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가 1류를 개혁하면
최성재(토론방)
노무현 대통령의 팬이었던 신문들이 한 목소리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초심을 버렸다고, 개혁의 발걸음이 무겁다고!
개혁은 그 자체가 중립적인 말이어서 어떤 이념을 가진 사람이 이 말을 쓰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뜻을 지닌다. 시장친화적인 개혁이냐, 반시장적인 개혁이냐? 이들이 얘기하는 것은 하나같이 반시장적인 개혁이다. 시대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망국의 고속도로를 놓는 것을 개혁이라고 한다. 이들은 개혁이란 중립적인 말을 우리나라의 온갖 문제점을 단칼에 도려내고 새 살을 돋게 하는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고 있다. 지극히 긍정적인 이미지로 활용하고 있다.
뜨거운 가슴과 높은 눈만 있던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 혼란과 전쟁, 경제개발, 민주 실험 등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수준에 달한 전문가 집단이 탄생했다. 현재 최고의 전문가 집단은 단연 삼성전자를 필두로 하는 대기업의 임직원이다. 세계 어디 가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들은 적응력이 탁월하다. 전 세계 200여개국에 수출하면서 이들은 어떤 자연환경, 어떤 문화, 어떤 언어, 어떤 제도에도 유연하게 대처한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중동의 전쟁터, 러시아의 마피아 세계 등 예측하지 못할 위험이 사방에 도사린 곳뿐만 아니라 세계의 공장 중국, 세계의 다음 공장 인도 등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날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곳은 물론, 일본과 미국과 EU 등 잠시잠깐 한 눈 팔면 코를 베어 가는, 천재도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순식간에 뒤쳐지는 곳에서조차 정치 자금 1달러도 안 내고 당당하게 '계급장 떼고 맞짱떠서' 기가 막히게 잘 적응한다. 삼성전자 한 곳만 해도 밤낮을 모르는 박사가 2천여 명, 서울대보다 많다. 정부의 1년 전체 연구개발비와 맞먹는 연구개발비를 쏟아 붓고 있다.
전문가 집단은 기업 외에도 많다. 50년대는 6·25를 거치면서 미군에 의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과학기술과 조직과 효율성으로 세례를 받은 군인이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 거듭났고, 60년대와 70년대는 경제개발을 진두지휘하는 과정에서 일하면서 배운 공무원들이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전국 박사의 70% 이상이 몰린 대학교수들은 한번도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 우뚝 서지 못했다. 교수가 되는 순간 논문 한 편 안 써도 평생직장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군인은 전쟁터에서 살아 남아야 했고, 공무원은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기업들이 세계의 경제 전쟁터에서 살아남도록 도와 주어야 했지만, 교수들은 안경과 인용과 박사 가운으로 얼마든지 학생들 위에 군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시 출신들도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된 적이 없다. 거기도 평생 직장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혹 그 직장에서 쫓겨나면, 언제든지 '야인'으로 돌아가 떼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된 적이 없다. 아무리 무식하고 무능하고 사악해도 이마에 '민주'자를 써 붙이고 터져서 피가 나길 학수고대하면서 아무 데나 마구 머리를 들이밀거나 팔뚝에 '통일'자를 문신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휘두르면, 의인이 되고 열사가 되고 위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이든 노동자든 시민이든 시위꾼이 되는 순간 그들도 전문가 집단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고 더 이상 신기술을 익히지 않고 더 이상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고, '표'가 훤히 보이는 조직의 힘을 믿고 고함과 협박만 일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코앞에서 10년간 맴돌고 있다. 왜? 2류 집단이 1류 집단을 개혁하고 3류 집단이 2류 집단과 1류 집단을 개혁하기 때문이다. 1류 집단에게 배워서 2류 집단은 2류 집단이 되고 3류 집단은 2류 집단이 되고 더불어 1류 집단은 초일류 집단이 되어야 하는데, 3류 집단이 성리학의 낡은 도덕으로 재무장하고 1류 집단을 난도질하고 2류 집단을 짓밟고 있으니, 1류 집단마저 2류 집단으로 3류 집단으로 전락하기 직전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3류 집단은커녕 4류 5류 집단도 안 되는 동서고금 최하류 집단의 입김이 날이 갈수록 세어지고 있다. 북풍한설이 몰려오고 있다. '주체' 고기압이 걷잡을 수 없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 고기압 한가운데서 공포의 대왕이 빙긋이 웃고 있다. 개혁 바람을 압도하는 통일 바람을 슬슬 내려보내고 있다.
(2004.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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