變化에는 반드시 檢證이 따라야 한다

이제 2주일 뒤면 소위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4주년을
마지하게 됩니다. 지금 북쪽에서는 '6.15 북남공동선
언 발표 이후 남쪽에서 발생하고 있는 엄청난 변화'를
구가하고 있고 실제로 지난 번 4.15 총선거를 통해 구
성된 17대 국회의 내용에서 우리는 그 같은 북쪽의 구
가가 반드시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실감
해야 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이미 2000년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통해 잉태되고 점지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다음의 글은
<월간 군사세계> 통권65호(2000년8월호)에 게재되었던
저와의 대담기사 전문입니다. 그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읽는 분들이 6.15 남북공동선언의 성격과 이를
계기로 심화일로를 걸어 온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 문제
를 이해하시는 데 일조가 되어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
에서 외람됨을 무릅쓰면서 이 글을 이 곳에 올립니다.
이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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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軍事世界」2000.8月號(通卷65호) 收錄:
變化에는 반드시 檢證이 따라야 한다
- 李東馥 前 議員이 보는 ‘變化’에 대한 ‘價値評價 基準’-


<질문>
지난 6월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이 과정에서 남북간에 6.15공동선언이 합의되어 발표된 뒤 남쪽에서는 대북정책에 관하여 많은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음이 발견됩니다. 특히 김정일의 이미지가 하루밤 사이에 극에서 극으로 달라진 가운데 '보·혁 갈등'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최근 우리의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사회에서 부각되고 있는 '보
수'와 '진보'간의 갈등구조는 특히 '보수'의 본질에 대한 왜곡된 개념 정의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지금 특히 대북정책 추진과 관련하여 '보수'를 '수구'나 '반동'과 동의어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매우 부당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보수'는 '수구'나 '반동'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의 '보수'는 우리가 그 동안 대한민국에서 이룩해 놓은 것을 지키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개량할 것은 개량하고 개혁할 것은 개혁하자는 입장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것은 맹목적으로 오늘에 집착, 일체의 개혁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하는 '수구'나 '반동'과는 혼동될 수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전통사회에서의 '보수'의 본질은 '개인'과 '전통' 사이에 이루어지는 '타협'에 있어 왔습니다. 이 같은 '타협'은 반세기전 대한민국 건국이래 부단하게 진행되어 왔고 오늘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개인'과 '전통' 사이에서 그러한 '타협'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촉매'가 바로 '자유'였습니다. '사람'과 '전통'과의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관관계와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이질적 사상과 현상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그 같은 상관관계를 '개인'과 '전통'간의 관계로 보지 않고 '집단'과 '전통'간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흐름입니다. 예컨대,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던가 과거 나치독일 시절의 '국가사회주의' 같은 것들이지요. '집단'적으로 움직이다 보니까 여기서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의 '촉매'가 등장했습니다.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집단'을 '최면'시키기 위한 '주문(呪文)'인 것입니다.

'전통'과의 상관관계를 '집단'과의 관계로 설정하는 데 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요소가 '촉매'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종교'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현세'를 관리하는 '정치'와 '내세'를 지배하는 '종교'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빚어져 왔습니다. '종교'가 정치적으로 밀고 나와 '현세'의 영역을 침범할 때는 정교(政敎)간에 분규가 빚어져 엄청난 비극의 연출을 강요했고 그와는 반대로 '종교'와 '정치'가 '내세'와 '현세'라는 각자 영토를 지켜서 서로 침범하지 않을 때는 오히려 상호 보완성을 살려서 정교간 평화가 유지될 뿐 아니라 건전한 사회적 안정의 토양을 제공해 왔습니다. '보수'는 '개인'과 '전통'간의 상관관계이기 때문에 이를 '이데올로기'화 하여 설명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습니다. '보수'는 '개인'과 '전통' 사이에 자연스럽게 '타협'이 이루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에 이를 '이데올로기'화 하여 설명하려 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써 '보수'의 의미를 일탈하는 것입니다.

'혁신'이나 '진보'는 '전통'과의 관계를 '집단'과의 관계로 보는 데서 출발하는 용어들입니다. 따라서 '혁신주의'나 '진보주의'는 이미 개념적으로 '개인'을 무시하는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의미를 함축한 표현들이기도 합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문제도 바로 그러한 문제들입니다. 1917년 모스크바에서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세계무대에 등장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름의 '공산주의'는 이미 하나의 실패한 '이데올로기'로써 역사적으로 엄청난 찬반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고, 심지어는 북한에서도 벌써 안으로 감추고 밖으로 내놓지 못하는 이름이 되어 있는 만큼 이 것을 가지고 우리 사회 안에서 '보수' '진보' 타령을 벌인다면 이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입니다. 더구나 북에서 이야기하는 소위 김정일판 '주체사상'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주체사상'이란 무엇인가? 이 것은 '종교' 가운데서도 사이비 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사이비 '이데올로기'에 불과합니다.

