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개성공단 10개만 만들면 사실상 통일"(?)

"이것이 바로 국가연합제요,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아닌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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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대부분이 적자를 내고 있는 가운데 한승동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사진)이 “남북이 합의해서 개성공단 10개만 만들면 사실상 통일은 달성된다”는 주장을 했다.

월간 <말>지 기자 출신의 한氏는 지난 2일자 <한겨레> 칼럼(제목: 다시 국가연합, 낮은 단계의 연방)에서 이 같이 밝히고 “남북이 6.15선언에 명기하고 10.4 선언에서 재확인한 국가연합제요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아닌가. 그 길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氏는 “정치적 통일을 지향하는 한 남북통일은 불가능하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조선노동당이든 자신의 해체와 소멸이 예정된 통일을 추구할 리가 없다”면서 “남북에 이미 형성된 강고한 기득권층은 자신의 특권을 더욱 확장하는, 상대의 전멸을 전제로 한 통일은 추구하겠지만, 자신들이 위험에 빠지는 통일을 추구할 까닭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용주의를 내건 이명박 정부의 反실용주의 대북정책은 실패할 것이며, 결국 남북관계가 파탄 나고 중국 등 주변국에 모든 실리와 명분을 다 내준 뒤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진짜 北의 개혁-개방을 바라는 사람은 개혁-개방을 외쳐대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함께 최근 새누리당(舊한나라당)이 정강-정책에서 북한문제와 관련,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한다”는 대목을 삭제한 데 대해 “너무 늦었다. 그래도 그것은 실패에 대한 이 뒤늦은 자백을 ‘무원칙일 뿐’이라 비판하며 北에 개혁과 개방을 압박하지 않는 한 北의 변화도 통일도 없다고 주장한 자칭 보수 본진보다는 낫다”고 주장했다.

한氏는 이어 중국 공산당의 대만 복속(服屬) 움직임을 “대만의 햇볕정책과 이경제정(以經制政, 경제로 정치 제압), 선양후요(先讓後要, 먼저 양보하고 뒤에 요구)를 내건 중국의 상호실용주의”라며 “지금 양안 관계는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통합됐다”고 해석했다.   

참고로 현재 개성공단 근로자 수는 4만6000여명으로 업체들이 요구하는 7만 명에 한참 모자란다. 그나마 소속돼 있는 근로자들도 결근율이 10~30%에 이른다. 최근에는 북한 지역 수해로 남자 근로자들이 도로 보수 등에 차출되면서 생산 차질이 더 심각해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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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빌 클린턴은 1992년부터 1996년 사이 미국 주재 중국 대사관 및 중국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지 화교들로부터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비밀 자금’을 받고, 그 대가로CIA-국방부-국무부 등의 기밀 정보 및 최신 군사기술 정보를 중국 공산당에 제공했다.

1996년 2월 클린턴은 중국 전 부주석 왕전(王震)의 아들이며 폴리테크놀로지(Poly Technology)사의 사장인 왕쥔(王軍)을 백악관에 불러 비밀회동을 가졌다. 미(美) 국방정보국(DIA) 조사결과, 폴리테크놀로지는 중국 정보기관에 비밀리에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세워진 회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 CIA와 DIA는 이 회사가 북한, 파기스탄, 이란에 대량 살상무기와 생화학 무기 및 부품을 제공하고 있다는 자료를 확보한 후 미국 정부에 제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빌 클린턴은 왕쥔과 비밀회동을 가진 뒤,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무부에서 중국 당국에 더 많은 군사 기술을 제공키로 한 점을 묵인했다.([1] 1998년 6월 1일자 World Net Daily지, ‘How China took White House’ 인용. [2] Johnston, David, 'Committee Told Of Beijing Cash For Democrats ', New York Times, May 12, 1999 인용)

이후 중국 공산당에 발목을 잡힌 빌 클린턴은 1998년 강택민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은 ‘대만 독립’도 ‘두개의 중국’도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이른바 3불(不)정책을 공개 발언했으며, “우리(미국)는 어떤 (국제)기구든 대만이 국가자격으로 그 일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대만 정계는 클린턴의 발언을 두고 분노와 두려움이 섞인 예민한 반응을 보였으며,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클린턴의 상하이 발언을 놓고 연 3일 토론을 했다. 신문들은 일제히 사설과 논평으로 클린턴을 규탄했으며,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야당 데모대는 미국 대표부로 몰려가 중국의 국기를 불태우며 연좌데모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이전 까지만 해도 대만 주권문제에 대한 명확한 언급을 피해왔다. 대만의 주권 문제는 1972년의 상하이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은 대만과 대륙의 중국인들이 서로 대만을 포함한 전(全)중국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고만 한 채 미결로 남긴 상태였다.

특히 1982년 보수성향의 레이건 행정부의 경우 미국은 대만의 주권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달라진 게 없다고 보증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빌 클린턴이 대만 주권에 대한 3불(不)정책을 공개 발언한 뒤 9년 후 중국은 2007년 10월15일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전체 중화 민족의 염원”이라며, 대만에 평화체제 구축을 제안했다.

중국은 대만 복속을 목표로 대만에 대한 정치-경제적 친중(親中) 공작을 병행해왔고, 그 결과 친중(親中) 성향의 마잉주(馬英九)를 총통에 앉혔고, 그의 입에서 “중국과 통일이 이루어질지는 앞으로 10년간 정세 진전에 달려 있다”는 말을 나오게 했다. (Taiwan's Detente Gamble, The Wallstreet Journal 2009년 12월15일자 인용)

중국의 대만 복속 전략은 대만의 정치적-경제적 파벌을 내부로부터 손상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권은 국민당을 부패시키고 민주 진보당을 소외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다. 경제적 전략으로는 국민당 고위층, 민주 진보당의 후원자들, 그리고 수백만 대만 상인들을 대상으로 했다.

중국 공산당 전문가인 위안훙빙(袁紅氷) 전 중국 정치법률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저서인 ‘대만 대재난’에서 2002년 중국 공산당 중앙 위원회 사무국에서 나온 문건을 인용,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 고위층 인사들과 다른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이름과 그들의 친구, 친척들의 이름까지 명시하면서 이들에 의한 투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해놓았음을 폭로한 바 있다.

그는 또 국민당이 정권을 잡지 않았던 2002년부터 8년 동안 중공은 국민당 지도부를 대륙의 공개된 비즈니스 분야로 끌어들여 중국 정권과 엮이도록 만들어왔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민진당을 억압, 부패, 약화시켜 대만의 정치적 기반을 손상시키고 천수이벤 전 대만 총통에 대해 돈세탁 조작을 통해 민주진보당 내 갈등의 골을 깊게 했다는 것이다.

이제 ‘대만의 홍콩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중국이 대만을 복속시키고 난 다음에 그들의 목표가 어디가 될 것인가? 중국의 대만 복속 이후 남북한이 통일이 되어 있지 않다면 바로 북한이 대만 다음의 목표가 될 것은 분명하다. 북한 다음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중국이 동북공적으로 대표되는 역사왜곡, 영토왜곡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중국 공산당의 확산 과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 복속된 대만의 미래가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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