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시대는 가고 실용의 시대가 왔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패착 그 자체였다. 실용은 ‘시대정신’일 수도 ‘국정철학’일 수도 없다. ‘실용주의’는 ‘좌파가 우(右) 클릭’할 때 쓰는 묘수이다. 좌파의 실용주의 노선인 ‘제3의 길’이 그 사례이다. 소수파가 다수파를 우회하고자 할 때 쓰는 말이다. 홍위병들의 격랑 속에서 ‘흑묘백묘’를 말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실용을 말했다. 전폭적인 지지 속에 탄생한 이명박 정부가 실용주의를 말한 것은 최대의 실책이다. 자칫 “원칙은 아무래도 좋으니, 실적만 올리면 된다”는 천민적 속성을 드러낸 것이다.
한나라당 비대위의 ‘이념 정체성’을 묻다
‘보수의 실패인가’ ‘MB의 실패인가’
2012. 1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O 한나라당 로고가 삭제된 의정보고서
역시 한나라당답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색깔 지우기에 나섰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최근 내놓은 의정보고서를 보면 얼굴이 실린 표지에서 대부분 한나라당 로고를 뺐다. 색깔도 한나라당 전통색인 파란색을 최대한 줄였다. 서울에서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강남권도 예외는 아니다. 의정보고서에 한나라당 로고가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해를 가리는 격이다. 한나라당을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의연함이 없다. 이렇듯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이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O 한나라당 ‘탈보수’의 이중 오류
한나라당이 ‘보수’를 포기하겠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의 ‘보수 포기’는 담론으로 치면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의미한다.
패러다임은 일정한 시대의 이념과 가치의 근간이 되며, 그 시대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generally accepted) 규칙을 의미한다. 일단 패러다임이 형성되면 ‘자기강화’(自己强化) 과정을 통해 패러다임을 공고화하는 작업이 수행된다. 즉 패러다임을 다듬고 정교화 시키며 패러다임이 적용되는 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articulation of paradigm)이 기울여진다. 그러나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례적 현상’(anomaly)이 누적적으로 전개되면 기존 패러다임은 도전에 직면하게 되며, 자기 방어에 실패하는 경우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다.
신구(新舊) 패러다임은 ‘같은 표준’으로 비교할 수 없는(incommensurable) 전혀 새로운 세계관과 논리의 규칙체계에 기초하기 때문에 양자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절충될 수 없어, ‘구’패러다임은 ‘신’패러다임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패러다임 전환’은 이처럼 기존질서와 단절하고 사물을 새로운 방법으로 보는 질적 전환을 의미한다.
복기(復棋)하면 참여정부의 흥망은 ‘패러다임’의 시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참여정부가 2002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기득권 위주의 경제구조를 바꾸고 성장과 분배의 새로운 틀을 짜겠다”는 국정철학과 이념이 국민들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한나라당과의 차별을 넘어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한 것이다. 참여정부는 “균형, 분배, 형평, 복지, 약자보호”를 핵심가치로 선택했다. 그리고 각종 정책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정부의 핵심가치를 실천해 나갔다. 자기강화 과정을 통해 이념의 ‘외연’을 넓힌 것이다. 그러나 평등주의와 국가개입주의에 기초한 경제정책은 ‘이례적 현상’의 누적을 초래했다. “저성장의 구조화, 양극화 심화, 국민의 국가에의 의존 심화, 복지 기대심리 확대, 근로유인 상실, 국가채무 누적, 성장잠재력 저상(沮喪)” 등이 이례적 현상의 양상이었다. 참여정부는 ‘2030 희망한국’ 비전 제시를 통해 반전을 시도했지만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해 한나라당에 패배했다. 참여정부는 “이념과 가치의 선택, 가기강화를 통한 외연확대, 이례적 현상의 누적, 신패러다임으로의 전환” 이라는 경로를 밟았다. 참여정부의 흥망과정은 이처럼 설명가능하다.