김정일판 '주체사상'이 왜 사이비인가?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김정일의 한이 말하는 '주체사상'에는 동전처럼 양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전과는 달리 '주체사상'의 양면은 상호 극단적으로 모순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이라는 동전의 면에는 “모든 사람은 각기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담겨져 있습니다. 즉, '주체사상'의 '주인'은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당연한 명제가 많은 사람들을 '주체사상'으로 끌어 드리는 끈끈이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이라는 동전의 다른 면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상극적인 명제가 담겨져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고 해서 각자가 자기 운명을 직접 결정하려고 하면 세상은 ‘오가잡탕(五家雜湯)’의 혼란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각자의 운명을 대신 결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주체사상'의 진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즉 '수령론'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개인'은 '집단'에 의하여 치환되어 버립니다. '개인'은 '오가잡탕'이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없고 그 대신 '인민대중'이라는 이름의 '집단'이 운명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그 '집단'의 의사 결정은 '수령'과 '당'이 대신해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둔갑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 것은 종교 가운데 사교(邪敎)집단에서나 볼 수 있는 한 편의 '사기극(詐欺劇)'임이 분명합니다. 이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북한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같이 이미 '진보'나 '혁신'과는 상관없는 하나의 '사기극'인 북한을 상대로 이른바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우리 사회가 내부에서 '보수'와 '진보'의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과거 이 나라의 경제개발을 주도했던 권위주의체제 시대의 한 부산물이기도 합니다. 과거 권위주의체제 시대에 이 나라에는 제도권 밖에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던 반체제세력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 이들 반체제세력의 '적'은 제도권 안의 권위주의체제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또한 마키아벨리의 권력이론의 신봉자들이었습니다. 즉, “적의 적은 친구”이고 “적의 친구는 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적'인 권위주의체제의 '적'인 북한은 오히려 '친구'이고 '적'인 권위주의체제의 '친구'인 미국은 오히려 '적'이 되는 전도된 관념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은 제도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1987년 노태우(盧泰愚) 당시 민정당 대통령후보의 6.29 선언에 따라 대통령직선제가 부활된 뒤 과거에는 제도권 밖에 격리되어 있던 소위 '반체제' 세력의 일부가 1989년의 소위 '3당 통합' 때 김영삼(金泳三)씨를 따라 '민주자유당'에 참여함으로써 제도권 안으로 진입했을 뿐 아니라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과 더불어 정부·여당의 핵심부에 포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6.29 선언 이후 제도권 안으로 자리를 옮겼으면서도 김영삼씨와 함께 '3당 통합'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했던 일부 구 '반체제' 세력은 1997넌 제15대 대통령선거 때 김대중(金大中) '야권 단일후보'의 기치 아래 모여 “50년만의 수평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하는 데 동참함으로써 1998년에 출범한 지금의 '국민의 정부'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이들은 금년에 실시된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대거 정치권 안으로 진입한 소위 '386 세대'와 함께, '보수'를 매도하고 '진보'를 표방하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급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북관, 대북인식의 전환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 이들 구'반체제' 세력의 인사들이 북한의 동조세력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 이들이 보여주는 특징의 하나는 지난 날 이 나라에 군림했던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가 깊은 나머지 상대적으로 이 나라 권위주의체제의 '적'인 북에 대해서는 보다 '관대'하면서 반세기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경험을 통해 정립된 종래의 북한관, 대북인식이 우리 쪽 권위주의체제에 의하여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이 스스로의 북한관과 대북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은 코끼리와 장님들에 관한 인도의 우화를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즉, 북한이라는 코끼리의 실체에 관한 기존의 인식은 이를 수용할 것을 거부하고 그 대신 자신들의 직접적 접촉을 통하여 독자적인 북한관과 대북인식을 새로이 형성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왜냐 하면, 인도 우화에 나오는 장님들은 눈으로 보지 못하는 탓에 각자가 손으로 만져볼 수 있었던 코끼리의 부위를 코끼리의 실체로 인식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북한이라는 코끼리는 영리한 코끼리입니다. 코를 향하여 오는 장님에게는 코를, 귀를 향하여 오는 장님에게는 귀를, 다리를 향하여 오는 장님에게는 다리를, 상아를 향하여 오는 장님에는 상아를 만지게 해 주고 그 결과로 북한이라는 코끼리의 실체를 놓고 이들 장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즐길 뿐 아니라 남쪽 사회를 분열·이간시키는 데 이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 같은 북한의 장난, 그리고 우리 사회 안에서 일부 세력이 이 같은 북한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는 진정한 '보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지금 이 사회에 '보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지요. 지금도 여전히 이 나라 인구의 압도적 다수는 '보수' 성향의 의식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들의 에너지를 조직하고 집결시킬 수 있는 지도세력이 없습니다. 그 동안 반세기에 걸쳐 빈곤과 분단, 그리고 북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안보위협이라는 3중고(三重苦)의 악조건 속에서 '보수' 성향의 국민대중을 이끌고 이 나라의 개발시대를 주도했던 기성세대가 그 과정에서 많은 무리수를 둔 결과로 집단적으로 '도덕적 해이'의 깊은 늪 속에 함몰되어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하고 설득력 있는 체제옹호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오늘날의 경제적 풍요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업적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업적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그 분의 정치운용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부정적 시각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개발주도형 경제일변도의 정치운용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도덕적으로 멍이 들었습니다. 획일주의와 권위주의의 그늘에서 향락주의와 편의주의가 기승을 떨고 국민들의 주인의식이 마비된 가운데 “내가 하면 연애, 남이 하면 스캔들” “남의 거짓말은 불가, 나의 거짓말은 무관”이라는 풍조가 보편화되었습니다. 결국 기성세대는 더 이상 신진세대에게 '모범'이 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1997년12월17일의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승리하여 수평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인식의 테두리 안에서 그 의미를 읽어보아야 합니다. 사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김대중 후보가 처음부터 이기게 되어 있는 것을 이긴 것이 아닙니다. 김 후보는 이번에 3전4기(三顚四起)에 성공했습니다. 세 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것입니다. 김 대통령이 과거 세 번의 실패를 반복했던 것은 그가 극복할 수 없었던 삼중(三重)의 장벽이 그를 가로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의 장벽은 '지역'의 장벽이었습니다. 두 번째의 장벽은 '사상'의 장벽이었습니다. 세 번째의 장벽은 '신뢰성'의 장벽이었습니다.

