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雜多한 김일성주의 조직들

(公安사건 분석) 386주사파단체(3)-구학연(구국학생연맹) 등
1.
80년대 김일성주의(소위 주체사상) 조직은 다양하고 방대했다. ‘구국학생연맹’, ‘구국학생동맹’, ‘애국학생회’, ‘조통그룹’ 같은 조직들이 김일성주의, 소위 주체사상을 추종했다. 이 같은 사실은 복수의 공안문건(‘좌익운동권 변천사’, 1999년, 경찰청 刊 外) 및 전향 주체사상 추종자들 증언에서 공통된다.

1994년 8월29일 김두희 법무부장관은 국회 법사위에 나와 현안보고를 통해 ‘主思派(주사파)의 실상과 대책’에 대해 밝혔다. 국회에 보고된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주사파의 뿌리는 86년 결성된 지하조직 ‘구국학생연맹’으로 파악된다. 83년 학원자율화조처 이후 학생운동권 안에서 시민민주주의혁명론(CDR), 민족민주주의혁명론(NDR), 민중민주주의혁명론(PDR) 등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내부투쟁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85년 10월부터 서울법대, 서울공대의 운동권 학생들이 ‘구국의 소리방송’에서 보내는 ‘정치사상강좌’ ‘정치철학강좌’ 등을 집중적으로 듣고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인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NLPDR)을 학습하면서 주사파의 실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음해인 86년 3월 구학련이 지하조직으로 결성된 뒤 산하 공개조직으로 각 대학에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자민투)를 만들면서 주사파가 급속히 확산됐다.

구학련이 와해되자 86년 10월 잔존세력이 ‘전국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을 결성했고, 같은해 12월에는 고려대를 중심으로 ‘전국사상투쟁위원회’(전사투위)가 지하조직으로 결성됐다.

당국의 검거로 전사투위도 와해되자 88년 1월 전국 26개 대학에서 주사파 핵심 72명이 지하조직인 ‘反美청년회’를 결성해 같은 해 5월 이 단체 회원들로 하여금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을 결성하도록 한 뒤 제2기 전대협의 핵심간부직에 취임·활동하도록 함으로써 주사파가 학생운동권을 장악하게 됐다.

이후 전대협은 북한의 대남혁명 전위로서의 역할을 해오다 지난해 조직을 더욱 강화시킨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을 출범시켰다.

이에 따라 1994년 4년제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 결과 모두 1백31명 가운데 주사파인 민족해방(NL)계 64명, 민중민주(PD)계 22명이 당선됐으며 한총련 소속 1백98개 대학 총학생회 가운데 약 50%를 주사파가 장악한 것으로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

또 이들 주사파는 학생운동권 외에도 재야·출판계 등 각계각층에서 ‘친북·반미’를 중점투쟁 방향으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이들 주사파 세력이 북한을 추종하는 근거로 △지난 5월 한총련 2기 출범식에서 주체사상을 정식 지도이념으로 수용하는 한편 △한총련이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투쟁지침으로 대부분 수용했으며 △북한 핵사찰, 우루과이라운드협정, 김일성 주석 사망 등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북한이 ‘구국의 소리방송’을 통해 지시하는 투쟁전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주사파들이 북한으로부터 지침을 받거나 북한과 연계되는 통로를 세 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북한방송 청취팀’을 구성해 북한 ‘구국의 소리방송’과 ‘중앙방송’을 녹취해 대학가를 비롯한 운동권에 전파하는 공개적인 방법이다. 다음으로 베를린의 범청학련 공동사무국이나 일본의 ‘범민련 해외본부’ 등을 통해 북한과 전화나 팩시밀리를 이용해 직접 투쟁전술을 논의하는 반공개적인 방법이 있다.

또 비공개적인 방법으로는 북한의 간첩이나 지하당 조직으로부터 주체사상을 직접 전수받거나 투쟁방향 등을 지도받고 있다.

정부는 주사파 등 좌경세력이 발생한 요인으로 △반체제세력이 민주투사로 위장한 채 세력을 확장해왔고 △반체제 사범에 대한 단속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오해되는 분위기가 형성돼 대공수사요원의 사기가 떨어지고 좌경세력에 대한 수사 활동이 위축돼왔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주사파를 비롯한 ‘좌익사상 오염원’과 그 배후조종자들을 철저히 색출·구속해 철저한 공소유지와 중형 구형으로 사회로부터 상당기간 격리하는 한편, 개전의 정이 없는 자들은 은전대상에서 철저히 제외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공안수사기관의 조직 및 인력을 보강하고 공안수사기관 사이의 유기적인 수사공조체제를 확립해 수사역량을 강화하며 이적도서·영화·비디오·컴퓨터통신 등 좌익사상 전달매체에 대한 감시활동을 강화해 좌익이념 확산을 막겠다(1994년 8월30일 한겨레신문)》


2.
사법부는 ‘구국학생연맹(이하 구학연)’에 대해 “공소 외 박O순, 피고인 임O식 등을 비롯한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고려대 反美청년회 등 민족해방(NL)계열 주사파 학생운동권 지하조직 출신들(부산고등법원 1999. 5.17. 선고, 99노122)”이라고 판시해왔다.

