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는 법

[서평] 위험한 책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100일 기도]를 바로잡습니다. (5)

5. 결(結) – 원수를 사랑하는 법

‘원수를 사랑하라!’ 많은 사람들이 북한 접근에 있어 이 말씀을 강조합니다. 60년 이상 남과 북은 원수였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서로 사랑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100일기도]의 책임 편저자 역시 같은 입장을 설파한 적이 있습니다. (<<원수 이해(理解)>>, www.uniprayer.com/cms/unimaillist/38599/page/1)

원수는 누구인가? 반공을 국시(國是)로 내세웠을 때조차 우리는 북한 동포에 대한 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권력 가진 북한 공산 독재자들에 대한 증오를 배웠지만, 북한의 보통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교육은 받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처음부터 북한 주민들이 아니었습니다. 반공은 있었으나, 반(反) 북한주민 교육은 일절 없었습니다. 헌법은 북한 주민들을 언제나 우리 국민으로 귀화 절차없이 받아들이는 통로를 열어두고 있었습니다.

원수는 김일성 일가와 그 하수인들에 국한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군의 주적(主敵) 개념도 김일성 일가의 수령독재를 떠받치는 북한군이지 피압박 주민들이 아닙니다.

‘원수’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한 후, 다시 ‘원수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들 원수, 북한 세습 독재 권력자들을 사랑하는 방법은 바로 원수조차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사랑? 진보를 자처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뿐 아니라 최근에는 소위 보수 기독교 교회도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www.ukore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6)

보수 진보 상관없이 조그련, 봉수교회와 기독교 통일운동의 명목으로 적극 연합하고 있습니다. 그 바탕이 되는 정신은 역시 ‘원수를 사랑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을 이런 식으로 적용하여 한국 교회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영적 자살로 인도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산상수훈은 그런 것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수훈을 통해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원수를 ‘이기는 것’입니다. 악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태복음 5장 39~41절]

예수 그리스도는 오른편 뺨을 치거든 가만히 있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그냥 내주고, 오 리를 가자 하면 그냥 가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악에게 굴종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기독교 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악에게 순종하면 기독교에 순교란 없겠지요?

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며,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 주어야 하는가? 그것이 원수를 이기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저항할 수단이 없는 순간에도 악(惡) 앞에서 무기력하지 않아야 될 것을 산상수훈은 알려 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악(惡)을 이기고 있습니까? 김일성 수령독재가 인가해 준 교회는 모두 가짜입니다. 이단보다 더 무서운 이단입니다. 진짜 교회는 순교하는 지하교회입니다. 아무도 실체를 다 알 수 없지만 무사안일한 남한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위해 남한 교회가 한 일이 너무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기독교 박해가 틀렸다고 말해 줘야 합니다. 기독교 접촉시 정치범수용소에 보내는 행위를 중단시키고, 정치범수용소를 폐쇄하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을 위해 더 많이 일했어야 합니다. 강제송환을 막기 위해 더 많은 교회들이 힘을 합했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용감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이상하게 악을 달래고 순응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심지어 분명 악한 일인데 악하지 않다고도 가르칩니다. 김정일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귀엣말로 들려줍니다. 김정은을 믿어보자고 말합니다. 탈북자 강제송환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도 말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고 새긴 영생탑을 세워 두고도 기독교 교육 선교 베이스가 마련되었다고 자랑합니다. 자신을 ‘Lovist(사랑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이 사람은 옆으로 막대기만 걸치면 영생탑이 십자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목사는 3대 세습도 축복하며 기도하라고 주장합니다. 한국 교회 기도운동이 김정은을 위한 중보기도운동이 될 상황입니다. 세종대왕 대왕도 20대에 왕 되었는데 김정은은 안 되냐고 주장합니다. 봉수교회가 가짜라고 욕하지 말고 북한 전역에 교회 세우는 데 이용해 보자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두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한국 교회가 어정쩡하게 악의 편에 서 있습니다.

