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프랑스의 세기

유럽의 역사를 보면 14-15세기는 이탈리아의 세기, 16세기는 스페인의 세기, 17세기는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세기, 18세기는 영국의 세기, 19-20세기는 독일의 세기라는 느낌이 든다. 각 시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을 기준으로 할 때 그러하다.

1700년 현재 유럽의 최강대국은 루이 14세의 프랑스였다. 인구가 1600만 명이었다. 이는 영국 인구의 네 배, 스페인 인구의 두 배였다. 프랑스는 농업국으로서 비옥한 토지와 많은 생산물을 자랑했다. 프랑스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고 검약하며 생산성이 높았다.

루이 14세는 귀족들의 私兵 집단 수준이던 군대를 상비군 체제로 전환시켰다. 약40만 명의 상비군은 국가전략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상비군을 유지하기 위한 관료체제와 세금 제도가 근대국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17세기 바다는 네덜란드가, 육지는 프랑스가 헤게모니를 잡은 형국이었다. 육군국가인 프랑스가 해군국이 네덜란드를 위협하자 네덜란드는 또 다른 해군국인 영국과 동맹하여 프랑스를 견제한다.
당시 프랑스의 국력은 워낙 압도적이라 全유럽 국가들이 동맹해야 프랑스 한 나라를 당할 정도였다. 프랑스의 이 막강한 국력은 나폴레옹 시대에 대폭발을 한 뒤에는 프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독일권에 뒤지게 된다. 1870년 보불 전쟁은 독일이 프랑스를 젖히고 유럽의 패권 국가가 되었다는 신고식이었다.

17, 19세기 프랑스의 대외 팽창주의가 유럽을 전쟁으로 몰고갔던 것처럼 통일된 독일의 거대한 에너지가 대폭발하면서 19, 20세기 유럽과 세계는 전화속으로 빨려들어갔다.

2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와 독일이 중심이 되어 유럽공동체를 발족시킨 것은 이런 전쟁의 시대를 수백년 거친 뒤였다. 프랑스와 독일이 손을 잡으면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두 나라가 전쟁물자인 석탄과 철강을 공동관리하여 전쟁을 막자는 발상에서 유럽공동체, 지금은 유럽연합의 비전이 잉태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 온 결론이었다. 후발국가들은 이 유럽국가들의 교훈을 살려 어떻게 하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국제평화 체제를 구축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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