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3만7000명의 現 주한미군 중 1만2500명을 減軍한다는 미국측의 계획이 한국 정부에 통보
된 것을 계기로 하여 한국인들은 韓美동맹의 弱化 또는 惡化가 경제와 안보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진지한 계산을 하고 있다. 金大中-盧武鉉 정권하에서 친북좌파들이 득세하여
反美운동을 전개하고 있을 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방관만 했던 보수층도 한국의
안보와 경제적 번영을 뒷받침해온 韓美동맹의 약화가 자신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
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북한 정권은 駐韓미군의 철수와 韓美동맹 해체를 對南공작
의 제1 우선순위로 설정하여 半세기에 걸쳐 집요하게 이 부문에 돈과 人力을 투입하여 왔
다. 한국 내에 잠복했던 친북좌익 세력은 1998년 좌파적인 金大中 정권의 출범 이후 反美
운동을 거의 자유롭게 진행했다. 盧武鉉 정권이 들어선 다음에는 進步라고 위장한 親北세력
이 국회와 정권의 핵심부에까지 진출하여 反美가 운동이 아닌 정책으로 한 걸음 더 진전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1980년대의 민주화 투쟁기에 大學街에서 확산된 主思派, 즉 金日成 숭배자들 중 다수는 그
뒤 공산권의 붕괴와 북한의 실상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으나 이들도 북한정권과 그들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정도로까지는 전향하지 못하고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적 자세를 지키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남북한의 이념·무장대결은 기본적으로 민족사의 정통(한국)과 異端
(북한)의 대결이며, 선과 악의 대결이므로 공직자가 惡을 상대로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것
은 결과적으로 惡의 편을 드는 것이다.
金大中-盧武鉉 세력은 金正日 정권의 巨惡에 대해서 한 마디 비판도 하지 못하면서 한국내
의 주류세력과 미국에 대해서는 사소한 것까지도 문제 삼아 가혹한 공격을 가하고 있다. 親
北좌파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이 두 정권의 시기에 反美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것은 정치·언론
·사회운동 단체 속에 넓게, 구조적으로 布陣한 좌파세력의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아직도
親美애국세력이 국민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정권, 방송, 운동단체
등 국가 정책을 만들어내는 활동성이 강한 부문을 좌파가 장악하고 있어 한국 전체가 反美
국가가 된 것처럼 비쳐지게 되었다.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
이다.
아시아에서는 두 개의 奇蹟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중국이 공산화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前近代的 요소에 쉽게 파고드는 공산당의 공작을 저
지하여 한국의 공산화를 막은 2대 요인은 건국 대통령 李承晩의 지도력과 韓美동맹의 존재
였다. 6·25 전쟁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前近代的 토양에 뿌리박은 강력한 좌익의 도전에 의
해서 1950년대에 한국이 월남식으로 공산화되었을 것이란 말도 있다. 6·25 전쟁을 통하여
한국내의 공산세력은 일소되었다.
1953년 휴전이 되었을 때 한국에는 反共·親美체제가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이 1953년 체제
하에서 한국은 對外개방정책으로써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고 對北 優位를 확보했다.
1998년 金大中 정권의 등장으로 이 체제에 최초의 타격이 가해졌으나 의회는 보수야당이
과반수를 장악하여 정권의 좌경화가 국가의 좌경화로 확산되는 것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총선의 승리로써 盧武鉉 정권은 대통령府뿐 아니라 국회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이로써 51년간 유지되었던 1953년 체제는 완벽하게 좌파권력으로 교체되었다. 이 좌파권력
의 본질은 한국 주류층과 미국에는 非우호적이고 북한정권에는 굴종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호의적이며 북한주민들과 탈북자의 고통에 대해서는 냉소적이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서는 도전적이며 헌법에 대한 존중심이 약하다. 한국의 좌파는1989년에 실험이 끝난
사회주의의 영향을 아직도 받고 있고 그런 시대착오적 이념을 깔고서 정책을 세우고 추진하
려 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守舊세력이다.
이들은 좌파는 그 본질이 선동적, 非민주적, 非전문적이며 세계화, 개방화, 민간화, 전문화,
인간중심으로 나아가는 세계사의 潮流에 역행하는 행태와 습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의
좌파세력 중에서는 역사의 先進세력인 한국의 주류층과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역사의 퇴
보세력인 金正日과 그에 의해서 조종 받는 한국내의 친북좌익 세력과 손을 잡으려 하는 부
류도 있다.
이런 식으로 한반도의 守舊퇴보세력이 남북간에 통일전선을 이루게 되면 한반도는 세계사가
전진해가는 主流에서 이탈된 작은 渦流(와류)가 되어 독재와 선동과 분열과 無知가 지배하
는 상황으로 후퇴하거나 정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한국은 아시아의 기적이 아니라
아시아적 專制主義의 뒤늦은 제자로 전락할지 모른다.
1953년 체제가 만들어낸 한국의 국민국가 시스템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거로 하
고 있다. 이 근대적 시스템이 前근대적 좌파 세력의 도전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한다면 韓
美관계는 회복될 것이고 한국은 先進化로 나아갈 것이다. 韓美 두 나라가 한국 및 월남전선
에서 자유의 旗幟하에서 함께 싸워 피를 흘렸다는 추억이 이혼을 결심한 듯 행동하는 두 나
라를 재결합시키는 중요한 감정의 紐帶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953년 체제의 붕괴, 그 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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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6-14, 20: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