“북한 자극하지 말라.” “전쟁난다.” “원래 사회주의는 인권 없으니 인권 얘기는 하지 말고 무조건 줘라.” 그런데 탈북자 문제는 십년이 가도 제 자리, 기독교 박해는 올해도 최악, 정치범수용소도 그대로, 교화소 인권문제는 더 심각해지는 상황, 북한에서 기아와 마약은 날로 심각해지기만 하는데 그저 원수를 사랑하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스캔들에 불과합니다. 사랑인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 우상 통치와 그들의 악에 대해 순진한 교인과 교회를 무장해제시키는 부적절한 스캔들, 영적 음란으로의 초대입니다. 한국 교회의 주류는 오랫동안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고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입으로는 “우상아 무너져라,” 소리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북한 정권이 후세인처럼, 무바라크처럼, 가다피처럼 무너지는 것은 싫다고 생각합니다.

지어낸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 최고의 교회, 선교단체에서 주장되고 흘러나온 얘기들입니다. 한국 최고의 복음적인 교회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허용하고 열어준 대문을 밀고 들어온 말들입니다.

이런 교회가 순결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 극단적인 경우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여기가 대한민국인지 의심될 정도입니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명예교수 박순경 씨의 평생의 꿈이 기독교와 공산주의, 그리고 주체사상을 결합시키는 것이라고 하는군요.(<<통일신학, 통일운동의 한길 原草(본디풀) 박순경>>, 월간 말, 2007) “예수도 주체사상가”라고 주장하는 신은희 교수라는 사람도 있군요. 북한, 미국, 한국을 오가며 가르치는 신학자라고 합니다.(<인터뷰>“주체사상과 기독교 만날수 있다”, 통일뉴스 2005년 5월 27일) 한상렬 목사의 예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영락교회 부목사를 지냈던 홍동근(작고), 홍정자 부부도 김일성을 위해 봉사한 목회자 부부이군요.

김일성 우상숭배를 용인하고, 허용하고, 인정해 주는 교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신교 카톨릭 성공회할 것 없이 북한 정권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악마의 변호사들’로 넘쳐 납니다. 이런 사태를 이제 국가가 막아주지 않습니다. 노골적인 지령을 받는 간첩들도 처벌이 어려운 마당입니다.

깨어 기도하는 자만이 분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과 이 나라의 영혼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영적 간첩들을 주의하십시오! 인류 역사상 가장 극악한 공포로서 자신을 신격화하고, 그 가공할 만한 악한 통치를 3대까지 물려준 김일성에게 교회가 문을 열어주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아닌데 아닌데 하다가 넘어갑니다.

심각한 영적 타락의 위기! 이것이 지금 한국 교회의 현주소입니다.

우리 통일은 천국과 지옥을 이혼시킬 때 가능합니다. 지옥이 남겨준 기념품까지 깡그리 버리는 것만이 천국의 옆동네로 이사가는 길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밝혀준 C.S.루이스의 교훈이 통일 대한민국으로 가는 지표가 될 만합니다. 순결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교회만이 진짜 교회입니다. 우리 어쩌면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십계명과 십자가, 순결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그 원점으로 말입니다.

[통일코리아를 여는 100일 기도]에 바쳐진 순수한 열정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 서평은 얇은 한 권의 책을 향한 평론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2012년, 이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에 어디에 서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신뢰합시다. 제 3의 어떤 나라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함께 해오신 ‘대한민국’ 바로 이 자리가 한반도 통일 동력이 솟는 곳입니다. 또한 한국 교회를 신뢰하고 사랑합시다. 저는 통일 대한민국을 여는 중요한 비밀이 한국 교회의 저력에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흔들리고 깎이지만 정결하게 다듬어지고 있는 한국 교회는 상처받은 북한 교회, 북한 주민들을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껴안고 보듬어 성공적인 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날카롭고 매서운 서평이지만 우리가 만들어야 할 거룩하고 정결한 새 교회에 대한 소망으로 나누어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애써 책을 만든 많은 분들, 마음 다치게 한 것 용서 바랍니다. 주님의 때에 여러분 모두 크게 상 받으실 것을 기대하고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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