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로부터:
<월간조선> 2004년7월호에는 저의 부족한 글 '盧武鉉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편지'가 수록(72-76쪽)되어 있습니다. 본래 이 글은 <월간조선>에 게재된 것보다 조금 더 긴 분량으로 작성된 것이었으나 <월간조선>의 지면 제약 때문에 내용을 줄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수록하는 것은 제가 당초에 썼던 글의 전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월간조선>에 수록된 글과 함께 아래에 수록된 원문도 한번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동복 드림
유첨: 참고를 위하여 청와대에서 공식으로 배포한 노 대통령의 연세대 특강 내용을 아울러 첨부합니다.
=======================
<월간조선> 2004.8월호용 원고:
盧武鉉 대통령께 드리는 公開便紙
대통령께서 지난 5월27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신 '변화의 시대,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에 담겨졌던 충격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신문과 TV·라디오 등 언론매체들이 사설과 시론, 그리고 대담과 해설을 통하여 다루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이 '공개편지'의 형식을 빌어서 그 날 대통령의 특별강연 내용을 한번 더 재론하려 합니다. 그 까닭은 이 날 연설을 통해 모습을 들어 낸 대통령의 역사관과 가치체계, 그리고 상황인식 속에는 만약 더 늦기 전에 바로잡지 않는다면 자라나는 2세 국민들을 오도하여 이 나라의 앞날을 크게 그르칠 많은 오류와 왜곡, 그리고 편견이 담겨져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 날 대통령의 강연 내용 가운데 충격적이었던 대목은 대통령의 '진보·보수관'에 관한 대목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했지만 저에게 충격적이었던 대목의 하나는 '한국은 좌측으로 한참 달려가면 일본 보인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표현은 말씀하는 대통령께서 한반도의 북쪽에 서서 남쪽을 향해 서서 말하지 않으면 그렇게 말할 수 없는 표현이었습니다. 만약, 남으로부터 북을 보는 시각에서 말한다면 일본은 당연히 우측에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강연 내용은 문제 대목은 대통령께서는 한반도의 북쪽의 입장에서 이 나라의 '진보·보수' 문제를 생각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라는 오해(?)를 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 나라에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점에 대하여 '바꾸지 말자'가 '보수'이고 '고쳐가며 살자'가 '진보'라고 정의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에 사는 한 '보수'는 약육강식(弱肉强食), '되도록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한국처럼 아주 오른 쪽에 있는 나라는 더 더욱 '바꾸지 말자'는 기득권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다'면서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 놈의 '보수'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라고까지 극언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대통령의 도착된 '진보·보수관'은 전적으로 그릇된, 왜곡된 것이라는 사실을 대한민국의 산 역사가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1945년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1948년 건국의 기치를 올린 대한민국의 당시 모습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적으로 낙후된 후진국가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더구나 당시 대한민국이 소유했던 그 나마의 모든 것은 독재자 김일성이 이끄는 공산북한이 일으킨 6.25 전쟁의 와중에서 폐허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세기의 세월이 경과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문자 그대로 '지각변동(地殼變動)'의 엄청난 '변화'의 무대였습니다. 이 같은 '변화'의 실체는 몇 가지 지표의 검증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53년 14억 달러였던 우리의 GNP는 2003년에는 무려 그 432배인 6,050억 달러로 늘어났고 1인당 GNP는 53년의 67 달러가 2003년에는 그 188배인 12,646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인터넷을 통하여 검색가능한 통계자료로는 2003년의 경제지표들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밖의 경제지표들은 1998년8월13일자 <한국경제신문>이 보도한 '65년 1만원은 지난해 456원.... '통계로 본 대한민국 50년'' 제목의 기사에서 인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의하면 한국의 경제는 54년 처음으로 5.6%의 성장률을 기록한 이래 56년과 80년을 예외로 하고는 97년까지 꾸준히 플러스 성장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에 더하여 IMF 외환위기로 인하여 98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1948년과 비교한 97년의 각종 경제지표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쌀 생산량이 2.4배, 자동차 보유대수가 847배, 총 발전량이 323.4배, 전화 가입자수가 537배로 늘어났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철강재는 62년의 322배, 자동차 생산량은 62년의 1,566배, 원유도입량은 64년의 1,160배, 도로 총연장은 61년의 3.4배, 상수도 보급률은 55년의 5배로 늘어났습니다. 수출액은 6,106배, 수입액이 695배로 확장되었고 수출대상 국가는 63년의 38개국이 97년에는 225개국으로, 수입대상국은 39개국에서 209개국으로 늘어났습니다. 63년에 61.3이었던 엥겔계수가 97년에는 28.7로 하락했고 63년 823만명이었던 경제활동인구는 97년에는 2,160만명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산업구조는 1차 산업으로부터 3차 산업으로, 경공업 위주로부터 중화학을 거쳐 첨단산업 위주로 비중이 크게 이동하여 선진국형 산업구조로 환골탈태(換骨奪胎)되었습니다. 53년에는 GNP의 47.3%가 농림·어업, 10.1%가 광·공업, 42.6%가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의 1차 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97년에는 GNP의 5.7%가 농림·어업, 25.9%가 광·공업, 기타 68.4%의 3차 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바뀐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1948년 국가분단 시점에서는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에 비해 크게 뒤져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1945년의 통계 수치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의 98%, 유연탄의 87%, 역청탄의 98%, 전력의 92%가 북한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1960년의 통계 수치에 의하면 비록 GNP에서는 19억 달러 대 17억 달러로 남한이 앞서 있었지만 1인당 GNP는 94 달러 대 137 달러, 수출액은 33억 달러 대 154억 달러로 남한이 북한에 크게 뒤지고 있었습니다. 남북한의 본래의 경제구조는 '남농북공(南農北工)·남경북중(南輕北重)'으로 단연 북한이 주도하는 상호 보완형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분단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남북한의 경제는 이제 비교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이 것은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였습니다. 