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듯이 나는 '빨치산의 아들'"

민노당을 만든 권영길(민노총 초대위원장) 통합진보당 의원

現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민노당 창당(초대 黨대표). 민노총 초대 위원장. 1997, 2002, 2007년 민노당 대선후보. 언론노련 위원장. 겨레사랑 북녘동포돕기 범국민운동본부 대표. IMF반대 고용안정 쟁취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한미FTA비상시국회의 공동대표.

權永吉(권영길)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의 부친 권우현은 빨치산 출신으로 권영길을 낳기 5년 전인 1936년에 일본으로 이주했다. 1941년 권영길의 어머니 하영애가 일본으로 건너와 권의원을 낳았다. 이후 권우현과 하영애는 동경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다가, 권영길이 다섯 살이 되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패망한 뒤 귀국했다.

이후 권우현은 산청군에 정착, 지역의 초등학교를 세우고 야학을 여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여덟 살의 권영길(1948년)은 아버지가 설립한 입석초등학교에 입학했다. 6.25 전쟁 발발과 함께 권우현은 빨치산 활동을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1953년 정전협정이 되고, 한국군의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이 전개됐고, 권우현은 이 과정에서 사살됐다.

[자료] 2007년 7월7일 권영길 민노당 대통령 후보 광주전남 연설문 全文

아까 심상정 후보께서 말씀하신대로, 창원 유세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심하게 제 자랑하면 손님 접대 안하는 것 같고, 그래도 제대로 못하면 지역 동지들이 실망할 것 같고, 고민 많이 했습니다. 집사람이 마음을 비우라고 충고해서 그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와보니까, (노회찬, 심상정 두 후보가) 정말 심하게 하십니다. 노회찬 후보가 이번에 다시 권영길이 후보 되면, 15년 동안 권영길만 민주노동당 후보가 되는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걱정 하지 마십시오. 10년은 후보로 있었습니다. 앞으로 5년은 대통령으로 지낼 것입니다. 저, 장기집권 안할 것입니다. 5년만 딱 할 것이니, 다음에는 앞에 계신 두 분이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계시며, 격려해주셨어야 할 두 분이 안계십니다. 오종렬, 정광훈, 두 분 의장님이 이 자리에 안 계십니다.

그 두 분을 누가 감옥에 넣었습니까.

광주와 호남의 대통령, 그 정권인 노무현 대통령이 두 분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항상 정권이 막판에 허물어질 때가 되면 이런 행태를 보입니다. 감옥 가두면 스스로 붕괴될 것을 알면서도 그럽니다. 이것이 정권 말기 증세입니다.

이제 정말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남도당 위원장님이 광주에서 10만표, 전남에서 30만표를 득표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겸손한 것 아닙니까. 제가 배로 올려드리겠습니다.

윤한봉 동지가 하늘로 가셨습니다. 동지는 광주항쟁의 마지막 수배자입니다.

5.18 정신 계승은 노동자, 농민, 빈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주, 민주, 통일, 평등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됐나. 안됐습니다.

이승만 정권 때, 못 살겠다 갈아보자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제 바로 호남이 만든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이 지나면서, 다시 못 살겠다 갈아보자 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고 합니다. 가난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제 광주와 호남이 5.18 정신을 다시 살려내야 합니다. 노동자, 민중의 나라,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광주는 세계의 인권과 평화의 도시입니다. 어디로 가든 광주는 한국의 인권 성지가 아니라, 세계의 성지입니다.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입니다.

그런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광주 박광태 시장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시청에서 몰아냈습니다. 박광태 시장은 광주 항쟁의 정신을 어긴 것입니다. 이제 광주 시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이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금속노조가 파업한다고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검찰과 노무현을 공격해온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노동해방 이룩하자고, 노동자 정당 만들자고 모아 준 돈을 불법정치자금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한 몸이 되어 싸워야 합니다.

동지 여러분,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비정규악법 폐지해야 합니다. 기간제 사유제한 해야 합니다. 파견 용역 폐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입니까.

광주 박광태 시장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장로라는 홈에버 이랜드 박성수 사장도 그럽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사람이, 노동자의 목을 자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기간제 노동자들이 내쫒기고 있습니다.

이제 노동자, 농민, 서민이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빈곤 퇴출, 실업 퇴출, 부패 퇴출의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한미FTA 막는 것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사생결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100만 민중대회로 가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100만명 모이면 다 해결되느냐고.

아닙니다. 100만 민중대회는 시작입니다. 그것이 출발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새로운 투쟁을 다짐하고 대선 투쟁, 비정규직 투쟁, FTA 투쟁의 승리를 결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100만명을 정말 모을 수 있냐고 묻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조직하고, 모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권영길이 앞장서서 조직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을 만들면서 피 눈물 흘린 사람들, 정말 많았습니다.

이 광주에서 전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습니까.

97년 대선 때, 후보 현수막을 걸지 못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밤중에 몰래 후보 현수막을 붙였습니다. 독립운동 하듯이 걸었습니다. 97년은 그렇게 참혹했습니다. 그 때 그 현수막 걸러 다니던 동지들이 있었기에, 민주노동당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민주노동당이 있는 것입니다. 광주, 전남 동지들에게 감사인사 올립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민주노동당이 살아난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
다 알듯이 저는 빨치산의 아들입니다.

97년 조선일보 인터뷰 때, 빨치산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산사람이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2002년 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통일 이야기만 해도 잡아 가두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외치며 죽었습니다. 조봉암 선생이 그렇게 죽었습니다. 목숨 빼앗기는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던졌던 통일인사들 덕분에, 지금의 권영길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저의 생명을 지켜주셨습니다.

제가 보답할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평화의 세상, 통일의 길을 여는 것입니다. 자주, 민주, 통일의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민중이 주인되는,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없습니다. 그리고 해낼 것입니다.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시대를 열어낼 것입니다.

2007년 7월 7일 광주에서
권영길 17대 대통령선거 민주노동당 예비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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