최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배제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한다고 한다. 혁신차원에서 ‘탈(脫)보수’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정강·정책의 변경은 당의 고유 권한이지만 ‘탈보수’ 움직임은 ‘패러다임’의 틀에서 볼 때 전혀 설명이 불가능하다. 한나라당의 ‘탈보수’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보수주의의 ‘자기강화를 통한 외연 확대’에도 불구하고 각종 ‘이례적 현상’이 누적되어 초기의 이념과 가치를 더 이상 견지하지 못하게 된 논거가 제시돼야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보수주의의 자기강화 과정’을 갖지 못했다. ‘보수주의를 펼쳐 본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한나라당에서의 ‘보수 포기’는 “해본 적이 없는 것을 버리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탈보수가 정당화 되는 유일한 경로는 ‘보수가 수구(守舊)’로 등치되는 경우이다. 하지만 변화를 거부하는 현실안주에 ‘주의(主義)’를 붙일 이유는 전혀 없다. 따라서 탈보수는 ‘보수 = 수구’ 프레임에 걸려드는 것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수구세력’이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이는 야권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시장, 작은 정부’ ‘국민성공 시대’ 그리고 ‘시장과 법치’에 기초한 ‘보수주의’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당시 보수주의는 시대정신이었다. 보수주의는 ‘우파적 가치 지향’을 의미한다. 따라서 ‘탈보수’는 한나라당 스스로 ‘이념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념과 가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좀비정당’을 자원한 것이다.
이처럼 탈보수는 이중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에 깊은 성찰 없이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판단이 흐려진 것은 ‘인기라는 신기루’에 홀렸기 때문일 터 이다.
O 한나라당 정강·정책 개정 이력
<표-1> 한나라당 정강·정책 개정 이력
시기
개정 주체
주요 정강·정책 변화
1997. 11
한나라당 창당
o 최초의 정강·정책
2003. 6
(1차 개정)
2002년 대선 패배 후 최병렬 대표 개정
o “합리적인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다” 규정 신설
o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이념으로 한다”
삽입
2004. 3
(2차개정)
차떼기 사건에서
비롯된 천막당사시절 박근혜 대표 개정
o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 문구 추가
2006. 1
(3차 개정)
현재
정강·정책
당혁신위원회 홍준표 위원장과 박형준의원 주도.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참여
o 공동체 자유주의의 실천이 선진화의 참된 방향임을
천명한다.
o 분배지상주의, 포퓰리즘에 맞서 헌법을 수호하고...
o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전통성을
계승하는...
o 큰시장, 작은 정부기조에 입각한 활기찬 선진경제
를 지향한다.
<표-1>은 1997년 11월21일 창당과 함께 만들어진 최초의 정강·정책의 지금까지의 주요 개정 사항을 정리한 것이다. 창당 후 정강·정책은 2003년 6월26일, 2004년 3월23일, 2006년 1월9일 등 총 세 차례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은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제외하면, ‘발전적 보수’ ‘분배지상주의와 포퓰리즘 배격’ ‘법치주의’ ‘큰 시장, 작은 정부’가 보여주듯 ‘보수주의’ 색채를 띄고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들어 시행되어 온 각종 정책은 2006년에 개정된 한나라당 정강·정책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보수주의 정당의 반시장적 정책 선택”으로 특징지어 질 수 있다.
현재 비대위는 정강·정책에서, ⓵공동체 자유주의와 선진화 제외, ⓶분배지상주의와 포퓰리즘 배격 제외, ③보수 삭제, ④“큰 시장, 작은 정부”의 다른 문구로 대체를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기존에 없던 문구로 ①공정경쟁과 재벌개혁, ②신자유주의로 야기된 양극화 해소 ③유연한 대북정책 채택, ④청년, 청소년 보호 및 복지강화 ④평생복지 개념 등의 추가를 고려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노선 변화는 ‘탈보수’를 통해 ‘부자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로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해 대중의 인기를 회복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탈보수’는 전술한 대로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오는 위험한 선택이며,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 시도도 ‘구두선’에 머물고 있다. “복지확대와 친서민, 공정경쟁, 양극화 해소”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기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굳이 차별화된 요소를 찾는 다면, “재벌개혁과 평생복지 개념 도입 그리고 대북정책의 유연성”을 들 수 있다.