문제는 이 엄청난, 단연코 민족사적인 '변화'가 '누구의 작품이냐'는 것입니다. 지구촌의 후진국의 하나에 불과했고 더구나 분단상태 하에서 적화통일의 야욕달성에 호시탐탐하는 북한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이 하루도 가시지 않는 대한민국을 누가 과연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바꾸어 놓았느냐'는 것입니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 놈의 '보수'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라는 대통령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대한민국의 지평(地平)을 '바꾸어 놓은' 이 엄청난 '변화'는 바로 이 나라 '보수세력'이 이룩해 놓은 업적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부터 '일면 국방·일면 건설', '선 건설·후 통일'의 구호를 앞세운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주도 하에 이 나라 '보수'세력이 이 위대한 '변화'를 추진하는 동안 지금 '민주화 투쟁경력'을 앞세워 이 나라의 '주류세력'으로 자리 매김 한 오늘날 이 나라의 권력주체들은 실제로 삽이나 괭이 한 자루 손잡아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대한민국의 근세사에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이 전기를 마련한 4개의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로는 1964년부터 1972년까지 계속된 '국군의 월남전 파병', 둘째로는 1965년의 '한·일 국교정상화', 셋째로는 1968년 착공하여 1970년 완공·개통된 '경부 고속도로 건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1971년부터 시작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한을 담은 '새마을 운동'이었습니다. 이들 네 가지의 사건들 중 어느 하나가 없었더라도 어쩌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오늘의 모습과는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보'와 '민주화'를 표방하는 이 나라의 야당은 물론 재야세력의 어느 누구도 이러한 '조국근대화의 위대한 역사(役事)'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찬성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엄밀하게 말한다면 이 나라의 소위 '진보'·'민주화' 세력들은 그들이 입으로는 '진보'를 말하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역설적으로 '변화'에 반대하고 '변화'를 가로막는 갈 데 없는 '수구(守舊)'의 행적을 보여 온 것입니다. 그들이 떠들었던 '진보'는 '진보(進步)'가 아니라 '진보(眞保)'였습니다. 이 나라의 '보수'세력이 '조국 근대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고비마다 '변화'를 거부했던 '진짜 보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말한다면 대통령께서도 실제로는 이러한 '진보(眞保)'세력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께서 그 선두에 서신 가운데 이 나라의 사이비 '진보'세력들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도 이 나라의 진정한 '보수'세력들이 이룩해 놓은 위대한 '변화'의 열매를 훔쳐서 그들의 것으로 만드는 '절도(竊盜)'·'표절(剽竊)' 행각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그 하나의 예입니다. 대한민국의 대북 평화공존 정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10970년8월15일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른바 '평화통일 기반조성'을 제의한 이래 역대 정권을 통하여 일관되게 남북간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을 추구해 왔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 같은 대북정책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나 대통령께서 이끄시는 '참여정부'의 전유물이 아닌 것입니다.
남북간에는 1972년에는 7.4 남북공동성명이, 1992년에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합의서'가 합의되어 발효되었고 이산가족 재회를 주선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은 1971년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는 수억 달러, 또는 그 이상의 액수의 불법 자금으로 매수한 2000년6월의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로 얻어진 6.15 남북공동선언을 성역화시키려 애쓰고 있지만 6.15 남북공동성명에 기초한 작금의 남북관계가 1992년의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과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기초한 남북관계에 비해 본질적으로 후퇴한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은 두 합의서의 내용이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남북관계의 현주소에 관해서는 상대방인 북한측의 생각이 어떤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작년 9월 <조선로동당 출판사>가 발간했다는 '력사적인 6.15 북남 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조선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데 대하여'라는 '대외비 문건'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건에서 북한은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조선에서 반공보수세력에 비해 친북련공세력이 력량상 우세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끼리'라는 대명제 아래 남조선 인민들의 민족자주의식, 반미자주의식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조선 사회의 력량관계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시기 '진보적 사상'을 지향하고 '친북적'이고 '련공적'인 세력들은 남조선 사회의 소수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들은 '진보적 사상'에 공감하고 북을 동조했다는 리유만으로도 감옥에 가고 사회에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자기를 '반공보수'라고 했던 사람들은 사회의 80%였고 '진보'라고 했던 사람들은 20% 미만이었다. 그나마 우리의 사상에 공감하고 우리를 따르고 동조하였던 세력들은 지하의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변하였다. 사회의 주류라고 하였던 '반공 보수세력'들이 밀려나고 탄압 당하고 숨어살아야 했던 '진보적 운동세력'들이 네 활개를 펴고 주류로 등장하였다. '보수세력'들은 더욱 더 사회의 기슭으로 밀려나고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것으로 하여 당국의 탄압을 받아 왔던 '운동권' 출신들이 지금은 권력의 칼자루를 쥐었다. 80년대 학생운동세력이라고 하는 '386'세대 들이 사회적 중추에는 물론 '청와대'에까지 진출하는 등 지난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력대 파쑈 당국이 우리와 련결시켜 수많은 애국자들을 학살처형하였던 각종 '사건'들이 오늘에 와서 탄압사건으로 재 규명되고 오히려 지난 시기 탄압사건을 조작하였던 교형리들을 처벌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들은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6.15 북남공동선언을 마련하시여 남조선에서 '진보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 주시고 극소수 '반공 보수분자'들을 철저히 고립시키신 결과이다.'
