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좌·우익 양쪽으로부터 모두 욕을 먹을 만한, 그야말로 ‘중도스러운’ 대학교수의 글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진형중 홍익대 불문학과 교수는 7일 한 인터넷신문에 올린 글에서 反FTA 괴담세력에 일침을 가했다. 우익의 시각에선 좌익에게 일침을 가한 셈이다. 문제는 일침을 가한 방식이 오히려 우익을 더 화나게 할 내용이었다는 것.
그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반 FTA 시위는 무엇인가?”라며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감기만으로도 병원비가 300만원이 든다는 등의 헛소문이 나돌고, 그러한 시위를 건전한 비판 활동이요, 권리행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 FTA 시위를 보면서 광우병 시위, 일부 젊은이들의 반미의식, 이승복 기념관이 오버랩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라며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가 지금 이승복군을 양산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이승복군이나 ‘나는 미국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이 땅의 일부 젊은이들의 정신연령은 비슷하다”고 했다.
특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다 살해된 이승복군을 기념해 세운 그 기념관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러운 유물”이라고 했다. 나아가 “공비의 잔혹함을 알려 반공정신을 심어주겠다고 세운 기념관은 당시의 반공 교육이 세뇌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역설적 장소”라며 “도대체 아홉 살 어린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다 죽음을 맞게 되었는가?”라고 따졌다.
이승복 어린이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는 “거짓이 진실을 호도한다”는 등 이승복 어린이가 그렇게 죽어간 것이 마치 ‘거짓’ 된 반공교육 때문인 것으로 묘사했는데, 어린이를 그렇게 죽이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교육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 의문이다.
그는 “내 편을 들지 않으면 적이 되어 버리는” 우리 사회를 개탄했는데,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반미’ 세력과 ‘반공’ 세력 모두를 敵으로 만들었다.
“반 FTA 시위를 보면서 이승복 기념관이 오버랩” 된다는 그를 보면서, 문득 이명박 대통령이 “오버랩” 된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좌·우익 어느 편도 아닌 ‘중도’로 가겠다는 李대통령도, 이 교수처럼 이승복기념관을 “부끄러운 유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 [시론] 소통부재 사회와 지식인의 역할 진형준 홍익대 불문학과 교수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오래전 방영됐던 프로그램의 재방송이었다. 제목이 ‘알프스 된장 아저씨’였나? 스위스의 한 다문화가족 이야기였다. 우리보다 더 우리나라 전통을 좋아하는 스위스 사람이 가장이었고 그의 아내는 한국 사람이었다. 방송을 보는 도중 입대를 앞둔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 것이다. “저 한국 군대 좋아해요. 부대찌개도 좋아하거든요.” 부대찌개를 군대에서 주는 찌개로 아는 아주 귀여운 착각. 그 정도 오해나 착각은 잘못을 지적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귀여운 착각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반 FTA 시위는 무엇인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감기만으로도 병원비가 300만원이 든다는 등의 헛소문이 나돌고, 그러한 시위를 건전한 비판 활동이요, 권리행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는 흡사 군대는 부대찌개를 주는 곳이라는 거짓 정보에 속아 군대에서 부대찌개를 주지 않는다고 시위를 벌이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이런 식의 오해와 시위는 정말 위험하다. 하지만 더 위험해 보이는 것은 군대에서 부대찌개를 주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그들을 달래려는 태도다. 거짓이 진실을 호도한다는 차원에서의 위험을 넘어서서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것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오대산에서 단풍 구경을 하던 중 이승복 기념관에 잠깐 들른 일이 있었다. 1968년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무장 공비를 향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다 살해된 이승복군을 기념해 세운 그 기념관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러운 유물이다. 공비의 잔혹함을 알려 반공정신을 심어주겠다고 세운 기념관은 당시의 반공 교육이 세뇌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역설적 장소다. 도대체 아홉 살 어린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다 죽음을 맞게 되었는가? 반 FTA 시위를 보면서 광우병 시위, 일부 젊은이들의 반미의식, 이승복 기념관이 오버랩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가 지금 이승복군을 양산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이승복군이나 ‘나는 미국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이 땅의 일부 젊은이들의 정신연령은 비슷하다. 그리고 그렇게 된 책임은 오롯이 정치인과 지식인에 있다. 모 방송사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코너 중 ‘두 분 토론’이라는 것이 있었다. ‘남성은 하늘’이라고 외치는 남하당 당수 박영진이 “요즘 여자들, 엄친아만 쫓아다니고 소는 언제 키울 거야, 소는!”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러지 말고 완소남을 쫓아다니라고. 완전 소 닮은 남자!” 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마무리를 짓곤 했다. 사회자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잘못을 지적하면 삿대질을 하며 “너, 왜 여자 편을 드는 거야”라고 사회자를 힐난했다. 내 편을 들지 않으면 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완벽한 소통부재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소통부재를 양산하고, 소통부재를 즐기고, 소통부재를 이용한다. 소통부재로 인한 갈등을 부추기고 그것을 먹고 산다.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가, 아닌가는 관심조차 없다. 그리고 그것이 정치의 속성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른바 지식인의 태도다. 그들은 정치인이나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를 먹고 산다. SNS 혹은 인터넷을 통해 발휘하는 영향력을 즐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소통의 몸짓인 양 포장한다. 그런 식의 소통은 다양한 의견의 교환과 수용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 정보, 그것도 확실하지 않은 정보의 유포를 통한 가치의 획일화가 이뤄진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지식인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개념에 대한 착각이다. 비판적 지식인의 대전제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애정이다. 진실을 은폐하는 사회에서 지식인은 사회에 대한 애정 때문에 비판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비판적 태도는 어느 정도 폭로의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은폐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사실 너무 많은 정보에 치여 살고 있는 형편이다. 정보가 너무 많아 문제인 세상에 살고 있다. 정보의 과잉은 역으로 정보의 부재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가장 부정적 모습을 띨 때 정보의 조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장 나쁜 지식인의 태도는 바로 그 정보 조작에 동참하는 것이다. 애정이 전혀 없는 비판만 남고, 그런 관성적 비판을 남발하면서 역으로 진실을 가리고 호도한다. 그리고 가벼운 태도에 몰리는 인기를 즐긴다. 진실을 호도하고 은폐하면서 비판적 지식인인 체하는 사람은 이미 지식인이 아니다. 단순한 이익집단의 구성원일 뿐이다. 진정한 비판적 지식인이라면 가짜 지식인의 태도를 마땅히 비판해야 한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진실을 전하려는 진정한 노력이다. - 글 원문보기(클릭)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