대통령선거의 득표내용을 분석해 보면, 이번에도 김 대통령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구단주(球團主)인 김종필(金鍾泌)씨의 지원이 없었으면 당선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김종필씨는 스스로의 대권 도전을 사양하고 김대중 후보를 '야권 단일후보'로 추대함으로써 김 후보의 세 가지 치명적 약점 가운데 두 가지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즉, 김종필씨의 선택에 따라 그를 추종하던 충청권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전통적인 반김대중 성향에도 불구하고 김 후보에게 표를 던져 '지역의 장벽'을 허물 수 있게 해 주었고, 역시 전통적으로 반김대중 성향인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 가운데 상당수도 김종필씨의 '견제'에 기대를 걸면서 김 후보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사상의 장벽'을 허물수 있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에 이어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의 과도정권과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의 '5공' 및 노태우 대통령의 '6공'을 거친 시점에서 자민련을 이끄는 김종필씨는 이 나라 '보수' 세력에 남겨진 마지막 '보루'이자 '등댓불'이었습니다. 그의 대권 도전 사양은 사실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영남'과 '호남'의 패권 싸움 구도에서 '충청권'의 힘만으로 '홀로 서기'는 불가항력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김대중 후보가 당선될 경우 그의 주도 하에 2000년에 끝나는 제15대 국회 임기중 '내각책임제 개헌'을 단행한다”는 '약속'을 대가로 하여 대권 도전의 날개를 접었던 것입니다.

'충청권'에서는 이 내각제 개헌 약속을 믿고 김대중 후보에게 많은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보수' 세력은 그들대로 김종필씨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공동정부'에 참가할 경우 정부안에서 특히 대북·안보정책 분야에서는 김 대통령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해 주리라는 '기대'를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김종필씨는 비단 제15대 국회 임기중 '내각책임제 개헌' 공약의 이행을 그 자신이 스스로 포기했을 뿐 아니라 정부안에서 김 대통령의 대북·안보정책을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4월에 있었던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는 이 같은 김종필씨의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행보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반영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김종필씨는 아마도 재기불능의 정치적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보수' 세력의 구심점이 아닙니다.

<질문>
혹시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나들이도 조금 전에 말씀하신 코끼리와 장님들에 관한 인도 우화와 같은 경우는 아니었을까요?

<답변>
글쎄, 그 질문에 대하여 그렇다 아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답변할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번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으로 인하여 발생한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것은 남쪽 국민들 사이에서의 북한의 독재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미지가 하룻밤 사이에 '악마'의 그 것에서 '천사'의 그 것으로 둔갑한 것이 아닐까요? 이 문제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과거 동서 냉전시대의 남북관계가 가지고 있었던 특성 때문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권위주의체제 아래서 사는 동안 비단 우리의 북한관, 대북인식이 냉전적 사고에 의하여 변질·왜곡되었을 뿐 아니라 그 보다도 북한의 통치자들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미지가 사실과는 다르게 많이 왜곡·조작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여북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들에게 북한사람들의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빨간 얼굴에 뿔을 단 모습을 그리던 시절이 있었겠습니까? 이 같은 왜곡된 이미지 때문에 남북관계의 원만한 개선·해결이 불가능해진 점이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습니까? 그러한 뜻에서 왜곡된 북한관, 대북인식, 특히 북한의 지도자들의 왜곡된 이미지가 바로 잡혀지는 것은 건전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것은 아직도 남북간에 냉전구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상황 속에서는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의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이나 남북 정상회담 같은 것이 기회가 되어 그 같은 왜곡된 이미지가 바로잡혀지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적인 점이 없지는 않더라도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기대로 또 문제가 있습니다. 그 것은 정도의 문제입니다. 그 같은 이미지의 개선은 가능한 한 객관적 토대 위에서 합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김정일의 이미지 변화가 이 같은 객관성과 합리성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내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문제를 짚어보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김정일은 세 가지의 '무기'로 남쪽 국민들 사이에서 그의 이미지를 하룻밤 사이에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첫째로는 그의 순안공항 출영이었습니다. 둘째로는 평양시민의 대규모 동원이었습니다. 셋째로는 분방하기 그지없었던 그의 화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김 대통령 일행이 평양방문 기간중 접했던 김정일의 '얼굴'은 그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얼굴'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김정일이라고 하는 인물은 미지의 인물, 미궁의 인물입니다. 그 자신도 김 대통령에게 “이번에 김 대통령의 방문으로 나는 은둔자로서의 이미지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미지의 인물'로써 김정일에 관해서는 여러 개의 상이한 '얼굴'들이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오랜 세월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그와 생활공간을 공유했던 측근인물로 지난 1997년 북을 탈출, 남으로 망명한 황장엽(黃長燁) 전 노동당 비서가 그려준 그의 '얼굴'이 있고, 1984년 북으로 납치되었다가 1989년 기적의 탈출에 성공한 영화인 신상옥(申相玉)·최은희(崔恩姬) 내외가 그려준 그의 '얼굴'이 있으며, 1987년 미얀마 근처 인도양 상공에서 대한항공 858편 여객기를 폭파한 2인조 북한 폭파범중의 하나인 김현희(金賢姬)가 그려준 그의 '얼굴'이 있습니다.

