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우씨는 자신이 기자인지 선동원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명백한 허위사실에 대하여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면 기자가 아니다.
주진우 기자라는 사람이 어느 출판 기념회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하였다가 朴正熙 대통령 아들 지만 씨로부터 死者(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였다.

"64년도에 대통령이 독일에 간 것은 맞습니다. 거기까진 팩트인데 뤼프케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뭐였었냐면요, 독일은 이미 조금 민주화가 되어서 대통령이 오자마자 호텔을 민주화 인사들하고 시민단체 인사들이 데모를 해가지고요 대통령은 다른 데 한 발짝도 바깥에 못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아니 독재자하고, 우리나라도 그렇잖습니까? 아프리카에서 쿠데타로 정권 잡은 사람이 온다고 해서 막 만나주고 그러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명박도 그러지 않잖습니까?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탄광에 간 거는 맞는데, 나머지는 다 구라(거짓말)입니다, 그거."

주 씨가 너무나 자신 있게 한 이 말은 허위이다. 朴正熙 대통령과 서독 대통령 뤼브케 사이엔 몇 차례의 회담과 식사 자리가 있었고 국내 신문에 자세히 보도되었다(아래 기사 참고. '박정희 傳記'에서 발췌). 주씨는 서독 대통령이, 자신을 찾아온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치부하여 만나주지 않은 것처럼 썼다. 이 사람은 한국을 무슨 식민지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主權(주권)국가 頂上(정상)끼리의 회담이 갖는 외교상의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폭언이자 自虐的(자학적) 생각이다. 박정희를 미워하는 마음이 앞서다가 보니 기초적 사실확인도 생략한 듯하다.

주진우라는 사람이 어느 잡지 기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박지만씨에게 허위사실 유포에 대하여 인정하고 깔끔하게 사과하여야 할 것이다. 기자는 실수할 수 있다. 誤報(오보)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실수에 대하여 인정, 사과하면 된다. 그렇게 하였을 경우, 지만씨는 고소를 취하해야 할 것이다. 만약 명백한 허위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광우병 선동 MBC-PD들이 그러하였듯이 억지를 부리면서 변명만 한다면 기자가 아니라 선동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주진우 씨는 자신이 기자인지, 선동원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



초라한 행차

1964년 12월 7일 월요일 오전 6시 35분 이탈리아 로마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북상하며 알프스 산맥 위로 날기 시작했다. 오전 7시경 박정희는 스튜어디스가 갖다 준 모닝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 햇살을 받고 아름답게 전개되는 알프스 산맥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아마도 구미 보통학교에 다닐 무렵 감동깊게 읽었던 《나폴레옹 전기》의 알프스 원정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비행기가 서독 상공으로 진입하자 박 대통령은 기자들을 포함한 전 수행원들에게 몸가짐에 조심하라고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박 대통령은 서울을 떠나기 전부터 수행원들에게 “서독에 가서는 분에 넘치는 쇼핑을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했었다.

박 대통령을 태운 보잉 707기는 오전 8시 19분 서독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한·독 양국 국기가 크게 걸려 있었고 박 대통령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페링 주한 서독대사가 독일 연방공화국 의전장과 함께 출영했다. 박충훈 상공부 장관 일행도 12월 4일 한·독 경제회담 참석차 먼저 와 있다가 이날 100여 명의 서독 교포들과 함께 공항에 나와 박 대통령의 도착을 환영했다.

귀빈실로 안내된 박 대통령 부부는 독일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라인 공항장은 육영수 여사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했다.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에 근무 중인 홍세표(전 외환은행장·육영수의 언니 육인순의 장남) 부부가 18개월 된 딸 素逸(소일) 양을 데리고 나와 대통령 부부에게 인사를 했다. 육영수는 “너를 여기서 보게 되는구나”하며 끌어 안았고, 박 대통령은 소일 양의 자그마한 손을 잡고 흔들어 주었다.

특별기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떠난 것은 오전 8시 30분. 라인강을 따라 25분간 비행한 뒤 도착한 곳이 본 공항이었다. 정기항로를 나는 여객기를 얻어 탄 탓에 박 대통령 일행은 서울을 떠난 지 28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검은 코트 차림에 중절모를 손에 든 박정희 대통령과 밍크 목도리를 두른 한복 차림의 육영수는 독일연방 외무부 의전장의 안내를 받아 트랩을 내려갔다. 박 대통령은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 내외와 그 뒤에 서있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 오이겐 게르슈텐마이어 하원의장 등 3부요인과 인사했다.