박근혜 위원장은 ‘붕어빵’에 빗대 자신의 경제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서민에게 필요한 경제정책은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먹는 순간 따뜻하고 든든해지는, 붕어빵과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행복이 곧 국가경쟁력이 되도록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좋다. 하지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이 같은 “국민 행복론의 이념적·철학적 기초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치”는 일종의 대중 설득(대중선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그러한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이념적 기초가 무엇인가를 명시해야 한다. 국가개입주의를 통해 더 나아가 사회주의를 통해 국민행복을 지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탈보수’를 통해 이념적·철학적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대중의 가슴을 적시는, 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울림’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는 인기영합 그 이상이다. 보수는 지킬만한 것을 지키는 것이다. 보수주의의 본질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다. 이는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O 비대위의 정책사고 비판
한나라당 비대위도 “양극화는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의 비대위가 지향하는 ‘온정적 간섭주의’는 이 같은 정책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온정적 간섭주의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가져왔는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양극화가 화두로 대두된 것은 ‘참여정부’ 때였다. 참여정부 때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결론부터 말하면 ‘저성장의 결과’이다.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증가율이 떨어지면서 양극화가 시작된 것이다. <표-2>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3~2006년간 참여정부의 경제성장률 평균은 4.2%였다. 경제성장률 평균 4.2%는 ‘적정 성장률’은 아니었다. 물론 경제규모가 커지면 경제성장률은 낮아진다. 따라서 문제는 성장률이 ‘낮아지는 속도’이다. 평균 4.2% 성장률은 부(負)의 성장을 기록한 1998년을 포함시켰을 때의 김대중 정권의 평균성장률(4.39%) 보다도 낮은 수치이다. 당시 한국은 ‘성장 페달’을 힘차게 밟아야 할 경제이기 때문에, 평균 성장률 4.2%는 ‘반 토막’ 성장률인 것이다.
경제 성장률 평균을 같은 기간의 아시아 국가와 비교할 때, 우리의 성장률은 바닥이었다. 당시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홍콩, 싱가포르, 대만 모두 한국을 앞질렀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 경쟁국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한국과의 성장률 격차를 벌렸다.
2004년을 기준으로 세계주요국의 경제성장률과 비교해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2004년을 기준년도로 선택한 이유는 참여정부의 2004년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보수적’ 판단을 위해서이다. <표-3>에서와 같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불 이상인 국가군(群)의 경제성장률 평균은 3.44% 이며, 1만불~2만불 국가군의 성장률 평균은 5.03% 이다. 한국의 성장률 평균은 일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한 ‘같은 조건’의 국가들보다 낮았다.
<표-2> 역대 정권별 평균 실질 경제성장률
행정부
년도
실질 경제성장률(%)
평균 경제성장률(%)
노태우
(‘88~’92)
8.36
김영삼
(‘93~97)
7.10
김대중
(‘98~’02)
1998
-6.85
4.39(1998년 포함)
7.20(1998년 제외)
노무현
2003
3.10
4.20
2004
4.73
2005
3.96
2006
5.00
주: 국내총생산에 대한 지출 기준 (2000년 가격)
출처: 한국은행 Data base
참여정부 동안 ‘저성장이 구조화’되면서 중산층이 얇아지고 그 결과 양극화가 심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일각의 주장”은 신자유주의를 ‘악마화’시키려는 좌파지식인의 정치적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다. 비대위의 신자유주의 운운은 좌파지식인의 논리에 투항하는 것이다.
중산층 붕괴는 근래 우리 정부가 택한 경제정책 때문이 아니다. 중산층의 붕괴는 한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 영국 등도 모두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양극화의 원인은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른 ‘생산구조’의 변화와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른 ‘국제분업’의 심화에 있다.
경제가 산업화 단계를 넘어 지식기반 사회로 발전할수록 전문서비스와 같은 3차 산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소수에게’ 집중된다. 거기에 임금이 비싸지다 보니 제조업이 중국등으로 이동해, 전통적인 블루컬러의 소득기회가 그만큼 줄어들었다. 중산층이 얇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세계의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중국, 멕시코, 브라질등에서는 중산층이 빠르게 두터워지고 있다. 국가개입에서 양극화 해소의 해법을 찾으려는 것은 양극화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양극화’는 사실상 무관하다.