또한 그에게는 북한지역을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수용소군도'로 유지하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통제와 세뇌를 통해 대다수 북한동포들을 인성(人性)을 박탈당한 기계적 도구로 변모시켰을 뿐 아니라 경제정책의 실패로 수백만의 아사자를 발생시킨 실정(失政)의 책임자로서의 그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 2박3일 동안에 김정일이 보여준 그의 '얼굴'은 이 '얼굴'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얼굴'이었습니다.

1964년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지도원으로 지도자 수업을 시작한 김정일은 평생동안 '조직'과 '선전' 및 '선동' 분야에서 경력을 키워온 사람입니다. 이번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 기간 중 김정일은 '조직'과 '선전' 및 '선동'의 대가로서의 그의 진면모를 십이분 발휘하여 그 자신의 기획·제작·감독·연출·주연으로 남쪽의 대다수 국민들은 물론 세계의 이목을 놀라게 한 거대한 '깜짝 쇼'를 꾸며냈습니다. 사실은 순안공항에, 그리고 평양시내에 모아놓은 수십만의 인파가 엄밀한 의미에서 김 대통령 일행을 환영하기 위한 군중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엄청난 결속력으로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동원된 인파였고 결과적으로는 남쪽으로부터의 방문객 일행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군중시위였습니다.

실제로 이날 평양군중 속에서 어느 누구도 당일 날 흥분했던 남쪽의 어느 TV 해설가와 수행했던 어느 교수가 분명히 '실언'한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을 거명하여 연호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연호한 것은 오직 김정일의 이름뿐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김 대통령 일행은 실제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김 대통령을 수행했던 일행은 이 '시위군중'을 '환영인파'로 착각하여 감동했으며 감동의 정도가 지나쳐 김정일의 여러 다른 '얼굴'들은 외면한 채 이번에 보여준 '얼굴'만을 가지고 그를 '악마'로부터 '천사'로 둔갑을 시켜놓은 것입니다.

물론, 이번에 김정일이 평양에서 보여준 그의 '얼굴'이 꾸며지지 않은, 분식되지 않은 그의 실제 '얼굴'중의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보여준 언행이 철두철미 꾸며진 '연기'가 아니라 진실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냉엄한 현실은 이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이 문제는 냉전시대 다른 나라에서도 제기되었던 문제입니다. 1980년대 미·소간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이 진행되고 있을 때 등장한 '경구(警句)'가 있습니다. 즉, “믿어라, 그러나 그 전에 검증하라”(Trust, But Verify First)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김정일의 이미지 변화도 반드시 '검증'을 거쳐서 이를 수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번에 보여준 '얼굴'이 진짜 실제 '얼굴'인가도 '검증'해야 하고 이와 아울러 앞에서 일부 지적된 것처럼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밖의 여러 '얼굴'들에 대해서도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번 평양나들이에 참가했던 남쪽 인사들이 코끼리와 장님들에 관한 인디안 우화에 나오는 장님들처럼 행동한다면 이번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는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관해서는 작금 우리 사회의 흐름이 걱정스럽습니다. 왜냐 하면, 지금 우리 사회에는 김정일에 관하여 '김대중 대통령이 전하고 그려내는 이미지'만이 우리들에게 전달되고 있고 이 같이 변화된 김정일의 이미지에 관하여 동조하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수구' '반동' '보수'로 매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의 이미지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그 것은 이번에 평양에서의 2박3일간의 한 편의 드라마를 통하여 그가 그의 뛰어난 연출력과 연기력으로 이룩해낸 이미지 변화가 그밖에 그가 책임져야 할 어두운 과거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는 최근 이른바 '역사 바로 잡기' 운동의 열병을 앓고 있는 중입니다. '역사 바로 잡기'라는 미명아래 과거의 많은 사건들이 재조명되고 이들 사건에 연루되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훼예포폄(毁譽褒貶)이 진행중입니다. 여기에는 심지어 여수·순천사건, 제주도 4.3사건까지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북의 경우, 물론 김일성의 후계자로써 역사적 사실들에 관하여 연령상 직접 책임을 질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일들도 적지 않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오늘날 북한에서 전개되고 있는 어느 상황으로부터도, 또 남북관계에서 일어났던 어떠한 사건으로부터도 김정일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내부에서 '역사 바로 잡기'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대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진행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에 대해서만은 분단은 물론, 6.25 전란과 그 이후 헤아릴 수 없었던 대남도발, 그리고 북의 동포들에게 가해진 엄청난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은 비단 형평성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정의의 차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또 있습니다. 그 것은 이 공동선언을 보면 우리가 김정일을 비단 분단상태 하의 남북관계를 관리하는 '분단관리'의 상대방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실상 분단조국의 '통일논의'의 상대방으로 그 존재를 수용하는 것을 그 취지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분단상태 하에서 김정일은 북한지역과 이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에 대한 절대적 통치자로써 부동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 때문에, 분단상태 하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해결하는 일은 북한지역의 유일무이한 실권자인 김정일을 상대로 해서 추진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분단상태 하에서 남북간에 평화공존을 제도화하고,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고,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고, 분단으로 인한 그 밖의 고통과 불편을 경감 내지 해소시키는 등 남북관계를 개선·해결하는 일에 관해서는 우리는 김정일을 우리의 대화 상대방으로 수용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통일은 이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통일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우리는 김정일을 상대로 따져야 할 일이 있고 그에게 책임을 지워야 할 일이 있습니다. 통일은 북의 동포들을 상대로 추진해야 하지 김정일을 포함하여 오늘까지 북한을 지배해온 통치세력을 상대로 추진해서는 아니 되는 일입니다.