대통령께서는 북한의 이 문건에 관하여 보고를 받으신 일이 있으십니까? 보고를 받으셨다면 어떠한 독후감을 느끼셨습니까? 여기서 북한은 '진보는 곧 친북이고 련공'이라는 주장을 거침없이 하고 있습니다. 저의 독후감으로는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문건에 담겨진 북한의 '언외언(言外言)'은 '이제 남조선은 6.15 북남공동선언을 통하여 우리가(북한이) 먹었다'는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침 며칠 전 언론매체들은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및 중앙위원들을 위한 만찬 석상에서 있었던 믿기 어려운 '사건'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참석했던 33명의 '386'세대 당선자들이 이른바 '운동권 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합창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청와대 '해프닝'을 포함하여 특히 4.15 17대 국회의원 총선거 후 이 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치적 양상이 위에서 소개한 문건에 담겨진 북한측의 '남조선관'과 과연 어떠한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일까요. 대통령께서는 지금 남한에서는 '사회의 주류라고 하였던 '반공 보수세력'들이 밀려나고 탄압 당하고 숨어살아야 했던 '진보적 운동세력'들이 네 활개를 펴고 주류로 등장'했으며 이 같은 변화는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金正日)이 '력사적인 6.15 북남공동선언을 마련'하여 '남조선에서 '진보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 주고 극소수 '반공 보수분자'들을 철저히 고립시키신 결과'라는 북한측의 '남조선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이 같은 북한측의 '남조선관'에 따른다면 지난 29일 연세대 학생들에게 하신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는 것은 한국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 존재'라는 대통령의 말씀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통령께서 진정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시라면 당연히 남북대화의 통로를 통하여 북한을 상대로 위의 '조선로동당' 문건에 담겨진 '진보는 곧 친북이고 련공'이라는 북한측의 '남조선관'이 북한정권의 공식 입장인가의 여부를 따지고 만약 공식 입장이라면 이를 시정시키는 조치를 강구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께서 이 같은 당연한 조치는 강구함이 없이 그 것도 아직 가치체계와 세계관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인 대학생들을 상대로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는 것은 그릇된 도식'이라는 취지로 말씀하셨다는 것은 대통령 스스로 '대한민국의 대통령' 입장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의 주인공은 청소년들이고 대학생들은 이제 오랜 학구(學究)의 세월을 뒤로 하고 사회 진입의 문턱에 서 있는 청소년 세대의 첨병들입니다. 대한민국이 단절 없이 성장과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과거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 과거의 계승·발전입니다. 과거의 계승·발전은 과거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이 나라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동안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소중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이 남북간에 분단을 관리하고 대내적으로 이념갈등을 극복하며 특히 196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30년간 고도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정적 측면이 파생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습니다. 권위주의적 체제 하에서 많은 기본권의 제약과 인권의 유린, 그리고 정치적 탄압이 자행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심각했던 부정적 측면은 사회전반에 걸친 구조화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만연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보수'세력이 주류를 이루었던 이 나라의 기성 세대가 통 털어 '도덕적 해이'의 깊은 늪 속으로 함몰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간에는 '의사소통의 단절'이 구조화되었고 북한은 이 간극을 헤집고 들어와서 이른바 '해방공간'을 확보하는 불장난을 즐겨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근세사를 얼룩지게 만든 이 같은 부정적 측면은 우리의 개탄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이 같은 과거의 잘못들에 대하여 과감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시비를 가려서 필요한 시정과 문책 조치를 취하는 한편 그러한 잘못의 재연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우리의 노력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습니다.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草家) 3간을 불태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건국 당시에는 지구촌의 후진국으로, 그나마도 6.25 전쟁으로 폐허화된, 대한민국을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탈바꿈하게 한 엄청난 '변화'는 그 것대로 평가하는 바탕 위에서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는 노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대통령의 연세대 특별강연을 특히 문제삼는 것은 이 강연의 청중이 젊은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날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내용 가운데는 교육적 차원에서 위에서 살펴 본 것 외로도 매우 적절치 못한 대목들이 많았습니다.
