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해도 국어의 70%를 구성하는 漢字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漢字만 보면 겁이 난다. 漢字가 최소한도로 적힌 신문도 읽지 않으려 한다. 자연히 한글전용인 스포츠 신문을 좋아한다.
漢字가 나오는 역사서, 법률서, 철학서, 학술서적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한다. 한글전용의 소설과 만화를 읽는다. 漢字가 나오는 책을 피해가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漢盲들은 고급학문과 고급정보로부터 멀어지고 대중적이고 저급한 정보에 가까워진다. 이런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아무리 정보화되어도 축적되고 전달되는 정보는 대중화, 저급화, 저질화의 경향을 보인다. 漢字는 모르면서 영어는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남북(South-North)식으로 표기한다. 國字인 한자가 사라진 자리에 영어가 들어온다. 그만큼 우리의 정신이 외국화되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뿌리인 동양문화로부터는 멀어지면서. 이 경향이 신판 사대주의화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語源, 常溫 같은 한자語源의 말들이 그냥 어원, 상온으로 표기되니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앞뒤를 적당히 끼워맞추어 대략 이런 뜻인 모양이구나 하고 이해하고 넘어간다. 적당히 눈치를 보아가면서 이해하니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안개처럼 애매하고 어렴풋이 전달된다.
한글전용과 욕설과는 관계가 있다. 인터넷에서 난무하는 욕설은 한글전용이지 漢字로써는 표현되지 않는다. 漢字가 가진 정확성, 함축성, 품격이 무너지면 한국어는 70%가 무너지고 그만큼 살벌해지고 저질화되며 선정적으로 될 위험이 있다. 한글로써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바람, 비, 몸, 파랗다, 나쁘다 같은 원초적인 본능이나 자연현상과 같은 것들이다.
漢字를 쓰지 않으면 이처럼 정보전달의 내용도 원초적, 저질화, 부정확해진다. 이것은 그 사회의 문화 수준 전반을 하향시키고 저질화시키며 감정적으로 만들고 부정확하게 한다. 정보가 힘인 세상에서 이런 감정, 대중, 저질, 부정확의 橫行은 그 나라의 수준을 퇴보시킨다.
한글전용의 역사가 30년을 넘어서고 있는 한국 사회는 지금 언어생활만 보아도 퇴보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언어생활의 퇴보는 반드시 언어를 매개로 한 정신의 퇴보로 연결된다. 한국의 위기는 생각보다도 더 깊다.
漢字를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른들의 명함을 받아보면 한글전용이고 회사이름도 三星처럼 한자어인데도 삼성으로 쓴다. 자신이 한자를 쓰는 모범을 보여야 할터인데 남한테만 한자를 쓰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한자를 쓰지 않는다. 어른들의 이런 비겁하고 위선적인 자세가 한국 사회의 거대한 下向평준화를 재촉한 것이다.
漢盲들이 만드는 하급 세상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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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6-19, 2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