한편으로 남한사회 안에서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저질러진 여러 가지 불미한 일들에 대하여 '당시의 관점'이 아닌 '현재의 관점'에서 흑백을 논하고 이를 근거로 특정 사안들에 대한 때늦은 '정의의 심판'이 설왕설래되고 있는 상황인 데 다른 한편으로 남북분단을 초래했고, 수백만 명의 동포들로 하여금 월남실향민이 되게 하는가 하면 6.25 전쟁을 도발하고, 북의 2천7백만 동포들로 하여금 오늘의 고통을 안겨준 장본인을 과연 용서해 줄 뿐 아니라 그를 상대로 '통일'을 논의할 수가 있는 것인가?

만약 '과거의 과오'와 관련하여 우리가 남쪽 사회 내부에서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면 당연히 북쪽에서 저질러졌던 역사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관대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이미 과거의 일이 된 역사 속의 일에 대해서는 남북에 대해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번 6.15 남북공동선언은 김정일의 위상에 관하여 '분단관리 방안' 논의의 상대역보다는 '통일실현 방안' 논의의 상대역으로써의 위상을 부여하는 데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6.15 남북공동선언이 역설적으로 '국론통합'에 기여하기보다 '국론분열'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없지 않은 것입니다.

<질문>
이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노리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답변>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가지고 보면 북한이 노리는 것은 크게 두 갈래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첫 번째로는 김정일의 이미지 개선, 그리고 이를 통한 북한의 이미지 개선을 들 수 있겠지요. 북한은 이 노림 수에서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우스개 소리이기는 하지만 남쪽에서는 김정일의 이미지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오는 2002년의 남쪽 제16대 대통령선거 때 만약 김정일이 출마하면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거론되기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김정일이 직접 출마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또 그가 출마할 경우 당선될 것이라는 말도 공연한 희담이겠지요. 그러나 김정일이 낯을 찡그리는, 다시 말하여 거부권을 행사하는 후보는 당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왕설래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지 않습니까?

김정일의 이미지가 좋아지니까 북한의 이미지가 덩달아 개선되고 있지요. 북한은 지금 이 개선된 이미지에 편승하여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탈피할 뿐 아니라 위상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대적 외교공세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서방국가들과의 수교협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고 또 국제정치 무대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북한의 배후세력으로 다시 확보하는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보너스로 북한은 '아시아지역 안보포럼'(ARF)에 일거에 가입이 되었고 최근 태국수도 방콕에서 열린 ARF 외상회의에서 북한의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은 단연 인기 스타가 되어 한국의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장관, 일본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무대신, 중국의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 미국의 마들레인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등과 연쇄회담을 갖는 바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경제적 혜택일 것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로 과연 어떠한 내용과 규모의 경제적 혜택이 북한의 몫이 될 것인지에 대하여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이 도합 6억여 달러의 현금지원을 포함하여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북한에게 제공하게 되어 있는 금강산관광을 필두로 하는 현대그룹의 대북 경제협력 드라이브를 통해 그 정지작업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정상회담 이후 이루어지고 있는 가시적 현상으로는 또한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 이전에 지원했던 20만 톤에 이어 10만 톤의 비료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미 항간에서는 정상회담이 실현되었다는 것은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경제적 지원이 북에 제공되었거나 되기로 약속이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추측이 그럴 듯 하게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특징은 북한의 태도에서 전례 없는 여유가 과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궁금한 것은 이 같은 여유의 출처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의 경제는 사실상 파탄상태였습니다. 1994년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도 사실은 북한의 경제난국의 실상을 뒤늦게 파악한 데서 온 충격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유력하게 제시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한 북한의 경제난국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생긴 여유냐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저 나름의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북한이라고 하는 체제는 배급에 의존하는 체제입니다. 공산주의 체제의 체제논리는 “모두로부터 능력에 따라,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 체제로써 북한의 사회적 안정은 모든 종류의 생필품을, 물론 계급과 신분에 따라 차등적이기는 하지만, 계획된 배급일정에 따라 차질 없이 배급해 주느냐의 여부에 따라 좌우되게 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의 경제실정은 이 같은 배급의 차질 없는 실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하여 난국과 위기가 심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에 북한은 배급제도를 재정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배급대상의 규모를 과감하게 감축한 것입니다. 김정일이 인민 전체를 배급으로 먹이고 입힐 능력에 한계를 느끼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배급의 대상을 북한의 체제유지에 필요한 ‘기간요원’으로 국한시키고 그 테두리밖에 있는 주민들은 아예 배급 대상에서 배제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규모가 크게 줄어든 대상에 대한 배급은 최근 미국과 한국 및 중국과 기타 국제구호기관을 통해 확보되는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되자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주민을 배급대상으로 삼았을 때 공급물량의 부족에서 오는 중압감으로부터 오히려 해방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북한은 이 같이 확보한 '여유'를 이용하여 통이 큰 게임을 시도하기로 한 듯 합니다. 남한을 상대로, 그리고 남한을 교량으로 이용하여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을 상대로, 대담한 '통일전선' 전략·전술을 시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서 남쪽에서 거두려고 하는 수입은 크게 보아 분명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제적 혜택입니다. 또 하나는 남한 사회의 분열·이간입니다. 경제적 혜택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했지요. 남한 사회의 분열·이간에 대해서도 이미 앞에서 언급했습니다. 이와 아울러 또 하나의 노림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것은 주한미군 문제입니다.