마흔일곱 살의 박정희 대통령과 일흔 살의 뤼브케 대통령은 나란히 의장대의 경례를 받았다. 애국가와 서독 국가가 울려 퍼졌다. 박정희는 뤼브케 대통령의 안내로 3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의장대 사열이 끝나자 박 대통령은 의장대장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사기왕성한 貴(귀) 군대를 사열할 수 있게 된 것을 만족스럽게 여깁니다. 덕택으로 독일 착륙 제1보의 인상은 매우 좋았으며 무척 기쁩니다.”

장신 거구의 의장대장도 흥분하여 “예, 각하. 저도 오늘 각하께서 처음으로 우리 부대를 인정해 주신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기는 바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박정희-뤼브케 양국 대통령은 연단으로 올라갔다. 뤼브케 대통령의 환영사가 있었다.

“독일 국민은 충심으로 박 대통령의 방독을 환영하며, 국토양단이라는 설움의 공동운명 속에 놓여 있는 한·독 양국은 우리의 공동목표와 공동희망의 완수를 더욱 굳게 약속합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의 도착성명이 있었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貴國(귀국)이 폐허 위에 이룩한 기적적인 건설을 이 눈으로 보고 또한 배워서 양국 간의 깊은 이해와 긴밀한 협력에 의해 공동의 목표인 국토통일을 최단 시일에, 또한 東西(동서)가 때를 같이하여 성취할 것을 염원하며 서약하는 바입니다.”

영접 행사가 끝나자 박 대통령 부부는 뤼브케 대통령과 리무진에 同乘(동승)하여 공항을 떠났다. 박충훈 상공부 장관을 수행하여 본에 도착해 있던 상공부 공업 제 1국장 오원철(대통령 경제 제 2수석비서관 역임)도 박 대통령의 행렬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오원철 국장은 박 장관과 함께, 아침식사만 제공되고 목욕을 하면 돈을 따로 지불해야 하는 하루 3달러짜리 민박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오원철은 훗날 그의 책 《한국형 경제건설(기아경제연구소 펴냄)》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은 초라해 보였고 가엾어 보였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데 몇 대의 사이카가 선도하는 게 고작이었다. 길 옆에 스무 개쯤의 태극기가 축 처진 채 걸려 있었다. 숙소인 스위트룸이라는 게 고작 10평도 채 되지 않았다. 당시 임시 수도였던 본은 인구가 3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로 정부청사라는 게 언제 지은 지도 모르는 낡은 국민학교 건물이었다. 서독 사람 스스로 이렇게 검소하게 지내고 있으니, 한국의 대통령을 홀대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없었다>

12월 7일 오전 10시 30분, 숙소인 쾨니히스호프 호텔에 도착하자 뤼브케 대통령이 박 대통령을 안내하여 로비로 들어섰다. 박 대통령 곁에서 통역을 하려고 바짝 따라 붙었던 백영훈 통역관의 증언.

“부동자세로 선 경호원들만 보이는 로비에 웬 서양인이 의자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황당했지요. 그 순간 그는 신문을 천천히 접으며 박 대통령을 바라보고 웃더군요. 유태인 巨商(거상) 아이젠버그였습니다. 순진한 박 대통령은 무척 반가워하면서 저를 통해 뤼브케 대통령에게 아이젠버그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잘되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도움을 주고 계신 아이젠버그 씨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날 이후 박 대통령의 서독 체류 기간 내내 아이젠버그는 박 대통령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


아우토반

1964년 12월 7일 낮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의 임시 수도 본의 관청가에 자리한 우리 대사관에서 최덕신 대사 부부가 마련한 韓食(한식) 오찬에 참석했다. 오찬이 끝나자 박정희는 뤼브케 대통령에게 전달할 선물을 점검했다. 미리 서독에 파견되었던 박충훈 상공부 장관으로부터 교섭경과를 보고받고 한·독 공동성명의 한국 측 최종안을 검토했다.

오후 5시 30분, 박 대통령은 대사관에서 호텔로 돌아와 뤼브케 대통령 관저에서 열리는 비공식 小(소)만찬회에 참석했다. 사적인 대화가 오가는 중에 박정희는 뤼브케 대통령의 방한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뤼브케 대통령은 즉석에서 수락했다.

박 대통령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독일의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이었다. 나치 정권하에서 총연장 1만 4,000km를 목표로 건설하기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건설이 중단될 때까지 3,860km를 완성시켰던 아우토반은 박 대통령이 방문할 무렵엔 ‘세계에서 자동차가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도로’로 유명했다.

