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실세는 누구인가

최성재

대한민국의 실세는 누구?



2004년 6월 29일자 조선일보에 이라크 외교관에 관해 동정을 자아내는 칼럼이 실렸다. 맞는 말이다. 그들의 근무 환경은 열악하다. 엽기스러울 정도이다. 그들은 죄가 없다.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한 죄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죄가 있다. 일선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거주 한국인으로서는 쳐다보기에 목이 아플 만큼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외교는 흔히 국내 정치의 연장이요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말은 외교가 국내 정치 수준을 넘을 수 없고, 총이 아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국가의 이익을 지키고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뜻이다. 국내 정치가 민주화되어 있으면, 외교도 민주화되어 외교관이 상당한 자율권을 갖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 상생하는 방법 중에 최선의 것을 찾는다. 반대로 국내 정치가 봉건왕조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면, 외교관이 아무런 실권이 없이 시키는 대로 때로는 국가 이익도 도외시하고 오로지 '왕과 왕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충성을 다 바친다. 독재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처럼 국민의 생명과 행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독재 권력을 지키기 위해 외교관은 충견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하나 더 있다. 사이비 민주국가가 바로 그것이다. 인기를 좇을 뿐인 이런 정권은 유행하는 이론에 맞춰 그 때 그 때 합리성도 없고 일관성도 없는 미봉책으로, 스스로 생산하지는 않고 '떼'를 '합법'으로 둔갑시켜 남이 생산해 놓은 것을 빼앗아 가려는 여러 세력들의 조변석개하는 구미에 맞춰 갈팡질팡, 우왕좌왕, 국가 권력을 수시로 동원하고 1년 365일 여론몰이로 부정부패한 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이 낯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매장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정적 아니면 기업가이다. 모든 게 뒤죽박죽,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이런 나라의 외교가 제일 예측 불가능하다.

이런 국가의 외교관은 능력 있고 소신 있을수록 헛물을 들이킨다. 그가 선진민주국가의 외교관 못지 않게 세련된 방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여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는 지도자로부터 무언의 승낙을 받아서 멋진 협상안을 도출해 놓고 막 귀빈들과 왈츠를 추면서 샴페인 잔을 부딪치려고 하면, 정부의 누군가가 인사권자에게 압력을 넣어 갑자기 한 마디 예고도 없이 본국으로 소환되거나 오지로 내쫓긴다. 이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면 그 다음부터는 전문 외교관은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만취 상태로 '안전한' 차를 몬다. 국가가 구렁텅이로 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 조치도 못하는 것은 고장난 기관차가 마구 달리는 것을 보고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기차에서 뛰어내려 만취 상태로 차를 몰고 아무 길이나 다른 길로 가는 게 안전한 것이다.

한국의 갈팡질팡 외교가 가관이다. 코드는 대중주의와 친북과 좌익이지만, 포장은 멋지게 디자인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와 사회정의로 세련되게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외교부 장관 위에 사무차장(곧 처장이 된다고 함)이 있고 통일부 장관 위에도 사무차장이 있고 국방부 장관 위에도 사무차장이 있다. 그의 심기를 거슬리면 아무리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일도 다 뒤집어진다. 반면에 그의 복안에 합치되면 아무리 불합리하고 아마추어적인 발상도 본인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각광을 받는다. 외교와 국방과 통일 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는데, 이것을 사무차장이 조정하는 척, 통제하고 지시한다. 속내를 불쑥불쑥 드러내고는 뒷수습을 못하는 '임금님' 뒤에서 나직나직하고 '논리적인' 말로 하나하나 실에 꿰어 넌지시 수렴 밖으로 건네준다.

사무차장이 실세일까, 그것도 의심스럽다. 그의 뒤에는 훨씬 더 큰 세력이 있다. 그들 중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세력이 주사파이다. 이들도 실세일까, 그것도 의심스럽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외교와 국방과 통일에는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가 김정일이 원하는 대로 7·4공동성명을 북한식으로 유권 해석하여 새로 만든 6·15공동선언은 외교와 국방과 통일의 대헌장이다. 그 이후 남북 두 정권과 북한의 전 주민과 조총련과 한국의 여론 주도층이 이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이에 대충 들어맞는 것은 국회고 여론이고 전혀 눈치보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후에 불법행위가 들통나도 '한반도기'를 흔들며 '우리의 소원'을 비장하게 부르면 끝이다. 동맹국이나 우호국의 눈총에는 아예 쌍권총을 겨눈다. 북한의 권총과 한국의 권총을 합친 쌍권총을 쏘면 피융, 하면서 '민족 공조' 또는 '우리끼리'라는 총알이 튀어나간다.

이 '통일 대헌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라크 파병이든, 대북 '진실'방송이든, 한미동맹이든, 핵 폐기든, 대북 인권규탄이든 용납할 수가 없다. '국력이 약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외곽부대를 동원하여 자꾸만 김이 새게 만든다. 나팔부대를 동원하여 얼을 빼앗아 다 된 밥을 멀거니 보면서도 떠먹지 못하고 그냥 식혀 버리고 시게 만든다. 다 된 국수를 퉁퉁 불게 만든다. 정부 차원에서 '화해' 연출에 어울리는 있는 일은 북한 대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행한다. 동맹국을 매도하는 일은 1년이고 2년이고 촛불을 들고 감상적 민족애에 호소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경천동지할 위협도 남의 일인 양 딴청을 피운다. 체코에서는 한국의 일개 인권단체 국제회의에 국회의사당을 빌려주고, UN에서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야만 행위에 2년 연속 몸서리치면서 아무리 귀를 막아도 전 세계가 다 들리는 초강력 확성기로 천둥처럼 크게 꾸짖어도 멀뚱멀뚱 쳐다보며 동문서답을 한다. 왜? '통일 대헌장'에 벗어나니까.
그러면 김대중 전대통령이 실세일까, 그것도 의심스럽다. 그는 현직에서 떠났으니까.

과연 누가 실세일까. 어둠 속에서 웃는 자가!

(2004.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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