6.15 공동선언에는 주한미군 문제를 비롯하여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 문제에 관해서는 김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양자가 합의할 수 있는 정도의 '어휘'와 '문장'을 찾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6월15일 평양으로부터 귀환길에 서울공항에서의 귀환인사를 통해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에 관하여 김정일과 상당한 논의가 있었고 의견의 일치가 있었으며 두 지도자간에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김 대통령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도 '기능과 위상의 변화를 전제로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는 데 대하여 상당한 공감대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김 대통령의 주장이 과연 사실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김정일의 '확인'이 필요하나 아직까지 김정일로부터는 이 문제에 관한 확인 발언이 없습니다. 그보다도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김 대통령의 발언은 이 문제의 실체를 왜곡시키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은 그렇게 임의로 쉽게 좌우될 수 없는 것입니다. 1949년 한반도에서 철수했던 주한미군은 1950년 북한군의 6.25 남침을 격퇴시키기 위하여 한반도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을 명시하는 근거가 되는 많은 장치들, 즉 법적 제도들이 마련되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1950년 대전에서 한미간에 체결된 마이어 협정을 비롯하여 1954년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그 뒤의 한미 행정협정을 비롯한 일련의 양국간 협정들, 그리고 ‘작계 5027’을 포함하여 한미연합작전 체제 등이 있습니다. 이들 법적, 제도적 장치들에는 예외 없이 주한미군의 존재는 북한군의 재남침을 억제하는 억지전력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재남침이 있을 때 이를 격퇴하는 것으로 그 목적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이 없어진다면 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은 그 명분이 소멸될 뿐 아니라 주한미군 주둔의 근거가 되는 앞에서 거론한 일체의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일거에 존재이유를 상실합니다.

이렇게 되면 한미간의 관련 협정과 조약 및 그 밖의 제도와 장치들은 수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정이 되지 않으면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의 근거가 없어지게 되고 또 수정을 하려고 할 경우에는 수정 내용에 관하여 한미간에 예측할 수 없는 협상의 고비가 있게 되며, 이 때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북한도 이 수정 내용에 관여하려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김 대통령은 “주한미군이 앞으로도 계속 남아서 지역안보의 균형자, 조절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안보의 균형자, 조절자로서 주한미군이 주둔한다면 한미연합사는 왜 필요하며 '작계 5027'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앞으로 일정한 시점에 가서 북의 김정일이 김 대통령에게 “우리가 전쟁을 하지 않기로 해서 전쟁의 위험이 소멸되었는데 한미연합사령부는 왜 유지되고 있고 주한유엔군사령부는 왜 해체되지 않고 있으며, '작계 5027'은 왜 유지되고 있고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왜 계속되고 있는가”라고 따질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더구나, 작금 우리 사회 내에서는 주한미군을 하나의 '신관'으로 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반미감정의 표출이 조직적으로 심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의 남북정상회담은 아마도 그 시기와 여건의 성숙 여부에 대한 '검증'의 기회가 박탈된 가운데 주한미군의 조기철수를 가속화시키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으며, 이야말로 김정일의 고단수 노림 수에 김 대통령이 말려든 경우가 아니냐는 우려가 머리를 들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국군은 국군대로 방위력 증강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내년부터 그 동안 IMF 사태로 인하여 지연시켜 온 8대 방위력 증강사업에 착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북한으로부터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이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남북의 정상 차원에서 전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는데 도대체 상호 군비감축과 통제는 외면한 채 무력증강을 계속 추진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경우 우리 정부는 과연 어떻게 이에 대응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남북간에 효과적인 군비감축이나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하에서 이번의 평양 남북정상회담으로 북은 남의 전력관리에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의 정상회담에 호응하고 나선 북한의 의도, 김정일의 의중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앞으로 있게 될 남북간 각료급 회담과 언젠가는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후속 남북정상회담을 통하여 거듭 '검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검증' 과정에는 또 다른 복병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것은 이번의 정상회담을 통하여 다시 활성화되고 있는 남북대화가 잘못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 정부가 그러한 강박관념 때문에 저자세로 북측이 끌고 다니는 대로 끌려 다니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벌써부터 북한의 의도에 대하여 불안감을 갖지 아니 할 수 없게 만드는 일련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선 지난 27일 북측이 통보한 소위 '장관급' 당국간 회담의 북측 대표단 명단이 문제입니다.

