪信 피고인의 의원직을 박탈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자존심을 건 한 판의 싸움이기도 했다. 변호인측으로서는 몹시 불안했다. 급한 대로 재판부에 선고연기 신청을 했다. 시간을 벌자는 생각이었다.
재판부에서 일단 허락하면 살아날 여지가 있고 거절하면 위험신호라고들 짐작했다. 연기냐 선고냐를 보기 위해서 모두들 법정에 나온 것이다. 1분도 틀리지 않고 정각에 재판장이 법정으로 나왔다. 평소의 온화한 미소가 없어지고 표정이 굳은 것 같아보였다.
『金洪信 의원에 대한 선고의 연기신청이 있었지만, 그동안 재판을 너무 오래 끌어 오늘 그냥 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법원의 강한 의지가 보였다. 변호인들과 金洪信 의원의 얼굴에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金洪信 피고인 나오시죠』
재판장이 호명했다. 金洪信 의원이 단두대에 오르는 것같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가 잘 인용하던 염라대왕 앞에 가는 기분일 것이다. 재판장이 엄숙하게 말을 시작했다.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하는 분위기입니다. 또 피고인 金洪信 의원이 전체적으로 반성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비를 머금은 짙은 먹구름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재판장은 이미 작성한 판결문을 이리저리 들추며 계속했다.
『이 재판을 계기로 우리 정치가 정말 인신공격을 하지 않고 순화된 용어로 정책대결을 하는 장이 되기를 재판부는 희망합니다』
할 말을 다하고 선고하려는 것 같았다. 먼저 결과부터 알려주면 나머지는 듣지 않으려 할 테니까. 金洪信 의원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경황중에 나는 金의원의 눈을 살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사람의 눈빛에서 그의 평생 인격이 나타나는 것이다. 金의원의 눈빛은 점차 가라앉으면서 담담해지고 있었다. 감옥에 갈 각오가 선 것 같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형의 선고가 시작됐다.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형량을 더 무겁게 낼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원심판결의 형량이 적정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또한 재판부는 원심판결에서 林昌烈 지사에 대해 유죄로 인정한 두 부분을 무죄로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2년5개월에 걸친 긴 재판이 끝이 났다.
죄는 인정하고 형량에선 용서
『판결이유가 나왔습니다』
사무장이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아 가지고 왔다. 대통령에 대한 불경에 대해 사법부는 어떻게 보고 있나? 또 어떤 잣대를 사용하고 있나에 대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흩어져 있는 요지들을 쉽게 풀어보면 이랬다.
「대통령의 경우도 그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가 형성되는 과정이 통제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그 전제로 언행이나 품성에 대한 비판의 자유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선거운동에 있어서의 표현행위는 정치적인 의견의 투쟁이 최고도로 강화되는 상황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므로 보다 더 강한 자유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후보자 상호간이나 후보자와 선거인 사이에는 정책논쟁과 상호비판에 의하여 상대 후보자의 정견이나 과거행적의 오류와 약점을 폭로하고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여 주도록 설득하게 되는 것이므로 상대 후보자를 비판 비난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된 여러 가지 표현을 구사하여 상대방을 신랄하고 통렬하게 공격하는 것이 예사고 후보자들의 발언을 대하는 선거인 역시 그런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므로 선거운동을 즈음한 표현행위의 허부를 논함에 있어서는 그런 현상과 관행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정치가는 상이한 정견의 지속적인 대결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의 신랄한 공격에 대해서도 자신을 세워야 하는 지위에 있고 자기 인격의 부정적인 측면에 관한 노출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 같은 공적인 인물에 대한 모욕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표현행위가 사회일반적으로 용인되는 비판의 정도를 넘어서야 하고 피해자의 외부적인 명예를 실제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비판의 범주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한 다소 비난성의 표현을 가미하거나 풍자의 목적으로 단순하고 극적인 비유법을 활용하는 정도만으로는 모욕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죄였다. 그러나 법원은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金洪信 피고인의 경우 자신이 속한 黨의 후보에 득표를 올리려는 인식을 가지고,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범주를 넘어선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본다. 따라서 金洪信 의원의 표현행위는 모욕죄를 구성한다」
죄를 형식적으로 인정하고 형량에서 사실상 용서해 준 것이다.
말은 말하는 그 사람을 조각하는 칼날과도 같다. 한마디 말로 그 사람의 품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언어가 순화되어야 한다.
악이 가면 화가 돌아오고 욕설이 가고 오면 매질이 오고 간다. 아무리 말을 꾸며 남을 해쳐도 죄 없는 사람을 더럽히지는 못한다. 또 어진 사람은 뜻이 무거워 비방과 칭찬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권력이나 힘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