그러면 한국은 ‘신자유주의’ 국가인가? 우리나라 경제운영이 신자유주의에 기초했다면, 어떻게 통큰 치킨을 억누르고 SSM을 규제할 수 있었겠는가? 초과이익공유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지정제도는 신자유주의와 양립될 수 없는 정책사고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악마화는 ‘가공의 적’(허수아비)을 공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표-3> 일인당 국민소득 구간별 세계 경제 성장률 (2004년 기준)
Country
GDP growth rate(%)
GDP per capita($)
population
Japan
2.7
39,941
127,687,000
Norway
2.9
39,259
4,562,000
United States
4.4
36,067
296,667,612
Switzerland
1.9
34,369
7,364,000
Denmark
2.0
30,828
5,397,640
Ireland
4.9
28,762
4,040,600
Sweden
3.5
28,471
9,104,000
Hong Kong
8.1
27,114
6,882,600
United Kingdom
3.1
26,391
59,800,000
Finland
3.7
25,288
5,200,000
Singapore
8.4
25,186
4,240,300
Austria
2.0
24,756
8,200,000
Canada
3.0
24,568
32,147,000
Netherlands, The
1.4
23,319
6,300,000
Belgium
2.7
23,211
10,400,000
Germany
1.6
23,002
82,600,000
France
2.1
22,723
62,230,800
Australia
3.6
22,103
20,200,000
2만불 이상
소득국가군
3.44
United Arab Emirates
11.9
19,717
4,041,000
New Zealand
4.8
19,243
4,009,000
Italy
1.2
18,932
58,100,000
Israel
4.3
17,014
6,800,000
Kuwait
9.9
16,738
2,396,417
Spain
2.7
14,709
42,300,000
Taiwan
5.7
13,569
22,500,000
Korea, Republic of
4.6 (*)
12,783
48,100,000
Greece
4.2
12,128
11,040,650
Portugal
1.0
10,398
10,444,000
1만불~2만불 소득국가군
5.03
20,973,106
주: 단 인구 200만 이하 국가 제외
주(*) 한국의 성장률은 4.6%로 국내 통계치인 4.7%와 차이가 있으나,
횡단면 분석을 위해 Heritage Foundation의 자료를 그대로 인용
출처: Heritage Foundation, 「2006 Index of Economic Freedom」
한나라당 비대위의 정책 사고는 ‘케인즈 경제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케인즈 경제학은 “국가가 경제를 잘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믿음은 경제구조가 단순했을 당시에나 맞는 이야기다. 케인즈 경제학의 유용성은 ‘합리적 기대가설’에 의해 무너졌다. 합리적 기대가설은 민간부문이 정부 부문 이상으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을 예견해 미리 움직인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케인즈 추종자들은 엄청난 전시수요가 사라지므로, 이를 메워줄 과감한 정부지출이 없는 한,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특별한 적자재정 지출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는 투자가 되살아났고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루즈벨트의 죽음과 함께 ‘국가개입주의’에 대한 불확실성(망령)이 사라지자 기업들이 앞 다투어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이도 ‘합리적 기대가설의 적용 예’이다. 이해관계의 분화가 진행돼 경제구조가 복잡다기해 질수록 ‘시장 흐름’을 존중해야 해야 한다. 케인즈 정책사고에 함몰되어서는 안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O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서 ‘보수 가치’를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나라당 비대위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이유를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 서민에게 다가서지 못했기 때문에, 즉 왼쪽으로 더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 좌편향하려 한다.
한나라당이 국민에 다가서기 위해 “복지·친서민”을 외친다한들, 민주당과 민노당의 주장을 뛰어넘을 만큼의 화끈한 새로운 메뉴를 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앞뒤 안가리고 인기에 영합한다손 치더라도 복지 아젠더를 주도할 수는 없다. 복지와 친서민 정책의 지적 소유권이 한나라당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재기하려면 화려한 수사를 내려놓고, 국민의 땀과 눈물을 주문해야 한다. '스스로 돕는 개인'을 국가가 돕는 ‘자조정신’을 강조해야 한다. 집단의 익명성에 숨지 않는 용기 있는 개인을 국가가 무한히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 ‘국가개입주의’와 도덕률에 기초한 ‘설계주의’를 지양하고 개인의 창의와 자율을 최대한 존중하는 사회를 지향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그리고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유턴’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남유럽의 재정위기 발발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참여정부는 철저히 실패했지만 최소한 자신들이 견지한 이념과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들이 정치적으로 재기에 성공한다면 정체성을 유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탈보수’를 통해 손으로 해를 가리려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서 ‘보수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유럽에서 사실상 폐기된 사회민주주의에 미련을 갖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가지 않는 길’(road not taken)은 그것으로 족하다. 좌파를 거부해야 하는 이유는 ‘포퓰리즘’과 ‘큰 정부’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을 왜소화시키고 국가에 대한 의존을 타성화시키는 사회, 개인에서 국가로 힘이 이동하는 사회에서, 경제활력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 시장존중, 법치주의, 책임과 선택”의 우파적 가치는 헌법정신과도 일치한다.//
보수의 실패인가, MB의 실패인가
- 바른사회시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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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11, 1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