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까닭
최성재/50,남
(토론방 기고문입니다. 제목은 여기서 바꾼 것입니다)
개혁은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말이다. 이념에 따라 다르고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사회의 성숙도에 좌우되지 않을 수 없다.
변화에는 크게 다섯 종류가 있다. 진화, 개선, 개혁, 혁명,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 진화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로서 시간의 단위가 적어도 수만 년 내지 수십만 년이다. 그런 만큼 이것은 느리지만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고 안전하다. 개선과 개혁과 혁명과 전쟁은 인간 사회에 일어나는 변화로서 일종의 권력다툼이다.
개선은 권력을 가진 다수 또는 다수의 지지를 받는 권력 집단이 기존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문제점을 서서히 고쳐나가는 것이다. 전통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개혁은 기존의 질서를 상당 부분 부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려는 시도이다. 개선보다 그 긴장도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혁명은 갑자기 권력을 가진 집단이 민중을 앞세워 그 이전의 권력 집단을 완전히 타도하고 전혀 다른 세상을 건설하려는 시도이다. 사회적 모순과 경제적 갈등이 쌓이고 쌓여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한다.
전쟁은 타협할 수 없는 두 집단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으로 상대방을 말살시키고 자기 집단만으로 구성된 신세계를 구축하는 시도이다. 주권을 가진 국가 사이에만 발생하는 것 같지만, 실은 전쟁의 80%가 내전이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민주화 이후부터 개혁이 선악을 가르는 주요한 잣대가 되었다.
개혁 세력이냐, 반개혁 세력이냐! 이 말만큼 무시무시한 게 없다.
그런데, 새로운 권력집단이 들어설 때마다 정적이었던 과거의 권력집단이 한 일은 깡그리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고 기를 쓰면서 그것을 일러 개혁이라 한다. 개혁이라면 밉든 곱든 과거의 것을 49%는 인정해야 한다. 개선이 전통의 80~90%를 인정하는 것이라면 개혁은 아무리 적어도 과거의 49% 대개는 60~70%는 인정하는 것이다. 혁명은 전통을 70% 이상 부정하는 것이고. 전통을 50%에 조금 못 미치는 49%밖에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사회적 갈등은 갑자기 증폭한다. 그런데 흑백론의 천국인 한국에서는 말로는 개혁한다면서 이미 새로운 전통이 되고 생활의 일부가 된 것마저 거의 100% 부정한다. 혁명을 넘어 숫제 전쟁을 하겠다는 말이다. 개혁의 기본 자세가 전혀 안 갖춰졌다는 말이다.
--너는 독재, 나는 민주. 너는 친일파 후손, 나는 독립군 후손. 너는 사대, 나는 자주. 너는 졸부, 나는 민초. 너는 사기꾼, 나는 양심수. 너는 분단, 나는 통일. 너는 차별, 나는 평등. 너는 전쟁, 나는 평화. 너는 악마, 나는 천사.
이러니 개혁호가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세계적으로 보아도 국내적으로 보아도, 우리에겐 지난 50년 동안 이룩한 게 너무도 많다. 대지주를 단 한 명도 용납하지 않은 농지개혁, 1000년만의 강군 양성, 세계 최단기간의 산업화, 이름하여 한강의 기적, 세계 12위의 경제강국, 지니계수 0.320 수준의 경이적인 분배, UN에서 이스라엘과 더불어 20세기에 단 두 나라만 인정받은 산림녹화, 문자 해독률 세계 1위, 고졸 국졸도 표만 얻으면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원도 될 수 있는 민주화 등등.
개혁은 두 방향이 있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대공황과 제2차 대전을 겪은 후 자본주의 선진국은 고삐 풀린 자유가 주는 폐해를 절감한데다 소련과 동구, 중공의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와 무자비한 시장을 보완하는 계획경제를 상당 수준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년 성장으로 쌓인 부를 골고루 분배하기 위해 정부가 비대해졌다. 세금은 가혹해지고 복지는 증가했다. 한편 무산자를 부추겨 유산자를 악의 세력으로 몰아 혁명을 일으킨 공산국가들은 피폐한 농업사회를 군수산업 위주의 산업사회로 급격히 변혁시키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공산당 일당 독재를 단행하고 100% 계획경제를 강제했다.
한국은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다. 300만의 시산혈해를 대가로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화달짝 깨어난 후라, 점진적 자유민주주의와 점진적 시장경제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종 목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였지만, 정부 주도에서 민간 중심으로 점차 옮겨가면서 개방과 자율을 나날이 늘려 가는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갔다. 그리하여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이미 혼합경제는 시장경제로, 권위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섬에 따라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도 세계적 흐름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런데, 소위 민주화 세력들은 이런 시대의 흐름을 외면했다.
1990년대에 이르면 오로지 공산독재와 계획경제밖에 모르던 공산국가들이 눈사태처럼 무너지면서 북한과 쿠바만 빼고 이전의 모든 공산국가들도 모름지기 개혁이라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뜻하게 되었다. 미국과 서구, 오세아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너무 비대해지고 세금이 너무 가혹하여 사회 전체가 한여름의 떼거지처럼 늘어졌기 때문이다. 일은 않고 불만만 늘어놓았던 것이다. 사회주의 서방정토를 지향했던 인도와 공산주의 무릉도원을 꿈꾸었던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작은 정부에 큰 민간 기업을 지향했다. 이 거대한 흐름에 우리나라도 동참해야만 했다. 그래야 기업도 더 투명해지고 분배도 더 개선되고 사회복지비용도 더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만이 거꾸로 갔다. 자칭 민주세력이 무능과 무지의 완장을 두르고 독선과 위선의 몽둥이를 휘둘러 과거 정권과 현재 정적을 때려잡고 기업을 박살내기에 골몰했다. 사생결단의 전쟁을 획책하면서 개혁이란 붉은 글씨를 이마에 크게 써 붙이고 다녔다. 개혁호가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웬 통일 바람이 불더니, 자칭 민주화 세력들은, 자칭 개혁 세력들은 시나브로 가장 악랄한 권력집단이 힘없는 동족을 가장 못 살게 구는 땅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쓰레기더미에서 장미꽃을 피우고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운 한국은 100% 부정하고; 일제가 만들어준 산업화의 장미꽃을 쓰레기더미로 만들고 소련과 중공이 번갈아 선사한 원조의 연꽃을 진흙탕으로 만든 김씨 부자의 12만㎢의 세계 최대 장원은 0% 부정하는 것을 민족공조니, 자주니, 평화니 하면서 사이(邪異)한 빛이 감도는 눈을 부라리기 시작했다.
전세계에서 오로지 북한과 한국만이 해괴망측한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개혁호가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흐흐(지옥사자의 웃음).
(2004. 6. 7.)
無能者의 개혁호는 산으로 간다
- 최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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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6-10, 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