북측 대표단은 '전금진'을 단장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금진'에 대하여 우리 쪽 언론들은 그가 과연 '장관급'에 해당되는 인물인지를 놓고 설왕설래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직급'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금진'은 사실은 '전금철(全琴哲)'이라는 가명(?)으로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남북대화에 거의 고정적으로 참가해 온 사람으로 그의 정체는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의 '대남회담 전문가'중의 한 사람입니다. 즉, '통일전선'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각료급 회담 북측 대표단은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주축으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대표단에는 군 관계 인물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표출되는 북측의 대화자세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과거의 그 것과 달라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질문>
통일문제, 남북대화 그리고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소위 386 세대에 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잘 아시다시피 소위 386 세대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시대적 산물입니다. 386이 무엇입니까? 나이는 30대이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6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이 감수성이 예민한 지적 형성기를 경과하고 있을 때 우리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이 특수한 것이었습니다. 유신독재의 시대였지요. 이 때는 정치적 민주화가 경제개발의 강공 드라이브에 밀린 하위 개념으로 전락한 가운데 이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과 공권력간의 마찰 속에서 엄청난 사회적 갈등이 빚어질 때였습니다. 386 세대는 이 때 공권력에 맞서는 대항 전투세력이었고 여기서 “적(敵)의 적과의 동침(同寢)”이라는 분단국가 특유의 역사적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난무한 것이 NL이다 PD다 하는 의사(疑似) 이데올로기들이 아니었습니까? 그 동안 우리 사회는 많은 변모를 경험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1979년의 10.26과 12.12, 5공과 6공의 시대를 거쳐 소위 '문민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 시대에 와 있고 경제적으로는 최근에 와서 IMF 사태라고 하는 엄청난 홍역을 치렀습니다. 이 동안에 386 세대도 연령적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사회 전 영역에서 허리 부분을 장악하는 위치에 와 있습니다.

이들 386 세대의 북한 체험 역시 특이했습니다. 우선 이들의 지적 형성기에는 우리나라의 반공·안보가 최대·최고의 덕목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을 때입니다. 당시의 정부가 추진한 반공·안보정책의 요체는 우리 국민을 북한, 그리고 공산주의로부터 완전히 격리·차단시키는데 있었습니다. 여기서 생겨난 것이 국가보안법이지요.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은 당연히 부작용을 초래했습니다. 분단과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386 세대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색맹이 되어 특히 북한,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음성 체질’을 갖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역대 정부·여당은 정치적 격동이 있을 때마다 북한을 핑계로 하여 권위주의적 통치행태를 정당화·합리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386 세대에게 정부·여당의 반공·안보정책은 권위주의체제 유지를 위한 구실로 각인되어 왔습니다. 그들은 정부·여당의 반공·안보정책을 불신했고 북한은 이 틈새를 교묘하게 노리는 '통일전선' 전략·전술로 386 세대를 공략했습니다. 북한은 그 것이 NL파가 되었건, PD파가 되었건, 캠퍼스내의 젊은 반체제 세력들을 무장시킨 혁명이론의 공급원이었습니다. 이른바 '반제 민족해방 인민민주의 혁명' 이론이 대학가를 휩쓸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갔고 또 그들도 결국은 대한민국, 그리고 남북분단의 구도 속에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만든 체제의 아들딸들이었습니다.