뤼브케 대통령과 환담 중에 다음날 일정이 거론되자 박 대통령은 “쾰른 시를 방문할 예정”이라 말했다. 그러자 뤼브케 대통령은 “쾰른에 가시려면 아우토반을 달리시겠군요. 본-쾰른 간의 아우토반은 가장 먼저 개통되었던 구간으로서 우리의 자랑이지요. 아우토반은 독일 경제부흥의 상징이랍니다.”

박 대통령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이 도착 첫날 숙소로 돌아 온 시간은 밤 10시가 약간 넘어서였다. 박정희 부부는 12월 6일 김포공항을 떠난 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1964년 12월 8일) 박 대통령은 쾨니히스호프 호텔 대통령실 침대에서 피곤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박정희는 육영수와 아침식사를 마친 뒤 오전 10시 40분에 뤼브케 대통령 관저로 출발했다.

오전 11시, 뤼브케 대통령 관저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장기영 부총리, 박충훈 상공부 장관, 김동환 국회 외무위원장,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참석했고, 독일 측에서는 뤼브케 대통령과 슈뢰더 외무장관, 페링 주한 서독대사, 최덕신 대사 등이 참석했다.

공식 행사가 끝날 무렵 박 대통령은 뤼브케 대통령과 부인에게 대한민국 최고훈장인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했다. 순금으로 제작된 이 훈장은 ‘국가원수에게 수여되며 우방 국가원수에게도 수여될 수 있다’는 우리나라 賞勳法(상훈법)에 따라 준비된 것으로 외국원수로서는 뤼브케 대통령이 처음으로 받게 되었다.

순금 훈장을 두른 뤼브케 대통령 부부는 ‘분더바아르! 분더바아르!(원더풀)’를 연발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박 대통령 부부에게 독일 연방공화국 최고훈장인 특등십자 대공로 훈장을 수여했다.

이번 방문에서 우리 측은 약 40여 개의 훈장을 서독 정부의 고관들에게 수여했지만 서독 측은 그들의 헌법상 ‘외국 원수가 방문하여 수여하는 훈장의 3분의 1을 서독 정부가 수여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우리 측에게 10여 개의 훈장을 수여했다.

양국의 훈장 수여가 끝나자 박·뤼브케 대통령은 별실로 자리를 옮겨 상호 선물 교환을 했다. 박 대통령은 李象範(이상범) 화백의 풍경화로 제작된 열두 폭 병풍, 국산 비단 한 疋(필), 족자 등을 선사했고 뤼브케 대통령은 망원경이 달린 엽총 한 정과 실탄 한 상자 및 어린이 선물용 카메라 2대와 장난감 기차 등을 선사했다.

이어서 본 시청을 방문 한 뒤 한국 대사관으로 와서 韓食(한식)으로 점심을 든 박 대통령 일행은 라인강 북쪽에 위치한 쾰른 시로 향했다. 이날 박정희는 본-쾰른 간의 고속도로를 시속 160km로 달렸다. 박 대통령은 가는 길과 오는 길에 두 차례 고속도로 상에서 차를 멈추게 한 다음 차에서 내려 2, 3분간씩 路面(노면)과 중앙분리대, 교차로 시설 등을 주의 깊게 살폈다. 도로 앞뒤를 전망하느라 까치발로 서서 멀리까지 내다보기도 했다. 다시 차에 올라탄 박 대통령은 안내를 맡은 뤼브케 대통령 의전실장에게 고속도로에 관해 소상하게 물었다.

“고속도로의 건설은 어떻게 합니까.”

“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건설비는 얼마나 듭니까.”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한 겁니까.”

박 대통령의 질문은 본-쾰른 간을 왕복하는 차중에서 계속됐다. 다행히 의전실장은 고속도로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고속도로망을 소개할 때는 서독의 지도를 펴놓고 박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열심히 수첩에 메모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 일행은 오후 4시 30분에 숙소로 돌아왔다가 오후 7시로 예정된 뤼브케 대통령 주최 만찬까지 잠시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동안 박정희 대통령은 로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장기영 부총리와 이후락 비서실장 등이 배석하고 있었다. 갑자기 박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달려보니 기분들이 어떻습니까?”라고 묻더니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겨버렸다.

오후 7시에 시작된 뤼브케 대통령 주최 만찬장에서 박 대통령은 다음날 회담할 서독 총리 에르하르트와 정치를 떠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경제학 교수 출신의 에르하르트는 수사자를 연상시키는 풍모를 가졌지만 부드럽고 진지한 태도로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과제들을 걱정해 주었다. 박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총리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