구학연은 86년 3월29일 서울대 자연대 건물 22동 404호에서 1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출범했다. 구학연은 결성취지문에서 북한정권의 對南혁명노선인 NLPDR(民族解放人民民主主義)을 강령으로 “한반도의 분단과 민중을 억압, 착취하는 원흉으로 美帝(미제)와 그 괴뢰 정권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미제의 신식민지 파쇼통치의 매판적 반동집단 타도” 등을 채택했다.

구학연 자체는 비합법 지하조직이었기 때문에, 투쟁과정에서 수사당국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고 조직의 투쟁방향을 집약하여 학생들을 지도할 공개투쟁기구가 필요했는데, 이 기구가 바로 ‘自民鬪(자민투)’였다. 자민투는 86년 4월 서울대에서 결성됐고, 이후 반전반핵투쟁과 군부대 입소 반대 투쟁를 벌이고, 5·3인천사태를 주도하며 부산 美문화원 점거투쟁을 벌이기도 했다(‘좌익운동권 변천사’, 1999년 경찰청 刊, pp. 170~171).

3.
국가안전기획부는 1991년 3월22일 전대협을 배후조종해 임수경 밀입북사건을 주도하는 등 학원가의 反美통일투쟁을 선동해온 주사파 계열의 비밀지하조직 ‘조국통일 촉진그룹(조통그룹)’을 적발했다(동아일보, 1991년 3월23일자)

당시 구속자 명단은 아래와 같다. ▲전문환(23·89년 서강대 총학생회장·전대협 평양집회준비위원장) ▲홍순철(24·연세대 국문과 졸·조통그룹 연세대 지도책) △김학범(24·서강대 사학과졸·이대­경기대 등 6개대 소조책) ▲박득준(26·연세대 화학과졸·회사원­기관지 제작소조책) ▲최미전(24·상명여대­경제4 휴학­기관지 제작소조원) △이귀혜(24·이대 신방4 휴학·조통그룹 이대 지도책).

당시 안기부는 ‘조통그룹’이 ‘자민통’ ‘반제청년동맹’ ‘관악자주파’ 등과 함께 북한의 통일선전부 산하 대남위장선전기구인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의 지침에 따라 결성된 대학가의 4대 주사파 조직 중 하나로 그 동안 전대협을 배후 조정해왔다고 발표했다(세계일보, 1991년 3월23일자).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민보상위)’는 ‘구학연’·‘조통그룹’ 등 각종 김일성주의 조직 구성원들이 국보법 및 집시법 등을 위반하여 反국가 활동을 벌이다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나열한 뒤,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민보상위는 다른 반국가단체·이적단체 사건에 대한 결정과 마찬가지로 사법부 판결을 번복하는 再審(재심)도 거치지 않았고 기존의 수사자료·공소장·판결문 등 과거 국가기관의 자료들을 전면 부인한 뒤, 일부 자료·연루자들의 증언 등을 취사선택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 버렸다.

민보상위는 ▲‘조통그룹’ 연루자 최미전(민보상위 173회次 : 이하 같은 의미), 홍순철(178) 및 ▲‘구국학생연맹’ 연루자 정대화(69), 고창국(71), 박현수(71), 박옥주(71), 서진석(72), 정미숙(72), 박인기(77), 이종주(78), 한능우(88), 이광희(100), 정경아(110), 정준채(121), 박현애(133), 이광석(133), 이경훈(136), 고재현(139), 박희승(155), 전난경(187), 박종용(189), 황인욱(189), 정춘식(189) 등의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

예컨대 2006년 7월3일 민보상委는 조통그룹 조직원 최미전件과 관련, ▲“서총련 소속으로서 1988년 8월 한국민족민주전선의 구국의 소리 방송 내용을 채록, 제작된 ‘새세대 제16호’ 1부를 받아 탐독” ▲“1990년 2월 연세대학교에서 ‘조국통일촉진그룹’ 산하 북한방송청취팀인 ‘비씨소조팀’에 가입” ▲“1990년 3월 ‘남한의 청년학생 및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지상낙원인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위해 미 제국주의 및 현 군사파쇼정권타도 투쟁을 전개할 것을 선동하는’는 내용의 한민전의 ‘구국의 소리’ 방송 채록 유인물을 제작, 소지” ▲“1990년 7월 한민전의 ‘구국의 소리’ 방송 내용으로 책자로 제작하여 ‘청년학생의 벗’ 창간호 700부를 제작하여 10여개의 서점 등에 배포” 등의 사실을 나열한 뒤 국보법 및 집시법 등을 위반하여 反국가 활동을 벌이다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나열한 뒤,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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