예컨대, 대통령께서는 '신뢰' 문제를 언급하셨습니다. '언행일치(言行一致)'를 강조하셨습니다. '대화와 타협의 문화'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엉뚱하게도 소위 '조폭문화'를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또 '권-언 유착'·'정-언 유착'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 반드시 염두에 두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것은 대단히 많은 수의 국민들은 이 날 대통령께서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내용들은 대부분 남이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에게 해당되는 내용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즉, 자신의 얘기인데도 남의 얘기처럼 하신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날 대통령의 말씀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친일파'에 관한 대목이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제 부모도 창씨 개명을 했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니가 하고 고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통령께서는 프랑스의 예를 거론하시면서 '우리도 친일 잔재 청산 문제로 계속 노력하는 데 고민할 문제'라는 화두를 던지셨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떳떳치 못한 사람 다 숙청되면 저도 숙청되어야 하는 데 그렇게 되면 숙청 한 될 사람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라고 결론 지으셨습니다. 듣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대통령께서 한편으로는 '친일파' 문제의 사회문제화를 '선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 스스로의 경우에 빗대어 '처벌'의 '한계'에 대하여 하나의 '지침'을 부여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아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대통령의 이번 연세大 특강 내용은, 강연 도중 여러 차례 사용하신 비속한 용어들의 품격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매우 비교육적인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징후로 볼 때 지금은 독재자 김정일이 철권으로 통치하고 있는 북한 공산정권의 수명이 한계에 이르고 있어서 민족의 비극이었던 분단문제의 극복이 가시화되고 있는 때입니다. 이 같은 시점에 '대한민국의 영도자'인 대통령께서 젊은 세대를 상대로 하는 특강에서 '친북'과 '좌익'을 '진보'로 분식·호도하는 논법을 사용했다는 것은 젊은 세대의 가치관 형성에 혼선을 초래하는 것으로 매우 적절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연세대 특강은 당연히 1945년의 해방 이후 하나의 '차선책'으로 분단을 '선택'하고 이 역사적 '선택'을 '선용(善用)'함으로써 '싸우면서 건설'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대한민국의 오늘의 성장과 번영을 이룩한 이 나라 '기성세대'들의 '현명한 선택'을 하나의 서사시(敍事詩)로 젊은 세대에게 들려줌으로써 젊은 세대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어제'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과 신념의 연장선상에서 나라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워주는 내용이어야 했던 것입니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드렸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이만 줄이려 합니다. 건강하신 가운데 당면한 많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이 나라와 국민을 밝고 희망찬 미래로 이끌어 주시기 바라 마지 않습니다.
2004년6월9일
李東馥 올림
15대 국회의원·전 남북고위급 회담 대표/대변인·전 명지대 초빙교수/현 북한민주화포럼 상 임공동대표
============================
노무현 대통령, 연세대 리더십 특강 전문(출처: 청와대)
오늘 반갑고 이 자리가 매우 기쁘다. 우선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 오늘 특별히 기쁜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이 매우 기쁘다.
대통령 되면 대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유롭지 않았다.
젊은 사람 만나 대화하는 것 좋아하는데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오늘 못하던 일 하니 얼마나 기쁘겠나. 다시 감사하다. 오늘 일정 결정하면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의전에서 안 된다 고 하면 안 되는 경우 많다.(웃음) 안됩니다 하는 것 되게 하려면 한참 싸워야 한다 이번에도 약간 싸웠다.
대학교가 많은데 하필 왜 연세대냐. 간단하다. 여러분은 꾀를 내 저를 초청했다. (박수)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그런 사정 다 생각지 않으면서 왜 연세대 갔나 대통령이 말 아껴야 하는데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하나. 끝나고 나면 무슨 소리나올지 모르니 의전서는 신경 쓴다 경호실서는 혹시 봉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한다.
저는 단순 명쾌하다. 손해보는 사람 없지 않나. 그렇죠?(예) 기회 되면 다른 학교도 가겠다. 그러나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니까 못 갈지도 모른다.
탄핵중이라 마음 느슨히 풀어져 있는데, 초청이 오니 그때처럼 여유 있을 걸로 생각하고. ..
마음이 넉넉했던 것이죠. 합시다 했다. 리더십 센터라는 이름이 근사하다. 리더십 얘기는 많은데 제대로 공부해 익혀야 하지 않겠나. 저도 거기에 조그만 보탬이라도 되면 좋겠다. 강연뿐 아니라 리더십 연구하는데 앞으로도 협력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하는 게 도리라 생각한다.
제 아들, 며느리가 다 연대 출신이다. 아마 그 것도 결심에 약간...(웃음)
비서실장은 여러분이 잘 아실 것이고. 여러분은 참 귀한 인재를 국가를 위해 쓸 수 있게 용납해 주셨다. 저도 보답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리쯤 되면 몰라도 비서실장 왜 하냐 하는데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일 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큰 도움 받고 있다. 제가 모자라는 많은 것 갖고 있어서 꼭 필요했다. 연대 위해서는 아쉬울 지 모르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살았는가. 낱낱이 다 공개돼 여러분이 모르는 게 없을 것이다.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봐라 하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생각하는 제 삶을 얘기해 보겠다. 생각하지 못한 것 있을 것이다.
