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 김선일 씨의 학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시론] 고 김선일 씨의 학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라크에서 과격파 무장단체에게 납치되었던 김선일 씨가 끝내 목숨을 건지지 못하고 말았다. 불행한 사건이다. 가족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동안 정부와 민간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전개했던 구출 노력이 헛수고가 된 데서 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 시점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실과 명제가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번 고 김선일 씨가 겪은 비극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이다. 작금의 이라크는 여전히 전시 상태다. 전쟁 중에서도 특히 비전투 민간인의 안전이 가장 불확실한 도시 게릴라전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인 (그리고 때로는 비이라크 아랍계) 무장 저항단체들과 미·영군 간의 교전이 매일처럼 일어나고 있고 자살특공대의 공격이 일상화되어 있는 가운데 대상자들의 국적을 가리지 않는 민간인 납치 및 살해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인이라고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요한 일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었던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한 예방조치를 강구하는 것이었다. 진정 '자국민의 신변안전' 에 관심이 있는 정부였다면 당연히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에 선행하여 이라크에 무절제하게 나가 있는 민간인들을 철수시키거나 아니면 그 밖의 필요한 예방적 안전조치를 먼저 취했어야 마땅했었다. 결국, 이번 불상사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이 같은 예방조치에 등한했던 정부의 몫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정부는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범행을 저지른 이라크 무장단체의 잔학성을 도외시한 채 “우리는 심정적으로는 미국 편이 아니라 당신네들(이라크 저항세력) 편”이라는 얄팍한 ‘두길 보기’ 논리로 납치범들의 비위를 맞추고 달래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금품으로 상대방을 매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편법'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납치범들의 선택은 그러한 한국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비웃는 잔인한 것이었다. 피납자를 학살하는 만행으로 한국정부와 국민을 협박함으로써 겁에 질린 우리 정부로 하여금 스페인의 전철을 밟아 스스로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을 포기하도록 하는 공갈하는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이 나라는 '제2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운 파병 반대세력의 파병 저지투쟁으로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러야 할 기세다. 50명의 여야 의원들(우리: 27명, 한나라: 6명, 민노: 10명, 민주: 7명)이 대정부 '자이툰' 부대 파병결정 재검토 요구 결의안을 발의했고 이와 별도로 민노당은 10명의 소속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이미 파병되어 있는 '서희·제마' 부대 철수 요구 결의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원외에서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촛불' 시위 등의 방법으로 이라크 파병반대 시위를 격화시키면서 엉뚱하게 이번 고 김선일 씨 피살사건도 국민들 사이에 '반미정서'를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제2의 희생을 막기 위하여 파병을 중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결코 정당한 것도, 현실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한 식의 논리에 따른다면 우리는 연간 7천여명의 교통사고 사망자 발생을 막기 위해 자동차 운행을 중지시켜야 하고, 연평균 744명의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폐쇄해야 하며, 연평균 2,542명의 산업재해 사망자 발생을 예방하기 위하여 공장가동을 전면적으로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자동차와 고속도로, 그리고 공장들은 그러한 사망자 발생으로 인한 고통과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는 국가적·사회적 이익을 창출하여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9년간에 걸쳐 연 312,853명의 국군장병을 월남전에 참전시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월남전 참전 과정에서 우리는 도합 4,597명의 젊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연평균 530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젊은 목숨의 고귀한 희생은 실로 값비싼 것이었다. 한국군 월남파병의 대가로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이른바 베트남 특수와 대미수출의 급증, 공공 및 상업차관의 대규모 확대, 대한 군사원조의 증액 등 경제적 실익 확보를 통하여 당면했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은 1) '한·미 동맹'의 '맹방'에 대한 '의리'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2) 이라크의 전후 복구와 재건을 지원하며, 3) 이라크 국민들을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잔존세력과 알 카이다 등 과격파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기여하는 보다 큰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처함에 있어서도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혹시라도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은 '선택'을 함으로써 이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이번에 이 나라가 이라크 과격 저항세력의 만행에 겁을 먹고 굴복한다면 앞으로 이 나라 안보에 구멍이 뚫려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해 질 때 우리는 과연 어느 나라로부터 그러한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끝내 일어나고 만 시점에서 우리는 고 김선일 씨로 하여금 결코 두 번 죽게 만드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뜻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번에 보여준 단호한 태도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은 23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테러 행위는 반인류적 범죄이며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과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면서 '결코 테러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입장을 천명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고 김선일 씨의 피납 사실이 알려진 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통해 '이번의 민간인 피납 사건에도 불구하고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결정에는 변동이 없다'는 입장을 정리했었다. 노 대통령은 23일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의 이라크 파병은 이라크와 아랍국가에 대한 적대행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라크의 복구와 재건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라크 추가파병 계획이 변동 없이 추진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국민적 분노를 폭발시키고 응징을 다짐해야 할 대상은 범세계적 여론을 외면하고 끝내 고 김선일 씨를 잔혹하게 학살한 이라크의 과격 저항세력이지 결코 그 밖의 다른 제3자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이들을 응징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의연하게 '자이툰' 부대를 예정대로 파병하여 이라크의 전후 복구와 재건을 성심껏 지원함으로써 문제의 저항세력들의 과격행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흐트러짐이 없이 해야 한다. 이번의 불행한 일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합심하여 이 같은 정부의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나라들이 국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행동임으로 역사가 우리에게 증언해 주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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