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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새누리당은 소셜 미디어, 즉 SNS 이전에 소셜 컴퓨팅(Social Computing)이라는 과정을 잊고 있다. 소셜 컴퓨팅은 변별력 있는 그룹들로부터 얻어진 제안들을 평가하고 토론해 완성된 집단지성 프로세스다. 이 프로세스가 없는 소셜 미디어 전략은 한마디로 중구난방, 머리 없는 닭들의 달리기에 불과하다. 대중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그것도 오래된 레퍼토리를 열심히 나르거나 혹은 자신의 등산길 코스나 알려주는 신변잡기 SNS 콘텐츠에 반응할 국민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 서로 친구가 된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새누리당의 소통부재, 집단지성 부재의 현 상황을 이렇게 토로했다. “도대체 우리에게는 머리를 맞대는 문화가 없어. 모두가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자기 생각만 전달하니…” 소셜 미디어의 힘은 아이디어와 가치의 공유 우리는 개미와 꿀벌 같이 지능이 낮은 존재들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조직화된 활동을 하고 질서 있는 세계를 유지하는 것을 본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존재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하고 이를 통해 집단지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개개의 개미와 꿀벌의 힘은 미약하지만 이들이 창출해 내는 집단지성은 인간도 해내기 어려운 과제들을 수행한다. 인류도 지금 그렇다. 21세기 정보통신의 혁명과정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인간의 집단지성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파워 블로거와 독자 참여를 기반으로 한 소셜 미디어 ‘허핑턴 포스트’는 창간 5년만에 온라인에서 뉴욕타임스를 제치고 뉴스 사이트 1위를 구축했다. 또 미국의 의류회사 쓰레드레스(threadless)는 네티즌들이 온라인에 티셔츠 디자인을 제출하면 50만명의 평가를 거쳐 상금과 함께 티셔츠를 제품화한다. 회원들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지인들과 공유하고 이는 다시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마케팅 정보로 활용된다. 2000년 니켈과 제이콥 두 사람이 단돈 2000달러를 가지고 시작한 이 회사는 2004년 수익이 150만 달러에 달했고 2년 후인 2006년에는 650만 달러를 넘어섰다. 유통회사 베스트바이는 미국 내 1500개 지점의 10만명 판매원들이 온라인 플랫폼 ‘My custermer’를 통해 구매자와 의견을 공유한다. 마이 커스터머는 한 문장으로 그 특징이 표현된다.“한 사람의 목소리는 소음이지만, 여러 명의 목소리는 코러스”라는 것. 구매자의 의견을 알고 있는 판매자와 그렇지 않은 판매자들이 경쟁한다면 결론은 뻔하다. 이런 집단지성은 정부와 공공행정에서도 등장한다. 오바마를 당선시킨 집단지성 프로그램 ‘드림 캐처’
시카고市의 49區(43th ward)는 2001년부터 예산 절감을 위해 온라인을 통해 주민들에게 공공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주민대표들의 찬반투표를 거쳐 사업을 확정했다. 참여를 통한 집단지성의 활용은 이처럼 수요자 중심의 가치를 창출한다. 보수진영에서 문성근의 ‘100만 민란’을 시대착오라고 비난하고 있을 때 그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확보한 지지자들의 힘으로 민주통합당의 최고위원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것은 좌파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성이 보여준 힘이었다. 보수진영이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과 헤드앤 숄더라는 상층부 하이라키(위계질서)에 함몰돼 있을 때 좌파진영은 바닥에서부터 크롤링(crawling)이라는 저인망 전략을 펼쳐왔던 것. 그 결과 새누리당의 경우 머리들만 있고 몸통과 팔, 다리 등은 빈약할 뿐만 아니라 제각기 따로 노는 기형조직이 돼 버렸다. 그렇다면 집단지성을 통한 풀뿌리 보수운동은 어떻게 가능할까. 정답은 보수적 가치를 소셜 컴퓨팅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수집하고 토론하며 확산하는 것이다. 소셜 컴퓨팅(Social Computing)은 이 가운데서 핵심의 기법에 자리한다. 한마디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소셜 컴퓨팅은 먼저 아이디어 제안(Collecting)쭭선별(Contest)쭭통합(Collaborate)쭭활용이라는 과정을 거쳐 집단지성으로 구축된다. 이때 아이디어는 좌파처럼 바닥에서 크롤링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변별력을 갖춘 그룹(Sellected Crowd)들로부터 올라와야 한다. 바닥으로부터의 크롤링을 흔히‘크라우드 소싱’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칫 집단사고(Group Thinking)에 함몰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별력 있는 집단들의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모이면 토론이 진행돼야 한다. 토론은 의견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찬성에 대한 논거, 반대에 대한 논거를 분명히 알게 하고 이 논거들에 대한 코멘트가 제시돼야 한다. 