제가 성공했지요. 그렇다면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 이 비결 들어보시고 혼자만 성공하지 말고 나라와 국민이 성공할 방법, 여러분이 그런 희망을 말해도 좋을 만큼 비결을 내놓겠다.
대통령이 어떤 나라를 만들기 원하나. 혼자서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께 말하면서 함께 한번 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멀리 내다보고 멀리 가야할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겠지만 당장 이 시기, 이른 바 '시대적 과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번 맞춰보자. 몇 가지 인기 있는 쟁점들이 있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리겠다 장래 계획도 말씀드리겠다.
어찌 살았는가. 제일 관심 갖던 것은 먹고사는 것이었다. 멋지고 가치 있게 살기 이전에 삶에 대한 불안 없이 살고 싶었다.
먹고살았다가 첫 번째다. 지금까지 크게 고생 않고 굶지 않고 산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시대가 달라 가치 있는 삶보다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게 중요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다. 그 다음은 사랑하고 애 낳고... 지금은 손녀도 예쁘다. 아무리 예뻐도 한계가 있겠죠. 저보다 예뻤으면 한다.
저는 섭리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섭리,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가치관 가지려 하고 존중하며 살려 한다. 이것 깨닫는데 시간 오래 걸렸다. 옛날에는 단지 산다는 것 외에 뭔가 다른 가치, 하느님이 정해놓은 삶말고 하느님 섭리 거역하며 사는 삶을 모색해 봤는데 결국 돌다 돌다 섭리에 거역하지 않는 삶으로 정리했다. 그래서 속물적으로 살았다 말해도 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매 시기 승부의 연속이었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도전하고 크든 작든 승부 이어 가고 있을 것이다. 무엇에 도전하고 있는가. 저는 현실의 문제에 도전했다. 어떤 관념과 주의를 내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했다기 보다 내 앞에 부닥친 문제에 도전했다.
끊임없는 변화했다. 중3때 형편이 안 돼 공무원 시험 준비했다. 고등학생 때도 취직해서 부모 어떻게 모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형편 좋아져 고시 공부했는데 그때는 목표가 성공이었다. 읍내 아이들에 약간 열등감 갖고 살아 성공에 대한 집착이 높았는지 모르겠다. 성공하려고 고시했다. 보통 대학에 수석 합격하면 고시에 합격해 가난한 사람 위하는 사람되겠다, 돈 없는 사람 치료해 주는 의사 되겠다는 말을 한다. 진심이라 생각하는데 제게는 그런 꿈도 없었다. 판사 되고 싶었다. 왜 출세니까.
고시 공부하는 동안 10월 유신 일어났다. 법이 짓밟힌 사건이다. 그때 제가 본 관점에서는 법이 짓밟힌 사건이었다. 그런데 나는 유신헌법 공부해 판사 됐다. 그러니 유신 판사 아닌가.
거기까지는 아닌 것 같다. 제 부모는 창씨 개명해 친일파 아닌가 하고 고심했다. 지금도 이 문제는 우리 숙제로 남아있다. 프랑스에서 전후 민족 배반자 숙청했는데 그때 어디까지 숙청하느냐가 큰 문제였다. 고위 공직에 취임 못하게 하는 것이냐, 사회 명망가로서의 역할 못하게 하나, 또는 감옥에 가게 해야 하는 가였다.
우리도 친일 잔재 청산 문제 계속 노력하는데 고민할 문제다. 오늘 답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과거 떳떳지 못한 사람 다 숙청되면 저도 숙청돼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숙청 안 될 사람이 얼마나 될 지 걱정이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다 나의 문제였다.
나로부터 조금 벗어난 때가 변호사 때부터였다. 돈벌이 열심히 했지만 변호사 비리 한번 해소해 보자고 결심하고 이런저런 노력을 하기도 했다. 법원 검찰에 가서 왜 변호사가 손만 비비나. 이 문화 바꾸기 위해 노력도 해 찍힌 변호사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로 당사자에 손해 입히지 않나 하는 불안도 있었다.
시국 사건도 했다. 아마 자기만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젊은 사람들 만나서 받은 충격이나 자존심이 있었나 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8년 뒤에는 대학 가는데 80년대 초반 그 시기에는 대학가서 배우면 자유 정의 민주주의 배우게 되고, 민주주의 배우면 배움과 다른 현실에 반감 갖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데모하고 그러면 이름 적혀 평생 취직 안되고, 끌려가 죽도록 맞고, 저도 형사가 두세 명 따라다니는 사람이었지만 아이 그 꼴 된다는 것이 용납이 안됐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세상 살지 않게 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감옥 가는 수밖에 없겠다 해서 문제 변호사 됐다. 괜찮죠?