이제 40대의 중·장년기에 도달한 386 세대는 국회에 진출하고 있고, 여야를 막론하고 각 정당·정파의 두뇌부에 포진하고 있으며 언론매체의 일선생활을 졸업하고 편집국의 데스크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북정책에도 이제 이들의 입김이 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 겪어야 했던 경험의 결과로 북한에 관한 한 이들의 생각은 인도 우화의 장님들의 그 것과 방불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코끼리의 몸을 직접 만져 보려 하고 있고 또 직접 만져 보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의 관심사는 그러한 촉수(觸手)의 결과로 그들이 코끼리를 코끼리로 느끼느냐 아니면 코끼리가 아닌 다른 것으로 느끼느냐입니다. 북한이라는 코끼리는 그들이 코끼리를 코끼리로 파악하지 않고 만져보는 부위, 다리면 다리, 귀면 귀, 코면 코, 상아면 상아, 복부면 복부, 꼬리면 꼬리로만 느끼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소위 386 세대의 북한 경험이 어떠한 결론으로 귀착하게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소위 386 세대 현상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인간의 세대라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어서 386 세대가 영원한 것이 아니고 386 세대의 뒤에는 또 이어서 올라오는 후계 세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386 세대는 386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는 것처럼 10년의 기간을 상징합니다. 그만큼 층이 옅다는 것입니다. 386 이후에는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세대가 청년기라고 하는 숙성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 386 세대들은 과거 386 세대에게는 갈등의 원천이었던 경제개발의 열매를 먹고 자란, 그리고 자라는 세대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탈정치·탈이데올로기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인터넷, 컴퓨터, 증권시장, 전자상거래, 컴퓨터 게임 그리고 피부를 관능적으로 자극하는 음악과 춤 같은 것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앞의 세대들에게는 절대적이었던 가치들이 상대적 의미만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선거 때 투표도 하지 않습니다. 통일 역시 이들에게는 오직 상대적인 가치일 뿐입니다. 만약 이들에게는 통일이 부담으로 부각된다면 그들은 통일도 짐스러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엄청난 문화적 의식구조 변화를 겪게 되어 있고 따라서 오늘 우리가 걱정하는 386 세대 문제도 조만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하는 때가 오게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때가 되면, 아마도 우리의 남북관계, 통일문제, 대북정책도 아주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질문>
지금 정부는 이번에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이 '햇볕정책'의 결실이라고 얘기하고 있지요. 이 같은 정부의 설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우선 이 문제는 '햇볕정책'이 좋은 정책이냐 안좋은 정책이냐를 가려 보는데서 화두를 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네요. 한 마디로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햇볕정책'은 좋은 정책이지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일문제, 그리고 남북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선결적으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것은 북한의 변화입니다. 북한이 완전히 공산주의를 걷어치우고 민주주의를 선택하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지요. 그러나 단 숨에 그렇게야 되겠어요? 그에 앞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많은 변화가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북한이 오늘의 중국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그러한 변화를 자극하고, 유도하고, 촉진시키는 정책은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햇볕정책'은 바로 그러한 북한의 변화를 자극하고 유도하는데 목적을 둔 정책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김 대통령도 그렇게 말씀하신 바 있지만, '햇볕정책'의 '전도사'역을 자임한 임동원(林東源) 현 국가정보원장이 통일부장관 시절에 한 연설 내용을 보면 '햇볕정책'은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방과 체제변화의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고 요컨대 “북한을 변화시켜 보자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북한이 이 같은 내용의 '햇볕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엉뚱한 것입니다. 즉, '햇볕정책'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전부터 꿈꾸어 오던 흡수통일을 또다시 꿈꾸면서 교류의 간판 밑에 공화국 북반부에 부르조아 자유화 바람을 불어넣으려 하는 것”(김정일)이며 “화해·협력의 미명 아래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이질화시켜 저들의 자유민주주의체제에 흡수통일시키자는 악랄한 반북 모략책동”(백남순)이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북한 지도부의 어록으로 미루어보면 북한이 이번에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인 것은 '햇볕정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이유와 목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그 것은 '햇볕정책'의 부메랑 현상입니다. 정부측 주장에 의하면 '햇볕정책'은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전개되고 있는 양상은 이를 통해 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남의 변화'만 강요당하는 현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북이 우리측 언론에 대해 노골적인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야당 총재에 대해서도 사실상 '길들이기'를 시도하는데도 이를 문제삼기는커녕 오히려 '양비론(兩非論)'의 그늘 아래서 우리만의 순치(馴致), 우리만의 변화만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심각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질문>
이번 제헌절 기념식에서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이 남북 국회회담의 재개를 제의한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남북회담의 대전제는 그에 앞서 남쪽에서의 의사통일입니다.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 이후 지금 대내적으로 여야간에는 대북정책을 놓고 심각한 입장차이가 노정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남북 국회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북측에 의하여 악의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만 있을 뿐이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북관계 개선·해결에는 기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국회 차원에서는 남북 국회회담에 앞서 좁게는 여야간, 넓게는 국민적 차원에서 대화의 공간과 광장을 마련하여 대북정책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봅니다.

<질문>
그 동안 여러 차례의 남북대화에 참가했던 경험자의 입장에서 과거에 있었던 남북대화와 이번에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대화간에 차이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답변>
가장 큰 차이는 쌍방 대화의 주역인 쌍방의 최고당국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대화에 나서고 있는 쌍방의 최고당국자인 남의 김 대통령과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각기 상당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같은 자신감들이 어쩌면 양쪽 모두 '착각'의 소산일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김 대통령은 상대편을 설득해서 김 대통령의 페이스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김정일은 김정일대로 상대편인 김 대통령이 자기 뜻대로 요리할 수 있는 상대라는 '착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이 같은 '착각'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6.15 공동선언에서 얼버무려 타협하여 봉합한 애매한 문면과 표현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밖에 공동선언의 문면에 표현되지 아니 한 대화 내용이 표면화되는 과정에서 이 서로 다른 '착각'이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질문>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재개되는 남북대화의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과거에도 항상 그랬었지만, 남북대화는 남북 쌍방에 다 같이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담은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부담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 그 부담을 견딜 수 없게 되는 쪽에서 대화를 깨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동안의 남북대화의 역사는 이유는 어찌 되었던지 대화를 깨는 쪽은 항상 북쪽이었습니다. 남북대화는 불가피하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북의 개방을 강요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개방은 북의 체제 변화를 자극하고 그 결과 북한체제의 안전을 위협하게 됩니다. 그런데, 남북대화에 임함에 있어서 북한이 긋고 있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 선이 있습니다. 그 것은 김정일 체제가 위협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문제는 김정일 체제는 위협하지 아니 하면서 북한이 감당할 수 있는 개방이 어디까지일 것이냐 하는데 귀착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우리 쪽에서 본다면 남북대화를 하는 목적은 김정일 체제의 안위와는 상관없이 북한의 변화를 자극하고, 유도하고, 촉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같은 변화가 수반되지 아니 한다면, 그리고 남북대화가 북한의 변화를 자극하지는 못하면서 김정일 체제라고 하는 시대도착적 체제의 유지·강화에 역으로 이용당하기만 한다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상당한 반발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만큼 남북관계는 쌍방이 함께 움직이는 동태적 관계이지 어느 한 쪽만 동태적으로 움직이고 다른 한 쪽은 정태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을 용인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번에 이루어지는 남북대화의 지속성과 확장성에 대한 판단은 앞으로 있게 될 후속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있게 될 쌍방의 손익계산과 이에 입각한 자세조정 내용을 관찰하면서 내려야 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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