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武鉉 대통령은 어제 17대 국회 개원 연설 서두에 이런 말을 했다.
<저는 17대 국회야말로 진정한 ‘국민의 국회’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거로 선출된 국회라고 다 국민의 국회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헌국회 이후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보면 4.19혁명 이후의 제5대 국회, ’87년 6월항쟁 뒤의 제13대 국회를 국민의 국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국민의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 권력에 저항해서 봉기했습니다. 그때마다 헌정이 중단될 만큼 사회는 혼란스러웠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습니다. 참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국민들은 자랑스런 역사를 이뤄냈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선거에도 공작과 관권 개입, 돈에 의한 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의 혁명적 열기가 이를 훌륭히 극복해냈기 때문입니다.
이번 17대 총선에서는 봉기도 헌정중단사태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 모범적인 선거와 시민의 활발한 참여를 통해서 민의에 의한 국회를 건설해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시민혁명이라고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17대 국회를 ‘국민의 국회’이자 ‘시민의 국회’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5, 13, 17대 국회만 '국민의 국회'라면 나머지 국회는 '정권의 국회' 또는 '권력의 시녀'였다는 말인 듯하다. 정말 그럴까. 예컨대 1985년 2.12 총선으로 탄생한 12대 국회는 어떤가. 2.12 총선은 국민들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金泳三이 지휘하던 선명 야당 신민당을 제1야당으로 만들고 어용야당 민한당을 붕괴시킴으로써 그 뒤 민주화 운동의 분수령을 만든 역사적 사건이었다.
12대 국회는 또 1987년의 6월 대시위에서 표출된 民意를 수용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룬 국회였다. 물론 이 국회에서는 여당인 민정당이 다수당이었으나 민정당도 盧泰愚 총재의 6.29 민주화 선언으로 거듭 태어났던 것이다. 한국 민주화의 모태가 된 12대 국회가 '국민의 국회'가 아니고 '권력의 시녀'였다고 생각하는 盧대통령은 현대사의 흐름에 대한 무식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국회라고 할 때 그것은 여당만의 것도, 야당만의 것도 아닌 국민 주권의 중심이자 국민의 代議기관이다. 국회를 평가할 때는 여당이나 야당의 시각이 아닌 국민, 국가, 민주, 역사적 시각에 서야 하는데 盧대통령은 오로지 개인적인 好不好를 기준으로 삼는 듯하다.
盧대통령은 유독 혁명이란 말을 좋아한다. 17대 국회를 만든 국민의 참여를 '시민혁명'이라 규정했다. 과연 17대 투표에 참여한 국민들이 시민혁명을 하려는 생각을 했을까. 헌법절차에 따라 투표에 참여한 행위를 어떻게 헌법과 기성질서를 뒤집는 혁명이라는 말로 표현하는가. 盧대통령은 혁명이란 극단적인 말을 쓰면 자신이 위대해진다고 생각하든지 비장한 각오가 생기는 모양인데 이 또한 무식의 극치이다.
혁명이란 말을 패션처럼 헤프게 쓰게 되면 정말로 국민들에게 간절하게 호소해야 할 때 아무리 좋은 말을 골라도 국민들은 아무런 감동을 받지 않을 것이다. 권력자가 말하는 혁명이란 그 엄격한 의미로써는 반역의 선동이든지 자살행위이다. 혁명은 헌법질서를 뒤엎는 것인데 대통령은 헌법의 수호자여야 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취임선서를 한 사람이다. 대통령이 혁명을 미화한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헌법을 뒤엎으라는, 또는 헌법을 무시하라는 메시지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민주사회의 대통령 입에서는 혁명이란 말이 절대로 나와선 안된다.
'혁명'을 패션처럼 쓰는 대통령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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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6-08, 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