지금까지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된 과정을 말했다. 오랫동안 도전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과의 도전이었다. 가장 어려운 상대는 자기 마음 속에 있다. 이기심 비겁함 안이함 그런 것들이다.
어떻든 그럭저럭 여기까지 왔다
성공 비결 말하겠다. 저는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라도 만족한다.
어떻게 해서 성공했는가. 제가 성공한 비결은 확실하게 투자하라는 것이다. 가진 것은 그대로 갖고 그리고 더 갖겠다는 도전, 이것은 좀 안전하지만 성공에는 큰 도움 안 된다. 적어도 승부를 걸어야 하는 과정에서는 투자하려면 확실히 해야 한다.
저는 당면 문제, 현재에 몰두했다. 멀리 내다보기는 하지만 그것은 내다볼 뿐이지 항상 현재에 전부를 투자했다.
경선 후보 되기 전에 점치고 될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나온 사람 중에서는 제가 가장 확실히 투자했다. 역대 대통령 보니 다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다. 저 앞에 대통령 되신 분들 이런 저런 이유로 다 목숨 걸었던 분들.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다. 박정희 대통령 ,결코 찬성할 수 없지만 한강 건널 때 목숨 걸지 않았나.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어떻든 쿠데타는 실패하면 죽는 겁니다, 죽어요. 찬성할 수 없지만 공짜로 한 것 아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도 다들 돌아가실 뻔했다.
저는 그런 일은 없었다. 세상이 좋아진 것이다. 다행이 목숨 걸지 않고 대통령 된 첫 번째다. 그래서 국민에 감사한다. 그러나 밑천을 들인 것을 보면 제가 제일 화끈하게 투자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제대로 못할 바에는 정치 안 한다는 결심 갖고 했다.
두 번째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그렇게 자부한다. 좀 전에 말했듯 변호사 할 때 역사와 세상을 알았던 게 아니다. 끊임없이 목표를 바꾸고 문제를 풀기 위해 사람이 바뀌어 왔다 그렇게 생각한다. 저 중심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 게 아니라 세상 바뀌는 방향으로 동참하며 저를 바꿔 왔다. 변화를 항상 수용해 왔고 이를 위해 항상 공부해 왔다.
세 번째는 공부 열심히 했다 지금도 열심히 한다.
네 번째는 사주가 제법 괜찮다고 한다. 운칠기삼이라는 데 그렇게 가다보니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상징적으로 비슷하게 보였나 보다. 그러니 너 대통령 한번 해라 시켜준 것 아니겠나.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인수위 시절 국정 목표 만들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 균형이면 되는데 발전 자꾸 넣자 해서 발전 넣었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 뭔가 섭섭하죠.
활력 있고 넉넉한 나라 돼야 하지 않나. 부자 나라 넣어야 하는 데 4개 해야 하니 외우기 어려워 발전 번영 들어 있으니 그걸로 해소하자 하는데 지금 보니 전달 잘 안 되는 것 같다.
1번으로 활력 있고 넉넉한 나라 넣었으면 한다. 제가 그랬듯 많은 국민 먹고사는 게 큰 것인데 1번으로 넣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국정 목표 세 개 앞에 그걸 넣으려 한다.
정부는 어떤 정부 돼야 하나
참여정부 돼야 한다. 정부가 참여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것만 하려니 한나라와 너무 닮았어. 국정 목표가 똑같아. (웃음) 차별화하자, 방향은 같지만 우선 순위 다르고 가는 길 전략이 다르다. 그러므로 전략 말하자.
전략은 원칙과 신뢰, 투명과 공정,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 이러면 한나라와 다르죠. 원칙과 신뢰가 꼭 같이 안가지만 외우기 어려워서 4개로 뭉치자,
원칙이 바로 서서 원칙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가 신뢰하는 사회 아닌가. 좋은 얘기다. 그리고 조금은 맞는 얘기다. 분권과 자율, 대화와 타협이나 투명과 공정은 제가 오랫동안 얘기해온 것이다. 특허는 안 냈지만 아무나 쓰면 안 된다.
하나 더 보태면 희망과 낙관이 있는 나라. 낙관적 희망이 지배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아주 중요하다.
이미 들어있지만 신뢰는 한번 더 말한다.
신뢰가 있는 나라, 신뢰와 민주주의 중에서 신뢰가 먼저다. 사회에는 전제사회, 귀족사회, 독재사회, 파시스트 사회도 다 있지만 그 모든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존재 못한다. 상대방이 나와 한 약속을 지킨다는 믿음 없으면 별 장치를 다해도 소용없다. 상대방이 선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 없으면 속지 않으려고 준비할 게 너무 많다. 계약 맺을 때 위약에 대비해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하고 방어하는 조약을 넣어 계약서 한 장 만드는데 보름, 한 달씩 걸린다. 변호사 비용 엄청 나간다.
국가가 안전 지키지 못한다는 불안 있으면 개인 경호한다. 남아프리카 같은 데 개인 경호에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면) 돈 없는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 믿음이 없는 나라는 어렵다.
