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북서쪽 北海邊에 브루게(Bruges)라는 항구 도시가 있다. 인구 약12만 명. 15세기 이 도시가 부르고뉴 공국(프랑스 소재)의 지배하에 있었을 때는 인구가 20만 명이었다. 이 항구 도시는 섬유공업과 항구를 이용한 지중해 지역과의 무역을 통해서 富를 쌓아갔다. 독일 도시국가들이 중심이 된 한자 동맹의 본부가 여기에 있었다.
브루게는 13-14세기에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의 필립왕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왕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내 혼자가 왕비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 보니 나의 라이벌이 600명이나 되는군.'
그만큼 이곳 시민들은 사치스럽게 생활했다는 것이다. 15세기부터 이 항구에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준설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아 기능이 마비되었다. 한자동맹의 본부는 안트워프 항구로 옮겼다.
지난 3월말 이곳을 찾았을 때 심한 바람과 함께 눈발이 흩날렸다. 베네룩스 3국이라고 하면 툴립과 풍차의 온화한 나라를 연상하지만 상당히 사납다. 이곳 사람들의 근면성과 상공업 기질은 이런 날씨 속에서 단련되어 나온 것이다.
브루게는 2002년에 스페인의 살라만카와 함께 유럽 문화 도시로 지정되었다. 연간 20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인 이유는 중세 유럽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광장에는 1302년 프랑스의 지배에 항거하기 위하여 봉기했던 기술조합(길드)의 두 지도자(실뽑는 조합의 대표와 푸줏간 조합 대표)의 동상이 있다. 이 봉기는 성공하여 브루게 사람들은, 프랑스군을 몰아냈으나 오래 가지는 못하고 다시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 광장에 높이 83미터의 종탑(초소 겸용)이 있다. 13세기에 만들어진 이 종루는 366개 계단을 걸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최근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이 종탑이 서 있는 밑 건물은 13세기에 세워진 시장이다. 9-12세기 플랑다스 백작이 다스리던 지역이라고 해서 이곳을 프랑다스 지방이라고 부른다.
벨기에의 10만 인구중에서 북부 프랑다스 지방 주민 약60%는 플레미시語(네덜란드어와 비슷하다)를 쓰고 남쪽 왈로니아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쓰며 소수의 독일어 사용자가 있다. 벨기에는 국경선 같은 언어 경계선이 있다. 브루셀은 플레미시語 지역에 있으나 시민의 거의가 프랑스어를 쓴다. 플레미시와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끼리의 적대감은 대단하여 플레미시어 지역에서는 분리 독립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벨기에 헌법은 프랑스어로 쓰여질 만큼 건국 때는 프랑스어 사용자들이 주도권을 잡았으나 그 지역이 경제적으로 쇠퇴함에 따라 플레미시어 사용자들이 들고 일어나 자신들의 언어를 공용어로 만들었다. 플레미시어 주민들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잘 하지만 프랑스어 주민들은 영어나 프레미시어를 잘 배우지 않으려고 한다.
벨기에가 분리되지 않는 이유는 거대한 국가채무, 왕, 브루셀의 존재라고 한다.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