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의 눈먼 사랑과 주변의 싸늘한 눈

남북의 눈먼 사랑과 주변의 싸늘한 눈

글쓴이 최성재/50,남



(1)
남북한 당국의 눈먼 사랑이 가관이다. 정부와 주종관계인 노동신문과 중앙통신의 글과 말이, 정부와 밀월관계인 한겨레와 KBS의 글과 말이랑 남북 문제와 외교 현안에 관한 한 어찌 그리 닮았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태어나자마자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 자연의 오묘한 조화로 거의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신기하게 닮았다. 체호프의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의 올렌카가 팔자가 기구해서 여러 번 결혼하게 되지만 그때마다 새 남편이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남자로 알고 마을 사람들에게 그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처럼, KBS는 조선총독부, 이승만, 장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렇게 9번 신랑을 바꿨는데, 그 때마다 새 신랑을 입에 닳도록 칭찬한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신랑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그 입의 혀처럼 굴었다. 그 입에서는 오로지 아부의 노래만이 흘러나온다. 더더욱 재미있는 것은 민주화의 텃밭에서 비로소 발아한 한겨레신문과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모르지만 구원(舊怨)을 싹 씻고(그 자리에 노동신문과 중앙통신도 있었는지는 모름) 둘이서 손을 꼭 잡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과거의 비리를 캐내는 데 신바람이 났다. 새 신랑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두 신문은 일제시대 말에는 아예 윤전기에 녹이 쓸었고 권위주의 시대에는 고도의 암호 체계를 발달시켰었다. 그 중 한 신문은 바지도 치마도 입지 않아 아랫도리가 허전한 채로 세상에 조리돌린 적도 있었지만, 그런 고충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울며 겨자를 먹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지만 겨자를 먹은 것은 먹은 것 아니냐'며 사정없이 다그친다.

이유는 오직 하나,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6·15공동선언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고 자꾸만 고개를 외로 꼬는 데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조선과 동아가 정부의 뜻과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고 특히 대북 문제에서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와 KBS와 MBC를 따라 삽살개나 앵무새처럼 꼬리를 흔들고 노래를 부르면, 모든 과거는 불문에 붙일 게 틀림없다. 새로운 '통일 동지'에게 샴페인으로 샤워라도 시켜 줄 것이다.
(2)
금지옥엽으로 자란 재벌의 딸이 '주먹과 깡'밖에 없는 젊은 깡패 두목과 사랑에 빠진 격이다. 온갖 소문이 무성하지만, 그녀의 눈엔 그가 세상에서 제일 멋져 보인다. 그는 수백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나타나 박력 있고 세련된 매너로 그녀를 사로잡는다. 영화계의 대부라는 말도 있다. 잘하면 그이 덕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세계적인 은막의 스타로 뜰지도 모른다! 그녀는 창업자 할아버지와 제2 창업자 아버지가 일군 재산을 흥청망청 쓰면서도 어디서 기업 야사를 들었는지, 치부 과정이 부끄럽다며 아름다운 입을 열 때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욕한다. 술수가 능한 제3대 회장, 작은오빠와는 죽이 잘 맞아 함께 큰오빠와 창업 공신들은 다 몰아내고 기업을 혁신한다며 함께 놀던 작은오빠 동기들과 자기 동기들을 우르르 불러모았다. 기술과 경영을 알려 주고 흠이 있는 제품도 웬만하면 사 주던 미국의 제휴 기업은 이제 더 이상 기술도 경영도 배울 게 없고 이익 날 것도 없다며, 서서히 관계를 정리한다. 그 1세는 할아버지와 6·25에서 싸웠고, 그 2세는 아버지와 월남에서 싸운 미국의 그 대기업은 이제 더 이상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싸구려 제품을 더 이상 사 주지 않으려 한다. 참다 못한 미국의 대기업 3세는 여동생이나 마찬가지인 그녀가 깡패와 결혼하든 말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이를 처음에는 은근히 이제는 분명히 통고하고 그녀를 지켜본다.

기업을 혁신한다며 그녀의 작은오빠는 중국의 신흥 기업과 굳게 손을 잡는다. 기술과 경영을 아낌없이 가르쳐 주고 공장도 지어 주니까, 중국의 그 기업은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다. 그 사이 미국의 그 대기업은 중국의 이 기업과 합작한다. 어느새 그 기업이 한국의 대기업을 능가한다. 머잖아 한국의 어중간한 그 대기업은 압록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게 뻔하다. 작은오빠는 여동생의 아버지뻘인 늙은 남자 친구와도 죽이 잘 맞다.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자 약속어음 한 장 안 끊고 영수증도 안 받고 현찰로 달라는 대로 준다. 어디에 썼는지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벌려도 그것 몇 푼 되지도 않는 거라며 껄껄 웃으며 잘 살게 되면 갚고 어려우면 굳이 안 갚아도 된다며 아낌없이 다시 현찰을 007가방에 가득 담아 준다. 자재도 달라는 대로 준다. 알고 보니, 그 깡패의 아버지는 증조 할아버지가 독립 운동할 때, 서로 먼 발치에서 바라본 적이 있다고 한다. 마침내 독립운동의 후손끼리 만난 셈이다.

이제 그 기업은 완전히 속 빈 강정이다. 기업은 노동자의 것이라며 붉은 머리띠를 맨 노조가 달라는 대로 주고, 기업은 사회의 공공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며 외국에서 박사 학위 받은 학자가 충고하는 대로 마구 기부하고, 기업은 주주의 것이라며 해마다 이익이 나든 안 나든 배당을 듬뿍 듬뿍 한 탓이다. 미국과 관계를 끊으며 일본과도 제휴하지 않고 자체 기술도 거의 개발하지 않은 탓이다. 이제 부도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미국의 그 대기업은 국제 깡패가 한국의 돈 많은 젊은 애인으로부터 받은 달러로 폭탄을 만들어 여차하면 한국 재벌을 협박하여 갈취하려고 하고, 계속 한국의 기업과 관계를 맺으면 미국 대기업의 본사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을 보고, 때만 되면 아예 제거해 버릴 결심을 굳히고 중국의 합작 기업에도 협조를 구한다. 원료와 기름을 더 이상 보내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합작 관계를 정리하고 대만이나 인도 또는 일본과 제휴할 것이라고.
(3)
이제 미국은 제2의 6·25 후 북한을 차지한 다음 단독으로 관리하거나 중국, 일본, 러시아와 공동 통치하려고 할지 모른다. 한미공조가 확고한 상태에서는 남북통일이 당연지사였지만, 이제는 그 의무감에서 해방되었을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동북공정'이란 계획은 과거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 못지 않게 미래의 역사를 새로 쓰려는 수작이다. 북한을 여차하면 티베트나 내몽골처럼 자치구로 편입하겠다는 말이다. 일본도 세상 모르고 설치는 한국의 통일을 바랄 리가 없다. 미국의 양해하에 군사와 경제 양쪽에서 북한 재건에 참여하려고 할 것이다. 러시아도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철로와 송유관의 부설을 독차지하고 부동항을 확보하여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벌 궁리를 할 것이다. 북한의 군사력이 가공할 만하지만,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그것은 배고픈 호랑이의 이빨일 뿐이다. 시간만 좀 끌면, 한국과 분리시켜 놓으면 제 풀에 고꾸라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남북한 당국의 7년에 걸친 눈먼 사랑이 가관이다. 주변 4강대국이 싸늘한 눈으로 지켜보면서 저마다 군침을 삼키고 있다.
(2004.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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