희망만 얘기해야 하는데 믿음에 관해서 몇 마디 더한다. 믿음 바로 세우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말 한대로 행동해야 믿음 생긴다. 선의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진실해야 한다. 진실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사회 신뢰를 세우는 방법이다. 신뢰 중에서 중요한 건 지도적 인사들의 행동이다. 지도적 인사들이 말과 행동 다르게 하면 그 사회의 신뢰가 붕괴된다. 지도자는 그야말로 말대로 실천해야 한다. 지도자는 진실만 말해야 한다. 그러면서 지도자는 말할 자격을 가져야 한다, 말할 자격 없는 사람이 좋은 말 자꾸 하면 좋은 말을 버린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 들어봤나. 한국적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여서 민주주의 말살시켜 놓고 입만 열면 민주주의 한다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후유증이 엄청나다. 물론 그때도 공정한 사회를 말했죠.
'정의 사회' 기억납니까? 80년 전두환 대통령이 내건 게 '정의로운 사회'다. 절대 보통사람 일 수 없는 분이 보통사람이라고 하고. 이 강연이란 게 위험하죠.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비방하는 결과가 됐네요. 어쨌든 신뢰라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이다. 한국이 제대로 가려면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 조선이 무너졌다. 힘이 없어져 무너졌다. 그러면서도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분열하고 무너진 것이다. 지도층의 분열과 더불어 무너졌다.
그 이전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있어 분열은 각별하다. 서로 용납 못할 가치를 가지고 살았던 시대가 오래됐다. 아무리 서로 존중하려 해도 공존의 범위 벗어나는 대립이 있을 때는 공존이 어렵다. 일제시대, 친일하고 살자, 일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살자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어서 친일과 항일은 공존할 가치가 아니다.
해방이후 용공, 반공, 좌익, 우익해서 서로 용납 않는 대결의 시대를 지내왔다.
다음에 독재, 반독재, 아무리 민주주의를 해도 독재와 어떻게 타협하나. 저항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민주주의가 가진 상대주의의 한계가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는 사상과 행동이다. 그래서 저항권이 있다. 개별 국민들은 민주주의 비판이 폭넓게 인정되지만 국가권력은 다르다. 자유의 폭이 다르다. 민주주의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일반 국민 개인에 한한 것이지 국가권력은 그럴 수 없다. 조직이나 집단이 그걸 추구하는 건 불법이다. 양심의 자유가 이미 아니다.
독재 반독재 그렇게 싸웠다. 지금도 그 연장선 위에서 사는 사람 많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서로 존중하고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적어도 논리적으로 합의 안되더라도 절충해 타협해야 한다. 타협으로 합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 지배적 힘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사람들 용납하지 않고 배제했다. 말못하게 하고 말하면 잡아 가두고, 잡아넣기 위해 때리고 심하면 죽이고, 이런 배제의 시대를 우리가 수십 년 살아왔다.
그 때 싹튼 저항의 논리가 비타협 저항이다. 지금도 학생운동에 조금 살아있죠. 그러나 이것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 한국은 이제 대화 타협으로 문제 풀어갈 정치적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여야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아도 4년 뒤 심판 있다. 당장에도 견제 있지만 4년 뒤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 있다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제 대화 타협으로 문제 풀어갈 조건 갖췄다.
폐쇄·특권적 '조폭문화' 청산
엉뚱한 애긴데 조폭 문화 청산해야 한다. 조폭 문화 알죠. 자기들끼리는 칼 같은 법을 세워놓고 있다.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법을 존중하지 않는다. 칼 들고 나오고 페어플레이 하지 않고, 비열한 수단 동원해 공격하고, 전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내부는 강력한 룰을 만들어 놓고, 그 사이에서 철저히 충성과 보상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이 조폭 문화다. 그 조직에 들어 있는 한 특별 대우를 받는다. 폐쇄적, 특권적 집단이다.
과거 군국주의 군대에도 살아 있었고 정치 권력에도 이 논리 통했던 때가 있었다. 보편적 지지가 없으니 많은 사람의 저항이 있고, 그러니 강고히 제압하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주종 관계를 맺고, 물질·명예적인 관계를 주며 외부 세계의 보편적 법질서를 유린하는 것을 조폭 질서라 해야 하지 않나. 이게 지난날 우리 정치이고 현재도 잔재가 남아있다. 제가 정경유착 끊자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사이에 부당한 거래 이뤄져 일반 국민이 많은 피해 입었다. 권·언 유착 끊읍시다 권·언은 끊긴 것 같은데 정·언 유착은 있는 것 같다. 아직 정부안에 있는 권력기관에도 이 사고 잔재 남아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참여정부 끝날 때는 없어질 것이다. 제가 정부는 책임지겠다.
정경유착도 제가 높은 수준의 것은 끊겠다. 정·언 유착은 국민이 좀 해 달라. 특권적 문화 즉 조폭 문화를 청산하자는 것이다.