소셜 컴퓨팅이 없는 SNS 전략은 무의미 예를 들어 보자.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유아 무상보육의 경우 국민들에게는 단순히 육아비를 정부가 지원해 주는 정도로 인식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당은 육아보육비에 대한 금액을 여당보다 높게 제시함으로써 여당의 정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한다. 만일 여당이 야당과 차별화된 무상보육 정책을 내지 않으면 이는 야당의‘Me too’전략에 의해 희석돼 버린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아이디어가 선택된 전문가 그룹과 부모들로부터 제시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부모들은 무상보육비보다 제대로 된 보육시설이 없다는 점에 더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기에, 새누리당이 이 부분에 대한 의제 선점을 하지 않으면 이는 야당의 몫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새누리당의 정책들 대부분이 현재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소셜 컴퓨팅의 로직을 따르지 않고 톱다운 방식의 아이디어가 정책이 되기 때문. 결국 누군가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정책은 집단지성이 만든 정책에 비하면 수많은 허점과 낮은 효용성을 갖기 마련이다. 새누리당이 영유아 무상복지정책을 소셜 컴퓨팅에 의해 집단지성화한다면 이는 새로운 성장형 복지정책으로 옷을 바꿔 입을 수도 있다. 보육시장이라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등장하고 이를 통해 청년 일자리가 생겨나며 부모들의 편익이 증대되어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지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지포럼이나 세미나를 여는 정도의 차원으로는 집단지성을 창출할 수 없다. 소셜 컴퓨팅에 의해 구축된 집단지성이 비로소 소셜 미디어를 만날 때 그 파급효과가 증폭된다. 소셜 컴퓨팅 과정에서 구축된 아젠다와 이야기는 바로 내 이야기로 다가오고 나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드림 캐처’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메시지가 완성됐다. 그의 공약 하나 하나는 수많은 정보들을 입수해 다듬고 깎고 평가한 결과였다. 동시에 소셜 미디어에 회자되는 정보는 사건의 징조와 예측을 가능하게 만든다. 한 예로 HP는 트위터상에서 회자되는 특정 영화에 대한 코멘트로부터 그 영화의 매출을 금융기관이 주가로 예측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싫다, 좋다, 지루하다와 같은 감정의 톤(tone)들을 성별, 계층별, 인종별로 매칭시키고 리트윗하는 정도를 분석해 보면 일정한 패턴이 등장하고 이 패턴 비교를 통계적으로 검증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흔히 빅 데이터 분석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데이터 분석이 시각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과거 정치와 사회의 제문제들은 주로 지배 엘리트들의 판단에 의해 결정돼 밑으로 하달됐다. 엘리트들일수록 그 사회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많았기에 이는 어떤 면에서는 타당했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시민이라면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을 전문 사이트로부터 인용하고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다시 말해‘지식’의 유통자들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마치 개미집을 짓는 개미들의 무리를 연상케 한다. 권위에 의한 지식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디지털 세상에서 권위는 가치로 대체되고 그 가치를 중심으로 지식들이 집합된다. 그 결과 집단지성으로 구축된 개미탑은 다시 그 개미들의 소유가 된다. 디지털적 성찰이 새로운 가치 집단들 만들어 내는 것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이제 포스트모던 철학자 부르디외가 말한 ‘입장’만 남았을 뿐, 객관 저 너머의 것이 돼 버렸다. 어떤 가치의 기준에서 바라보는가로 집단화되는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독립된 개인이란 마치 무리에서 이탈한 개미와 같은 나약한 존재는 아닐까. 그것은 과거의 파시즘이나 전체주의와는 또 다른 장면이다. 그것들에게는 반지성을 증명할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다가오는 디지털 집단지성의 세계는 언제든 오류가 수정되고 반박되며 재구축되는 열린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 권위에 의지해 오늘을 살고 있는 보수는 이러한 집단지성에 적응할 수 있는가. 그리고 선도적으로 구축해 낼 수 있는가. 대한민국 보수는 자기 혁신의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 (미래한국) | ||||||||||||||||||
디지털 세상에서 권위는 가치로 대체되고 그 가치를 중심으로 지식들이 집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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