합리적 근거, 대안 갖춘 비판 필요
대안적 운동이 필요한 시기다. 민주주의 권력은 끊임없이 견제 받아야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이 흔들면 일 못한다. 정부도 밤낮 없이 감사만 하고 계속 흔들면 갈 길 못 간다. 비판과 더불어 비판은 적절해야 하고 합리적 근거, 대안 있어야 한다 대안 없이 하는 비판 운동은 사회 효율 떨어뜨린다. 창조적 대안 운동이 참여의 한 형태로 새롭게 자랐으면 한다.
이것이 이 시대 과제라고 생각한다.
진보, 보수 얘기들 한다. 한국은 좌측으로 한참 달려가면 일본 보인다. 여기서 한참 더 달려가면 미국의 사회제도가 있고 죽자살자 가면 오른쪽에서 달려오는 영국 보인다. 여기서 좌파가 어떻고... 한심하다. 우리나라 복지, 예산 세금 재정의 재분배 효과 보면 한심하다.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은 대단히 중요하다.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는 것은 한국 사회 진보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다.
진보, 보수가 뭐냐. 보수는 힘이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 적자생존 철저히 적용하자, 약육강식이 우주 섭리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쪽에 가깝다.
진보는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냐, 더불어 살자. 어느 쪽도 극단적인 것은 없지만 크게 봐서 이렇다. 가급적 바꾸지 말자가 보수고 고쳐가며 살자가 진보다. 그래서 한때 소련 붕괴됐을 때 진보 보수 바뀌었다. 부득이 보수가 공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헷갈릴 때 있지만 자본주의에 사는 한 보수는 약육강식, 되도록 바꾸지 말자는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아주 오른쪽에 있는 나라는 더더욱 바꾸지 말자는 기득권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해하면 간명하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
성장과 분배는 반드시 배치되는 개념인가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클리츠 교수는 같이 가야 장기적으로 성공한다고 했다. 경제 위기론, 여러분들이 취직 걱정 많아 실감나죠. 이 문제는 그래프 갖다 놓고 보자. GDP 3.8% 성장했던 때 경제 그 날로 붕괴하는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실제 그 때문에 경제가 더 살아나지 못했다는 강력한 학설이 있다. 경제 위기론 동의하지 않는다. 많은 지표보고 있는데 위기는 언제든지 오지만 잘 관리하고 있어서 제가 있는 동안은 문제없다. 안심하십시오. (박수)
일자리는 노력하고 있다. 왜 그렇게들 대학가나 가서 다 높은 자리만 하려 하는지...
지식서비스 산업 육성하기 위해 내가 직접 진두 지휘하고 있다. 효과가 나려면 좀 걸린다.
아일랜드가 87년 노사정 합의하고 외자 유치하고 해서 드디어 고용 살아나 국민이 경제 회생 체감할 때까지 6년 걸렸다 93년. 우리는 그 때 신경제 100일 했는데 좋아진 것 아무것도 없다.
죽는다 죽는다 하면 국민들은 그런 줄 알고 불안하고 정부는 급하니 이 정책 저 정책 다 갖다 쓰고 경제 파탄,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 89년 위기론에서 90년 진짜 위기 왔고 2001년 위기에서 무리 정책 나오고 2002년 진짜 위기 왔다. 자료 찾아 봐라 누가 경제 위기 갖고 어떻게 불안 조성해도 저와 경제팀이 면밀히 검토하고 따져 철저히 분석해 흔들림 없이 의연히 가겠다. 그동안 욕은 제가 먹으며 가겠다.
상생은 규칙 존중하고 승복할 때 가능
상생에 관해 한 말씀하겠다. 좋은 것이다. 대화 타협의 문화가 상생이다. 그야말로 진실하게 이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에 양보 받기 위해 공격하기 위해 상생 내세우면 반드시 실패한다. 어떤 게 상생인지 알아야 한다. 세상 변화를 수용하고 새 문화 장려해야 할 때 낡은 문화 고집하면 안 된다. 시대의 흐름을 맞춰야 하고 상생할 기본 조건 갖춰야 한다.
상대 존중해야 한다. 배제의 습관 남아 배제하려고 하는데 그런 방법으로는 상생할 수 없다. 상생은 결국 대화 토론 설득 얼추 다 됐는데 마지막 꼭지가 안 따질 때 표결하고 결과를 승복하는 것이 상생이다. 그 규칙 무시하면 상생은커녕 스포츠 게임도 안 되는 것이다. 규칙 잘 지킨 게임 끝났을 때 서로 악수하는 것. 반칙으로 얼룩지면 끝나고 나서 무슨 상생이 되나. 규칙과 승복, 훌륭한 심판 매우 중요하다. 패배를 넉넉히 수용할 줄 아는 역량 갖추고 싶다. 저는 지금도 열심히 일하지만 권력 추구하는 사람으로서는 이제 하산 길에 들어서고 있다. 하산을 무사히 발 삐지 않고 했으면 한다. 등산은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 잘 하산하려면 정상의 경치에 미련 갖지 않아야 한다. 나에게 정상의 경치는 좋기도 하지만 골치 아픈 것도 많다. 미련 갖지 않겠다. 자기와의 승부에서 이겨야 가능한 일이다. 제 자신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도록 마음 다스리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다. 감사하다.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